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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고3때인데 핸드폰도 없고 컴퓨터도 사용할수 있지않는 수업시간이라 전혀 모르고 있다가 점심먹고5교시 사회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어요 전원구조됫다고 하던데 그게 오보라면서 사고난 기사와 사진들을 수업시간에 같이보고 우리반 학생 모두 안타까워하고 슬퍼했어요.. 그러고 집와서 네이버 메인화면이나 다음날 아침뉴스 모서리에 구조자수 실종자수를 보고 사망자수가 늘어나는것에대해 많이 안타까워했고 2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이 찢어집니다.. 아직 잘 모르는 어른분들께선 세월호를 왜 국가가 죽이냐 뭔 정치에 개입하냐 이제 그만좀해라 지겹다해도 저는 절대 잊을수가 없어요 올해 4월 그것이 알고싶다를 보고 더 관심이 갔고 이번 7시간의비밀도 꼭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주에 하는 그것이알고싶다 세월호편도 꼭 시청하고 시청률에 보탬이 되어 진실 규명을 위해 힘써주는 그것이알고싶다팀에 도움이 되고싶습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밝혀질것입니다.. 절대 잊지않고 기억합니다....... 세월호 유가족분들 힘내세요 정말 ... 무슨말로도 위로가 안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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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중2. 학교를 다녀와서 뉴스를 보고 "슬프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당시엔 그저 사고로인해 제 또래아이가 죽어간다는게 슬펐습니다. 그당시에 정부는 왜 구조를 하지않는가? 자진해서 구조하겠다는 봉사자들을 왜 막는가? 하며 의문이 있었지만 더 궁금하지않았습니다. 그저 사고라고 생각하며 슬픔으로 세월호 사건을 기억했습니다.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단순한 "사고"가 아닌 대통령이 저지른 "살인" 이라고 생각됩니다. 생사의 갈림길이 달린 , 1분1초가 시급한 상황에서 대통령은 세월호가 가라앉은 후 7시간동안 보이지 않았습니다 . 그 후 사태 파악도 안되는 상황에서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말한게 대통령이 구조를 위해 노력한 전부입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이것은 대통령의 무능함과 무책임함이 만든 세월호 "살인"사건 이라고 생각합니다. 뻔뻔하게 아직까지 대통령직에 있으면서 세월호 7시간에 대해서는 끝까지 함구하고있습니다. 당신이 7시간중 머리손질에 1시간을 낭비했을때 세월호에 타고있던 학생들, 선생님들 , 승무원들은 살기위해 노력하고 발버둥치고있었습니다.당신이 1시간이라도 일찍 지시를 했다면 그렇게 많은 생명들이 물속에잠기지 않았을겁니다.세월호 유가족분들을 위해서라도 , 국민을 위해서라도 세월호7시간에 대해 제대로 밝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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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수가 있나요. 기억못할수가 있나요.여느때처럼 반복되는 일상이었지만그날은 잊을수가 없죠.국민모두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그날을기억못하는 국민의 머슴들.기억하게 만듭시다.꼭 기억하고 이실직고하게하고엄중한 책임을묻고국민을 속이고 국민을 아프게하면어떤일이 벌어질지 알려주고 새겨다시는 이런일이 생기지않도록 해야합니다.남일 아닙니다.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생길수있고다음은 나일지도 모르고 당신일지 아무도 모릅니다. 촛불이 횃불로 커졌습니다.100만이 300만이 되었어요.이 아픔의 원흉들을 내리고벌주고. 똑바로 오래오래 제대로벌받는지 10년 20년 30년확인하고 다시 기펴고 힘을써가며나쁜일 못하도록 끝까지힘을모아요.그래야 그리고 난 뒤에야 아이들앞에서조금은 고개를 들수있지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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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출근하고 확인하는 기사들.속보로 한 배가 침몰했다는 것을 확인하여 동료들과 함께 안타까워 했습니다.이내 전원 구조라는 후속 기사를 보고"괜찮다"는 소식을 동료들에게 전하며 보통 날들과 마찬가지로 점심을 먹었습니다.하지만 그 7시간이 지나서야 사실상 우리도 함께 침몰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가벼웠던 안타까움..안일했던 그 후로..여전히 적당한 막막함을 가지고 오늘을 삽니다.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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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직장에서의 두번째 달..