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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때 외국에서 공부하고 있었다전원구조 기사를 읽었을 때만 해도 이 날이 이렇게 흉터처럼 기억에 남게 될 줄은 몰랐다그 때 다른 나라 친구들이 나에게 세월호에 대해 물었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그만큼 이 일은 충격적인 일이었다한 명은 혹시 나에게 그 중 아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머리 부분만 남기고 물 속에 가라앉은 배 영상을 보면서 울었던 게 기억에 생생하다21세기에 배가 침몰해서 300명이 죽는 게 말이 되냐고 분노가 치밀어올랐던 게 기억이 난다2년 반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노란 리본을 가방에 달고 다닌다그리고 매주 토요일마다 광화문에 나간다벌써 다섯 번을 나갔다2만 명이 20만 명이 되고 100만 명이 되고 150만이 되는 걸 나는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온 몸으로 느꼈다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모였다는 게 얼마나 소름이 돋고 전율이 흐르는 일인지 느꼈을 것이다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우리의 함성과 촛불과 분노는 세상을 바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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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직장동료들과 점심 먹으러 간 식당에서 나온 뉴스를 보았으니 대략 12시 전후였을 것 같습니다. 수학여행 간 배에 사고가 났다고요. 뉴스에서 학생들이 모두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에 뛰어들었다고 말했고, 동료들과 저는 바다로 다 뛰어들었으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면서 근데 오늘 날이 꽤 쌀쌀한데 물속에 있으면 저체온증 오는 거 아니냐, 최대한 빨리 구조해야겠다고 얘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안심하고 밥을 먹고 사무실에 돌아오니 그 때부터 뉴스는 난리가 나있었고 그 뒤로 한동안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뉴스를 볼 때마다 울고, 먹먹했던 기억 뿐입니다. 1년 뒤 4월 16일에는 날이 흐리고 또 비가 내렸습니다. 친구 어머님 말씀이 많은 목숨들이 스러진 날에는 비가 내린다고요. 아직도 그날의 기억은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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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P에서 근무하던 저는 밤샘 근무를 끝내고 근침을 취했습니다. 점심도 거르고 잠을 자고 일어나니 여객선이 침몰했지만 학생들이 전원구도 되었다는 뉴스가 속보로 나오고 있었습니다.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고 사지방에 가서 인터넷을 하다보니 하나 둘씩 믿겨지지 않는 기사들이 속보로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전 2013년의 4. 16, 2012년의 4.16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2014년, 2015년, 2016년 4월 16일은 똑똑히 기억합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기위해 청춘을 바치던 제가 정말 나의 도움이 필요한 국민들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치욕감은 도저히 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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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늦은 출근 시간에 뉴스는 학생들을 모두 구조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지날즈음 뉴스는 다른 이야기를 말하고 있었다. 같이 근무 하던 직원들은 모두 분노하며 할 말을 잃었고 나는 내 아이가 떠올라 울고 있었다.그날 이후로 세월호 관련 이야기만 들어도 나는 눈물이 난다.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그날의 뉴스 보도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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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함께 놀러가려고 친구집잎에서 기다리는데 친구가 집에서 나오더니 지금 뉴스 하는시간도 아닌데 지금 뉴스에서 고등학생 언니오빠들 배타고가다가 사고났다고 나오고있다고 그랬었어요 그땐 그저 얼른 구조 되리라 생각하였는데 어찌 이렇게 되어버렸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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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중 세월호 사건이 터졌는데 전원 구조 됬다는 오보를 믿고 안심을 하고 있었다.세월호 희생자 선배님들 부디 하늘에서 편히 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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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처럼 근무를 하고 있었어요. 