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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모두 구조되었다는 속보를 보며 녀석들 추억 쌓으러 가다가 엄청난 추억을 쌓는 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넘어갔었는데....현실은 그렇게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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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저와 제 친구들은 웃고 떠들며 과자를 먹고 있었고 페북을 통해 인터넷을 통해 이 소식을 접했습니다. "아무 일 없겠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수업을 마무리하던 순간 나오는 방송,방송,방송...동갑이어서 남일같지 않았던,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데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때 그 순간 저는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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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모르고 전원구조 중이라는 멍청한 뉴스만 다들 믿고 체육대회를 하고 있었습니다.오후에 집에 돌아와 아니라는걸 알았을 때, 너무 부끄럽고 미안하여 눈물흘리는 일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 후로도 기억해드리는 것 밖에, 때가 되면 주위에 이야기해주는 것 밖에, 유족분들을 욕하지말라고 하는 것 밖에 하지 않았습니다.이제서야 우리 모두가 이때를 기억하며 행동하고 있습니다. 이제서야 행동하여 죄송합니다. 끝까지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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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년 4월 16일. 그 날은 군단지휘검열을 앞두고 훈련 준비 기간이었다.나는 육군 포병부대에 있었다.. 포대원들많은 이 들이 (어느 정도 예상 된) 전투준비태세를 위해 나름의 사전예비활동을 하고 있었고8시즈음, 예상대로 상황은 터졌다. 사이렌이 울리고 방송이 나왔다“화스트페이스 화스트페이스 제 1부 화스트페이스 제 2부 2014년 4월 16일 08시 제 3부당직사령 제 4부 식량 탄약 치장 실적재”15분 안에 출동준비가 완료되어야 하는 화스트페이스. 사전의 예비행동이 어느 정도 있어서인지몰라도 그 시간안에 통신병이었던 나는 치장물자 적재와 기동타격대 물자를 모두 적재하고출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포부터 여섯포까지 각각의 화포에 있던 포병 동기들은 탄적재와 장약 적재를 하고 있었다. 위장을 하고 기동타격대 임무 분담을 하고 개인호에 잠깐있으니 점심 시간이 되었다.점심을 먹고 생활관에서 잠깐 쉬고 있는데 무척이나 이상한 방송이 하나 나왔다.“행정반에서 전파! 가족이나 후배 중에 단원고등학교 학생이 있으면 행정반으로 올 것. 다시 한 번 전파!, 가족 중이나 후배 중에서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이 있으면 행정반으로 올 것 이상 전파 끝.”무슨 일이 생긴지는 몰랐다. 우리 포대에서는 없었고, 내가 알기로는 우리 대대에서도 없었다.그렇게 나는 방송을 잊고 있었다. 야외 숙영이 결정되고 욕을 정말 많이 하면서 FDC 장갑차뒤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는데 배가 침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던 중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이었다. 침몰 원인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북한이 그런거 아냐?” 라고 이야기하는 전포사격통제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을 잤다. 그것이 나의 7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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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름 없는 하루. 똑같은 일상.출근하여 바쁘게 업무를 보는 중 뜬 네이트 뉴스속보.세월호의 침몰.놀란 마음으로 뉴스 클릭.많은 인원이 배에 타고 있고 구조 작업이 진행중이라던...뉴스에서 특히 눈을 뗄 수 없었던 이유는 승객들 중 단원고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떠나는 도중 사고가 났다는 이야기.나도 고등학교 1학년때 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 경험이 있어서 그런가 들뜬마음으로 출발했을 학생들이 눈에 밟혀서 그랬던거 같았다.전원구조속보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다시 업무를 보던 중 전원구조소식은 오보판명.회사에서 업무중이라는 사실도 잊고 눈물이 났다.생존자 수는 늘어났지만 실종자수는 상상할 수 없이 많았고 생존자 수는 시간이 갈 수록 줄어들었다.가족들의 애달픈 마음을 어찌 알겠는가.내 마음도 이리 아픈데 가족들의 마음은 오죽할까.왜 빨리 구조를 못할까...정부는 무얼하고 있을까...그런 생각들은 그냥 묻히듯 지나갔다.최악의 인재.최악의 정부.그곳에서 희생된 우리의 아이들과 모든 분들에게 평화가 깃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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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놀고 강자탕집같은데서 아침밥을먹다가 뉴스를 봤어요. 정확히는 속보였던걸로 기억나네요분명전원구출이라고 봤는데 7시~8시경9시쯤 난리가난거에요 구출되지 않았다는거죠뉴스가 나오기 시작하고 내가본 뉴스는 없었다하고 사람들은 맨붕상태로 구조속보만기다리는데그렇게 3일을. 아마도 다들 심장조렸을겁니다3일...부끄러운 대통령 수치스런 총리와 수행원들..하....충격적이라 기억을 안하기가 더!