-
저는 한국사를 공부하는 연구자입니다.2014년 4월 16일 10시부터, 대학원에서 비슷한 공부를 하는 동료들과 세미나를 하고 있었습니다. 중간에 잠깐 책상 아래로 스마트폰을 꺼내 사전을 찾아보려다가 속보로 뜬 세월호가 침몰 중이라는 뉴스를 보고, 동료들과 함께 걱정하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곧이어 "전원 구조"라는 보도를 접하고 안도하고는 모임을 끝까지 마치고, 다 같이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오후에 연구실에 돌아와서 자리에 앉아, 우리가 아는 그러한 비극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확인하고, 생후 40여 일이 지난 딸 아이와 아내가 갑자기 너무 보고 싶어져서 집으로 돌아가, 그 뒤로는 쭉 TV 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습니다.너무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날, 그 시간.
-
2년 전, 4월 16일. 저는 학교에서 과학의 날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시험기간으로 지쳐있던 터라 행사를 하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오전 11시경. 잠깐 쉬는시간에 컴퓨터를 보고 있던 중 실시간 검색어 1위에는 단원고등학교 2위에는 세월호가 떠있었고 고등학생을 비롯한 승객들을 태운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비보를 접했습니다. 처음에는 곧 구조되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심각해져갔고 공부방에서 방과후에 자율학습 중에 나와 dmb로 뉴스를 보며 많은 사람이 구조되기를 간곡하게 바랐습니다. 또 뉴스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던 적이 처음이였습니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갈 수록 구조되는 사람은 적어졌고 정부에서 내세운 에어포켓이라는 일말의 희망을 내건 채 한 명이라도 더 구조될 수 있다는 확신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차가운 바다 속에 잠들었고 그들의 시신들이 올라올 때 마다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남의 일이 아닌 누군가의 오빠,언니,자식이라는 것에 하루하루가 무서워졌습니다. ㄷ또한 아직도 차가운 바다 속에 잠들어있는 10분을 하루 빨리 발견되어 따뜻한 가족들의 품안에서 눈 감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시간이 흘러 저는 곧 졸업을 앞둔 중학교 3학년이 되었고 아직 세월호에 대한 확실한 진상 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있습니다. 또한 세월호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잊혀졌고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비난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10년이 흐르고 20년이 흐른다해도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차가운 바다 속에 잠들어 버린 단원고등학교 언니 오빠들. 그리고 승선하고 있던 많은 승객분들. 또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지키셨던 우리들의 영웅들까지. 잊지않겠습니다. 그날의 생각, 기억, 온 국민들이 함께 나눴던 슬픔 모두 가슴에 담아 오늘도 그분들의 몫을 다하여서 살아가고 있노라고 생각하며 살겠습니다. 또 지금까지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정부를 상대로 싸우고 계시는 많은 유가족분들도 기억하겠습니다.
