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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물에 잠기는 작은 유리창을 보며, 아무도 없나요, 하고 뉴스를 보며 수십 수백 번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왜 아무도 구해주지 않나요. 저기 사람이 있는데..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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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억합니다.대학생 1학년, 4월.즐거운 마음으로 학교를 가기 위해 여느 때와 같이 그 시간에 하는 뉴스를 틀어두고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속보가 떴고, 학생 전원 구조라는 글자를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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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선생님이였던 우리언니. 이 소식을 접한 우리는 아이들 걱정에 밤새 대화를 나누고 이 썩어빠진 우리나라를 더 원망할 수 밖에없었습니다. 언니 학교 학생들도 수학여행 떠나기 직전의 시기라 더 걱정할 수 밖에 없었던 언니와 나. 같은해 12월 언니는 다른 사고로 하늘나라로 떠났어요. 그 다음해 회사 막내로 들어온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그친구, 알고보니 단원고를 다니다 의정부로 전학왔는데 우연히도 언니네 학교 학생이였더군요. 세월호로 친구들을 잃은 우리 막내.. 우연한 기회로 친구가 되었네요. 더욱이 언니를 잊지못하고 세월호 사건을 잊지못하기에.. 간간히 광화문 세월호 미사에 참여하고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이 시국에 별이 된 아이들을 함께 기억해준다는 사실에 너무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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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 2학년때였는데..배가 물에 빠졌다길래 뉴스 계속 틀어놓고 숫자만 보고 있었던...아니 당장 해경이랑 구조대 119 출동해서 건져내야지 뭐야... 그것도 대낮에;;;라고 하며 점점 소름돋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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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춥지 않던 날 학교 앞 싸구려 밥집에서 친구랑 점심을 먹고 있었어요. 동생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게 너무 부러워 친구에게 동생이 내 옷을 훔쳐 갔다며 험담인 척 자랑을 하고 있을 때 였어요. 제 이름을 부르며 친구가 가리킨 손가락 끝에는 낡은 티비가 있었고 수학여행을 가던 배가 침몰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어요. 떨지 않으려 노력하며 지금 어디냐는 문자를 보내고 답을 기다리는 동안 전원구조라는 소식과 오보였다는 뉴스가 나오더군요. 제주도에 잘 도착했다는 답장을 받기까지 지옥에 있었어요. 동생이 탄 배의 바로 다음 배, 동생과 같은 해상에 있었던 그 아이들. 저는 그 지옥같은 순간을 잊어가고 있지만 누군가는 아직도 벗어날 수 없는 지옥에 살고 있겠죠.밥대신 눈물만 한가득 삼켰던 그날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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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며 바닷속으로 사라져가는 아이들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설마 저렇게 바닷속으로 가라앉나 싶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날 이후, 구조하지 못한 아이들을 보면서 나도 공범인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아이들아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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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저는 7시간 동안 학교에 있으면서 세월호 소식을 접했고, 하교 할 때에는 전원 구조 기사를 접했습니다. 함께 하교하시던 선생님께서 눈물을 글썽이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오보였음을 알게 되었고, 순간 눈물을 글썽이시던 선생님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물 속에서 울부짖었을 언니, 오빠 분들, 그리고 교사분들과 다른 세월호 희생자 분들의 모습이 하루종일 눈 앞을 아른거렸습니다.959일이 지난 지금, 저는 아직도 세월호 사고를 잊지 않으려 매일 날짜를 셉니다. 그래서 더욱 묻고 싶습니다, 대통령님께. 2014년 4월 16일, 7시간의 침묵의 까닭을, 그 7시간을 숨기려 하는 까닭을, 잊으려고 노력하시고 계신 건 아닌지.그리고 세월호 "사고"가 맞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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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일하다 11시경 뉴스를 접했어요.수학여행 가던 학생들이 사고가 났다고..모두 다 구조될거라 생각되어 뉴스를 접고 다시 일하고 있었습니다.하지만 이렇게 오래도록 길고 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그날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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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날 아침, 남편이랑 같이 자가용을 타고 가고 있었어요. 