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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따라 늦잠을 자서 늦게 일어나 밥을 먹다 티비를 틀어 접하게 된 소식이었는데, 곧 이어 전원무사구조 라는 속보가 떴고 "다행이네"라는 생각으로 식사를 마쳤습니다. 그 때까진 전날까지의 일상과 별 반 다르지 않았지만 그 속보가 오보였음을, 그리고 함께 공부하던 스터디원의 모교였음을, 그의 선생님께서 순직하게 되셨음을 알게된 후부터 전과 같이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하루종일 뉴스만 멍하니 보다가 우울해지고 이러다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에 걸리겠다 싶어 저와 같은 처지인 친구와 만나 카페에서 밤을 새기도 했습니다. 이 말도 안되는 대처가 계속되는 소식을 피하기 위해서요. 직접적 관련이 없는, 그저 국적이 동일하다는 공통점밖에 없는 저조차도 이렇게 마음이 동요하고 일상 생활이 불가능했는데 7시간 동안 이 나라의 대통령은 뭘하고 있었던 걸까요.저는 그 날 너무나도 평소와 다를바 없었던 제 일상을 잊지 못합니다. 그와 학생들의 일상이 너무나 대비되었기 때문에. Remember20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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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앞 뒤가 다른 변명과 회피에 고작 우리가 할 수 있었 던 일은부디 한명도 빠짐 없이 최대한 많은 인원이 빠르게 구조되는 것하지만 그 바램은 이뤄지지 않았다하여 노란리본을 달며 매년 이 날 7시간을 잊지않아주는 것 조차 할 수 밖에 없는 우리가 되었다.하늘에서라도 못다한 꽃을 피워주는 걸 바라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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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처음 기사와 뉴스를 보고 에이 설마 아니겠지 곧 구조 되겠지 라고 생각하고있었고 버스안에서 세월호와 관련된 위로와 소식들을 리트윗하며 조금이라도 더 퍼져나가도록 하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의 절박한 글을 보며 어리둥절 이게 무슨 도대체 마른 하늘의 날벼락 같은 일이야라고 하고 있었다그 때 찬 물에 있었을 사람들과 찬 바닥에서 그 사람들을 마냥 기다리고만 있었을 보호자들을 생각하면서 울컥했던거같고 나는 지금도 세월호 마지막 생존자 학생의 사연을 보며 눈물을 이렇게 쉽게 흘릴 수 있는데 내 눈물보다 그때 더 많이 아파하고 토해내듯 울부짖었던 당사자분들은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도 못하겠어서 슬퍼하는것조차 송구스럽고 부끄럽다앞으로도 일이 투명하게 해결될때까지 주의와 관심 기울일 것 입니다. 모두들 힘내주시길..다시한번 고인의 명복을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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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가락하던 뉴스의 오보가 한심스럽던 점심식사자리.언론과 정치가 망쳐놓는다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지만 세상을 너무 많이 깊숙이 알면 알수록 세상이 살기 싫어진다.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알권리와 의무가 있다.바르고 좋은 소식만을 접하며 살아가는 그런 날이 오리라 믿으며 오늘도 어용언론과 정치인들이 바로 설 것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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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헬스장 런닝머신에서 운동을 하면서 처음 세월호 침몰이라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이후 곧 전원구조라는 속보가 전해져 "다행이다"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습니다.그런데 전원구조는 오보로 판명되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사건은 점점 더 심각해졌습니다. 왜 이렇게 구조활동이 지지부진한지 애태우던 기억이 아직 선명합니다.그 지지부진함은 결국 비극을 낳았고, 이렇게 지금까지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유가족들은 배신감과 허탈함, 석연찮음에 가슴이 아팠을지...그분들의 아픔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7시간의 의혹이 명백히 밝혀지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으로 기억의 불씨를 되살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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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평소처럼 작은 사고겠지, 곧 승객들 구출되고 끝나겠지 하며 아침 속보를 흘려보냈다. 그리고 학교에 갔다가 과외를 마치고 핸드폰 뉴스를 켰는데 내가 생각하던 대한민국이라는 정부는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충격적인 사고가 기록됐다. 아니 기록되고 있다. 내가 그날 무슨 수업을 들었는지, 어느 파트를 가르쳤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 날, 그 사고는 영원히 잊혀질 수 없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 잊지 않을 사고로 내 마음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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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미국에 출장 중이 었습니다. 시차가 나서 아내의 카톡을 통해 짧게 소식을 들었고, 너무 바쁘고 방송을 볼 수도 없어서, 그렇게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도 못했습니다. 무심히 잘 구조 되겠지라고 여기고는 다음날이 되었는데 미국인 동료가 소식을 전하며 안타까움을 말하더군요.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미국인 동료에게는 이런 일에 대처하지 못하는 정부에 대해 성토를 하였지만, 결국 나도 그 나라의 국민으로..... 사람의 생명을 경솔히 하는, 그 나라의 한 명으로 미국인들 앞에서 깊은 창피와 수치심이 들었습니다.요즘의 박근혜.최순실 사태는 그 때의 수치와는 비교할 수 없이 깊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수치는 세월호 때의 절망과 달리 희망을 느낍니다. 