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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여만의 고국 방문을 기다리던 중 비보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ㅠㅜ 진실의 힘을 다시한번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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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7시간 ... 아침 출근후 업무시작전 열어본 익스플로어에서 본 속보 .. 그리고 그날의 7시간은 구조인원이 늘어나지 않았나 .. 구조방법이 새롭게 생기진 않았나 ... 떨리는 마음에 기사포털 화면을 쉬지않고 새로고침했던 기업 .. 그보다 F5버튼을 자주 눌렀던 적이 있을까 싶었던 시간들 .. 잊지않습니다.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리고 계속 기억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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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아무 것도 못하고 티비만 쳐다보고눈물로 보냈는데~~~박그네는 뭐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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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기억합니다..태어난지 백일도 안된 아들이 갑상선저하증 진단받고, 약국에서 3개월 동안 복용할 호르몬제 처방을 기다리면서 뉴스를 봤어요..처음에는 전원 구조 소식듣고, 너무 다행이다..너무너무 감사한일이라 생각했습니다..계속 되는 오보와, 안타까운 소식때문에 제 가슴이 함께 무너져내렸습니다..잊지않겠습니다..포기는 없습니다우리는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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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뉴스만 봤어요..아마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렇지 않았을까요?그냥 뉴스만 보고있어야 하는 힘없는 사람이라 미안합니다...지금도 노란 리본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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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시간동안 불안해서 인터넷을 계속 했던 기억이 납니다. 구조되었다는 소식이 있나 검색을 계속하고 지인들과 온종일 세월호 이야기를 했던 기억..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다는 허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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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또렷하게 그날의 일이 기억나요어제의 일처럼...문화원에서 미술사 수업하는 날이었는데 쉬는시간에 친구가 수학여행가던배가 침몰했다고 말하더군요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고 다행히 전원구조됐다는 소식을 보고 다시 수업을 들었는데 집어 돌아가서야 전원구조는 오보였음을 알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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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영화관 직원이었고, 오전의 영화관은 평소에도 조용한 편입니다. 그날은 유난히 더 관람객이 없었던 기억과 영화관 직원들이 모여서 발을 동동 구르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실시간으로 핸드폰을 살피며 구조 뉴스를 기다렸습니다. 저는 기억력이 좋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2년전 그 날은 이상하게도 선명하게 무기력함으로 가득찬 풍경이 떠오릅니다. 기억이 나지않는다고요? 당신은 어떻게 세월호 사고를 전해 들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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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TV도 뉴스도 보지 않았다. 내게 소식을 알린 이는 애인이었는데, 지금 남해바다에 배가 침몰했고 학생들이 타고 있으며, 애인의 어머니께서 소식을 듣고 침울해하고 있다고 나에게 전해주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참 감수성이 풍부하시다고 생각했다. 죽은 사람이야 안타까운 일이지만, 구조할 수 있으면 구조할 것이요, 애초에 구조가 불가능한 일이라면 구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불의의 교통사고나 안전사고처럼 삶은 원래 리스크를 안고 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안타깝긴 하지만, 그냥 안타까운 일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평소처럼 수업을 들었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이후로 알게 된 일은 사실과 전혀 달랐다. 세월호는 구조할 수 있는데 구조하지 않은, 없어야 했던 일이 있었던 일이었다. "세월호"는 단순히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을 실은 배가 침몰한 일이 아니었다. 이 나라 전체가 침몰한, 우리의 신뢰가 침몰한 일이었다... 우리는 아직 해저에 가라앉아있다. 바다 밑에서 죽은 채로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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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수업 중에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걸 보았고, 동기중 누군가가 "전원 구조됐대"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수학여행가고 있는 어린 학생들이라고 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더라..... 그날 오후 실습동안 우리 동기들 대화의 주제는 모두 세월호 였고, 학생들에 대한 걱정이었다. 대통령이 어딘가에서 국민 아무도 모르게 보낸 7시간 동안 많은 국민들은 뉴스를 보며 구조를 걱정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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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아침부터 수업이 있는 날이라 가기 싫은 마음에도 뭉그적뭉그적 일어나 경제원론1 수업을 들으러 갔다. 옆의 친구는 수업중 기사를 보는 지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고, 그러던 중 수업 중인데도 놀란 표정을 지으며 기사를 보여줬다. 진도 앞바다에서 배가 침몰 중이란다. 너무 놀랬지만 그 후 계속 확인하니 전원 구조되었다고 했다. "그래..우리나라가 선박 사고 하나에 사람을 구하지 못할 나라는 아니지." 그렇게 안심했다. 일말의 국가에 대한 신뢰를 다시 붙잡았다.그리곤 다른 수업을 듣고 정신이 없었고, 저녁땐 전에 예매해 둔 뮤지컬 공연을 보러갔다. 서편제였다. 펑펑 울고서는 좋은 공연이었다라고 하고선 나와서 폰을 켜고, 네이버에 들어가는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많이 울고 나와서 눈물이 다시는 안 나올것 같은 상태에서 또 울었다. 지하철에 앉아서 그렇게 하염없이 울었다. 나와 이 나라의 모든 국민의 안심한 마음과 작은 신뢰를 짓밟고 모든 걸 부숴버린 쪽은 국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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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를 보고 처음세월호침몰소식을접했다/너무나무섭고두려웠지만전윈구조라는기사제목을보고남은시험공부를해나갔다.