남편이 라디오 뉴스를 듣고 "큰 배가 침몰했다는데?" 라고 말했고 저는 믿기지가 않아서 "(GPS며 휴대폰이며 요즘 같은 21세기에 IT 강국 대한민국에서 그런 구시대적인 사고가 났다고?) 설마.... 금방 구하겠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계속 뉴스를 들으면서 왔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방송을 보는데 상황은 점점 안 좋아지고 제가 생각했던 21세기 IT 강국 대한민국은 탑승객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오락가락 숫자만 계속 바꿔댔고 아무런 조치도 하지 못한 채 시간만 계속 흘려보냅니다. 결국 저녁에 배가 뒤집어지는 현장을 실시간으로 보면서도 아이들을 구하지 못하더군요. 보는 내내 "대체 왜......?"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아니 위치를 못 찾은 것도 아니고, 소식이 늦게 전달된 것도 아니고, 뭐가 부족해서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이 계속 머릿 속을 맴돌았습니다. 제가 자주 들어가는 사이트에 4월 15일이 생일이라며 제주도로 수학여행 간다고 글을 올린 학생에게 "제발 무사하다고 글 좀 남겨줘요!" 라고 응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글을 보면서 저도 아... 제발... 그 배가 아니길 바라고 또 바라고 있었어요. 결국 그 학생의 누나분이 한참 후에 글을 올리셨지요. 가족의 곁으로 시신으로 돌아왔다구요. 정말 너무 너무 슬펐습니다. 아이가 고작 4살, 1살인데도 아이가 없다는 걸 상상도 못하겠는데 18년을 키운 아이를 이유도 정확히 모른 채 잃은 부모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 있을까요. 감춰진 진실을 꼭 알려서 아이들과 부모님들을 위로해야 합니다.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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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외국 발령으로 나가신 담당 상무가 업무차 회사와서 점심을 먹는 날이었다. TV에서는 속보로 세월호 이야기가 나오는 중이었고 "아이고""라는 말한마디 이외에는 아무런 감정없이 식사를 했다. 그리고 전원 구출이 라는 기사가 나왔다. 다행이다.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그냥 그 땐 지나가는 이야기였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태는 심각해졌다. 그리고 나보다 먼저 떠난 동생 생각이 나서 더이상 뉴스를 볼수 없었다.. 사실 현실회피였다. 그리고 미안함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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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당시 저는 중학교 3학년 이었고 아직 기억나는게 학교에서 고맙게도 뉴스랑 연결을 시켜주어 각교실에 있는 TV로 뉴스를 시청하며 옆 칠판에 생존자 와 실종자 명 수 를 적으며 모두 돌아오길 기원했고 이동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TV를 틀어 생존자 수가 늘어나 있는걸 보며 좋아하며 박수치던게 기억납니다.. 또 사망자 수가 늘어나면서 TV를 안틀게 되고 그러다가 잠깐식 보면 안좋은 뉴스들만 나오고 ... 또 그 이후 친구들과 뜻을모아 remember 20140416 팔찌와 노란리본 벳지를 친구들과 나누고 했던것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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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때와 같이 취업준비학교에서 컴터를 배웠어요 원래오전에 회계를 배웠어야햇는데 회계선생님이 일이잇어서 오후로 바꼈엇죠그래서 컴터 수업하는데 알고있는 내용이라 옆의 같이 배우는 아주머니를 알려주면서 인터넷을 하고있엇어요세월호침몰이라는 기사를 보고 아주머니랑 어떻게 하냐며 안타까워햇고 다구했다는 기사를 보고 다행이라고 했고 오보라고해서 생방송으로 방송하는걸 봤어요전 지금도 그날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2년이지낫는데도 불구하구요 너무나 충격적이여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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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다른 날과 그리 다르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사람의 파도에 떠밀려 출근을 하고, 업무의 광풍에 잠시도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시간을 보내던 중, 동료들에게서 배가 침몰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습니다.자주가는 포털에서 간단히 기사를 보았지만 이미 구조활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그 위치나 기후 또한 현재 우리나라의 역량으론 빠른 수습이 예상되는 상황.이런 생각이 정리되며 다시 업무에 파고들었습니다.하지만 퇴근 전 확인 한 상황은 이해 할 수 없는 기록들과 이야기들 뿐....