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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저희 첫째 아이가 클때였습니다. 친정아버지께서 집에 방문해주셨고요. 텔레비전을 보고 전원구조란 소식에 안심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구조될 거라 믿었고 해군에 근무하신 아버지와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어민 인터뷰에서 아직 배안에 수백명의 사람이 있다는 증언에 뉴스 앵커도 그리고 저와 아버지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했습니다. 설마 수백명이 저기 갇혀있는데 구하지도 못할만큼 우리나라가 그렇게 미개하진 않으니까요 그 분의 상황파악이 잘못된 줄 알았습니다. 그 시간 온 국민이 그렇게 정부를 믿었습니다. 정부는 무얼 했습니까? 그리고 요즘 국조 청문회에 나와서 그 날이 잘 기억 안난다 하시는 당신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맞습니까? 맞다면 무얼 숨기려고 그 날의 기억을 감추는 겁니까 분통이 터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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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게 미안하고아직도 그 사고의 책임자들이 버젖이 잘 살고 있음에 피를 토할것 같은 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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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를 임신한 초기 ... 갑짝스러운 남편의 목소리 "수학여행가던배가침몰했데!!" "에이~거짓말 ~" 듣자마자 뉴스를 틀었을땐 .... 그리고 착찹한 심정으로 뉴스를 보던 저는 뱃속에 아이에게 미안하지만 엉엉 울었습니다 그 다음날도 그다음날도 .....차마 물밖으로 나오는 아이들을 못볼꺼같아 TV에서 눈을 돌리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그때 생각하면 .... 지금도 ㅠㅠ"잊지않겠습니다""꼭기억하겠습니다""어둠은빛을이길수없다""거짓은참을이길수없다""진실은침몰허지않는다""우리는포기하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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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서 스터디그룹을 하고 있었습니다. 큰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고, 그 안에 승객들이 있고 그 승객들의 대다수가 수학여해을 간 학생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아이들이 정말 무섭겠다라는 생각을 했지만 뉴스에도 나왔으니 당연히 곧 구조되리라 생각했습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차가운 바다에 계속 있으리라고는 정말 생각치 못했습니다. 정말 너무 미안합니다. 미처 꽃 피우지 못하고 져버린 어린 아이들에게, 또 그 이후 관심에서 조금 밖에 있었던 다른 일반인 승객분들께도, 2년이 지난 지금에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지금, 유가족분들께도.. 차마 힘내시라는 말 한 마디 건네는 것조차도 왠지 죄스러운 기분입니다. 우리는 4월 16일 그 날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진실은 밝혀져야만 합니다. 희생자들을 위해서, 유가족분들을 위해서, 또 우리를 위해서. 부디 많은 분들이 아픈 그 날을 결코 잊지 않아주시길, 꼭 그 아팠던 날을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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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밤을 새가며 1명이라도 구출되길 바라면서 한 연3-4일을 세우던게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민간인이 저도 이렇게 그날을 하나하나 기억하는데, 그사람들은 그렇게 하나같이 기억이 아나는지....딴 사소로운 일 한 것들은 잘도 기억하더만요......저같이 그날을 끝까지 기억하는 사람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많습니다. 세월호 가족 친적 친구여러분...............끝까지 싸워요....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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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뉴스로 접했습니다. 일하면서 계속 뉴스를 찾아보고, 구조되는 인원이 있는지를 실시간 뉴스로 볼 수 있는지 찾아봤었습니다. 배가 침몰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도저히 이해할수 없었습니다. 허세가득한 한국 기득권자, 권력자들의 무능함에 울분이 터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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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처음 사고 소식을 접한 것은 막 저녁 식사를 시작하려던 즈음...그리고 잠시 후, 전원 구조라는 오보... 그 뒤를 이은 믿기 힘든 뉴스들... 잠을 설치고 새벽에 일어나 찾아본 뉴스는 절망이었습니다. 심장이 찢어지는 고통이었고, 공포였습니다. 세윌호는 그날 그렇게 우리 모두의 마음 속으로 가라않은 듯합니다. 그래서 그 아픔은 날이 가고 해가 갈 수록 더 선명해지고, 더 아파옵니다. 기억합니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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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설겆이를 하는데 부엌 작은 티브를 켜니 배가 기울어져 있습니다아이들이 타고 있다는 말에 놀라고 배는 점점 더 ㅠ무서워서 더는 티브를 못 보았습니다분노는 하였으나가슴이 저려 광화문을 지나는 길에 있는 세월호 부스를 애써 외면했습니다제가 가진 감정을 추스리기에 너무 큰 일이라이제는 분노만 생각만 하지 않을께요무언가 제역할이 있다면 참여 해볼께요아이들 명복을 빌며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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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직장에서 일하고 있었겠죠... 아마도 라고 쓸만큼 별다른일 없는 평범한 날이었던거 같아요. 