-
그들은 7시간의 공백기간동안 뭘 한지 모른다고 한다 그럴수 있다 왜냐하면 나도 누군가가 나에게 그시간에 뭘했는지 말하라고 물어본다면 기억이 안난다고 할것이기 때문이다 난 그시간에 쳐잤다 꿀잠을 잤다 진짜 개꿀잠이였다 ♡
-
잠시 한국에 쉬러 귀국해 있었다. 늦잠자고 일어났더니 선박 사고라는 뉴스에 놀라 포털 뉴스와 sns를 통해 찾아보다가 전원 구조라는 오보에 안심하고 또 낮잠을 잤다. 그리고 오후 늦게 약속이 있어 일어나서 가는 동안도 뉴스를 안 챙겨봐서 제대로 알지 못 했다. 저녁이 돼서야 사퇴의 심각성을 알았던.. 사실 처음엔 그냥 이런 일이.. 말도 안돼.. 라는 슬픈 감정이었다가 해경 정부의 무능에 분노하게 됐던 것 같다. 다시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던 대응들.. 왜 그랬을지 정말 알고 싶다
-
병원에서 치료를 하고 로비로 나왔는데 로비티비에 왠 배가 바다에 뒤집혀있는 기사가 나오고,오른쪽 상단에 전원구조라는 속보글을 봤죠.그 때만 해도 배가 저렇게 완전히 운항하다가 전복된 그림을 생전 처음봐서, 어? 이랬는데, 전원구조된었다는 말에 당연하지, 요즘 세상에 배가 전복된다고 죽을수가 없지, 생각하고 병원을 나와서 일상을 계속 살아나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
뉴스에서 세월호가 침몰하였다는 내용을 얼핏 봤으나 처음에는 그리 크지 않은 사고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내 조금 더 상세한 것들을 알게 되자 눈물이 났습니다. 방에서 불 끄고 하늘색 이불을 덮고 많이 울었습니다. 전원 구조라는 말을 듣고 안심했으나 곧 더 울게 되었습니다. 친구가 학생들이 바다에서 저체온증에 걸리면 어떻하냐고 걱정하던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실제로는 배에서 나오기도 힘들었지만. 많이 미안해서 울었습니다. 많이 슬퍼서, 오랫동안 몰래 울었습니다.
-
2014년4월16일 그 때 저는 15살 중2였습니다. 그 날은 수련회 가기 2주전쯤이었습니다. 학교 규정상 저희 모두 핸드폰을 낸 상태였기에 오전 수업 중 한 과목인 국어 시간에 소식을 들었습니다. 배가 침몰되고 있다고. 저희는 그저 많은 헤프닝 중 하나로 생각하며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수업 중간중간 접한 소식은 학생들이 구조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 소식이 오보임을 학원이 끝나고 집에 도착해 뉴스를 보고 알았습니다. 구조되긴 커녕 많은 학생들이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더 많은 기사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저도 그때의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이 일의 뒤에는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그 날 그 하루를 잊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는 그 7시간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기억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당시 희생자들은 고2였습니다. 만약 그때 적절한 조치를 취했던라면 그들은 가장 예쁜 나이라 하는 20대입니다. 그들의 예쁜 나이를 뺏앗아간 7시간의 진실을 알고싶습니다. 절대 잊지않겠습니다.
-
저는 단원고친구들과 동갑인 여학생입니다. 그날은 어제있던일도 까먹는 저에게 유난히도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동산정보산업고등학교 2-6 교실딋편에서 제주도수학여행을 얼마 안남겨놓고 2,3교시쯤 사고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땐 철이없어서 처음드는 생각은 "우리 수학여행 못가는거아니야?"라는 생각을 친구들과 같이 하던중 전원 구조되었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우리도 수학여행을 갈수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교실에서 친구들과 기분이 좋았었습니다. 하지만 오보라는 기사를 보게되었고 그 순간부터 하교하는 순간까지 계속해서 전해지는 구조작업현황, 물밀듯이 늘어나는 사망자수. 생전 뉴스도 챙겨보지 않던 제가 오후5시쯤 집에가자마자 뉴스를 틀어보았습니다. 그후 지금까지 4명이 돌아오지 못하고있는거구요. 저같은 사람도 이렇게 생생히도 기억나는데 공부를 잘하셔서 높은자리에 계신분들은 어째서 기억이 안난다고만할까요? 단원고 학생들 뿐만아니라 다른 희생자분들,유족분들의 원통함을 하루빨리 해결해주길 바랍니다.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날의 7시간을.
-
처음 속보를 확인한 것은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였어요.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는 큰 배가 고장나 가라 앉는 중인데 모두 무사히 구조됐다고 들었어요. 볼일을 마치고 동료들에게 소식을 전하고는 다 같이 다행이라고 이야기 나눴어요. 그리고 까맣게 있고 있었는데 오보라는 후속 뉴스를 오후에 확인하고 화가 너무 화가 났어요. 우린 그런 것도 모르고 다 구했다는 이야기에 웃으며 넘겼는데 그 시간에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었던 거 잖아요?
