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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이었고, 대학원 수업이 3시 30분에 시작하는 날이었습니다. 9시쯤 일어나서.. 전원구조 소식을 "봤습니다". 분명히 보고 학교에 도착했어요. 날씨는 맑았고.. 학교에 도착했는데 전원구조는.. 오보였습니다.세월호가 선미만 남기고 가라앉는 걸 망연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 시간짜리 수업이 끝나고.. 에어포켓이 있기를 바랐습니다. 수학여행은 2박 3일이니까, 아이들이 구조되어 팽목항에 달려오고 계신 부모님 품에 안기면 2박 3일이니까.. 반드시 아이들이 살아 있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억할 수 있다는 것과 잊을 수 있다는 것은 다릅니다. 망각은 시간의 문제지만 기억은 선택의 문제니까요. 우리는 기억합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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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오전에 물리 치료를 받으러 갔습니다. 평소 연락이 뜸하던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어디야? 너 세월호에 탄거 아니지? 네 그날 세월호에는 저와 동명이인인 그리고 동갑인 박지영 이라는 선박직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끝내 구조되지 못했습니다. 사실오전만 해도 뉴스를 보면 서 금방 구조되겠지 라며 사태에 심각성을 짐작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오전이 지나고 오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시간이 멈추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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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 나는 학교에서 스터디를 하고 있었다. 사고소식을 듣고 점심시간에 학생식당에서 YTN티비중계를 보고 있었다. 어린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다가 배가 침몰.. 수백명이 배안에 갇혀있다는 상황에서 그걸 티비로 보고있던 그 자리의 모든 사람들 다 말이 없었고, 훌쩍거리는 소리도 났었던 것 같다. 배 안에 있는 고등학생들이 느낄 그 공포감에 감정이입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래도 학생들의 활기찬 모습 카톡내용 등이 중계되는 걸 보면서 사실 구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컸다. 그릭 실제로 전원 구조라는 속보를 보고 다행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저녁에 집에 가는 길에 그것이 오보였다고.. 스마트폰으로 확인하고 너무나 황망한 마음으로 집에 가서 티비를 틀었고 결국 구조소식이 아닌 나쁜 소식만이 전해지는 뉴스에 울컥해서 아무일도 못했었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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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997년생, 세월호 친구들과 동갑입니다. 저희 학교는 핸드폰을 걷는 바람에 저는 친구들의 소식을 핸드폰을 받은 후인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몰래 핸드폰을 하다가 들었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는 제 모습과 친구들의 모습은 닮아있어 힘들었습니다. 잊지 않고 기억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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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있던 상태였어요.주사를 맞아야해서 억지로 아침에 눈을 뜬채멍하니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죠.처음에는 배가 침몰중이라는 속보가 떴고얼마 지나지않아 승객이 전원구조 되었다는속보가 바로 또 떠서 정말 다행이라며 가슴을쓸어내렸는데 완전히 잘못된 속보였죠.전 그날의 기분, 상황, 느꼈던 감정이 하나하나 빠짐없이 다 기억나고 느껴지는데왜 사라진 7시간은 기억을 못할까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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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라이브를 보다가 세월호 사고 소식을 접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뉴스에서 눈을 떼고 러브라이브를 계속 봤죠. 지금의 저는 그때의 본인이 정말 혐오스럽습니다. 러브라이브..다이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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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출근준비하며 뉴스를 봤구요..세월호 속보를 보며...어떻게..이러고있는데 전원구조됐다는 오보를 보고 집을 나와서 직장에 출근했는데...10분여 정도 거리에 직장에 도착해 뉴스를 트니까 오보였다며.....