그러나자꾸만엇갈리는뉴스에오후시간이되자손이떨리고가슴이쿵쾅거렸다.대통령과정부고위직과새누리당을제외한모든국민의가슴이무너진7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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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날 낮에는 사건을 모르다가 저녁때 집에 오는 길에서야 한국 뉴스를 보고 큰 일이 난걸 알았다. 그 길로 집에 와서 온갖 소식을 접하는데 모니터를 바라보며 절로 눈물이 났다. 몇날 며칠을 하염없이 뉴스를 보고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의 댓글들을 보며 끝없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낮에도 타지 사람들과 식사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가슴이 뻐근하고 뻥 뚫린 것 같은 날이 한참을 이어졌다. 멀리 있어도 내 마음은 항상 한국에 있기에 그 아픔과 비통함, 무기력함은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지금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 이들, 그 당시 바스러져간 수없이 많은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다루는 이들, 그들은 외려 몸은 고국땅에 있어도 마음은 자신들만의 다른 나라에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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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티비 속의 세월호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제발 해경이 ,119구조대가, 해군이 , 그 누구라도저 아이들을 구해주길 애타게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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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고2아이들과 함께 했던 수련회 마지막날이었습니다.아침을 먹고 숙소방에 양치를 하러 갔을 때 같은 방 선생님께 사고소식을 듣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지막 회의를 하러 갔습니다. 그 시간이 9시전후였던 것 같은 데 사고시간이 더 늦게 발표되서 의아하긴 했습니다. 그나마 사고가 아침에 일어나서 천만다행이라고 동료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tv에서 나오는 그 지역상황(바람이 잔잔하고 날씨도 춥지않다. 구조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곧 구조가 시작될 것이다..)을 듣고 사고상황에 촉각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수련회해단식을 하기 얼마전 포털에 뜬 전원구조소식에 기뻐하며 저희 학교 학생들에게 알려주었던 기억도 나네요. 그런데 그것이 오보일줄은...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오보였다는 사실을 접하면서도 아직 해가 지려면 몇 시간이나 남은 상황이니 더 늦기전에 많이 구조하겠지 라는 기대를 했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 주말이 끝나가도록 자력으로 탈출했던 사람들 외에 구조자가 0명이라는 사실에 분노하고 절망하며 몇달을 보냈습니다. 제게 남아있는 그날의 기억은 이랬네요..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 때 이상했던 점은 당시 회의실에서 보던 tv 화면에 어느 순간사고 현장의 생방송 장면이 아닌 사진으로 찍힌 이전의 장면만이 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도대체 그 시간동안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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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 죄없는 생명들이 차가운 바닷속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가야 했나요.모두 살수 있었습니다.하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4월의 저는 대통령이,무책임한 어른들이 너무나 미웠습니다.이제는 제가 어른이 됩니다.훗날 저의 자식들이 살아갈 이 나라를 위해,그날의 상처가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 저는 싸워나갈 것입니다.겨울바람이 아무리 차갑고 상대가 돌처럼 단단할지라도 그날의 아픔을 되새기며 진실을 향해 촛불을 피워나가겠습니다.절대 잊지 않겠습니다.REMEMBER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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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대구에서 김천으로 기차통근했어요.그날 저녁 기차에 내려서 지하철 타러고 가는 중인데 가려고 "세상의 모든 음악" 진랭자 카이씨가 이렇게 멘트를 했어요,"이제 어두워지는데 아이들 무사귀환을 기다리는 가족의 애타는 심정 ...."가슴이 철렁해서 더 이상 듣지도 못했습니다. 제 안에 있는 한줄기 희망의 끈이 뚝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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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름없던 평범한 날이었습니다충격적인 기사를 접했고전원구조 소식에 안도했으나오보임에 분노하고 눈물이 났습니다동생과 동갑인 어린 아이들...저는 안산에 살고있습니다같은 동네, 같은 또래 아이들의 비극적인 소식에 동생 생각이 났습니다배 속에 자기 친구도 있다고 말하던 동생자기 빼고 친한 친구들끼리 같은 학교라 함께 수학여행을 갔다며 서운해하다가 단톡방의 사라지지 않는 숫자에 울부짖던 동생의 친구은사님께서 돌아가셨다며 울던 친구자기 자식의 일인양 가슴을 치며 우시던 부모님제 동생이 살아있음에 너무 감사하고또 그런 제 이기심에 자책하고또 희생당한 아이들을 살리지 못했음에 너무나도 죄스럽고 눈물만 하염없이 나던 하루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당신들은 어떻게 잊을 수가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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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구조 오보만 믿고 푹 잠들었습니다별일 없을거라 생각하고 깨어나서사람들 수근거림에 알게되었습니다푹 잤던사실이 너무 미안해서 계속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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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전 저는 공학관 5층에서 건축시공 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 강의실은 동쪽에 칠판을 뒀고 저는 맨 뒤에서 남자교수님이 피피티로 진행하는 영어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죠. 친구가 수업 프린트를 제것까지 해주어 고마워했던 아침이었습니다. 열없이 인터넷을 뒤적거리던 저는 진도 앞바다에서 수학여행 가던 아이들을 실은 배가 침몰했다는 속보를 보고, 옆자리 친구에게 작은 목소리로 알렸던 기억이 납니다. 얼마 후 300여 명을 모두 구조했다는 속보를 보고, 그래, 당연하지. 다행이야. 라고 생각했고, 배에 남은 인원이 있는 건 아닐까 까지 생각이 미쳤다가, 수업을 끝내고 가방 메고 나오면서 300여 명을 무사히 구조한 해경이라면 잘 하겠거니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최악의 오보였고 저는 그날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진도 상황을 지켜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