오전에 일을 하다가 티비로 뉴스를 보는데 세월호 사고 소식이 나왔어요. <300명 전원 구조>란 소식에 와 다행히 신속하게 구조했구나. 다친 사람들 있을텐데 잘 치료받았으면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식당 티비에서 전원 구조가 오보라는 소식이 들리고 그때부터 불안하고 슬펐던 마음이 2년 반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 이어져올 줄은 몰랐네요. 그때 저는 평소처럼 근무를 하고 있었지만 어떤 티비로 뉴스를 보았고 점심으로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까지 기억해요. 국민의 한 사람일 뿐인 저도 기억나요. 대통령과 참모들이 기억 못할 리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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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에 탑승했던 언니오빠들이 사고를 당했을 때, 나는 수학여행을 가고 있었다. 고속버스에서 뉴스를 접했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믿기지 않았고, 믿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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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관련 교육중이었습니다. 습관처럼 들여다본 스마트폰에서 세월호의 침몰 사실을 알았고 계속해서 새로고침을 하며 소식을 보다가 전원구조라는 뉴스에 주위동료들과 안심하며 계속 교육을 들었습니다. 점심식사를 위해 식당을 찾았는데 식당 내 티비모니터를 통해 바다 한가운데서 배의 대부분이 침몰되어있는 영상과 300명이상의 승객이 구조되지 못했다는 속보가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구조되길 살아있길 물살이 잠잠해지길 바랬지만 우리의 바램과는 다른 소식들에 모두들 아파하고 슬퍼했습니다. 그날을 2014년 4월16일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이곳에 글을 쓰는 우리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민들이 기억하고 있을겁니다. 그 사람도 기억하고있겠죠 그 날을 7시간을. 수많은 의혹에 안했다 부정만 하지말고 무엇을 했는지 유가족분들 앞에 진실을 말해주길 바랍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Remember 20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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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노력하면 꿈이 이루어 질거라 믿던 17설의 아이들과 들뜬 마음으로 여행을 떠났던 가족, 친구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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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기억에 나요 그날 정보시간이라 컴퓨터 쓰는데 네이버 실검에 여객선 사고 올랐죠 그거보고 애들끼리 사고낫대 했죠 근데 얼마안되서 전원구조 기사를 보고 에이 싱겁게 끝났다는 생각을 했죠 여러가지 사고 관련기사를 봐도 그런생각은 한적 이없엇는데 왜 그날만 그랬을까요 지금 도 미안해집니다 왜 난그때 큰일이 나길바랬을까요 정말 잊을수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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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쉬는시간이었다. 같은 반 남자애가 인터넷 기사를 보고 사고가 났다며 실시간으로 내용을 읽어주었다. 처음엔 다 빠졌다고 말했고,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아니라고 다 구했다고 나와있다고 한 후 모두 안심한 상태로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난 후 그게 아니었다고., 지금 구하고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 때부터 우리는 그 기사들을 직접 찾아보며 뉴스에 제대로 실종 인원과 구조인원, 사망인원수까지 나왔을 때서야 일이 커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 날, 그 7시간동안, 나와 친구들은 하늘로 먼저 간 그 친구들이 그토록 원했을 하루를, 그리고 학교 생활을 여느때와 같이 웃고 떠들고 다투고 공부하며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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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 핸드폰 안낸 친구가 기사를 보고 크게 외쳤다. 얘들아! 배가 침몰했데! 전원구조래! 그 말을 듣고 안심하고 평소처럼 시시콜콜한 아야기를 하며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고 뛰어 놀다가 집에 들어가서 뉴스를 보고 충격적이었다. 아무리 슬픈 영화를 봐도 울지 않던 내가 그 슬픈 현실에 눈물 흘렸다. 흘러가는 세월에도 세월을 잊으면 안된다. 7시간의 세월과 대통령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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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 살고 있는 나, 그날 서울에 친구 만나러 갔다. 동대문 역사공원역에서 내려 DDP 쪽으로 가는데 (아마 10시 조금 넘었을 듯) TV화면에서 전원구조라는 자막이 떠 있고, 시민들이 다행이라는 인터뷰 같은 게 나오고 있었다. 