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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4교시 정보시간에 컴퓨터로 웹툰을 보려고 했어요. 실시간 검색어에 단원고가 떠 있었는데 그땐 이유를 몰랐었어요. 학교가 끝나고 영어학원에 가는중 sns에서 친구가 올린 피해자 분들을 걱정하는 글에 장난식으로 댓글을 달았다가 친구에게 한마디 들었던 것도 기억해요. 집에와서 세월호 사건에 대해 알게되었고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는것을 깨달았어요 . 저의 왼팔에는 아직 노란 팔찌가 있어요 저뿐만 아니라 제친구의 팔에도 있죠 . 평생의 상처를 입으신 피해자분들, 또 가족분들을 위해서라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날의 7시간의 진실에 의해 또 한번의 상처를 입으시지 않으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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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16일,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지요... 여객 조난 뉴스가 나왔고, 12시, 그 잘난 쌀밥을 목구멍에 처넣고 있는 순간, 그 순간은 이미 우리 어여쁜 아가들이 물속에 잠겨버린, 이미 세상과 작별을 한 시간, "전원구조"라는 YTN의 개드립을 보며, 그럼 그렇지 하며 꾸역꾸역 쌀밥을 처넣고 있었습니다...오전 10시20분에 이미 배는 완전침몰상태로, 선수만 덩그러니 주변의 도움을 애타게 찾고 있었으나, 아무런 구조선도 없는 외롭고 처량하고 황량한 상태였음에도...그저 쌀밥을 처넣고 있었습니다.우리는 그렇게 처먹고 웃으며 살고 있었습니다.잊지 않겠습니다.아니, 잊혀지지가 않습니다.우리의 아들, 딸들을 수장시킨미필적 혹은 확정적 살인자들에 대한,정당하고 정의로운 처단이 있고난 후에라도,잊혀지지가 않을 것 같습니다.당연히 해야할 진실에 대한 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위해,이제 쌀밥을 꾸역꾸역 다시 처넣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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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암ytn옥외전광판이 보이는 곳에 직장이있었어요. 빨간글씨의 속보를 계속보고 있었어요 오후에는 지방출장을 갔는데 숙소에서도 tv뉴스만 봤던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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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이 사건이 3년이나 돼어가네요 세월호 사고가 일어났을 때에는 제가 중2 였습니다. 그 날에 저는 학교가 끝나고 과학경시대회를 치르고 나와서 핸드폰을 확인했을때 실시간 검색어 1위가 세월호 였습니다. 처음에 이게 뭔가 하고 학교 계단에 앉아 보다가 점점 이 사건에 심각성을 깨닫고 무서웠습니다. 세월호에 갇힌 누나 형들을 구할 골든타임은 존재 했으나 정부는 아무런 손도 못쓰고 그 귀한 생명을 놓아버렸습니다. 분명 저는 다 구조 될거라 믿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악화되고 너무 슬픈시간만이 흘러 갔네요 저는 기억합니다. 2014,4,16 Rem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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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이상하리 만큼 햇살이 좋았다.따뜻한 봄 햇살에 식당이 있는 후문까지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저 점심을 무엇을 먹을까 하는 그런 가벼운 고민과 배고픔에 식당에 앉았고 가벼운 대학생의 주머니를 위로하듯 저렴한 점심으로 배를 채울 생각있었다.식당에서 혼자 떠들듯 나오는 티비화면에 사고 소식에 흠칫 놀랐지만 "전원 구조"라는 문구에 밥숟가락 들듯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줄로만 알았다.뉴스에 나오듯 승객 전원이 전부 구조 된 줄, 구조가 순조롭게 진행 중인 줄 알고있었다.난 그날 그랬으면 안됐었다.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단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그 말을, 그 공간에서, 그렇게 넘겨 듣지 말았어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실을 마주한 순간, 햇살이 좋았던 그날을 햇살이 좋다고 기분좋았던, 그저 밥을 먹으며 흘려 듣고 있었던 내가 그렇게 부끄러울수 없었다.차디찬 바다속으로 힘없이 넘어가는 세월을 바라보며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린 그순간이 너무나 내자신을 부끄럽게 만들었다.그렇게 세월은 가라앉았고, 지나갔으며 그날은 내겐 잊을수 없는 날이 되었다.내기억속 그날은 이상하리 만큼 햇살이 좋은날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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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그날 전 필리핀에서 컴퓨터 수업을 받는도중 인터넷으로 사건 접했습니다. 전원구조 오보부터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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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당시 호치민에 살고있던 저는 자주 가던 돈까스 집에서 밥을 먹고있었습니다.식당의 TV에서 긴급속보라는 자막과 함께배가 기울었고 곧 침몰할 거라는 소식을 접했고먹던 수저를 잠시 내려놓았습니다.곧이어 전원구조라는 보도가 나와 다시 수저를 들었을 때, 말도 안되지만다시 전원구조가 아니라 사람들이 갇혀있고구조는 어렵게 진행되고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어느 끔찍한 재난영화에도 이런 시나리오는 없었습니다.대통령이라고 부르고싶지도 않은 박근혜의 7시간은, 대한민국을 침몰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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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오전 병실의 TV에서 나오는 뉴스를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세월호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아직은 배가 바다 위에 떠있고 날씨도 좋아서 별 일 있겠어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리가 부러진 환자를 수술 하러 들어갔습니다. 