제 아이가 선천성 장애가 있어서 정치 사회 경제 등 뉴스를 잘 보지 않았었어요. 그날의 사건에 대해서도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고 또 내 아이만 생각하며 잊고 지냈었네요. 이번 시국에 다시금 떠올리는 그날의 일들을 조금 더 관심 갖고 보다보니 당시 아이들의 그 상황들이 내 머리속에 그려지며... 얼마나 무서웠을까... 생각하니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내 아이였다면 이라고 생각하니 정말로 살수가 없을거 같아요. 진실이 꼭 밝혀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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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지금도 그 날에도 한국에 있지 않았지만 인터넷에서 생중계를 몇 날 며칠동안 지켜보며 제발 한 생명이라도 구해졌으면.. 울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시청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정말 온 국민의 트라우마 적인 사건이 아닌가... 라고 최근까지 생각했었는데 요즘 밝혀지는 진실들과 청문회를 보니 온 국민에게는 아니었나봅니다. 하필이면 그 곳에 계신 높으신 분들께는 아니었나 봅니다.너무 애통합니다.. 공감하지 못하는 저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저도 아이들 생각하면 마음이 이렇게 저린데 부모님들의 마음은 감히 상상조차 못하겠습니다. 부모님들은 날마다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심정으로 사실텐데 그 분들의 아픔을 차마 위로도 못 하겠습니다.기억하겠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것을 누구도 모른다 해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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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다름없던 평범한 날이었지요..TV를 켰더니 엄청난 뉴스가 나오는 겁니다.뭐지? 배사고라니? 그랬는데 "전원구조" 속보가 뜨는 겁니다..다행이구나...싶었고 볼 일을 보기 위해 외출을 했습니다. 그렇게 TV를 끈 순간 그야말로 암흑의 사태가 발생했던 겁니다. 정말이지 상상조차 못했던 결과였던 겁니다. 이후, "그 날"은 평범하지 않는 날로 기억되어 버렸습니다. 피기도 전에 져버린 수많은 꽃들의 비명을, 잊지 않으려 애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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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고 아침에 거실에 티비가 켜져있었습니다. 두가지의 충격적인 뉴스가 있었는데 배로 수학여행을 가던중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십대의 남자가 자신의 어린 아이를 방치하다 시신을 가방에 들고나와 버렸다는.... 그런 끔찍한 뉴스를 접하고 소름과 온몸에 오한을 떨며 두번째 접한 뉴스를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었습니다. 그런데 그당시 사람들의 반응이 하도 끔찍한 일이 많고 세상이 흉흉해 그런일에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는다라는 반응에 반감이 일어났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리고 티비를 뉴스 채널을 계속 켜두었는데 큰 배가 뒤집힌듯 옆으로 떠 있는 영상이 나왔고 구조를 하는듯한(?) 모습이 보이는가 싶더니 전원구조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왔던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 큰 배가 그 많은 사람이 어찌되고 있나 걱정에 확인하고 싶어서 그날 종일 티비를 켜두고 있었습니다. 똑똑히 기억나는건 오후가 되어도 계속 그 상태로 있던 배의 모습입니다..... 후에 그 장면때문에 이렇게 괴로워질지는 몰랐었습니다... 알고보니 구조는 커녕 그 배 안에 그 많은 사람들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이 스스로 납득이 안 가고 기가막혀 몇 주 뒤에 예정 되어 있던 바베큐파티 공연에서 공연 내용을 바꾸어 세월호 추모공연을 하게되었던 2014년의 4월이었습니다.....하지만 추모공연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는것을 차차 알게되었고 팽목항도 찾아가고 금식기도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계속 세월호 인양에 대한 공연을 하는 것으로 그날 그렇게 가라앉던 배를 가만히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던 슬픔, 감히 위로, 죄책감(?), 자괴감(?)....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감정들로 쏟아져 나오는 왜 왜 왜 라는 의문들로 어찌할바를 모르겠었습니다... 그러다 몸이 여기저기 계속 아파졌고 계속 술을 마시게 되었고 너무 힘들어 세월호에 두 눈을 감고 두 귀를 잠시 막았었습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유가족분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광화문을 갈때에도 노랑색만 보아도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납니다..... 지난해 가을즈음부터 진상규명과 세월호 인양을 위한 뜻으로 공연을 준비하고 올해 작은 공연을 올렸습니다.... 어제 청문회를 보고 답답하고 속상하고 7시간 진상규명을 하는 것에 오르내리던 그 천박한 말들과 역겨운 증인들을 보면서 또 화가 나고 병이 납니다..... 제발 진실이 밝혀지길 하루 속히 인양되어 아직 못 돌아오신 분들 꼭 돌아오시길... 그들이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인지 뼛속 깊이 잠 자는 것이 두렵도록 깨닫게되기를.................... ............ h.LilyLos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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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때 식당 TV를 통해 사고 뉴스를 보았다함께한 이들이 전원 구조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며걱정말라며 대수럽지 않게 지나갔었다사무실로 돌아온후 간간히 찾아본 기사엔아직 탈출하지 못한 수백명의 승객들과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해경들최선을 다해 구조하라는 말뿐인 지시들뿐이였다퇴근 후 뉴스를 통해 본 그날은비통함과 분노뿐이였다다만 아직 생존자들이 있고신이 있다면 반드시 그들을 구출하고기적이 필요하다면 내 모든 운들을 가져가더라고살랴주길 바랬다..