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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인터넷을 켰더니 네이버 화면이 제일 먼저 떳고, 작은 헤드라인으로 세월호 사고났지만 전원 구조라는 헤드라인 봤던 거 기억나요. 그거 보고 와 큰일날뻔했다 하고 넘어갔고 일상으로 돌아갔어요. 그 뉴스 헤드라인 네이버 화면 다 기억나요. 왜 저도 기억나는데 왜 그 사람들은 일상적이지 않았을 그 날이 기억이 안 납니까? 양심이 있다면 말을 하세요. 한번뿐인 인생 그렇게 개차반 쓰레기로 살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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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수업시간 전 컴퓨터 만지고 있었다.당시 안산에 살던 친구가 놀라면서 세월호 기사를 보여줬다우리는 별일 아니려니 하고 생각했다.하지만 수업이 끝나고서야 우리는 사태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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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야! 배 넘어졌데" 라는 단순한출근인사에서 평생을 지니고갈 아픔이라는걸 깨닫는 시간이 고작 7시간이라니....그 7시간동안 온국민의 염원과 바램을자신의 사심을 위해 내팽게친그들에게 살아 못받은벌 꼭 후세,내새에라도 받을수있게 되길 바랍니다.그리고 지금 이시대를 살아가는우리 마음속에 또하나의 긴 상처가되길...꼭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되고 각인되어다시는 이땅에 무책임한 권력이 판을칠수없도록 평생 그상처를 기억하고 어루만지며살아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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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휴가라 아침에 아이 보내놓고, 긴급 뉴스 보고 있었죠. 언니가 경기 남부 학교 선생님이라 혹시나 하여 급히 언니에게 연락을 취하고, 전원 구조라는 보도를 보며 브런치를 먹으러 나갔습니다.브런치를 먹으며 다시 확인한 내용이, 전원구조가 오보라고...집에 돌아와서도 내내 TV 켜놓고 지켜봤어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구조되지 못한채 배가 가라앉는 장면이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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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저는 일주일에 하루, 봉사활동을 다녔습니다. 그날도 봉사활동날이었고, 평소처럼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화상영을 위한 준비를 했습니다. 전원구조라는 기사에 안도하며 평소처럼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바쁜 시간이 지나 다시 본 기사에는 가슴아픈 이야기들이 가득했습니다. 스크린에는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고, 현실에는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날, 그때에. 어찌 잊을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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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날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그 날은 수요일이었습니다. 원래 업무 중에 뉴스는 잘 안 봅니다. 오전에 수학여행 가던 배에 사고가 났다는 동료의 말에 인터넷기사를 잠깐 검색해 사고가 났다는 걸 보고 아직은 추운데 승객이나 구조대나 고생 좀 하겠다고 생각했지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래도 마음에 계속 걸렸는데 점심 식사 시간에 전원 구조라고 보고 안심했습니다. 저는 엔지니어인데 그 주말에 야간 작업이 예정되어 있었고, 작업에 대한 최종 점검 회의를 수요일 오후 2시에 했습니다. 점심 먹고 회의 준비 정신없이 하고 치열하게 회의하고 나왔습니다. 자리에 오니, 후배가 배가 가라앉고 있답니다. 오보랍니다. 그 때 느낌이 선명합니다. 아득해지면서 그게 무슨 소리야?! 라고 앉아서 뉴스 페이지로 들어갔고, 저는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그 날 오후 사무실에 내려앉은 침묵과 일상이 비일상이 되버린 이질감. 퇴근해서도 잠을 못 이루고 계속 새로고침만 하면서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2년이 지나서 우리는 괜찮아 진걸까요? 저는 아닙니다. 그 날은 그대로 제 안에 남아 있습니다. 유가족은 물론 저도 다른 사람들도 그 날 어딘가 손상된 것 같습니다. 진실이 밝혀지면...우리 모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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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아이이유식 재료를 사러 유모차를 끌고 마트에 갔다.한우를 보고 있는데 정육코너 직원분이 말하는게 들렸다."배가 침몰했대"나는 왜인지 어느 이름모를 외국의 작은 나라의 작은배 일일 거라고 생각했다.그리고 마트를 한바퀴 돌고 다시 그앞을 지나갈때 또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다 구조했대""다행이네"지나가듯 생각하고 무심히 계산을 하고 나왔다.