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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를 앞두고 회사선배와 함께 점심을 먹고 있었다. 밥을 먹는 내내 뉴스보도가 계속 나왔다. 밥먹는 동안만해도 구출된 학생들 인터뷰가 나왔고, 선체 부근에 놓여있는 배들을 보면서 당연히 모두 구출되겠거니 싶었다.회사에 돌아와 틈틈이 뉴스속보를 봤는데전원구출이라는 오보가 나왔다가민간인들이 나서서 구조를 돕고있고 정부로부터는 아무 소식이 없다는 걸 알았다. 당연히 구조될 줄 알았는데설마 다들 갇혀있는건가 싶었다.그 설마가 초조한 마음으로 퍼졌다.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에 대한 뉴스를 볼 때 마다 손이 떨렸다. 단원고 학생들과 동갑인 내 막내동생이 몇 주 후 수학여행을 갈 예정이었다. 그 당시 고등학생을 가족으로 둔 모든 사람들이 느꼈던 공포와 떨림이 있다. 내 동생이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 날의 7시간보다 그 이후의 시간들이 더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 사회는 모두 우울증 아닌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 다음날 회사에 출근해서는 숨쉬는 것 조차 조심스러웠으니...다시 기억하니 그 날의 기분과 느낌이 생생하다. 평범한 시민인 나도 이렇게 생생하고 또렸이 기억하는 하루다. 대통령도 하루빨리 그날을 기억하고 떳떳이 그 날의 자신을 밝히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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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을 잘 흘리지 않는 제가세월호만 생각하면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흐릅니다. 저는 평범한 대학생입니다. 참사 당시에 공강날이었고 TV시청을 하고 있었습니다.. TV를 보던 중 배가 침몰 중이라고 뉴스 속보가 떴고 가슴을 졸이며 뉴스를 계속 보고있었습니다. 이어서 전원구조라는 보도를 보고 안도하고 계속 뉴스를 보는데 얼마쯤 지나서 정정보도를 하더라구요...정말 이날은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하고 뉴스만 봤습니다...밤까지 구조소식이 없어서 배에 갇혀있을 아이들생각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도대체 왜 왜 왜 왜 왜저는 이렇게 아직도 생생한데 국가의 책임자라는 사람들은 어떠한 대답도 명확히 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왜 자꾸 반복하나요?이 일이 잊혀질 줄 아셨다면 큰 오산입니다.모든 국민들이 이 일로 인해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고 이 일은 지금도 흉터처럼 마음에 새겨져 있습니다. 세월호유족 뿐 아니라 전 국민은 이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슬프고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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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금요일 처럼 정신없이 회사에서 일하고, 깨지고 했던 날이었습니다.9시 반 무렵, 어떤 여객선이 침몰하고 있으나, 전원 구조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다행이다 싶었고 다시 업무에 몰입하였습니다.하지만, 퇴근하고 회사동료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사실은 대부분 구조되지 못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국민들에게 안전망이 되어 주지 못한 국가/정부에 절망감을 느꼈습니다.제가 세월호 희생자들을 잊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이 다시 살아오지 못함을 압니다. 하지만 그래도 잊지 않으려는 이유는,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게해서 그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으려는 자그마한 노력입니다.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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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로부터 카톡을 받았다. 한 여객선 소식을 전하며 그곳에 탄 지인의 친척 이야기를 전하며 무사히 구조될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아마도 사고 초기였기에, 카톡이 전해졌나보다. 연락이 닿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구조가 무사히 진척되기를 기다렸다. 저녁에는 교회에서 세례입교와 성찬식이 있었다. 성찬위원이라 까만 옷을 입고 교회로 갔다. 그날 밤에도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친구 지인의 동생은 돌아오지 못했다. 나 역시 고등학교 때 제주도로 여객선을 타고 수학여행을 갔다. 돌아보면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조용히 있었을 나였다. 