힘들거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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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해를 연신 되뇌이며, 아이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던 날.무능한 해경과 정부관계자는 뭘 하고 있냐며 화가 나던 날.아무런 관계가 없음에도 눈물이 나고 억울해 마지 않던 날.빨리 구조되서 무조건 살아야 한다며 모두가 기도했던 날.ㄹ혜는 뭐했는지 거짓말하지만우리는 뭐했는지 다 말할수 있다.우리는 기억합니다.잊지 않겠습니다.그날의 7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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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오전 바쁘지도 한가하지도 않은 오전이었고 친구와 스카이프로 대화하며 메일을 확인 하고 있었습니다. 쇼핑을 해볼까 싶어서 인터넷 창을 열었는데 뉴스 속보로 배가 침몰 했다는 소식이 보였습니다. 처음엔 다른나라 뉴스인 줄 알았고,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현재 상황 인 것을 알았을때는 단순 헤프닝에 그칠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어서 속히 모두 안전하게 구조되어서 상황이 마무리 되었다는 뉴스가 뜨길 기다리고 있었어요. 사무실 안의 모든 직원이 한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점심을 먹고 와도 오후가 되어서도.. 그런 뉴스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일어난 것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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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아무것도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읍니다. 그날의 진실 그리고 사과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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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고 믿기지가 않아서 영상만으로도 왜 유리문이라도 깨트려달라고 동동 굴렀어요..배가 저렇게 기울어지는데 왜 아이들이 이것 뿐일까 생각했는데...선장이 본인은 탈출하고 아이들한테 방송으로 구명조끼입고 그대로 있으라고 했다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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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선명한 그 날의 시간왠일인지 그 날 그 시간 그 소식을 들은 그 순간이 잊혀지지 않습니다.출장지인 중국 수조우에서 이른 점심을 위해 들렸던 식당에서 접했던 세월호 침몰 소식.....전원 구조라는 소식에 요즘 같은 세상에 당연하지 라고 생각하고 업무를 보고 오후에 돌아 온 후, 다시금 접한 뉴스에서는 배 안에 남겨진 이들이 300명이 넘는다는 혹독한 소식을 들었던 그 날... 침몰 당 일. 다음 날.. 그 다음 날까지 계속 구조 소식에 귀를 기울이며, 아이들의 무사 아녕을 빌었던 그 봄 날의 사건은 저에겐 아직까지 마무리 되지 않은 슬픈 현실로 남아 있습니다. 기억합니다. 그 날의 슬픔을기억합니다. 그 날의 좌절을기억합니다. 그 날의 절망을기억합니다. 그 날의 분노를그리고, 기억하겠습니다....당신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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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않되는.. 어른들의 무책임함과 어른들의 욕심이.. 어른들의 권위의식이...앞으로의 미래일 아이들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그 어른들이 만든 결과가 얼마나 암울한 미래를 만들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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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사무실에서 라면을 끓여 먹는데 12시 조금 안되서 사무실 인근의 슈퍼에 라면 사러 갔다가 그곳에 있던 티비에서 처음 소식을 접했다.황당한 마음으로 멀건히 서서 뉴스를 보고 돌아왔다.혼자 일하므로 조금 바쁜 날은 세상일 을 늦게 알게된다. 그 날 오전에 인터넷기사나 네이버 초기창도 제대로 보지 못했나보다.저녁에는 별 약속없이 일찍 집에 가서 티비로 뉴스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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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출근.해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서울 본사 출근 대신 생산공장을 방문하여 회의중이었습니다. 회의 방문하여 생산 운영회의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회의를 시작하고 우연히 누군가가 진도앞바다에서 배가 침몰했다는 속보가 있었다고 했니.. 솔직이 잘 구출해주겠지 하고 회의를 계속했습니다. 회의 이후, 전원구출이라는 속보를 듣고 안심하고 다시 서울로 출근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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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초등학교 교사입니다.수업에, 공문에 정신 없이 오전시간을 보내고 늦게서야 세월호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마침 수요일 교직원 배구가 있던 날. 대부분 구출되었다는 오보를 믿고 운동을 했었습니다. 중간에 "지금 아이들 대부분이 배 안에 있대요" 라는 말을 전해듣고는 순간 다들 체육관 바닥에 주저 앉았던 기억이 있네요. 