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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당시 전 고3이였어요.사건 발생 후 조마조마한 마음에 계속 뉴스를 확인했는데 생존자의 수는 늘어날 생각을 안하고 사망자만 늘어갔죠.. 다들 제 동생같고 가족 같아서 한명 한명 잃어갈수록 너무 두렵고 가슴이 쓰렸어요. 2017년인 지금 제 나이는 22살이에요. 고등학교때의 모든 기억이 슬슬 어색해질 나이인거같다는 생각이 들때마다 또 다른 곳에서 지내고 있을 아이들이 떠올라요. 여전히 고등학생인 그 아이들이요. 살아있었다면 한창 꽃 피우고 있을 예쁜 아이들인데.. 하지만 전 그 아이들이 영원히 아프지 않을 또 다른 곳에서 예쁘고 풋풋한 모습으로 지내고 있을거라 믿고 있어요. 항상 행복하고 또 행복하길....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더욱 뚜렷해지는 그 날의 기억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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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수업하다 이야기를 듣고 친구들과 선생님과 함께 슬퍼했어요 미안해요 잊지않을게요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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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 끝내고 거실 텔레비젼을 틀었는데, 수행여행가는 학생들을 태운 배가 침몰했는데 전원구조했다고 해서 안심하고 아침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아침식사를 하고 다시 티비를 틀었더니 오보였다며 학생들을 태운 배-세월호가 물속에 잠긴 모습을 보여주더군요. 하루종일 울면서 티비를 보며 살아있다는 학생들도 구해내지 못하는 이유가 뭐냐며 발을 동동 구르던 기억이 납니다.아 어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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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중...다 구조 되었데요~~~서로 확인 ,안심하고. 열공하며 간식 먹고. 농담하고.......그런데....누군가...구조된것이 아니라는 새로운 뉴스에 여기저기서. 핸폰을 열었다.오늘 아침 일처럼. 생생한. 천일 전...잊을 수 없는 그 날이 무려 천일이나 지났네요.역사로 남아. 기억될 그 날이 그들은 기억이 나지 않은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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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회사 연수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었고 아침을 먹고 방으로 돌아오니 세월호 침몰 속보가 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었기에 그저 전원 구조되길 바라며 SNS에 제발 살아돌아와달라고 짧게 글 남겼던 기억이 납니다.... 그날 교육도 집중하지 못할만큼의 초조하고 불안한 감정은 지금까지도 선명합니다.... 티비에서 노란 리본과 희생된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줄 때마다.. 정말... 정말.. 미안하고 괴롲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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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핸드폰안낸 친구가 선생님께 다급하게 "선생님 배가 침몰했데요!!!!" 그때 선생님께서는 " 다 구조했다던데? 그나저나 너 어떻게 알았어 휴대폰 안냈지? 가지고와" 하시며 다들 하하호호 웃으며 넘겼습니다. 그날이 가정의날이라 학교를 일찍마치고 집에 가면서 기사를 보는데 전원구조가 오보였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집에 뛰어가서 이게 어떻게 된건지 엄마께 여쭤보고 또한번 놀랐습니다..그날밤 이모는 지난주에 저의사촌오빠가 세월호로 수학여행을 갔다와서 매우 놀란상태였습니다.. 그날은 공부도 안하고 뉴스만 계속보았습니다. 잊혀지지가 않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집니다 . 제발 세월호의 진실이 낱낱이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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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의 봄날이었습니다.평소처럼 학교에 다녀오니까 테이블을 tv 가까이에 붙이고 걱정스러운 듯 뉴스를 보는 엄마께서 계셨고, 나는 무슨 뉴스를 보냐 물었습니다. 수학여행 다녀온 배가 가라앉고 있다고, 무사히 다들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이야기했고 나는 교복을 갈아입어야지 하는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엄마 옆에 꼭 붙어서 뉴스를 봤습니다. 우리 학교도 수학여행을 앞두고 있었고, 탑승했던 학생분들도 모두 내 또래인데, 다른 분들도 모두 무사하셨으면 좋겠다. 이렇게 그 때는 걱정스러운 마음만 하고 무사히 돌아오겠지 - 하는 그런 생각만 했습니다. 아무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 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 했습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하신 분들도 계십니다. 그리고 1000일이 흘렀습니다. 