분명 출근전엔 구조를 하고 있는영상과 배가 조금 기운상태였는데... 출근하는 잠깐사이에 배가 급 기울며 울며 방송을 보던 기억이 납니다...그때는 처녀였고 이제 한아이에 엄마가됐는데요....다시는 그 날의 일이 반복되지않도록....진실은 규명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힘을 보텔수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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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세월호가 침올할떄 강의실에서 강의를 듣고 있었습니다. 처음 뉴스를 보고 당연히 구조 하겠지 , 아니 이정도는 할수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강의를 듣고 있는 와중 전원 구조라는 소식을 듣고 강의에 집중하였습니다. 허나 점심을 먹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났을때 오보라는 소식을 듣고 충격 받은 다음에 에이 구조 하겠지. 하겠지. 하겠지......저는 4.16날 이 나라의 얼굴을 마주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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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에서 군 복무 2년,KBS에서 촬영 보조 아르바이트 6개월.세월호 여객선이 뒤집혔다.뉴스에서 300명 넘는 사람들이 구출 되었다고 했다.해경에서의 군 복무 경험,KBS 에서의 아르바이트 경험은전원 구출 보도를 믿지 못하게끔 했고,1시간 뒤 결국 거짓 보도로 드러났다.그 후 2년대한민국 정부의 무능과대한민국 대통령의 거짓과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의 횡포로대한민국은 걸레짝이 되었다.그들의 이익 관계에 맞물려300명이 넘는 무고한 국민이하늘로 가버렸고모든 이가 기억하는 것을그들은 아직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하지만모든 대한민국 국민은 세월호 7시간을 절대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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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와서 카페라떼마시면서 그사고를 접하고 모두에게 알리고 모두들 걱정하면서 기사를 보고있다가 전원 구조라고하길래 다들 다행이다라며 각자 다시 일을하러 자리로 돌아갔었다..우리는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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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다가 왕갈비탕 먹으러 나와서 먹었어요속보로 뉴스떠서 보는데 참담한 기분이 들어서 하하루 종일 공부가 안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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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날 처럼 아이 학교 데려다주고돌아와서 이것 저것 집안일 하다가습관처럼 뉴스를 틀었는데수학 여행 가던 아이들이 침몰한 배안에 갇혀 있단다.그 때부터 간절하게 기도했다.아이들이 모두 무사히 돌아오기를, 그리고 그 때부터 국민 모두가아이들이 물속에서 죽어 가는 걸시시각각 지켜보아야 했다.어느 집에서나 다들 귀한 자식들이다.자식 없어서 대통령은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가? 인간이라면 다같이 느끼는 그 심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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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바다에 고등학생 모두가 바다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밖으로 나오고 싶을까, 바다는 또 얼마나 찰까, 해는 지는데 구조는 잘 되고 있는걸까, 도와줄 수 있는게 없어서, 너무나 미안했고, 안타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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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라는 속보 자막의 단어에 하던일을 중지하고 실시간 기사만 검색하였다. 그리고 낯설지 않은 이름을 발견하고 망연자실한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야 했다.지금 이순간도 눈물이 난다.-----------------------------------------------------------------그리고 기억 못한다는 의사 너네들은 그냥 그렇게 기억하지 못하고 살다가 죽어버려라. 다른 사람들은 너희들을 쓰레기로 기억할 것이다.자신이 결국 쓰레기로 살았다고 기억되는것, 어쩌면 그게 너네들이 받을 수 있는 가장큰 벌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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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평범한 일상이 아닌, 모처럼 휴가를 받아 본가에서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서 그럴까요? 