어휴~ 다행이다 라는 생각과 전에 예천비행장 대합실에서 성수대교 붕괴 장면을 보던 기억도 났다. 친구들과 산에 갔는데 점심 때가 지나고부터 카톡이 불을 뿜었다. 그리고 보게 된 실시간 수장 중계!!너무 힘들고 비참하고 불가해한 날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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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4교시 정보시간에 컴퓨터로 웹툰을 보려고 했어요. 실시간 검색어에 단원고가 떠 있었는데 그땐 이유를 몰랐었어요. 학교가 끝나고 영어학원에 가는중 sns에서 친구가 올린 피해자 분들을 걱정하는 글에 장난식으로 댓글을 달았다가 친구에게 한마디 들었던 것도 기억해요. 집에와서 세월호 사건에 대해 알게되었고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는것을 깨달았어요 . 저의 왼팔에는 아직 노란 팔찌가 있어요 저뿐만 아니라 제친구의 팔에도 있죠 . 평생의 상처를 입으신 피해자분들, 또 가족분들을 위해서라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날의 7시간의 진실에 의해 또 한번의 상처를 입으시지 않으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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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16일,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지요... 여객 조난 뉴스가 나왔고, 12시, 그 잘난 쌀밥을 목구멍에 처넣고 있는 순간, 그 순간은 이미 우리 어여쁜 아가들이 물속에 잠겨버린, 이미 세상과 작별을 한 시간, "전원구조"라는 YTN의 개드립을 보며, 그럼 그렇지 하며 꾸역꾸역 쌀밥을 처넣고 있었습니다...오전 10시20분에 이미 배는 완전침몰상태로, 선수만 덩그러니 주변의 도움을 애타게 찾고 있었으나, 아무런 구조선도 없는 외롭고 처량하고 황량한 상태였음에도...그저 쌀밥을 처넣고 있었습니다.우리는 그렇게 처먹고 웃으며 살고 있었습니다.잊지 않겠습니다.아니, 잊혀지지가 않습니다.우리의 아들, 딸들을 수장시킨미필적 혹은 확정적 살인자들에 대한,정당하고 정의로운 처단이 있고난 후에라도,잊혀지지가 않을 것 같습니다.당연히 해야할 진실에 대한 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위해,이제 쌀밥을 꾸역꾸역 다시 처넣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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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암ytn옥외전광판이 보이는 곳에 직장이있었어요. 빨간글씨의 속보를 계속보고 있었어요 오후에는 지방출장을 갔는데 숙소에서도 tv뉴스만 봤던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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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이 사건이 3년이나 돼어가네요 세월호 사고가 일어났을 때에는 제가 중2 였습니다. 그 날에 저는 학교가 끝나고 과학경시대회를 치르고 나와서 핸드폰을 확인했을때 실시간 검색어 1위가 세월호 였습니다. 처음에 이게 뭔가 하고 학교 계단에 앉아 보다가 점점 이 사건에 심각성을 깨닫고 무서웠습니다. 세월호에 갇힌 누나 형들을 구할 골든타임은 존재 했으나 정부는 아무런 손도 못쓰고 그 귀한 생명을 놓아버렸습니다. 분명 저는 다 구조 될거라 믿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악화되고 너무 슬픈시간만이 흘러 갔네요 저는 기억합니다. 2014,4,16 Rem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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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이상하리 만큼 햇살이 좋았다.따뜻한 봄 햇살에 식당이 있는 후문까지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저 점심을 무엇을 먹을까 하는 그런 가벼운 고민과 배고픔에 식당에 앉았고 가벼운 대학생의 주머니를 위로하듯 저렴한 점심으로 배를 채울 생각있었다.식당에서 혼자 떠들듯 나오는 티비화면에 사고 소식에 흠칫 놀랐지만 "전원 구조"라는 문구에 밥숟가락 들듯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줄로만 알았다.뉴스에 나오듯 승객 전원이 전부 구조 된 줄, 구조가 순조롭게 진행 중인 줄 알고있었다.난 그날 그랬으면 안됐었다.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단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그 말을, 그 공간에서, 그렇게 넘겨 듣지 말았어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실을 마주한 순간, 햇살이 좋았던 그날을 햇살이 좋다고 기분좋았던, 그저 밥을 먹으며 흘려 듣고 있었던 내가 그렇게 부끄러울수 없었다.차디찬 바다속으로 힘없이 넘어가는 세월을 바라보며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린 그순간이 너무나 내자신을 부끄럽게 만들었다.그렇게 세월은 가라앉았고, 지나갔으며 그날은 내겐 잊을수 없는 날이 되었다.내기억속 그날은 이상하리 만큼 햇살이 좋은날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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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그날 전 필리핀에서 컴퓨터 수업을 받는도중 인터넷으로 사건 접했습니다. 전원구조 오보부터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