유모차에 탄 아들을 데리고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티비를 켰을때.난 그제서야 그 일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단걸 알았다. 그리고 전원구조가 오보 였다는 것도."왜 구하지 않지?"답답해 미어지는 가슴으로 배가 가라앉는 모습을 지켜봤고 한동안 티비를 켜지 못했다.타지에 내려와 유일한 친구였던 티비라 거의 하루종일 틀어놓고 있었는데 그 일 이후 한달 정도를 거의 켜지 못했다. 가끔 켜서보면 아무것도 못하고 그대로 앉아 멍하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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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고2, 단원고와 아주 가까이 위치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주 어린 시절부터 만났던, 어쩌면 바로 어제 만났을지도 몰랐던 친구들을 아주 멀리 떠나보낼 수 밖에 없었던 그 날의 슬픔을 기억합니다. 졸린 눈을 비비고 학교에서 아침을 먹을 때 처음 뉴스를 접했습니다. 단원고 학생들이 탑승하였다는 소식에 "안산에 있는 학교 아니냐?"라고 묻던 친구가 기억이 납니다. 전원 구조라는 말에" 수학여행은 좀 안타깝게 됐어도 다행이다. 특이한 경험 했네."라는 대화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수업이 끝날 때마다 그 말이 죄스러워졌습니다. 쉬는 시간마다 오보이다, 몇 명이 구조되었다라는 이야기를 나누며 걱정과 불안은 커져갔습니다. 점심시간, 우리는 웃음이 사라졌습니다. 오후 수업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중요한 연락에 방해가 될테니 나중에 하겠다고, 분명히 내 친구는 구조 되었을거라고 말하며 걱정하는 대화도, 구조자 명단을 확인하며 한숨을 내쉬는 모습까지 견딜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방과 후, 체육대회를 준비하던 우리는 응원단 연습을 하고 있었지만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해 취소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마음을 정리하려고 복도에 잠깐 나왔을 때,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친구와 그 친구를 다독여주던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마음을 더더욱 정리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말이 없어졌습니다. 말로 할 수 없는 슬픔이 가득한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날의 슬픔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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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을 잠시 쉬고 사회복지사 자격증 준비하면서 노숙인 전문케어 다일천사병원에서 실습을 하고 있었어요. 출근하면서 병실 돌면서 환자분등 아침급식드신거 챙겨드리면서 정리 하는데 병실 티비에서 뉴스속보로 처음 보았네요...참담했고 너무 놀랬고 병실에 계신 환자분들께서도 다들 놀라서 계속 쭉 지켜봤었습니다.. 대부분 노인분들이거나 말기병환자분들이셔서 다들 놀라셨었는데 전원구조 속보뜨고 다들 함성 지르시고 간호사님들도 좋아하시고다행이다 그러면서 다들 남은 일하면서 계속 티비를 지켜 보고있었는데요....오후가 되고 대통령늦게 나오고...그게 구조되는 장면이 아니고 아이들이 실시간으로 죽어가는 모습이라고 생각하니까..지금 돌이켜서 생각해도 너무 아찔합니다....진실은 꼭 밝혀져야 하며 남은 유가족분들과 생존한분들의 치유를 위해서도 꼭 필요합니다.진실의 촛불 끝까지 지켜주세요.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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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6학년 애들을 데리고 현장 체험학습을 갔던 날이었어요. 에버랜드로 갔는데, 점심시간쯤 샘들이랑 모여 얘기하다 "수학여행 가는 배가 침몰했다더라."하는 말을 듣고 급히 네이버를 열어봤어요.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있어서인지 거의 다 구조됐고 무사하다는 기사만 보이더라구요. 아.. 다행이다 싶었죠. 그렇게 수습된줄만 알고 퇴근 길에 라디오를 틀었는데...아까완 다른 말을 하더라구요. 뭐지? 싶어 집에 도착한 뒤론 내내 뉴스만 봤네요. 이 날부터 정말 하루 종일 이 충격적인 뉴스로 가득했는데 그냥 보통 날도 아니고 어떻게 기억이 안난다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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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전 세월호 침몰뉴스를 봤고, 전원 구조였다는 뉴스를 본후에야 안심하고 외출을 했어요.그런데 저녁때 본 처참한 소식...왜 뉴스는 아침에 보였던 침몰직전의 화면만 보여주는지 이해도 안됬고....그날이후로 정말 생활이 힘들었어요...