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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수업 듣고 있었어요 어른들도 친구들도 그 누구도, 아무도 이야기 해 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별 일 없는 줄 알고 그 날 밤에 치킨을 먹으면서 티비를 켰는데 방송사 뉴스마다 다 뒤집어져서 세월호 보도를 하고 있는 거예요 생존자 서너 명 밖에 안 뜬 거 보고 충격이 너무 커서 그대로 화장살 가서 토하면서 속 다 게우고 울면서 뉴스 봤어요 그리고 그 날 꿈에서 물에 퉁퉁 분 시체들이 제 발목을 잡고 살려달라 했었어요 진짜 세월호 일어 나고 전후로 이틀 정도는 먹는 것마다 다 토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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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직장에 갓 입사해 연수로 정신없던 4월, 출근 전 기숙사 식당에서 아침을 먹다 뉴스를 보고 멍해졌던 그날.. 이제 한국에서 함께 촛불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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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교시 진로 시간이였습니다. 휴대폰은 조회시간에 제출했기 때문에 "세월호라고 수학여행을 가던 배가 뒤집혔지만, 모두 안전하다" 이 말을 1시쯤 진로 선생님의 말씀으로 처음 접했던걸로 기억합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니 엄마가 뉴스를 보고계셨습니다. 그때도 어김없이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모두 구출됐다는 말, 그 시간동안 두려움에 있었을 언니, 오빠들과 여전히 이어지는 괴로움을 저는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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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밤샘근무를 했던날이에요. 아침 퇴근길에 뉴스를 보며 제동생과 같은 나이인 동생들 걱정에 노심초사 하다가 전원구조라는 소식을 들은 뒤 마음놓고 수면을 취했죠.그리고 저녁 5~6시경즈음 일어나보니, 세상이 180도 달라져있었습니다.그때의 충격은 지금도 잊지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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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대학교 4학년에 재학중이었고 집 근처에 있는 커피전문점에서 졸업을 위한 토익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노트북을 켜서 인터넷을 확인하는 순간, 너무나 충격적인 사고(사건이죠..)에 공부하려던 책의 내용이 눈에 제대로 들어오기까지는 며칠이나 더 걸려야했습니다.그 때 그 날을 기억하지 못할 국민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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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억합니다. 국민의 안위가 철저히 짖밟힌 진도 앞바다의 어느 이른 봄날을...우리는 기억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비명과 함께 사라진 7시간의 진실을...그래서 우리는 명합니다... 이제 그만 퇴진하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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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만 있을까뭔 방법이 있겠지그리고 가라앉았다내 가족에게 아무것도해줄수 없다는 것이 가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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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평일이여서 별 다른 특별함없이 아침점호를 끝내고 일과를 하고 있었습니다.그렇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경과하고 부대의 간부들이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안산에 학교 다니는 가족이 있냐, 그리고 시간이 다시 지나고는 안산 단원고에 가족이 있냐로, 처음에 는 영문도 모르다가 모든 일과 끝나고 티비를 전부 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세월호가 침몰되었다는 것에 부대원들은 잠시동안 전부 말은 쉽게 못하고 영혼이 나간듯이 멍하니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가며 슬픈 소식들이 전해지며 마음 한켠에 괴롭다고 느꼈던 4월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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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조끼끈으로 서로를 묶은채로 죽은 아이들의 기사를 보고 퇴근길. 길옆에 차를 세운채 엉엉 소리내어 울었던 기억이 떠올라 이 글쓰며 다시 눈물이 나네요. 그 순간 아이들의 심정이 그 한맺힘이 너무 사무쳐.... 