도덕과 윤리가 살고 정의가 세워져야, 사람의 존귀함이 정치의 근본이 될 수 있는데... 지금 우리는 함께 이 길을 가자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돌보고 생명을 존중하는 나라, 그래서 다시는 무능하고 악한 정치로 아무도 다치지 않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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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로 뉴스 속보를 접하고,평소 거의 보지않던. TV를 켰습니다.그리고 그 뒤로 일곱시간..아니 근 몇 달을 울면서 보냈습니다..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요.그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어너무 미안하고 미안합니다.그래서 지금은 제가 할 수 있는 뭐라도,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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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자취방에 누워, 오늘을 뭘할까 고민하던 아침.습관처럼 노트북을 켰다.수학여행 가던 학생들 배 침몰.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얼마 살지 않는 날 중에 제일 설렜을 날.얼마지나지 않아 뜬 "전원구조"그 네글자에 안심하고 밥을 먹었다.아직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계속 설마, 설마 생각하며 밤새 생중계 화면만 들여다 보던 무력한 나.아이들이 살아있을 거란 증거만 찾아 읽으며 기도했던 마음이좌절로 바뀌던 그 날, 그 긴 시간..곱디 고운 아이들아부디 그곳은 여기보다 행복하기를.다음 생엔 더 좋은 세상이 될 수 있도록여기 남은 어른들이 최선을 다할거야.좋은 꿈 꾸고, 한 숨 푹자고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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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기 전 아침을 먹으면서우연히 본 뉴스 속보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 미안해학교에서 돌아와마음 졸이며 제발 살아돌아오길티비 왼쪽 윗편에 표시 된 구조자 수와 희생자 수들그것만 보며 제발 더이상 의 희생은 없길기도 한것도 기억나 한동안 잊고 산것도 미안해우리가 왜 이런나라에 태어나 이렇게 아파야하는지잊지않을게 친구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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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고2야 동갑이지 학교에서 핸드폰안내고 있었는데 사고소식이 들렸어 정말 나와 모두가 그 사고소식에 불안해하고 걱정하고 너희들이 나오기를 기도하고 기다리면서 선생님한테 말을 하니 돌아오는 말은 "너희 일도 아닌데 신경끄고 공부해 너네 곧있으면 고3이야" 라고 하지만 모두들 기다리면서 꼭 나올수있다고 생각했지 인양한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하지만 그것은 거짓이였어 추운 바다에서 기다리고있는데 도와주지않았어 지금도 추운바다에서 기다리고있는 너희를 위해서 우리 전국민이 싸우고있어 미안해. 하지만 평생잊지않을거야...무슨 말을한다해도 너희가 안춥고 안아픈건아니지만 그래도 기억해 너무 미안해 못난 정부를 대신해서 우리가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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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공부를 하던 중에 뉴스를 보았다.다행히도 전원구조라는 소식을 듣고 안심하며 붓글씨를 썼다.서예공부가 다 끝나갈 즈음..."전원구조, 오보래! 다 죽게 생겼나봐!" 누군가의 말에 깜짝 놀라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확인했었다.안타까운 마음으로 발을 구르며 연신 새로고침으로 뉴스를 보았다.어떻게 이렇게 허망하게 보내야 하는지 어이 없고 눈물 나고 화가 났다.세월호가 가라앉고 난 뒤 세월은 여전히 흘러서 세월호를 기억하지 말라한다. 유난스럽다고도 한다. 그래도 기억할 수 밖에 없고 잊을 수 없는 세월호는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침몰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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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수업을 듣다가 잠깐 쉬는 시간에 교내 식당에서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로 먼저 뉴스를 접했습니다.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은 태운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 까지만 해도 구조가 되겠거니 하면 대수롭지않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하루가 끝날 때 즈음, 대수롭지 않았던 그 뉴스의 결말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전 국민이 지켜보고 있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무기력하게 아이들을 떠나보냈는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처럼, 그 날을 기억할 것이며, 그 날의 기억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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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 날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 날 자체는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습니다. 평소처럼 출근을 하여 그다지 주어진 일이 없어 학교 커뮤니티를 잠깐 잠깐 보며 있다가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들었습니다. 해당 글의 세 번째 댓글이던가. 랜덤 동물명 개구리가 해당 배에 탔으며 전원 무사히 구조되었다는 낚시 댓글을 달이 이를 보고 안심했고, 몇시간 뒤 실제 일어난 일에 망연자실하고, 스스로릐 즐거움을 위헤 수많는 사람들을 낚은 쓰레기에게 참을.