세월호는 남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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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가는 KTX 에서 뜨는 속보를 보고 놀랐고,곧바로 전원구조라는 말에 안심했으나,오보라는 뉴스와 쏟아지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에 멍해졌던 기억이네요.제게는 31개월이 지났다는데도 잊혀지질 않는 기억인데 그들은 어찌 하나 같이 기억이 안난다고들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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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시청에 협약서 날인 받으러 갔었습니다. 하필 노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습니다. 협약서가 처리되는 동안 해양수산부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누군가 뛰어들어와서 티비를 켰습니다. 사고가 났다고. 그런데 뉴스에서 승객 전원 구조되었다고 나오고 있었습니다. 별 일 아니구나.. 그렇게 앉아있다 도장 찍은 거 확인하고 서류 받아서 회사로 돌아갔습니다. 회사에서는 하루종일 너무 바빴습니다. 오전의 뉴스가 틀렸다는 것을 한참이나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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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당시 저는 고등학교 1학년 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세월호 침몰이라는 기사를 보았고, 곧 전원 구조라는 기사와 별일 아니네 라고 안심한지 얼마안되서 오보라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사람 목숨가지고 어찌 이런 오보를 내나 생각하였고 몇시간을 기다려도 며칠을 기다려도 실종자의 수가 0명이 되는 날은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2014년 4월 16일 그날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제 일도아니고 주변 사람의 일도 아니지만, 같은 나라의 국민으로서 굉장히 슬퍼하고 분노했기때문에 그 날을 잊을 없습니다.어찌 잊나요 그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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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민국 사람 이라면 그 날을 또렷이 기억 하리라 생각된다. 나도 두 아이의 엄마 이며 대한민국 국민 이다 그래서 기억 한다 그 날의 7시간을... 고깃집 개업을 앞두고 분주하게 이것 저것 준비 하면서 틈 나는대로 핸드폰 으로 뉴스를 검색 했던 그 날... 그 날 이후 한 동안 애써 외면 하려했던 그 날... 가슴 아파서 울화가 치밀어서 어이가 없어서 자식을 잃은 애미를 볼 수가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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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쓰려니 가슴이 막막하네요..저는 저때 20살이였는데 학교복학중 이였어요급식시간에 밥먹고있던도중 같은반 아이가오늘 안산에 수학여행간 단원고등학교 애들지금배침몰했다고.. 저는 저말듣고 처음에는제일이 아니니까 별 신경을 안썼는데....몇시간... 몇분후.....사태가 심각하다는것을 알았습니다.."어떡하냐... 불쌍하다...."동영상 등등 뉴스란 뉴스보고할말이없더군요... 저는 학교끝나고바로친구들만나서 부천역 근처 텔에가서친구들이랑 바로오자마자 뉴스틀고생존자....저희는 숨죽여서 볼수밖에 없었고아무것도 못한다는 저희를보니 한심하고...저보다 꽃다운나이에...한창 하고싶은것도 하고 그럴나이인데보니까 가슴이 먹먹하더군요..정부는 뭘하는건지 대통령은 뭘하는건지...미국에서 도와주러왔는데 왜그냥가지? 이생각이들더군요 저는 처음에 새누리당도 싫었는데아이들이 저렇게 죽어나가고 있는데박근혜 저분은 그7시간동안...후... 차마 세월호 아이들을 위한글이라여기글에는 더럽히기싫네요진짜저분만 보면 화가 날수밖에없습니다제가 단원고 아이의 글읽는걸 동영상으로보는데 눈물이 너무많이났습니다아버님어머님들 우시면서 보는게와미칠것같고... 너무가슴이 아팠어요..저때 대통령이란 사람은 뭐하는건가 싶을정도로너무 화가났는데 자기자식이 저기있었으면구하고도 남았겠죠..? 정말 사람이 아닙니다 저건..아버님 어머님들 제가대신에 도움을 못드려서부끄럽고 죄송할 따름 입니다..그나마 이 글이라도 써서 그때 저도 잊을수 없다는것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램 입니다.세상모두가 세월호 아이들, 그 아이들의 부모님당신들 편입니다 세월호 아이들아 편히 쉬고있어우리는 언제나 너희편이고아무것도 해준게없어서 미안해..사랑하고 우리는 죽을때까지4.16 그날 잊어서는 안 될...보고싶다 지금도 실감이안나..눈떴을때 다 살았다고 들리면 얼마나 좋을까..거기는 어때? 여기보다 편하게 있겠지..?