-
그 날 아주 선명하게 기억이나요 2주간 동유럽여행을 하고 당시 교환학생으로 있던 러시아로 돌아왔던 날이죠. 여행의 여운과 행복감으로 젖어있던 그때 컴퓨터로 마주한 안타깝고 괴로운 그 인터넷 뉴스가 아직도 너무 선하네요. 다 구해줄꺼라고 기술이 얼마나 좋은 나란데 하며 믿고 뉴스를 몇 십번이나 확인 하며 기다렸던게 기억이 나요. 그러고 한동안 아무 것도 못하고 펑펑울고 기도도 드리고...너무 안타깝고 미안해요...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반드시 그렇게 할께요 우리는 기억합니다
-
삼가고인의 명봅을 빕니다?안타깝게도 이날 내가 다니던 면목고등학교도 제주도로 가는 수학여행 이였다.. 세월호가 빠진 시간 그때 공항에서 제주도를 가려고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tv에서 세월호가 침몰했다. 라는 안타까운 뉴스보도를 봤다. 너무나 마음아팠다 더군나나 나와 동갑인 친구들이였다 너무 안타까웠다. 꼭 무사히 다 구조되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백번 천번도 더했다. 그리고는 몇분뒤에 뉴스에 전원 무사 구조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고 나는 제주행 비행기에 발을 올렸다. 공항에서 출발해서 제주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곧장 핸드폰으로 뉴스를 봤더니 무사 구조했다는 내용의 뉴스 보도는 오보였고 tv왼쪽 상단에는 탑승 사망 구조 실종 이렇게 써있고는 안타깝게도 사망자 수가 조금씩 늘어나고있었다.. 너무 안타까웠다 그리고 그날 또한 수학여행 내내 비가 내렸다... 비내리는 바닷가를 보고있는데 눈물이 흘렀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정도로.. 친구들 몰래 울고있었다 친구들은 재미있게 놀고 있었지만 나는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수학여행 내내 마음이 무겁고 슬펐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
뉴스에 정확히 나왔던 "전원구조"라는 소식에 그냥 다른뉴스들처럼 흘려넘겼었다..그리고 아무렇지않게 여느날과 다름없이 반복되는 일상에 다시 몰두했다..선진국이라 생각했던 대한민국에서 저런 해상사고는 전원구조라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고 세월호에 갇혀있던 희생자들처럼 해경이 젤먼저 도착해서 모두 구조했겠지 믿었던 것이다..하지만 가라앉고 있는 세월호 화면이 마치 거짓말같고 그안에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마치 악몽을 꾸는듯 믿기지않았다..그날의 정신적 충격은 삼풍백화점이 무너진것을 뉴스로 봤던 그날이 생각났다..가위눌린것 같았던 그느낌......