출근하여 여느때 처럼 인터넷 뉴스를 보고 있었고 사고 소식과 모두 구조되었다는 오보를 보았습니다.큰일날 뻔 했네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입사 동기들과의 단톡방에서 오보였다는 소식을 들었어요.퇴근시간까지 계속 뉴스를 주시하며 동기들과 전전긍긍 사태를 지켜보았지요.그렇게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 다음주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해 미안합니다.그리고 결코 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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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수업중 몰래 책상밑으로 폰을 꺼내서 인터넷을 켰던 배가 가라앉았고 전원 구출했다고 난리여서 뭔일이래..그래도 다 구조했으니까 다행이다 하고 점심시간에 폰을 확인하니까 오보였다고 했다. 내 눈으로 읽고있지만 이게 사실인가 순간 다시 의아해하며 다시 기사를읽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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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구조라는 최악의 오보그 후로는 내가 할 수 있는게 기도와 지켜보는 것 밖에 없다는것에 너무 막막하고 화가 났었습니다애초에 없었어야 될 사고에 수많은 꽃들이 지고 그와 동시에 이 나라의 희망도 사라지는 걸 느꼈습니다 절대 잊어서도 잊을 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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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 마지막날이어서 중간고사 보러가기전에 아침에 뉴스에 진도앞바다에 배가 침몰하고있다는 뉴스를 보고 아 또 기름유출되겠구나, 단지 이정도로만생각하고 시험치고서 친구들이랑 기분전환하자고 미용실가서 파마하려는데 폰보니까 배가침몰하고있다, 근데 거기 사람이 갇혀있다... 그리고선 중화제 뿌릴 때 전부다 구조했다네, 그래서 디자이너랑 친구들이랑 아 정말 다행이네요 하면서 기뻐서 울컥해있었는데 머리를 마치고 보니까 오보.. 갇힌애들이 300여명.... 얼마나 어이없고 소름이돋던지 그날부터 2박 3일을 아프리카티비로 뉴스로 계속 함께하면서 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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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은 그 전일과 같은 하루였지요. 똑같이 일어나서 출근 준비하고 출근해서 일하고. 근데 인터넷에 기사가 뜨더라구요.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 그리고 전원 구조했다고. 그래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더 힘들고 다 구했다니 괜찮겠지 하고 밥을 먹으러 갔어요. 그리고 나라는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고 아무 일도 하지 못했어요. 나라가 우리에게 거짓말을 해서? 내가 너무 무감각 해서? 아니요. 나라를 믿고 그냥 넘겨버렸던 제 자신이 너무 밉더라구요. 20140416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죽을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기억하겠습니다. 사망하신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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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였다. 배 사고가 났다고했다. 전원구조가 됐다고 했다. 오보라고 했다.나는 그래도 잘 구조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걱정하지 않았다. 정부가 대처를 잘 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배가 기울어져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부의 대처는 갈수록 나를 화나게했고 우울감에 빠지게 만들었고 이민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아직도 온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있다. 