사랑해 잊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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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는 중학생이였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티비를 보면서 선배들이 죽어가는 모습 절규하는 유가족들의 모습.거짓 보도하는 뉴스와 기사들 이 모습들을 지켜보았습니다. 도와줄 수 없어서 미안했고 심각한 상황에도 수업을 해야하는 상황에 한탄했습니다. 그날 저는 100명이 넘는 생명들이 이렇게 쉽게 숨을 멎어버린다는 일이 너무 충격이었습니다. 박근혜는 거짓눈물을 흘렸고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우리의 선배들 가족들은 절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른의 잘못된 행동으로 죽어가는 학생의 모습은 아직도 저의 마음속에 뚜렸하게 남아있습니다. 골든타임..그때 저는 학교에서 지켜볼 수 밖에 없었지만 당신이 빠은 대처를 하였다면 지금 눈물을 흘리는 사람의 수는 더 적었을 것입니다. 박근혜 당신은 7시간동안 무었을 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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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어느 때와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잔장이 들어오더니 "야 지금 배사고나서 구조 중이래" 라고 말하였습니다. 저희는 조그마한 배 사고로만 인식하며, "괜찮을거야"라고 말하며 하루일과를 시작하였습니다. 매시간 들어오시는 선생님들이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전부 구조가 되었다더라, 지금 사태 파악 중 이다더라등 긍정적인 소식만이 이어졌고 저희는 안심하며 마지막 교시까지 보냈습니다. 저녁시간, 친구들과 밥을 사먹으러 나갔습니다. 식당에 앉아서 음식을 기다리는데 텔레비전에 나오는 소식을 우리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사망자" 뉴스 상단에 이 글자가 쓰여져 있었고, 옆의 숫자가 계속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었습니다. 저와는 불과1살차이나는 언니 오빠들이라 저는 더 충격을 받았던것 같습니다. 배가 기울어져있고 그 주변에 구조용배가 두세척밖에 없었으며 그 배조차도 떠돌기만 하는... 그런 무능한 모습을 저는 분명히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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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10시에 아르바이트 시작 점심시간없이 업무, 2시즈음... 아르바이트 마치고 2호선 충정로역에서 처음 세월호 1위 검색어가 떠서 확인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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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11시쯤 전원 구조 라는 뉴스를 보고 수업에 들어갔다가 나왔을 때 사실이 아니라는 소식에 여러대 컴퓨터에 실시간 뉴스를 켜놓고 아프리카 티비등 실시간 정보를 보느라 며칠밤을 ....정부의 무능함을 느끼고 느낀 시간들이 었다.꼭 박근혜의 7시간을 밝혀 책임지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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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6세월호 참사 발생출동한 국가기관은 적극적으로 단원고 학생들과 승객들을 전부 구조하지 않았다침몰해 가는 세월호을 지켜보면서설마 국가가 시민들의 고귀한 생명을 수장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국가기관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비롯해 시민들에게 정신적인 살인을 가했다그야말로 분노의 멘붕이 세월호 참사 당일부터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청문회를 지켜보는지금까지 도 가시질 않는다반드시 세월호 참사 진짜 범인을 잡아서그들도 똑같이 바다에 수장시켰으면 좋겠다그래야 두 번 다시는 이런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물고문 살인을 하지 않을 것이다세월호의 억울하고 원통한 원혼들이시여 ~!꼭 끝까지 그들을 벌하소서 세월호 유가족 여러분추운 겨울이 왔습니다옷도 따뜻하게 잘 챙겨 입으시고끼니도 잘 챙겨드셔서항상 건강 하세요저희 시민들이 항상 지겨보고함께 할테니 항상 힘내시길 바랍니다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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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수가 없습니다한순간이라도 대한민국을 사랑했다면 나와서 밝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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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핸드폰으로 첫 사고 기사를 보고 호들갑스럽게 남편에게 전했습니다. 