전 그날 뉴스를 정말 생생히 기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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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 휴가나와서엄마랑 저랑 남동생이랑 캡틴아메리카 보러갔어요예매해놓고 가기 전 티비로 세월호 사건 어떻게 하면서 보다가 전원구출인가 했다고 기사 뜬거 보고 안도하고 나가서 밥먹고 영화보고 영화볼 때 꼭 핸드폰 끄고보는지라 영화끝나자마자 켜서 다 구출했겠지하고 기사 확인했는데 너무 놀란 기억이 납니다 분명 거의 구출하고 구출중이다 이렇게 알고 걱정없이 영화보고 나왔는데 갑자기 몇백명이 갖혀있다고 그러고 밤이면 몇명이라도 더 구출이 됐겠지 했는데 그냥 기다리고 에어포켓 얘기하고 인양한다고 하고 그것도 말뿐이네요 ㅋㅋ 그날 이후 군인신분이였던 남동생은 남은 휴가동안 기분이 안좋다고 그러고 저도 자꾸 바다에 잠기는 꿈꾸고 그랬던 기억이나네요 그런데 기억이 안난다니요 그날이 어떤 날인데 기억이 안난다는건 말이 안되는 것 같아요 일부 윗 분들 기억상실증 아닐까요 병원에 가보셔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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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나는 대학에 입학한 이후 처음으로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 밥을 먹었습니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사진도 찍어 sns에 올린 후 근황을 나누다가 아침에 얼핏 본 여객선 사고를 언급하기도 하며 시간을 떼웠습니다. 고등학생을 갓 벗어나 새내기의 모습으로 같이 어색한 화장을 하고 사복도 입은 친구들을 보니 신기하다고 생각했던게 기억납니다. 지금 제 sns에는 그 때 동창들과 찍은 사진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해맑게 사진을 찍은 그 시간동안 나보다 불과 2살 어린 친구들이 차가운 바다속에서 죽어가고 있었다니 마음이 아파 그대로 둘 수 없었습니다. 희생된 친구들도 살아있았다면 16년에 새내기의 모습으로 어색한 화장을 하고 사복도 입으며 서로를 보고 신기하다며 웃었겠지요...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한 진상규명을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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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때와 다름없는 하루였다. 9시 쯤. 학교에 가기 위해 아마도 83번 버스를 탔을테지. 10 시 쯤 학교에 도착하여 지루한 오전 수업을 들었을 것이다.수업 내내 점심은 늘 가던 온달 비빔밥에 가서 비빔밥에 청국장을 곁들일 생각에 가득이었을테지.12시 쯤 남자친구랑 온달에 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그 때 남자친구는 어디서 배가 침몰했다고 하였다. 식당에 도착하여 비빔밥 두 개를 주문하고 물을 따르고 수저를 놓았다. 그제서야 티비를 보았다. 진도 앞 바다에서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했는데, 전원 구조 되었다는 속보였다. 아 그렇구나. 하고 맛있게 밥을 먹었다.그렇게 점심이 흘러갔다.2 시 쯤 오후 수업이 시작되기 전, 휴대폰으로 인터넷 뉴스를 검색해 보았다. 식당에서 본 그 소식이 사실이 아니었다. 아직 배 안에 사람들이 있단다. 수업이 끝날 때 까지 온통 그 배가 어떻게 되었을까, 배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생각으로 보냈다.5시 쯤에 아마 그 날의 수업은 모두 끝났을 것이다.집에 오는 길 내내, 집에 와서 내내....그 배는.. 그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걱정에...중간고사 시험 공부하는 와중에도 휴대폰으로 기사를 찾아보고.. 공기 주입도 하지 않았다던 에어포켓에 희망을 걸어보고...나는 그 날의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전원구조.. 아 아무것도 아니구나... 라고 느꼈던 내 감정...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무사히 나오길 바랬던 그 초조함..... 또렷하게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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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준비를 위해 학원을 가던 길이었다. 강남역에서 계단을 걸어 올라와서 걸어가다 보니 평소에 잘 보지도 않던 대형 전광판에 낮선 화면이 떠 있었다.진도 앞바다에서 배가 침몰했다고 한다.나는 망망대해도 아니고 앞바다에서 침몰했는데 당연히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속으로 꼭 한명의 희생자도 없이 구조되기를 기원했었다.그리고 학원 수업이 시작되기 직전에 핸드폰을 끄기 전에 확인해보니 전원 구조라고 나왔었다.그리고는 핸드폰을 끄면서, 박근혜 정부 다른 일은 몰라도 이번 구조는 참 잘했네... 라고 생각하며 3시간여동안 수업에 집중했다.점심시간이 되어 다시 핸드폰을 켜보니,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그 이후로부터 몇일간, 대체 어떻게 태평양 한가운데도 아니고, 뻔히 육지가 보이는 곳에서 배가 침몰했는데 저렇게도 많은 사람이 죽어야 했는지 아무도 납득하지 못한채, 결국 아이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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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뉴스속보로 접한후 전원구조라는 오보까지 듣고 안심했지만 점점 대형참사로 번지고 있구나 싶었어요. 그날 야구장에 가기로 약속을 해놓은지라 저녁엔 야구장에 다녀왔고 야구장에서 친구들과 세월호에 대해 대화한 내용까지 똑똑히 기억해요. 