그렇지만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그 아이들 못구하겠느냐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었는데 ㅠㅠ어딘가에는 아이들이 살아있겠지,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똑똑한데 하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는데....아무 대책도 없이 조명탄만 쏘아대며 공기를 불어넣는다는 생쑈를 하는 걸 전국민이 생중계로 지켜봤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어지지않습니다.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지금도 서서히 잠기고 있는 세월호 영상만 보면 가슴이 턱! 막히고 울화통이 터집니다. 그 아이들이 마지막 순간에 느꼈을 공포를 생각하면 가슴이 진정이 안됩니다. 오늘 국정 역사교과서 공개한다는데나는 기껏 한다는게 국정역사교과서 발간에 찬성 의견을 냈던 교총을 탈퇴하는 일 밖에 못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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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평소처럼 아아들 가르치고 있었네요 처음엔 별일 아닌듯했고 시간이 지나며 공포와 분노가 울분이 넘쳐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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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에 쭉 틀어박혀 있느라 관련한 아무런 소식을 듣지 못하다가, 점심 먹으러 나와서 학교 식당 TV 에 틀어진 YTN 보도의 자막을 보고서야 알았어요. 짧은 줄이었고, 줄 서 있던 사람들이 전부 스크린을 보면서 사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당시에는 저는 짧은 자막만으로 지나가며 보았을 따름이라 어떤 사고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고, 너무 바쁜 날이었어서 "큰일이 났구나.. 잘 해결되어야 할텐데" 정도의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사실 4월의, 진도 앞바다에서, 원양어선도 아니고 여객선에 탄 사람들이 바다에 빠져있고, 그 사실이 뉴스에 실시간으로 보도가 되고 있으면 당연히 구조가 가능할 거라 생각했어요 저는. 나중에야 사고의 규모와, 말도 안되는 당시의 대처와, 그로 인해 끔찍한 피해를 입은 아이들에 대해 알았습니다. 또, 한참 더 나중에야 당시의 뉴스 보도를 접하고 피해 아동의 유해 발견 소식을 전하며 울컥해 말을 잇지 못하는 뉴스앵커를 보았습니다. 자기 일도 아닌데 슬퍼하고 비통해하는 수많은 사람들도요. 국민의 삶을 책임지고, 더 나은 삶을 이루어주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밤낮없이 노력해야 하는 사람이 대통령이고, 주변의 보좌관들이 아닌가요? 대처할 틈이 전혀 없는 사고였다고 해도 그를 미리 방비하지 못한 책임을 스스로에게 묻고, 누구보다 먼저 슬퍼하고 뒷일을 책임져야 할 사람이 대통령이 아닌가요? 당신이 그 시간 동안 어떤 일을 했는지 나는 모르지만, 이토록 오랫동안 그에 대해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것이 당신이 스스로의 본분을 다했더라면 너무나도 간단히 해명 가능한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큰, 그리고 눈에 너무자 선명히 보이는 비극에도 감정을 이입하지 못하는 사람이 뱉는 "국민의 삶과 고난을 책임지겠다"는 말이 얼마나 가짜이고, 역겹고, 징그러운 것인지 나는 똑바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당신이 당신의 죄를 치루게 하고, 다시는 당신같은 징그러운 사람이 남들보다 편안히 살 수 있고 남들을 이끄는 자리에 오르지 못하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사회이기를 기원합니다. 만일 지금 현재 그렇지 않더라도, 앞으로 그런 사회가 오게 되기까지 나는 노력하고 기억할 것입니다. 당신들은 열심히 회피하고 도망쳐 스스로의 더러운 모습을 인식하지 못한 채로 살아 보십시오. 개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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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 저는 만삭에 몸이였습니다.첫아이가 태어나길 바라고있었어요.오늘내일 예정일이 다가오고있었죠. 세월호..4월은 제게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준 시간이네요 4월29일 아이가 태어났어요 그래서인지 저는 4월. . . 절대로 잊지못할 시간입니다 아마 저희 아가가 커서도 세월호는 잊지못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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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하면서 뉴스를 시청했는데.... 침몰한 배에서 학생 전원 구조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행이다... 생각했었는데 그게 오보였어요...누군가는 말하죠 그만하라고 지겹지도 않냐고...하지만 이건 지겨워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닌거죠.. 이런 식의 사후 처리라면 그 사고가 자기자신 가족에게 언제든 닥칠 수 있다는 거죠...100년 1000년 후 까지 기억되어야 하고, 올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사고가 나와 내가족이 아니라고 어찌 장담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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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핸드폰으로 침몰 기사를 확인하고, 걱정하던 차에 누군가 전원 구조되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안심했고요.목욕탕에 갔다 나오니 휴게실에서 생중계를 하고 있었는데, 전원 구조가 아니라 학생들이 안에 갇혀있다고 하더군요.그 이후로 뉴스 소식을 계속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선명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