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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소식이 뉴스를 타고 전해져 오던 바로 그 순간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남아있는 사람들의 아픈 상처가 치유되기는 커녕 점점 더 벌어지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움이 더해집니다. 이제 겨우 유치원에 가기 시작한 어린 딸 둘을 키우는 아빠로서 이런 아픈 기억이 우리 아이들에게는 더 나은 유산으로 남겨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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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맛이 없는 2900원짜리 학식을 약간은 의무적으로 먹고 있었습니다. 평소 티비도 잘 보지 않고 인터넷도 잘 하지 않았던 저는 그 소식을 모르고있었고 함께 점심식사를 하던 친구가 말해주고나서야 알게되었지요. "무사히 구조됐대." 친구는 그렇게 말해주었고 걱정에 잠겼던 저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시 점심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몇년이 흐른 지금도 통째로 그날이 기억납니다. 그 소식을 말해주던 친구의 표정과 나를 둘러싼 식당의 습기,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절망적으로 변해가던 온갖 뉴스채널의 이야기들. 아직도 그 계절이 다시 돌아오면 내내 우울해집니다. 여전히, 멈춰서서 이젠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고 우두커니 눈물흘리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우는 내가 우습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그게 살아있는 내가 해야하는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기억하는 것, 절대 잊지 않는 것. 나는 내가 사는 동안 모조리 그 시간들을 품고 살아갈 것 입니다. 국가의 무능함에 국민들이 다쳐야만 했던 그 악몽같은 시간들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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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평범한 날이었습니다여느날처럼 일어나자마자 폰을봤고아마 전원구조라는 다행스러운 별일 아닌듯한 뉴스를 보고여느날처럼 연구실에 출근을 하기위해 밍기적밍기적 일어났죠그런데 출근하기도전에 전원구조가아니라는 뉴스를보고도대체 어떻게되는건가 계속확인을 했어요연구실에 도착해서는 울었어요그날모두들 착잡한마음으로 일을했어요저는 그날 하루종일 일이손에안잡혔어요끝내 애들이 못돌아왓다하더라고요구조되기만을 기다렸고시간이 조금지났지만 기적처럼 몇명이라도 더 구조됏다는 뉴스를 기다렸어요그러다가 날이 흐려지고 비가오는 팽목항을 계속 보여주던 뉴스들이 기억나요잠수사들이 구조작업을 하고있으나 물살이 워낙세고 날이 흐려서 구조에 굉장히 애를먹고있다고제 대학동기들은 팽목항에 의료자원봉사를 가기도했습니다물론 이건 그날 일곱시간동안에 있었던일은아닙니다만사실 그날은 온통멍하고 도대체무슨일인가 알수가없엇어요 하루종일 잘못된뉴스들과 믿을수없는 일들 뿐이었어서요그날이 있기전으로 돌아가고싶네요진짜아직도 변한게없는 대한민국이라는게 그아이들한테 너무나도미안합니다자기들이 왜 죽는지도모르고 배는 왜침몰되고있는지도모르고 도대체 누가 구조를 하러오는건지마는건지아무것도 모르고 죽었을 아이들에게 너무미안합니다여전히 그날을 기억합니다 4월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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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공중파에서 속보라고 빨간글씨로 보도되는거보면서"에이 뭐야 전원구조다했네"이말이 아직도 죄스럽네요....별일아닌데 왜저리 속보라고 내보내는지...했던 그런데 시간이지나면서 오보라는거보고그날 뉴스채널만 계속옮겨보면서 경악했습니다..보여주기식으로 헬기몇대 구조정 몇대 해경몇명..정작 아이들은 구하지도않았으면서..그날부터 뉴스를달고살았는데..진짜 이게나라인가 싶었죠.에어주입한다쇼하고ㅡ밤새 배주면 돌면뭐하나 구하지도않고유가족들은 발만동동구르고눈앞에 배가있는데,...구하지는않고..잊을수가없어요 그날의 국가 쇼를ㅡㅡㅡ이제라도 다시 그날일이 수면위로 떠올라 다행이라느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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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준비한지 1년이 다 되어가는 백수였어요. 아침에 큰 사고가 났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금방 전원구조됐다는 생각에 안도했어요. 