그 날 학교에 다녀왔던 중학교 3학년 학생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만큼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우리는 아직 아무 것도 알지 못 했습니다. 하지만 그 긴 시간이 지나도록 그 날의 기억은 도무지 잊혀지질 않습니다. 앞으로도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세월호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빕니다.감히 아무 말도 드릴 수 없지만, 부디 그 곳에서는 아무 걱정 없이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계속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우겠습니다. 부디 진실을 밝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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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날. 누군가는 작년이나 재작년 또는 언젠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그 날의 난 호주에 있었다. 10개월만에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비행기를 타기 불과 일주일 전이었다. 그저 휴대전화로 뉴스를 보며, 기사들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 날의 기억. 아직도 또렷한. 천 일 전의 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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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뉴스를 보며 울었습니다. 친구들과 잘 나오지도 않는 티비를 보며 서로 울고있었고, 그날 종례시간에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선생님 교회의 언니오빠들이 안에 있다며 기도해 달라고 우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저희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고 답답한 정부의 대응에 화가났습니다. 대통령님 7시간동안 무얼하셨기에 이것보다 급한 일이 어디있다고 갑자기 보이지 않으셨는지 너무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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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그 날 저는 18살 고등학교 2학년생이었습니다. 쉬는 시간 선생님들이 여객선이 침몰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 친구들이 하늘의 별이 될줄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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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사는 남매 엄마입니다. 그당시 저는 첫아이의 임신을 너무나 기다리고 있을 당시였고 두줄이 안나와서 속끓이던 날의 연속이었고 그날은 임신확정의 테스터기를 들고는 너무 행복해하며 TV를 켰고.. 믿을수 없는 뉴스 속보에 테스터기를 떨어뜨렸습니다. 그리곤 바로 무릎 꿇은채로 엉엉울며 기도했습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생명이 내게 온날 어찌 이런 시련을 주냐며.. 진짜 마음이 아파 하루종일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7개월이 지났고 어쩜 가끔 기억해내며 지났고.. 또 다시 잊음이 얼마나 큰잘못인지 깨달았습니다. 그때 온 아기는 세상에 너무 일찍 나왔고 심폐소생술로 살려냈고 그후로도 계속된 생사고비 그리고 NICU에서 하늘로 소풍을 가버리는 아기들을 보며... 그렇게 겨우 살려낸 우리아이는 7개월이 되어서 집에 오게됐고 26개월이 된 그아기와 얼마전 광화문집회에 다녀왔습니다. 빛이 어둠을..참이 거짓을.. 이김을.. 진실이 절대 침몰하지 않음을.. 보여주기위해.. 아이가 뉴스에 세월호 장면이 나옴.. 배..배.. 이럴때면.. 네가 오던날 수많은 천사들이 하늘에 갔다고.. 그러니 더 귀한 그 생명..좋은일을 하는 사람이 되라고.. 매일 기억하면서 산다는 거짓말은 안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그날을 기억하고.. 잊지는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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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학교 2학년이었고 큰 계단식 강의실에서 교직 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시간이 끝나고 두 번째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교수님께서 세월호에 대해 말을 꺼내셨습니다. 금방 전해진 속보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상황을 잘 모르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걱정하는 우리의 표정을 보며 당연히 구조가 다 될 거라며, 지금이 어떤 시댄데 걱정하냐며 농담 섞인 말을 던지시던 교수님 얼굴도 생각이 납니다. 저 친구들은 오히려 수학여행 때 저렇게 뉴스 나오고 구명조끼 입어본 게 하나의 에피소드처럼 남아서 나중에 자기들끼리 좋은 이야깃거리가 될 거라며. 걱정 하지 말고 수업 계속 하자면서. 그러던 교수님이 그 다음 주 똑같은 수업 시간에 펑펑 우셨습니다. 자기가 태어나서 지금껏 뱉은 말을 이렇게나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자기의 말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한 아이의 엄마로서 얼마나 슬픈지, 어른으로서 말로 다 못 할 미안함, 국민이라서 가지는 분노. 