그때까지만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것이 항상 여객선 사고 나면 전원 구조됐으니까 "또 구조되겠지" 다만 수학여행간 학생들이 타고있다는 기사에 "아이들 많이 놀랐겠다, 수학여행길에서 사고나서 어쩌나" 정도였는데...그 뒤에 전원구조라는 기사보고 "역시..다행이다" 했습니다. 그 또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다보니 출근해서도 계속 뉴스를 확인했는데 오보였다는 기사와 아이들을 태운 배가 점점 가라앉는다는 뉴스에 종일 핸드폰을 손에 들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날을 어찌 잊을까요. 이렇게 또렷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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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근교에서 늦은 출근 중 세월호 침몰 그러나 전원구조라는 오보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나의 일상으로 돌아갔다.저녁에 많은 승객(대부분이 단원고 학생)들이 갇힌 상태로 전복되어 선수만 남아있는 세월호를 티비에서 보게되었다.그 후에도 계속된 오보들 : 많은 구조인력이 동원되어 밤새 구조하고 있다는반복된 오보는 오보가 아니라 기획된 거짓이다!너희들은 누구냐?너희들은 왜 거짓을 말하느냐?박근혜 너는 왜 7시간에 대해 거짓말 조차도 하지 못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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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과 점심 식사중 사고 뉴스를 접하고 "전원 구조"라는 뉴스를 보고 천만다행이라 생각하고 오후 출근을 했습니다....그런데 전원 구조란 뉴스가 오보가 됐고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뉴스만 보고 구출소식이 있는지 왠종일 뉴스만 시청하고 있었어요!!!대통령의 7시간 꼭 밝혀져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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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듣기 위해 강의실에 모여 앉아 수업이 시작하기를 기다리며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 보고 있었습니다.세월호 침몰과 관련된 뉴스를 보았고 전원 구조라는 기사를 읽고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강의를 들었습니다.강의가 끝난 후 전원 구조가 오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제발 모두 구조되기를 바라고 또 바라던 그날 이었습니다.세월호가 가라앉을때 어째서 아무것도 국가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는지... 아직도 너무나 우울하고 좌절감이 들고 불안한 기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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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대학교 2학년이었던 저는 시험을 자주 보는 학교 탓에 지겨운 시험기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다음 시험을 기다리며 잠시 자취방에 들러 밥을 먹는다는 핑계로 하던 공부를 내려 놓고 룸메와 함께 티비를 틀었습니다. 뉴스에서는 차마 믿지 못 할, 충격적이고 소름 끼치는 이야기가 흘러 나오고 있었습니다. 밥은 이미 뒷전이고 생존자가 한명씩 늘어날 때마다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제발 모두 무사하길 빌었습니다.그 시간, 야영에 갔다가 돌아오는 동생 생각이 들어 전화를 했던 기억도 어렴풋이 납니다.그 아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여행을 떠났는지 너무 잘 알기에.. 아직도 배를 타고 수학여행 떠나기 전의 설렘을 선명하게 기억하기에 더욱더 간절했나 봅니다. 한 명씩 늘어나는 생존자 명단을 보며 그나마 안심을 하고 다음 시험을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그때까지는 정말 다행이라며 다 구할거라며 그 친구들 이번 수학여행 정말 평생 잊지 못 할 기억으로 남겠네.. 트라우마 생긴 애들은 어쩌나.. 상담을 공부하는 지라 이런 생각부터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집에 돌아와서 뉴스를 보며 저는 제 눈과 귀를 믿지 못했습니다. 생존자 수와 사망자 수가 뒤바뀐 상황.. 아무리 보고 또 봐도 믿겨지지 않아서 여러 방송사 뉴스를 돌려 보아도 상황은 마찬가지 였고, 아무런 대처와 해결방안 없이 그저 손 놓고 있는 모습에 저는 알 수 없는 화와 울분이 치밀어 올랐습니다.뉴스를 보며 안타까운 탄식과 눈물을 흘리는 것 이외에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웠 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바닷물을 전부 삼켜서라도 아이들을 구하고 싶었던 마음이 간절했습니다.전 국민이 또렷이 기억하는 아픈 7시간 동안 당신은 대체 무얼 하고 있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