사실 그 큰 배가 바다에 빠졌다는 뉴스 자제가 워낙생소해서 현실감도 없었고..요즘도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는구나 생각도 했죠. 평소처럼 한참 스터디 준비를 하고 오후엔가 저녁엔가 뉴스를 다시보는데....와.... 애들이 다 빠져있대요. 사실 저는 사고 당일날보다 그 다음, 그 다다음날 밤 기억이 더 생생해요. 어처구니없게도 더이상 탑승자들을 구조하지 못하는 정부때문에 속이 터지고.... 시간은 가는데 생존자 숫자는 늘지 않고. 아프리카 어딘가에선 선체에 에어포켓이 생겨서 일주일 가깝게 생존했다더라. 세월호 희생자들도 어딘가에서 에어포켓을 찾아 피신해있지 않을까. 의무를 져버린 국가가 아니라 부질없는 기적만을 붙들며 몇날 며칠을 울었네요. 희생자들을 한번 만나본 적도 없는 내가 그렇게 울었는데. 유가족들은 어떻게 버티셨을까. 감사하고 미안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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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있었던 나는 조금 늦게 소식을 접했다. 아침에 있었던 첫 수업을 마치고 다음 수업까지 시간이 비어 가까운 빌딩에 있는 도서관 1층에 갔다.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 다음 수업 퀴즈를 리딩자료에서 내겠다고 했던 교수님 말씀이 생각나 리딩자료를 뽑았다. 그 날 내가 앉았던 도서관 자리. 책상보다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한 도서관 창문으로 들어오던 굉장히 밝은 아침햇살. 또렷이 기억난다. 전날 잠을 못자 몽롱했던 나는 자료를 바로 마주하기 귀찮아 네이버를 켰다. 곧 세월호 기사로 도배된 네이버 페이지를 보았고 그 다음 수업 퀴즈 생각은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내 왼쪽과 앞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던 다른 학생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든 말든 세월호 동영상과 기사만 계속 읽으며 줄줄 눈물 흘렸다. 지역상 조금 쌀쌀한 날씨 때문에 자주색 패딩조끼를 입고 있었던 것, 렌즈를 안끼고 안경을 끼고 있어 눈물을 흘렸어도 눈이 덜 피곤했다는 것. 충격으로 남아있는 그 하루를 나같은 사람도 기억하는데 나보다 대단한 일을 하는 그 대단한 사람들은 어째서 기억을 하지 못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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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학 다니는 4학년이었어요. 4월 16일에는 진행 중이던 작품도 진척시키고 손도 풀 겸해서 미대 과방 겸 작업실에 오전부터 가있었습니다. 생각없이 뉴스란을 봤다가 배가 부서져서 침몰중이라는 걸 봤습니다. 수학여행가던 아이들이 주된 승객이라고. 저한테 남동생이 있는데 걔가 그때 고2였습니다. 동생 또래 아이들의 말투나 웃음이나 그런걸 생각해보면서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면서, 또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배가 실시간으로 가라앉는걸 이렇게나 생생하게 뉴스로 볼 수 있는데, 구조도 당연히 실시간으로 할 수 있겠거니, 사상자가 거의 없을 수 있겠다는 생각과 희망을 가졌습니다. 제 대각선 맞은편 자리를 쓰던 후배가 왔고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거지?", "그래도 금방 구할거야"따위의 대화를 나눴습니다. 전원구조 속보를 보고 그럼 그렇지, 이렇게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 구조도 어렵지 않지, 하면서 안도했었어요. 그렇지만 오보라는 소식과 함께 줄어들지 않는 실종자수, 뉴스에 배가 점점 가라앉는 건 보이는데 어째서 구조 진척도는 전문적으로 상세하게 보고되고 있지 않는 건지! 온갖 사람들이 팽목항에 내려가서 발을 구르고 있는데 왜 배안에 있는 사람들은 못 나오는건지. 스무살도 못되어볼 아이들이 너무 안타까워서 엉엉 울었습니다. 그 이후로 일어난 모든 일련의 사태에 분노합니다. 단체로 기억상실증 걸린 마냥 책임 회피하는 년놈들, 당신들은 인간도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날의 일상조차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배가 가라앉지만 않았다면 아무것도 기억못하는게 당연했을 4월 16일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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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려고 200번 버스를 타고 구청 앞을 지나고 있는 순간, 친구가 보낸 카톡을 보고 소식을 알게 되었어요. 