더 또렷히 기억이 나는 날입니다배가 침몰했고, 수학여행 가는 아이들이 타고 있다는 뉴스를 부모님과 함께 보았어요 그런데 얼마 후에 전원 구조라는 속보가 뜨길래, 다행이다, 별일아니구나, 안도하면서부모님과 점심을 먹으러 갔지요...지금도 그 날을 생각하면, 그 때의 그 안도하던 순간이 유난히도 떠오릅니다이후의 뉴스들이 믿을 수 없을만큼 절망적이여서 그랬을까요.. 그 안도감이 현실이기를 바랬던 간절함 때문이였을까요..속보는 오보로 밝혀지고, 그 때부터는 절망에 절망을 거듭했지요..잊고 싶을만큼 고통스러운 기억이지만진실을 찾을 때까지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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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하면서 누군가 호들갑 떨며 티비를 켰었어요. 사고가 났다고. 근데 티비건 급보 인터넷 신문이건 전원 구조 했다고, 다들 구조했다고 하길래 티비도 끄고 신문도 끄고 놀란 마음 쓸어내리며 일했어요. 얼마 되지 않아서 다시 본 신문에서, 뉴스에서, 배너에서 전원 보도가 오보라고 나올 때는, 구해진 사람 수가 세질 때는 다 같이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던 기억이 있어요. 알바 끝나고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않고 멍한 채로 집에 와서 눈물이 나는데, 나는 왜 우는지도 모르겠는데. 마음 졸였던 기억이 나요. 아무것도 못하고, 힘이 빠져 티비 앞에서 누워서 멍하니 계속 뉴스만 바라봤어요. 설마 다 구하겠지 했어요. 나는 정말 다 구해낼 줄 알았어요. 밤은 필연적으로 오지만 그 뒤에 낮이 오듯. 그 때 뜬 별과 달은 다음 날 밤에도 다시 오듯. 나는 그렇게 누군가 그 아이들을 구해내리라 그냥 믿고만 있었어요. 아무것도 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구해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그렇게 보내고 아무 것도 못해줘서 미안해요. 기억을 잃은 사람들이 기억을 어서 되찾기를 바라요. 기록을 잊었다는 사람들이 그 기록들을 어서 되살리기를 바라요. 그렇게 바라고 기억하라고 기도하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서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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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그날은 1년간 제게 여러가지 도움을 주셨던 학원 원장님과 이른 점심 약속이 있어서, 국민 tv 라디오를 들으면서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고, 라디오를 통해서 세월호 의 기사를 들었고, 전원 구조라는 멘트를 듣고, 참 다행이다 라고 맘을 쓸어내리고 그 멘트를 하셨던 맹경순님의 안심하라는 , 따뜻했던 목소리마저 기억이 뚜렷이 생각납니다 그렇게 반나절을 지내고 집에와서 다시 접한 세월호의 기사는 절로 악소리가 날 정도였습니다. 저는 그날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그 충격을 잊지 못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그날의 아픔을 절대로 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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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4일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에서 모유수유를 하는 동안 틀어져있는 TV에서 나오는 소식에 너무나 이질감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한편에서 우리 아이들을 살려달라고 오열하는 가족들의 모습과 너무나 대비되는 한편에서는 조용한 환경에서 갓난아이들을 안고있는 산모들을 보니 만약 이 갓태어난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한다면 어떨까 상상만으로도 눈물이 왈칵 쏟아져 유가족들의 슬픔이 참으로 와닿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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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5분 어김없이 출근해서 ytn을 틀어놓고 청소기를 돌렸고 물품 준비를 하던중에 봤다 배가 침몰하고있다고 아이들이 타고있다고 뱃속에 아이가 태어날 날만 기다리는데 예비부모된 입장으로서 피가 차갑게 식어가는 기분이었고 환자들도 원장님도 업무보다는 뉴스에 집중했다 다 구조했다더라 그러더니 곧 오보라더라. 배 주변을 맴돌기에 왜 저 유리창을 안깨냐 깨고 아이들 빼주면 안되느냐 왜 서성이기만 하냐 아직도 기억난다 2014.04.16 뱃속에 아가와 그날의 일을 같이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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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수요일이어서 야자가 없었습니다마침 발표 수행평가가 있던 참이라학교 끝나고 친구 집에 가서파워포인트 만들고 대본도 쓰고미리 연습도 해보고같이 피자도 먹고그렇게 헤어졌습니다.저녁 늦게 집에 돌아와보니거실 앞에 온 가족이 모여 있었습니다.뉴스가 틀어져 있었습니다.배가 침몰하고 있었습니다.그리고 열 여덟, 나와 동갑이었던 친구들이차가운 바다 속가라앉는 세월호 안에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