그러나 기적은 없었고 신도 없었고콘트롤타워도 정부도 해군도 태통령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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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간호사인 제가 아침근무 8시 주사처치를 나가서 병실마다 틀어져있는 뉴스속보를 환자들과 함께 보고 있었습니다. 기울어져있는 세월호를 보며 학생 모두 구조했다는 소식에 환자들과 함께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 내렸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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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글 쓰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 당시에도 마감에 쫓기고 있었습니다. 함께 일하는 출판사에 벌써 몇 년째 소설 원고를 드리지 못했는데 드디어 완성할 수 있을까 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아침에 아내로부터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가려고 타고 가던 배가 침몰했다는 얘기를 듣고 매우 놀랐습니다. 다행히 전원 구조됐다믄 얘기를 들었으나 생중계 방송 화면 앞에서 떠날 수 없었으며 실제로는 모두가 구조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고 가라앉는 배 안에 사람들이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눈앞에서 수백명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Sns와 tv로 계속해서 상황을 주시하며 기도했습니다. 밤에도 잠을 자지 못하고 계속해서 아내와 세월호만 지켜봤습니다. 이후 거의 한달 간이나 그 여파가 지속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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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푼이라서...7시간을 멈췄나...7칠한 여인아.7백년을 씹어먹어도 시원치않을7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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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엔 별 일 아닌 줄 알았습니다. 대학원에 다니던 저는 그날도 적성과 맞지 않는 공부 때문에 고뇌하고 있었습니다. 머리를 식히려고 친구 몇 명과 산책을 나와서 학교 연못 앞 벤치에 누워 하늘을 보았습니다. 옆에서 친구가 세월호에 탄 사람들의 구조가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을 했고, "상황이 심각한가보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후 상황은 더 심각해졌습니다. 지금도 그 날 그 시간동안 내 고민만 했던게 죄송스럽습니다. 팔자 좋게 벤치에 누워 하늘이나 보던 제가 부끄럽습니다. 박근혜와 그 부역자들은 세월호 7시간을 직접 밝혀야 합니다. 더이상 스무고개는 하지 마십시오. 세월호 뿐 아니라,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나라를 만들었는지, 자살율과 산업재해사망율 전세계 1위인 나라를 만든 그 수많은 시간들에 대해 해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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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그 해에 저는 휴직 중이였고, 그 주에는 월요일부터 허벅지 근육에 문제가 생겨 정형외과에 물리치료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집에 TV가 없던 저는 오전 내 무슨일이 일어난지 모르고 있었고, 점심시간이 지나 병원에 가서야 대기실에 대형벽걸이 TV를 통해 세월호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퀴벌레가 툭툭 튀어오르는 끔찍한 느낌 속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이패드로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계속 보며 다른일을 못하며 그날을 보냈습니다. 평소 거의 본 적이 없었는데, 연일 계속되는 뉴스를 몇일동안 보고 또 보고, 울고 또 울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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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화창한 4월 수요일, 외근 나갔다가 회사로 돌아가던 오전 10시에 처음 뉴스를 보았습니다. 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이 많이 타고 있는 여객선이 가라앉았고, 전원 구조 예정이라는 뉴스를 보고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회사로 가는 발을 재촉했습니다. 애들이 많이 놀랐겠네. 일반 승객들도 있을텐데 배가 참 크네? 이런 생각을 하며 회사로 돌아와서 점심을 먹고 내가 본 전원구조가 오보라는 걸 알았습니다. 설마 배에 남아있진 않겠지, 아직 집계되지 않은 애들이 있겠지, 저 많은 사람들이 아직 배에 있진 않을거야..... 하는 생각은 점점 멀어져갔습니다. 아직도 기억합니다. 4월 16일 수요일 10시, 처음 세월호 사고 소식을 보았던 그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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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저는 예정되어 있었던 수학여행 생각에 들떴었습니다. 제주도에 가면 무엇을 할지 행복한 상상에 빠져 있던 저를 건져낸 것은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생 언니 오빠들이 탄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전원 구조되었다는 것이 오보라는 것이 오보이기를 믿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는 TV에서 세월호가 가라앉는 모습을 보며 침통해하고 계셨고 저는 충격에 한동안 멍하게 서 있었습니다.수학여행이 취소되었다는 것보다 언니 오빠들 대다수가 죽었다는 것이 더 쓰라렸습니다. 기부금을 내기도 했고 노란 리본을 가방에 달기도 했지만 2년이 지난 지금도 그 쓰라림을 잊은 적은 없습니다.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