그날 종일 뉴스만 봤어요. 304, 174 라는 숫자는 평생 기억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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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었어요... 쉬는 시간에 갑자기 웅성거리면서 핸드폰을 다들 봤던 기억이 나네요. 처음에는 농담인가 했어요. 괴담들도 많았고... 그런데 하나 둘 뉴스가 더 나오면서 얼마나 심각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보게되었어요. 손이 떨리고 가슴이 쿵쾅거릴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었어요. 학생이었기 때문에 고3이었기 때문에 도와줄 수 없었다고 생각하지만 이것 또한 변명일지 모르겠네요 ㅠ 항상 기억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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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 놀러가 신난 마음으로 티비를 켰는데 충격적인 영상에 놀랐습니다. 배가 누워있더군요. 마음이 너무 떨려 함께 갔던 친구와 근심 어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잠시 뒤 전원구조 자막이 떠서 기뻐하고 잊고 있다가 서울에 도착해서 보니 비참한 소식으로 변함에 몸둘바를 몰랐죠.... 무심한 나 자신에 반성합니다. 너무나 착한 아이들이 가족들에게 보낸 텍스트메세지나 핸드폰 영상을 보고 눈물 흘렸던 기억 선명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말이 안되는 것들은 하나씩 바로잡는 세상을 위해 힘을 보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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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업무를 하던 중 세월호 사고가 발생했다는 언론보도를 처음 접하였습니다.다행히도 전원구조라는 속보를 보고 놀란 마음을 잠시 진정시켰는데, 시간이 얼마되지 않아 오보라는 정정보도를 보았습니다.회사 점심시간에도 밥이 넘어가지 않고 먹먹하고 걱정이 되던 그 때가 아주 생생하게 기억납니다.사고가 나던 밤, 저희 가족들과 친구들 모두 잠을 제때 청하지 못하고 함께 걱정하고 뉴스를 보며 기도했습니다.제발 무사히 남은아이들이라도 구조되길 바라는 심정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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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다름없이 학교에서 공부를 했어요.. 사실 옛날이라 놀기만 좋아하고 공부엔 신경 안써서 정치에 대해선 관심도 없었지요. 근데 그날 밤 tv를 보려고 킨 순간 뉴스가 나왔는데 배가 쓰러져 있어 놀라 계속 봤어요.. 그게 세월호 사건이었죠? 저는 그때 정말 슬프고 얼마나 무서웠을지.. 생각을 하면서 잠을 계속 설친거같아요 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언니 오빠들이 얼마나 무섭고 힘든지... 그다음날 음악시간에 저흰 노래를 배웠어요. 그 노래를 배울때 정말 울컥해서 눈물이 날뻔 했지요.. 언니 오빠들이 자신의 꿈을 못이루고 즐거운 수학여행에 그 사고가 났으니 억울 할 것 같아요. 즐겁게 준비해서 간 수학여행이 엄마,아빠,동생,친구들,언니,누나,오빠,형 등 많은 사람들랑과의 마지막인줄 누가 알았겠어요... 근데 박근혜는 7시간동안 대체 무엇을 언제 어디서 한건지 참 화날뿐이네요 얼른 7시간 알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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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설마.. 에이.. 괜찮을거야.. 괜찮을거야.. 구출될거야.. 그래야하는데.. 뭐지.. 뭐지..?구출 된거야? 아 구출될거래? 응응 그래야지.. 응? 아직도? 뭐지.. 뭐지..?이렇게 저는 가만히 기다리고 있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멍해졌었죠.그래서 이젠 더이상 괜찮을거라고 위로하며 가만히 있지 않으려 합니다. 최소한의 그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그 안전망이 돌아올 때까지.. 아프지만 직시하고 소리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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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지금은 기억도 나지않는 일상에 치어 두려움에 휩싸여있을 아이들의 외침을 생각하기 보다는 그옛날 변산에서의 여객선 침몰사고와 대비하여 변하지않는 세상에 쯧쯧 혀를차고 일상으로 돌아가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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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 기간이었어요. 