진실이 밝혀져야 국민의 마음에서 아이들을 보내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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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6개월 배는 불러오고 매일매일 소화불량으로 새벽늦게 잠들고 늦잠자고 그랬던 시간들 내 인생에서 가장 평화로웠던 시간들이었는데 그때가 그 날도 여느때와 다름없이 새벽늦게 잠이 들어 늘어지게 늦잠자고 일어나서 밍기적밍기적 거실로 나와 텔레비전을 틀었다 배가 침몰했단다 엄마한테 전화 했더니 "엄마 사무실인데 출근하기 전에 봤는데 다 구조했데~" 다행이네 하고 전화를 마쳤다 그게 아니었어 속보라며 뉴스는 계속 나오고 내가 다 불안하고 무서운거야 그리고 결국 분노했지 내가 인터넷으로 보는 그 곳과 언론에 나오는 소위 공중파라고 불리우는 그 방송사 뉴스에 나오는 모습이 너무 달랐으니까 화나고 슬펐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돌아 올거는믄 희망이 있었고 분노해야만 했고 잊어서는 안됐다 뱃속에 내 아이가 있었고 그 아이가 살아갈 나라였기 때문에 아직도 기억하고 아직도 분노하고 아직도 가슴이 미어진다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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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차였고 이제 막 일에 적응하는 시기였다. 한참 일 하다가 휴대폰으로 기사를 봤는데 세월호라는 배가 사고가 났는데 전원 구조되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아 그렇구나... 하고 다시 일에 몰두하다가 다시 쉬는 시간이 되어 뉴스를 봤는데 전원 구조는 오보였다. 수 많은 생명이 바다에 수장되어야 했던 그 사건을 나는 오보로 인해 작은 헤프닝으로 여겼었다는 것이 지금도 미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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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선명하다.재수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던 그 날, 여타없이 나는 수업을 들었고 몰래 꺼내본 핸드폰에서 세월호 대참사를 목격했다. 그러나 당연히, 정말 당연히 무사히 전원이 빠져나올 것이라고 생각했고 심각하게 여기지도 않았다.그런데 그 아이들과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은 그 날 밤에 집에 돌아가서도, 다음날 나는 학원에서 끝나 집에 가서도 그 아이들과 그 사람들만큼은 돌아가지못했다.아직도 선명하다.핸드폰을 부여잡고 새벽에 마음졸이며, 생방송이라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아이들이 혹여라도 구출되었는지, 한 명이라도 구조되었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한 그 날이.아직도 가슴저리게 남아있는 그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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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따라 내 방을 두고 엄마 아빠 사이에서 잠들었었는데, 또 느즈막히 일어났을 때는 머리맡 옆에서 엄마가 울고 있었어요.잠결에 엄마가 우는지도 모르고 뭐 해, 했는데 티브이에 덩그라니 방송되고 있는 가라앉는 배 속에 사람이 있다고.엄마 처음 일어났을 때는 모두 구조했다고 하길래 밥이나 먹어야지, 그러고 있었는데.자식 있는 부모라면, 내 새끼가 저기에 있다면, 하면서 막 울고 있으신 거예요.그리고 몇 시간을 계속 채널 한번 못 돌리고 같이 앉아 있던 기억이 나요. 나는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엄마, 이렇게 됐대, 저렇게 됐대. 그러면 엄마는 한숨 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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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저는 25살, 취준생의 신분이였고, 카페 저녁마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녁 마감 아르바이트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아침 늦게 눈을 떴고, 어머니의 재촉에 거실 탁상에 앉아 식사를 마칠 무렵이였습니다.어머니가 보시던 아침 프로그램이 속보로 바뀌고, 세월호의 보도 내용이 나왔습니다. 배는 이미 반 이상 기울어 있는 모습에 놀라움과 걱정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던 길이라는 내용에, 열일곱살 고등학생 동생을 둔 사람으로 더 걱정스러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디 배 안에 갇힌 사람들이 얼른 구조되어 나오기만을 바랬습니다. 불안한 시간이 흐른 후, 전원 구조기사를 접하고 마음을 놓은것도 잠시전원구조 기사가 오보임을 깨닫고 얼마나 허망하고 화가 났는지 모릅니다. 어린 학생들이 죽어가는데,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가기 전까지 뉴스를 봤습니다. 뉴스에서는 선체가 뒤집혀서 가라앉는 모습이 속속 나왔지만, 구조는 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러갔을 때, 마주친 동갑내기 아르바이트생과 함께 마음이 무거웠던것도, 손님과 이야기 하다가 가벼운 농담을 건네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잠시 이어지다가, 둘 다 죄책감을 느끼고 숙연해 졌던것도 모두 기억납니다. 