-
그 때 저는 고1이였어요 친구들과 수련회를 가고있는데 앞에 차가 갑자기 크게 흔들리더라구요 그러더니 바퀴가 펑크나서 하마터면 앞반아이들이 다 위험했을뻔 했던 그런 일이있었어요 그냥 그런 작은 사고가 있었다 라고 생각하고 웃고 떠들며 친구들과 수련회 장에 도착하자 조교선생님들이 나오셔서 오는도중에 별일없었냐고 이야기하시면서 지금 큰 사고가 났다고 그거 듣다가 너희들도 사고 날뻔했다고 해서 엄청 놀랐다고 하시더라구요....저희가 보낸 구호물품들이 힘이됬을지는 모르지만 기억합니다 잊지않습니다 힘내세요
-
제 생일이 전날인 4월 15일 이여서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생일 선물을 받고 있었고 당일날에 생일인 친구가 있어 그친구에게 생일 축하노랰가지 불렀네요.... 언니오빠들의 소중한 생명 하나하나가 위태로운 순간에 누구는 이렇게 행복하게 선물을 주고받은것이 너무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그날이 너무 행복했기에 미안하고 그 행복을 나누어주지 못해 또 미안합니다
-
제가 그때 첫 뉴스를 접하게된게 4교시 과학시간 끝나갈때쯤 점심먹으러 달려가려고 준비자세 잡고있는데.. 갑자기 과학선생님께서 뉴스를 보여주셨습니다. 배 한척이 침몰되고있다는 뉴스였습니다. 그때 정말 저는 뭐지 진짜인가..? 그런생각이 들며 대통령이 빨리 사태파악하고 학생들이 모두 구조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기독교를 부모님이 믿으시는데 살아생전 처음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접한 뉴스는 가관이였습니다. 무능한 박근혜 대통령은 사태파악 조차 못하고 구명조끼 입었는데 왜 구출을 못하냐. 는 식의 질문을 던졌고 저는 리모컨을 던질뻔 했습니다. 7시간동안 잠적탄것까지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사건현장으로 오면서는 사태 파악 못하고 뭐한건가요? 국민의 혈세로 뒷돈 주고받느라 피곤하셔서 퍼질라게 주무셨나요?정말 저런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대통령이였다니.. 정말 자괴감이 들지경입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최순실 게이트 사건이 터졌습니다. 참.. 16년 인생에 인생초반에 이런일이 생길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게 나라인가요? 전 아직 중학교 3학년이지만 꼭 제가 살아갈 사회는 한걸음 나아간 발전된 사회에 살고싶습니다.아니 제가 살아가는 사회는 발전한 사회가 아니라도 최소한 발전중인 사회라면 참 좋겠습니다. 꿈을 못이루시고 멀리 떠나신 단원고 선배님들.. 잊지않겠습니다. 꼭 미래가 밝은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박근혜는 하야하라
-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그날일 초라도 빨리 밥을 먹으러 급식실로 내려가 줄을 서면서야, 다 구조됐대 전원 구조래....춥고 비오는 날이었다스파게티를 먹으러 뛰어갔었다이 추운 날 얼마나 놀랐겠냐고그래도 구조돼서 다행이라고스파게티를 먹으면서 친구와 말했다그 급식실엔 구조되지 못한 300명과 동갑인 내 후배들 내 동생들이 똑같이 스파게티를 먹으러 줄을 서 있었다
-
아는 선생님과 밥을 먹고 있었어요. 지금은 이사 온 동네지만 또렷이 기억이 나네요. 집 옆 도로를 조금 걷다보면 굴다리가 나왔는데, 거길 지나면 있는 족발집에서 매운 족발을 먹었었죠. 그리고 또 걸어서 한 카페에 갔어요. 아주아주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선생님과 헤어져서 집에 가는 길 버스에 타 핸드폰을 봤는데 뉴스가 하나 뜨더라구요. 배 하나가 가라앉는다는 기사였어요. 전원 구조라고 괜찮다고 하기에 큰일날뻔했구나..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집에 오자마자 가족들이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뉴스를 봤어요. 아직도 거기 사람들이, 학생들이 있다고 했어요. 아까는 분명 전원구조라고 했는데, 그게 오보라고? 어떻게 그게 오보일 수 있어? 방에 들어가서 뉴스를 더 확인했어요. 실감이 나질 않더라구요. 몸은 머리보다 빨리 알아차린건지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엉엉 울면서 기도를 계속 했어요. 그래도 그 때는 막연히 구조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하루 지나고 이틀 지나고.. 학교 쉬는 시간에 티비를 켜면 나오는 뉴스에서 누가 구조되었더라는 소식을 들을 때 마다 눈물을 쏘도 그 모든 일상이 죄스럽고 내가 밤에 침대에 누워 잘 때 마다 차가운 물 속에 계실 희생자분들 떠올라 뒤척이고 울고 기도하고. 그 때 희생자 분들은 저보다 두살이 더 많았는데 이제는 동갑이 되었군요. 이년이 지났지만 모든 것이 생생합니다.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그 감각을. 얼굴도 본 적 없는 그들이 사무치게 그립고 안타깝고 미안하게만 느껴지던 그 감각. 아무것도 하기가 싫고 무력하고 실감이 나지 않고 야속하고 죄스럽고 원망스럽고 죄송하고 허무한, 전국이 구렁텅이로 빠져든 것만 같았던 그 시간. 기억이 안 난다고요. 모르겠다고요. 당신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이 참사 하나 때문에 당신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모든 걸 알고 침묵하고 늦게 보고하고 그래놓고 피해자 가족분들로 하여금 자식을 죽도록 내버려둔 살인자에게, 당신들에게 무릎 꿇도록 한 당신들. 죗값 치를 수 없을 거예요 평생. 뭘 해도 모자랄테니까.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어둠은 빛을 몰아낼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피해자 가족분들의 행복을 간절히 바랍니다.