모든 것들이 담긴 눈물을 보며 저희도 함께 울었습니다. 그 뒤로도 꽤 오랫동안 저도, 친구들도, 학교도, 온 나라 전체가 우울했던 기억이 납니다. 4월 16일 당일 뿐만 아니라 그 봄을 지나던 내내 우리가 어땠는지 똑똑히 기억이 납니다. 누구처럼 작년, 재작년 언제쯤이었는지-하고 막연히 떠올릴 만큼 작은 일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절대 잊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잊지 않겠습니다. 하늘로 보낸 학생들, 선생님들, 죄 없는 사람들 말고도 아직 9명의 미수습자가 바닷속에서 천 일을 견뎠습니다. 나쁜 어른들이 더 깊이 묻어버리기 전에 함께 기억하고 행동하겠습니다. 온전한 인양 후에 왜, 어째서 죽어야만 했는지,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는지를 정확하게 낱낱이 밝히고,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엄중한 처벌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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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수요일 이였어요.. 수요일에는 학원이 좀 멀어서 부모님들께서 차례로 데려다 주셔요.그날은 저희 엄마 차례였는데 평소에 뉴스를 많이 보시던 엄마께서는 수학여행에 갔던 아이들의 배가 침몰되었지만, 모두 안전히 구출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학원에서 갔다오니 구출된 사람들하고 실종자수가 바뀌어 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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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 평범한 여중생. 학교, 학원에서 공부를마치고 늦은 저녁, 셔틀을타고 집을가던중 차 라디오방송에서 생존자 수를 흥분된목소리로 외치고있었다. 그렇다, 난 그날 하루종일 그일이 일어난지도 몰랐다. 지금 많은 시간이흘렀지만 기억난다. 난 진짜 몰랐다. 친구가 없어서 그랬던지, 바뻤던지, 하지만 그 작은 라디오방송 하나로 그 사고를 알게되었다. 그때까지만해도 그 사고가 이렇게 큰 사고일지는 상상도 못했다. 버스에서내려 집현관문을 열자, 부모님은 티비앞에서 눈물을흘리고있었다. 나는 이해가 되지않았다. 남의일이라고생각했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실종자 수가 늘어나는걸 볼수록 점점 아,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고 매일밤마다 티비앞에서 자기전까지 귀를 쫑긋 세웠다. 1000일이 된 오늘, 난 아직도 그 라디오방송을 기억한다. 내 부모님의 눈물을 기억한다. 세월호 단원고 학생들의 부모님의 눈물을 기억한다. 대한민국의 눈물을 기억한다. 기억한다. 잊지않는다. 죽는날까지. 이건 잊혀져서는 안된다. 기록이남아야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꼭 알아야한다. 기억해야한다. 잊어버리지말아야만한다.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반복하고 또 반복하더라도 지겹지않다. 기억해야한다. 고인의 명복을빕니다. 추모합니다. 304명의 작은날개. 하늘로 떠올랐지만 그것들이 절대 잊혀지게되서는안된다. 헛된 일이 되어버리면 안된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이건 막아야한다. 다시한번 추모한다. 우리는 기억합니다. 대통령은 모르더라도 우리는 압니다. 따라서 추모할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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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중2인 어느 평범한 학생입니다 저는 아직도 그당시 4월16일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그날 선생님께서 종례시간에 세월호 얘기를 해주셨고 다행히 전원구조가 되었다고 말씀하섰습니다 하지만 그정보는 잘못된 정보였으며 한동안 반톡방에서는 세월호의 얘기밖에 나오지않았습니다 중학생도 그날 뭐했는지 그사고가 3년전에 일어났고 피해학교가 단원고라는것을 알고있는데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그것도 모른다는것에 화가나서 지난 8차,9차때 나간 촛불집회가 끝이였는데 이번11차 집회까지 나가게 만드신 말이였습니다 그날일 못잊죠 벌써 1000일입니다 하지만 나오지 못한9명의 미수습자들이 가족의 품에 돌아갔으면 좋겠고 언제 일어난지 모른다..라는건 유가족분들과 희생되신 선생님 언니오빠들등 그날 세월호에서 돌아가신 모든이들을 두번 죽이는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아니 안잊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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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억못한다. 유가족들의 슬픔을 내가 어찌 가늠할 수 있을까 그저 티비로 바라보며 그들의 비하면 너무도 가벼운 안타까움 그리고 아무것도 해줄수 없고 단지 노란리본만 기억할 수 있는 나라서 차마 유가족들에게 힘내라고도 못하겠다어떻게 힘낼 수 있는가 괜찮다라고도 못하겠다어찌 괜찮을까 그저 우리의 할일은 기억하는 것 노란리본을 그 안타까움과 10대의 아름다움 사람의 이기심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만큼 최대한 같이 슬퍼하는 것 가늠하지 못할 그아픔을 아파할 것 그것 밖에...