일상을 누리고 살아가던 순간순간이 그날은 모두 죄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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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그날 컬투쇼 공개 라디오를 들으러 갔었어요. 신났습니다. 연예인을 그렇게 가까이 보는 건 처음이었거든요. 신나게 떠들고 정답도 맞추고 하고 있는데 컬투분들이 안내를 해주셨어요. 침몰한 배에 탑승했던 전원 구출이라고요. 안심이 되고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속보는 거짓이었어요. 점점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자 라디오 분위기는 점점 가라 앉았고 결국 그날 녹음은 전파를 타지 않았습니다. 나라에 큰 일이 생겼는데 즐거워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도 금방 구출될 줄 알았는데....내 나라가 이렇게 무능한지 몰랐습니다 개탄스러웠습니다.. 추운 봄바다 ...나는 따뜻한 방송국에서 웃고 떠들었던 그 시간....미안하고 죄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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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나는 하루하루가 바쁜 고3이였다. 회장이었던 나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교실과 교무실을 오가며 심부름을 하고있었다. 교무실엔 커다란 TV 2대가 있었고 그 TV에선 학생 전원구조라는 헤드라인이 걸린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보자마자 "헐- 다행이다 진짜... 큰일날뻔했어..". 그리고 반에 올라가서 친구들에게 이런일이있었는데 모두 구조됬데. 다행이지않아? 큰소리로 얘기해주었다. 하지만 전원구조는 오보였고 친구들은 차가운 바다에 잠겼다. 하루종일 아니 일주일 아니 그보다 더 많은 날을 핸드폰으로 뉴스를 검색하고 세월호관련 글들을 보았다. 하루하루가 정말 슬펐다. 학교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자고 하는데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그때의 나는 거의 일주일을 울며보냈던 것같다. 난 그 친구들을 잊지않았고 앞으로도 잊지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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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합니다. 에이. 설마 라고 하며 뉴스를 보던 기억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리고 절대 잊지않겠습니다. 아직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고 그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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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들은 심해속으로 묻으려했다.아이들의 미래를 묻었다.알량한 목소리로 진실을 숨겼다.우리는 기억하고 있는데, 그 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 들이 쉽게 멎게한 숨결을 우리는 기억한다.잊지 않는다, 잊지 못한다.그 차가운 바다 속에서 우는 아이들에게제발 더 이상의 고통이 없기를 빈다.안식을 ...평온을. ..살아남은 자와 그 들에게 죽임당한 자들 모두에게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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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3 아무도 알아주지않아 슬펐던 제 생일, 세월호의 침몰을 접했습니다. 그 회색 날의 마지막 하루를 마치는 제 침대에서 기숙사 룸메이트들 모르게 눈물이 나왔습니다. 사실 개인적인 투정과 섭섭함이었고, 300이라는 수의 답답함이었어요. 일년마다 돌아오는 생일마다 이제 곳곳에 노란 리본이 걸립니다. 우울했어요 생일마다. 그냥 그게 전부였어요. 어쩌면 정말 개돼지일지도 모르는 저는 정치에 무관심했고 세월호도 외면해왔습니다. 하지만 진실이 밝혀진 지금 세월호 학생들과 유가족분들. 진심을 다해주신 몇몇 국회의원 분들에 비해 저는 얼마나 초라한지요. 이제 저는 그 때의 고 3이 아니라 정치적 의견을 가질 수 있는 참정권을 지니며 스스로 생각할 지식과 의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끝날 때까지 함께하겠습니다. 그들이 떠난 날을 잊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세상을 배우고 약자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하늘에서 평안하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