수술을 하고 나왔는데, 아직도 뉴스는 계속 나오고 있었습니다. 숫자가 오락가락해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무언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살아오면서 본 뉴스 중 가장 끔찍한 것을 보고 있었던 순간 이었습니다. 미국의 911테러 때 그 높은 빌딩에서 추락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고 무서움을 느꼈는데, 우리 나라에서 이보다 더 한 상황이 생겼다는 것을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 처절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침몰하는 배 안에서 죽음을 기다렸을 그 많은 생명들.. 어떻게 그 많은 생명을.. 그 많은 아이들을 버릴 수 있었나요? 그 이후로 계속되는 뉴스와 트위터 상의 일인미디어 뉴스를 보면서 이런 비정상적인 국가와 지도자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박근혜와 그에게 동조하던 협조하던 정치인들과 공직자들..분명히 잘못이 있습니다. 철저하게 수사하고 밝혀내어 그 잘못을 처벌해야 합니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는 이 사람들은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합니다.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생명에 대한 따스함을 아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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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그 날의 시간 정확히 기억납니다 이유는 제 주변에도 되지않는, 해서는 안되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죠. 수업을 듣고 있었고 우연히 접한 소식에 웅성웅성 시끄러워진 교실을 선생님은 한마디로 벙벙하게 만드셨습니다"너희 가족 타있는 거 아니면 조용히하고 공부해"기억납니다 정확히요. 그때 저는 그 곳에 있는 사람 모두가 제 가족이다 마음 먹었습니다. 저의 언니 오빠 저의 스승님 저의 부모님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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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일어나자마자 뉴스에서 세월호 뉴스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일하러 갔어요. 중간중간 뉴스를 보니 전원구조라더군요. 다행이다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자오보랍니다. 그리고 많은 아이들이 갇혀있었는데 어느 누구도 책임을 안지더군요.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될 사람들이요.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떠났습니다.그때나 지금이나 미안해요.미안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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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고 있을 때 였습니다. 뉴스 기사에 제주도로 가는 중인 배가 침몰중이라는 기사를 보고 너무 놀랐는데 . 얼마 후 전원 구출이라는 기사에 " 다행이다. 큰일난 줄 알았네" 라고 생각했죠. 근데 또 얼마 있으니 오보가 났다며 급박해졌지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렇게 큰 배 인데.. 금방 모두 구출해내겠지 " 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노력없이 세월호는 그렇게 침몰해버렸고 .. 저와 저희 가족은 그 후로 세월호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이 나고 마음이 아픕니다... 아직도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가족분들은 어떻겠습니까...... 이렇게 쓰며 또 눈물이납니다. 유가족분들 아픈 마음 모두 안아드리고 싶습니다. 아무것도 하지못해 죄송합니다. 계속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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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그 당시 저는 중학교 3학년 학생이었습니다. 미술 시간이었고 창작관련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다가 관련된 정보를 얻기 위해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인터넷을 트는 순간 뉴스와 실시간 검색어에는 "여객선,여객선 침몰, 단원고" 의 검색어가 있었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사고가 났고 전원 구조되었다는 소식에 다른 분들처럼 저 역시 안심하고 수업을 이어나갔습니다. 하지만 하교를 하고 휴대폰을 키니 전원구조는 사실이 아니었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오보라는걸 알게 된 후 허탈하고 우울하고 힘들었던 기억, 그리고 한명의 생존자라도 더 구조할 수 있기를 기도했던 그 기억이 지금도 생생히 납니다. 그 다음날도 기억납니다. 아침에 YTN을 틀었고 유가족의 모습이 티비로 나올때, 유가족들이 오열하는 그 모습을 보며 순간적으로 눈물이 왈칵 쏟아졌던 기억 또한 생생합니다. 그때 기억을 불러오다보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눈가에 눈물이 맺칩니다..그런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평범한 대학생, 재수생,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었을 선배님들.. 여기서 못 다 이룬 꿈, 소망 모두 다 거기 계시는 곳에서는 이루셨으면 좋겠습니다.. 진실을 알기 전 까지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우리는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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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 40분경. 전날 늦게 잠자리에 들었기에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어요. 그리고 습관처럼 휴대폰을 켰고. 뉴스 속보로 배가 침몰하고 학생들 전원 구조 성공했다는 뉴스를 보고 조금 더 자다가 11시쯤 일어났어요. 