집을 떠나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시험기간이라 잠을 못자니 몸이 아팠어요. 너무 아파서 교수님께 양해를 구하고 병원에 가서 진료대기를 하면서 멍하게 티비를 보고있는데 세월호 뉴스가 나오더라구요. 사고가 난 날 오전이였는데 사실 안믿겼어요. 저게 말이되나 뭔말인가 소설인가 근데 진짜였어요. 몸이 아픈거보다 너무 슬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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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전공수업 시간에 컴퓨터를 보고 너무 놀랐어요, 근데 조금 뒤에 전원구조를 했다고 기사가 떠서 무사해서 다행이다.하며 안심을 했는데 오보였어요. 저랑 동갑인 친구들이 얼마나 무서울까, 빨리 구조가 되어야할텐데..정말 너무 걱정되고 저녁에 뉴스를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저는 이렇게 마음이 아프고, 정말 너무 걱정되고 불안한 마음에 눈물만 흘렀는데 과연 그들은 뭘 했을까요?절대 잊을 수 없어요, 못 잊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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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의 난 아침 뉴스를 통해 사고가 났다는 걸 알았고 그 당시 친동생도 수학여행을 가서 너무 놀랐어요. 동생은 연락이 되어 이미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고 곧 뉴스에서는 사람들을 구조 했다는 소식에 정말 다행이다 하며 학교를 마치고 온 저녁,그 뉴스는 오보였다는 걸 알았고, 그 날 저녁부터 매일 뉴스를 보며 제발 무사히 구출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보냈던 시간이 되었어요.절대 잊어서도 잊을 수도 없습니다. 제 동생같은 아이들.. 또, 좋은 마음으로 여행을 떠났었을 모두.. 잊을 수 없습니다. 잊지 않을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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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큰 배는 빨리 가라앉지 않기 때문에 서둘러 주변의 어선들이 오면 모두 무사히 구출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전원구출이라는 소식을 듣고 잠시 긴장을 늦췄습니다.그런데 들려온 소식은 그게 아니었습니다.출동한 해경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우리는 국가의 무능력과 배신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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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우리 학교도 수학여행을 가서그날 기억이 생생하네요. 반 아이들이 버스를 타고이동을 할때 버스tv에서 배가 침몰했다고 하더라구요. 저희는 작은 어선인 줄 알고 다들 안 다치셨으면좋겠다 하면서 tv를 보고 있었는데 조금 지나니까어선이 아니라 엄청 나게 큰 배 였더라구요.그리고 저희와 같은 학생분들이 많이 타고 계셨구요. 근데 조금더 시간이 지나니까 뉴스에서는구조가 빨리빨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고속보를 해줘서 그나마 안심이 되서뉴스를 봤던것 같아요.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요.숙소에 들어와 제일 먼저 tv를 켜서 뉴스를 보니사망자가 늘어나고 구조인원은 점점 줄어들고이게 어떻게 된걸까요. 뉴스에서 한 말은 다 거짓말.허위사실. 이게 무슨 경우일까요. 뉴스를 하지 말지.희망고문도 아니고 무엇일까요. 저는 그때 저희반 아이들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아요. 충격과 슬픔과 배신감. 저는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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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소유 건물관리 때문에 평택에 간 날이다.근처 중개업소에 갔다가 티비에서 뉴스를 봤는데, "에고 배 하나 침몰했군." 하고 할 일을 했다.그런데 서울에 와서 저녁에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300명 넘게 죽었다고? 믿기지 않았다. 이럴 수가 없는 일인데.... 작은 배도 아니고, 밤도 아니고 태풍이 분 것도 아니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