-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백화점에서 근무하는 나는 맛없는 점심을 먹고 별 생각없이 휴게실에서 두 다리를 쭉 뻗고 휴게실 안에 틀어져 있는 티비를 보았고,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솔직히 처음엔 대수롭지않게 생각했다. 왜냐면 당연히 다 구조될거라 믿었으니까. 같이 티비를 보고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생각했고, 서로 그렇게 말했다. 금방 수습될거라고. 그리고 그 생각에 부합하듯 전원 구조라는 뉴스가 나왔다.그래, 요즘같은 시대에 저런 일이 일어나는것도 웃기지만 다 못구하는것도 웃긴 일이야. 말도 안되는 일이지. 나는 그렇게 속으로 생각했다.그런데 내 생각을 비웃듯 "웃기고 말도 안되는 일"은 상황이 점점 심각해졌고, 퇴근길에는 컴컴한 밤바다에 완전히 잠긴 배를 보았다. 여전히 나는 현실적이지 않은 그 장면에 우리 나라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벌써 2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 날, 그 배를 떠올리게 하는 것들을 보면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 것을 꾹 참는다. 미안하도 또 미안하고 울 자격도 없는 것 같아서. 그래도 목에 건 카드 지갑에 달린 노란 리본을 보며 미안함을 상기시킨다.진실은 침몰하지 않으며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
세 아이가 학교에 허둥지둥 등교하고 바빴던 마음을 달랠겸 커피 한 잔을 타서는 텔레비전 앞에 앉았는데 배가 침몰했다고 했다. 깜짝 놀라 출근중이던 남편에게 소식을 전했더니 설혹 배가 침몰하더라도 규모가 큰 배라서 승객을 구조하는데는 문제가 없을거라고 남편은 말했다. 그렇지만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아이들은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날 마시려 했던 커피는 하루종일 식은채 테이블에 남겨져있어야 했고 나는 커피를 마시지 못했는데도 벌떡거리는 심장을 어찌하지 못한채이 일을 어째...... 중얼거려야했다. 퇴근한 남편은 아무 일 없을거라 말했던 자신의 말때문인양 미안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눈물이 먼저 흐른다.
-
저는 단원고학생들과 동갑입니다 그날 학교에서 쉬는시간에 인터넷을 하는 도중 실시간검색어에 뜬 것을 보고 교실티비를 틀어 친구들과 함께 보았습니다. 당시 뉴스특보 자막에는 전원구조 라는 말을 보고 친구들과 안심을 하고 다행이라 생각하며 손뼉을 쳤죠 . 전 같은날 다른학교에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친구에게 안부를 물었죠..하지만 오후수업이 끝난뒤 뉴스를 보니 오보라는 것을 보고 친구들과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해경이 구조중이라 했을때에 그들을 믿으며 친구들이 구조되기를 바라며 하루종일 뉴스를 보았어요, 에어포켓부터 시작해서 여러가지희망을 가져보았지만 너무 비극적인 결과가 되었죠 도대체 그 7시간동안의 일을 왜기억못하는지 묻고싶습니다. 저는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날을 절대 잊어서는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