그날 날씨도 기억이 나는데 흐린날이어서 약속이 있던 친구에게 전화를 하며 뉴스를 켰습니다. 구조가 되었다는 속보는 오보였고 학생들이 벌벌 떨면서 뭍으로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 방송되고 있어서 이게 무슨일인가 놀라서 계속 방송을 보고 인터넷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친구랑 계속 어떻게 하느냐고 안타까워 할 수 밖에 없던 날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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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식당에서 점심 먹다가 보았습니다. 다 절 구조가 되었겠지 하며 수업에 들어갔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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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중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그때 수학여행을 떠나는 버스 안에 있었다. 꽤 들떠 있었다. 기사님께서 틀어주신 영화가 끝나서 선생님이 뉴스를 보자고 했었다. 마침 세월호 침몰 속보가 보였다. 희생자들의 대부분은 수학여행을 간 고등학생들이었다 .우리반의 몇몇 아이들은 부모님이 전화를 해서 버스를 세우고 수학여행을 가지 않았다. 코스에 있던 바다는 아예 코스에서 빠졌다. 그럼에도 어렸기 때문일까, 난 별 생각이 없었다.엄마가 갑자기 전화를 하셨다. 어릴때 친하게 지냈다가 안산으로 이사를 간 언니가 명단에 있는 것 같다고. 이름이 특이해서 혹시나 했던 거다. 다음날 연락해 보니 다행히 그 언니는 아니였지만 나는 하루 종일 일년치 눈물을 다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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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수요일이었고 나는 21살, 대학교 2학년이었다. 오후 수업 밖에 없는 날이었기 때문에 늦잠을 자고 기숙사에서 기분 좋게 일어나 평소와 다름 없이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슥슥 넘기며 보고 있었다. 제주도로 가던 배가 전복 되었다는 뉴스가 타임라인을 온통 채우고 있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승객들이 무사히 구조 될 것이라는 생각에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배는 점점 가라앉고 있었고 구조에 진전이 없는 것 같았다.점심으로 기숙사 휴게실에서 컵라면을 먹으면서 네이버에 접속해 생중계를 보며 기사를 찾아 보며 배 안에 갇힌 학생들이 제발 무사히 구조 되기를 기도했다. 배가 완전히 침몰 했다는 보도를 보았을 때 충격을 받긴 했지만 배 안에 산소가 남아있을 수 있다는 뉴스 보도에 정말 기적처럼 모두 무사히 구조 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침몰하는 배에서 승객들이 전원 구조 되길 바라는 것이 과연 기적을 바랐던 것일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구명조끼를 입은 학생들은 배가 완전히 침몰하기 전에 충분히 탈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선장은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 했고, 언론은 전원 구조가 되었다는 최악의 오보를 했고, 구조대는 높으신 분께 보고하고 인사하느라 시간을 지체했다. 상식으로 이해 되지 않는 거짓말 같은 일들이 일어났고 그렇게 거짓말 처럼 세월호에 갇혀 침몰한 승객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2년이 흘러 나는 지금 23살, 휴학 중인 대학생이 되었고, 세월호 승객들의 시간은 여전히 팽목항의 2014년 4월 16일에 멈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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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관식당에서 식사중에 전원 구조라는 뉴느를 보고 쿨하고 시크한척 담담하게 식사를 마쳤다. 도서관에서 자격증 시험공부하다가 왠지 궁금해져서 다시 뉴스를 보고서는 < 아, 쒸...이러다 천안함때처럼 되는거 아녀?>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고, 집에 가서도 결국 도돌이표 같은 인터넷 뉴스만 보다가 밤을 꼴딱 샜다. 딱 내가 가르치는 또래 아이들이, 그것도 한학년이 다 돌아오지 못하다니...이럴줄 알았으면 맛있는거나 실컷 먹고 마음껏 놀기나 하지 뭐하러 길지도 못했던 인생 공부만 하고 고생만 하다 갔나 너무 불쌍하고 그리고 화가 났다. 가르치는 아이의 사촌오빠가 세월호에 타고 있었다고 눈이 퉁퉁 부어 얘기할때는 너무도 불쌍하고 나도 이나라를 이지경으로 만든 소위 기성세대의 한 일원이란 생각에 창피하고 열받고 정말 울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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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하던 국가시험이 있어 오전 일찍부터 카페에 앉아 있다가 동생의 문자로 사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 후로는 핸드폰을 붙잡고 메이져 포털을 번갈아 들락거리며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 기사를 찾아보면 울기만 울기만 계속 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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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16일에나는 합숙을하고 있었다.운동부합숙이였는데 다같이 티비를보다가 뉴스에서 속보가나와서 너무놀랐다 그때 사망자가나올때마다 너무 가슴졸였다. 대통령은 그 7시간에 뭘했는지 밝혀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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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부대 체육대회가 있는 날이었다. 내가 소속된 소대가 좋은 경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체육대회 후, 수육 파티를 하던 우리에게 경찰서장께서 오셔서 말씀하셨다. 나라에 큰 안 좋은 일이 있으니, 너무 웃고 떠드는 것은 하지 말자고. 그리고 이것이 이렇게 큰 일이 될 줄은, 저녁을 먹던 이들 모두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