말도 안되는 상황과 어처구니 없는 대처는 내가 살아간 2014년의 하루가 너무나 낯설게 드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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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요ᆢᆢTV앞을 떠나지 않고 보고있었던ᆢ배가 기울어 침몰하는 순간까지 설마 그많은 아이들을 구하지 못할꺼 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고 무슨대책이 있겠지 믿고만 있었어요ᆞᆞ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답답하고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ᆞᆞ왜 적극적으로 구조활동을 못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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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마을 해안가 지방에서 교사로 근무중이었다. 날씨가 좋았고, 짬을 내어 본 인터넷 기사를 보고는 "큰 배고, 날씨도 좋고하니 금방 다 질서정연하게 구조되겠구나."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수업과 일에 몰두했다. 그리고 아직도 사람을 다 구하지 못했다는 뉴스를 오후에 보고 당황스러웠다. 근무를 마치고 오후 5시쯤 학교 밖을 나서서 마을길을 걷는데, 포근한 공기와 맑은 하늘 저너머에 옅게 퍼져나가던 연보라 연분홍의 노을의 색조까지 기억이난다. 이 바닷가마을에서 1년간 사택생활하며 근무하면서, 환절기철의 이 바닷가 동네의 날씨에 바람도 이렇게 잔잔하며 포근하고 쾌청한 날은 많이 없었던 것 같아서, 날씨가 참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러했기에 이토록 따뜻하고 맑고 바람잔잔했던 그 좋은 날에, 그런 큰 배의 승객구조에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는 사실이 더욱 더 믿어지지 않아 당황스럽고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남는다. 대한민국이 이정도였나 생각했던 기억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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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여느때와 다름 없이 공부를 하고 그 다음주에 나가게 될 실습을 준비하던 중, 핸드폰 뉴스를 통해 보게 된 그날의 아픔...처음엔 잘 구조되겠지 큰 일 없겠지하며 그저 스쳐지나갔는데...그것이 잊지 못할 아픔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주변 소식...머리는 하얗게 되어버리고 안산에 사는 지인들에게 물어보고 했던 것들이 기억에 남네요.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못난 어른이어서 미안하고 내 일이 아니어서 대수롭지 않게만 생각했던 그 시간의 부끄러움에 대한 용서를 구합니다. 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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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둘째 아이 출산이 얼마 남지않아산후 조리 도우미 서비스를 신청하려고동네 보건소에 버스를 타고 가던 중이었어요.아침에 나오면서 세월호 사고가 났다고 티비에서봤고, 버스 타고 가던 중에는 전원 구조 성공이라고 들어서.. 솔직히 큰 사고는 아닐거라고 생각했죠.그러던중 타고 가던 버스가 다른차와 살짝 부딪히는 사고까지나서 세월호 사고는 생각에서 멀어졌어요.그리고 보건소에서 일을보고 첫째 아이 어린이집에 들을 일이 있어서 가는 중 그때 알았습니다. 전원 구소 성공은 오보였고, 배가 가라앉고 있다구요.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 큰 배가 사람들을, 그 꽃같은 아이들을 품고 망망대해로 가라 앉고 있다는게 정말 믿기지 않았습니다.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게 정말 끔찍했습니다. 사고를 당한게 내 아이도 아닌데 어쩜 그리 슬프던지.. 정말 생각만해도 가슴이 쥐어짜듯 아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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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휴대폰으로 사고 내용을 보고전원 구조 뉴스를 보고별생각없이 점심 일을 끝내고쉬는시간에 뉴스를 보고 경악했습니다.이뿐만 아니라초등학생이었던 삼풍 백화점 붕괴사고때도성수대교 붕괴사고 때도 다 기억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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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해 구해주지 못해 미안합니다...기억하겠습니다!2014년 4월 16일...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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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을 기억한다. 미술 학원에서의 일과를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어 버스를 타고 폰을 만지작 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던 중, 라디오가 들려왔다. 세월호의 침몰 소식이었다. 그때 뉴스를 보는 순간 눈에서 왠지모를 눈물이 흘렀다. 이상했다. 왜이럴까. 그때의 난 이 사태의 결말을 어렴풋이 짐작이라도 한것일까. 이유 모를 눈물을 뒤로 하고 난, 교회로 달렸다. 교회로, 그리고 들어갔다. 4층 예배당에 무릎을 꿇고 내가 믿어온 내가 바라온 신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기도했다. 저들을 구해달라고, 기적을 보여 달라고....당신의 자녀들을 구해달라고....나도 모르게 떨리는 손으로 폰을 집어 뉴스를 확인했을때 눈에 처음 들어온 글자는"전원 구출 "기적이었다. 내가 기도한 신이 마침내 보여 주셨구나.다음 날 아침, 햇살을 맞으며 정류장에서 꺼내 본 뉴스를 확인한 나는 몸에 힘이 풀렸다.기적은 없었다. 그렇게 7시간은 흘러갔다.난 그날을 기억한다, 기적은 없었던 그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