야구장에선 이미 세월호 사고로 인해 응원도 중단한 상태였구요. 집에 돌아와 피곤한데도 걱정에 좀처럼 잠이 오지않아 티비를 켜놓고 누워서 뉴스보다가 밤을 샜습니다.수색작업에 어려움없게 물결이 더 거세지지말게 해달라고 제발 살아만 있으라고 기도하면서 밤새 한잠 못잤었네요. 일개 국민도 세월호 참사의 그날을 이렇게 상세히 기억하는데 대체 우리나라 대통령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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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학 후 여행 경비를 벌기 위해서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4월 16일.출근하자마자 컴퓨터를 키고 네이버 메인 페이지를 보다 무심히 클릭한 속보 속에 "단원고" 세 글자를 보고 손이 덜덜 떨렸던 4월 16일."뉴스봤냐" 고 물어오는 옆자리 동료에게 "헐, 여기 제가 졸업한 학교에요. 그래도 전원구조라니까 천만다행이네요." 라고 답했던 4월 16일.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직원식당 TV를 통해 전원구조가 오보임을 알았고, 휴대폰에는 고등학교 동창들의 단체 카톡이 끊임없이 울렸던 4월 16일.퇴근 후 온가족이 TV 앞에 모여 앉아 뉴스를 보다 "나는 아무것도 도와줄 수 있는게 없구나" 하는 자괴감에 엄마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었던 4월 16일.그리고 결국 나의 은사님과 수 많은 후배들을 잃은 날이 되어버린, 4월 16일. 나는 그 날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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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해사다.그날 아침 부산항에 입항한 직후 사고소식을 전해들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세월호가 전복되기 1년 전에도 그 인근에서 철부선이 전복된 사고가 있었거든. 그땐 전원 구조됐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별 문제 없으리라 생각했다. 뭣보다 당장 허리가 아파서 일을 그만두고 급히 배를 내려야 했으니까…병원 진료를 마친 뒤 운항관리자로 근무하던 절친과 연락한 뒤에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상황이 저따위로 흐를수가 있는가… 승객들을 책임져야 할 선원들이 가장 먼저 도망쳤다는 소식이 가장 충격이었고, 350여명 이상의 구조 인원 집계가 어느 순간에 170명 미만으로 정정된 것은 구조 단계에서 뭔가 크게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방송에서는 반복적으로 침몰 당시의 스너프필름을 재생하고 있었으니 국민들의 충격은 어땠을까…해운업에 종사하는 실무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쏙 빼놓은 채 듣보잡 패널들을 출연시켜 이상한 이론들을 중구난방으로 쏟아내고 있었으니 말도 안되는 대각도 변침의 원인이나 읊어대고 있었지 아마…집에 돌아온 뒤 며칠동안은 충격이 가시지 않았고 그날 이후로 가끔 꿈을 꾼다. 세월호 사고와 비슷한 상황. 나는 그 배의 일항사. 꿈에서는 항상 해피엔딩. 그렇지만 현실은… 꿈에서 깨면 항상 기분이 더러워진다.사고와 관련된 주요 책임자들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고 현실이 개선되기 전까지는 아마 그 꿈을 계속 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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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전 컴퓨터실에서 정보실습을 하고 있었는데, 컴퓨터에서 이것저것 찾아보던 중 세월호 기사가 뜨기 시작했어요. 수학여행가던 배가 가라앉고 있다고.. 하지만 다행히 모두 구조되었다고.. 그리고 아무렇지않게 정보실습이 끝났습니다. 모든 정규수업이 4시40분쯤 끝나서 폰을 켰을 땐, 전원 구조가 오보였다며, 기사가 나오고 있었죠. 제 친구는 친한 친구를 잃었고, 그것을 뉴스로 먼저 확인해야 만 했습니다. 저랑 같은 나이의 친구들인데 살아있었다면 지금쯤 저랑 함께 대학생활을 즐기고 있었을 수도 있을수 있는 친구들입니다. 저는 2014년 4월 16일을 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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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입니다. 그 때도 학생이었지요.졸린 눈을 비벼가며 학교에 도착해서 교수님을 기다리며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도중. 한 친구가 사고 소식을 전했습니다. 너나 할것 없이 핸드폰을 켜 속보로 뜨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쉬는시간, "야! 다 구조됐데!"라는 소식을 다시 한 번 접하고는 그래? 다행이네. 라고 생각하며 쉬는시간을 보내고 다시금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수업이 끝난 후, 전혀 다른 상황. 전원 구조가 아니라는 뉴스 속보. 밥을 먹기 위해간 식당에서도, 다음 수업을 위해 강의실을 옮길 때도, 모든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갈 때도, 가고 나서도 끊임없이 들려오는 세월호 사고 소식. 줄어드는 것이 아닌 늘어나는 사망자 인원. 줄어드는 구조된 사람들....그 날을 잊을 수 있을리가 없는 그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