그리고 바다를 향해 진실을 비추는 등대가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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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3이라는 핑계로 그들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외치기 위해 촛불집회에 참가한 날, 그리고 자원봉사자로 참가한 날, 눈 앞에서 지나가는 고래 한 마리와 그 위에 있던 학생들을 보며 다시금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저와 같은 학년인 그들과 여러 사람이 제주도로 오던 배 안에서 사고가 나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는 기사를 학교에서 보았을 때, 저는 당연히 야자가 끝나면 구조된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이 부둥켜 안는 사진이 담긴 기사를 볼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늑장과 잘못된 대응 그리고 원인불명의 여러 이유가 모여 세월호는 여러 생명을 바다 속에 가둬버린 더러운 정치로 얼룩진 사건이 되었습니다. 때론 부모님과 싸우고, 화해하고, 고마움을 느끼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대학 입시와 수능을 보았을 그들이 왜 정치로 얼룩진 더러운 정부의 대책으로 인해 바다 속에 잠겨져 있어야합니까. 왜 저는 여기 이렇게 앉아 그들을 기억하며 안타까워 해야합니까. 애초에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일 아닙니까. 국민을 지키고, 위하라고 만든 정부 아닙니까. 바다에 가라앉으며 구조를 기다리던 그들은 이제 바다 속에서 가족의 품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슬픔과 이유를 저는 반드시 기억할 것입니다. 이 나라의 참된 주인인 국민마저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것이 2014년인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닭대가리 대통령과 같아져선 안됩니다. 저는, 우리는, 국민은 세월호의 아픔과 슬픔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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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5학번을 꿈꾸며 공부하던 고3이었습니다. 학교애서 세월호의 침몰 사건을 접했고 집에 돌아왔을때 나의 일도 아니고 나의 친분이 있는 사람의 일도 아닌데 우리가족은 모두 울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부모의 품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다음날 학교에 가서도 친구들과 울었습니다. 10월, 대학 면접에서 세월호 관련 질문이 나왔습니다. 또 울었습니다. 저는 세월호 당일과 그 다음날의 일들 무얼했는지 기억합니다. 과학선생님이 우셨고 미술선생님이 화를 내셨고 문학 선생님이 분노하셨고 저희반이 침울했습니다. 저는 교탁 바로 앞자리었고, 제 책상밑 서랍에는 한쪽은 ebs교재와 한쪽에는 핸드폰과 이어폰이 있었습니다. 교무실에는 문학선생님과 영어선생님, 수학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선생님들의 자리도 기억합니다. 그런데 왜 다른 사람들은 꼭 정치하시는 분들은 기억을 못할까요. 청와대에 있으신 분들은 왜 기억이 나지 않을까요. 이건 말도 안됩니다. 진실을 외치고 있습니다. 거짓은 언제까지나 진실을 가릴수 없습니다. 청문회에 거짓말 탐지기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000일이 지나도 10000일이 지나도 잊지않겠습니다. 못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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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 오전9시50분경 부터 뉴스를 보았습니다. 세월호 침몰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이 타고 있었고 점점 더 깊이 침몰해가는 뉴스를 티비를 통해 계속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전원 구조 소식에 아 다행이다 하면서도 계속 뉴스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전원구조가 아니랍니다 . 생각보다 상황이 안좋구나 실시간으로 세월호가 점점 가라 앉는 뉴스를 통해 보면서 안타까움에 침울해하며 뉴스에서 눈을 뗄수가 없었습니다 전원구조가 되길 바라면서요 어떻게 저런일이 있을수 있나 그날에 충격은 아직도 마음이 아립니다 . 오후가 지나도 저녁이 지나도 그리고 몇일을 아이들이 돌아오길 바라며 눈뜨면 뉴스부터 챙겨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뚜렷한 기억이 왜 기억이 안나는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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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저는 학교에 가려고 통학버스를 기다리며 인터넷으로 뉴스 기사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학여행을 가던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국가에서 알아서 잘 구조하겠지라고 생각했고 수업을 들으며 틈틈히 사건 기사를 계속 보았습니다. 전원 구조 됐다는 기사를 봤고 다행이다 생각했는데 오보였고 결국에는 많은 동생들과 일반인 분들이 차디찬 물 속에서 눈을 감으셨습니다... 정신이 멍해졌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차디찬 물 속에서 눈을 감으신 304명의 영혼들을... 그리고 그들을 그분들을 그렇게 만든 악마들을...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