수 없는 증오와 분놀 느꼈던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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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를 앞두고 회사선배와 함께 점심을 먹고 있었다. 밥을 먹는 내내 뉴스보도가 계속 나왔다. 밥먹는 동안만해도 구출된 학생들 인터뷰가 나왔고, 선체 부근에 놓여있는 배들을 보면서 당연히 모두 구출되겠거니 싶었다.회사에 돌아와 틈틈이 뉴스속보를 봤는데전원구출이라는 오보가 나왔다가민간인들이 나서서 구조를 돕고있고 정부로부터는 아무 소식이 없다는 걸 알았다. 당연히 구조될 줄 알았는데설마 다들 갇혀있는건가 싶었다.그 설마가 초조한 마음으로 퍼졌다.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에 대한 뉴스를 볼 때 마다 손이 떨렸다. 단원고 학생들과 동갑인 내 막내동생이 몇 주 후 수학여행을 갈 예정이었다. 그 당시 고등학생을 가족으로 둔 모든 사람들이 느꼈던 공포와 떨림이 있다. 내 동생이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 날의 7시간보다 그 이후의 시간들이 더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 사회는 모두 우울증 아닌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 다음날 회사에 출근해서는 숨쉬는 것 조차 조심스러웠으니...다시 기억하니 그 날의 기분과 느낌이 생생하다. 평범한 시민인 나도 이렇게 생생하고 또렸이 기억하는 하루다. 대통령도 하루빨리 그날을 기억하고 떳떳이 그 날의 자신을 밝히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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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을 잘 흘리지 않는 제가세월호만 생각하면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흐릅니다. 저는 평범한 대학생입니다. 참사 당시에 공강날이었고 TV시청을 하고 있었습니다.. TV를 보던 중 배가 침몰 중이라고 뉴스 속보가 떴고 가슴을 졸이며 뉴스를 계속 보고있었습니다. 이어서 전원구조라는 보도를 보고 안도하고 계속 뉴스를 보는데 얼마쯤 지나서 정정보도를 하더라구요...정말 이날은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하고 뉴스만 봤습니다...밤까지 구조소식이 없어서 배에 갇혀있을 아이들생각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도대체 왜 왜 왜 왜 왜저는 이렇게 아직도 생생한데 국가의 책임자라는 사람들은 어떠한 대답도 명확히 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왜 자꾸 반복하나요?이 일이 잊혀질 줄 아셨다면 큰 오산입니다.모든 국민들이 이 일로 인해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고 이 일은 지금도 흉터처럼 마음에 새겨져 있습니다. 세월호유족 뿐 아니라 전 국민은 이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슬프고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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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금요일 처럼 정신없이 회사에서 일하고, 깨지고 했던 날이었습니다.9시 반 무렵, 어떤 여객선이 침몰하고 있으나, 전원 구조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다행이다 싶었고 다시 업무에 몰입하였습니다.하지만, 퇴근하고 회사동료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사실은 대부분 구조되지 못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국민들에게 안전망이 되어 주지 못한 국가/정부에 절망감을 느꼈습니다.제가 세월호 희생자들을 잊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이 다시 살아오지 못함을 압니다. 하지만 그래도 잊지 않으려는 이유는,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게해서 그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으려는 자그마한 노력입니다.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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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로부터 카톡을 받았다. 한 여객선 소식을 전하며 그곳에 탄 지인의 친척 이야기를 전하며 무사히 구조될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아마도 사고 초기였기에, 카톡이 전해졌나보다. 연락이 닿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구조가 무사히 진척되기를 기다렸다. 저녁에는 교회에서 세례입교와 성찬식이 있었다. 성찬위원이라 까만 옷을 입고 교회로 갔다. 그날 밤에도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친구 지인의 동생은 돌아오지 못했다. 나 역시 고등학교 때 제주도로 여객선을 타고 수학여행을 갔다. 돌아보면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조용히 있었을 나였다. 세월호는 남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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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가는 KTX 에서 뜨는 속보를 보고 놀랐고,곧바로 전원구조라는 말에 안심했으나,오보라는 뉴스와 쏟아지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에 멍해졌던 기억이네요.제게는 31개월이 지났다는데도 잊혀지질 않는 기억인데 그들은 어찌 하나 같이 기억이 안난다고들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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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시청에 협약서 날인 받으러 갔었습니다. 하필 노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습니다. 협약서가 처리되는 동안 해양수산부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누군가 뛰어들어와서 티비를 켰습니다. 사고가 났다고. 그런데 뉴스에서 승객 전원 구조되었다고 나오고 있었습니다. 별 일 아니구나.. 그렇게 앉아있다 도장 찍은 거 확인하고 서류 받아서 회사로 돌아갔습니다. 회사에서는 하루종일 너무 바빴습니다. 오전의 뉴스가 틀렸다는 것을 한참이나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