죽어가기까지 그 몸과 맘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절대로 잊을수도 없고 반드시 세월호도 진실도 인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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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전에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차안에서 라디오로 처음 뉴스를 들었습니다. 낮12시가 넘은시간 집에오자마자 뉴스를 틀어놓고 보니, 가라앉는 배안에 아이들이 있다고 합니다. 숨이 막혀오고 기가막혀 아무것도 할수없고 눈물만흘리고 있었습니다.아무것도 하지않고 지켜보고있는 상황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어느순간 화면에 사망자이름이 대문짝만하게 나오고 어렵게탈출하여 멍하니 젖은몸으로 앉아있는 학생에게 사망한 친구의 이름을 물으며 어떤친구였느냐 묻는 기자의 모습에 기가막혀 채널을 돌렸습니다.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모습은 너무나 무능하고 잔인했던 기억을 잊을수 없습니다.우리아이는 단원고 아이들과 같은나이로 삼일뒤 같은장소인 제주도로 수학여행이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현관에서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내아들은 괜찮다고 나는 아니라고 안심할수없는 관계없는 일이 아니었습니다.내아이를 안고있는 제가 너무 죄송한마음이었습니다. 아무일없이 부모의품에 안겨주길 단원고 아이들의 부모들은 얼마나얼마나 간절히 바랬겠습니까그 간절함을 조금이나마 안다면 진실을 밝히는데 소홀할 수 없습니다. 정부와 대통령은 진실을숨긴 세월호공범입니다. 끝까지 밝혀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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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에 이런 아픔은 다시는 있지 않기를 간절히 간절히 되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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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 저는 GOP 경계작전 수행 후 소초로 돌아와 곤히 잠들어 있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어 깨어나보니 비보가 와 있었습니다. 군에서도 단순한 여객선 침몰사고가 아닌 것을 깨닫고 진도 여객선 침몰사고가 아니라 세월호 침몰사고 라고 하라는 지시가 상부에서 하달되었습니다. 나는 이 사건을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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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태어난지 한달도 안된둘째를 안고 밤새 모유수유에 늦은아침으로 칭정엄마가 차려준 밥상을 받고 미역국에 밥를말며 뉴스를봤습니다. 전원구조. 됐다는소식에 아~다행이다. 하며 또 칭얼거리는 둘째 젖을물려 한숨자고 일어나니 친덩엄마의 빨간눈과 뉴스~세월호 뉴스가슴이 미어졌습니다. 그와중에 젖달라고 보채는 둘째젖을물리고 계속 눈물만 눈물만~~그날이 어찌 기억안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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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직장에서 인터넷으로 기사를 접한 뒤 텔레비젼을 켜서 실시간으로 방송을 지켜보며 마음 쫄였던 그 시간을 기억합니다.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계속 해서 신경을 쓰며 어떻게 되었나? 아이들이 모두 구조가 되었나? 진심 두려움과 걱정으로 그 시간을 보낸것을 기억합니다. 잊으려해도 잊을 수 없는 시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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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는 아버님 고향이라 물에 빠진 사람이라도 구하겠다고 모두 출동해나갔는데 퇴선방송이 없어 나오질 않아 구하지도 못했다고 한탄하시는 말씀을 나중에 전해듣고 화가 났었죠 도망가는 선원들을 보고 얼어 붙은듯 앞이 아득했던 기억 반드시 진실을 밝혀서 왜 구조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는지 밝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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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잊을수 있을까요.....그날도 저에게 다른날과같이 아이를챙겨 등교시키고 뉴스를 틀어두고 집안일을하고 있었습니다.사고소식.....,전원구조.......다시 하교한아이와 숙제하다 구조소식이 오보라는걸 접하고는.....,그때부터 였던거같습니다..가슴에 큰바위가 얹어진듯 뭘해도 가슴이 막힌듯한기분.......무서워 티비를켜지도 핸드폰도 못켜다 접한 가슴무너지는 소식들......아이들아 미안해.....이나라의 어른이란것만으로도 너희에게 한없이 미안하고미안하다......잊지않을께 늘 가슴에담에 기억할께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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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침대에서 뉴스를 보다가 놀라 친구들에게 카톡했어요 그러나 금방 전원 구출이라는 오보를 보고서 다른 채널을 보았죠 그뒤에 세월호 침몰이라는말에 어찌나 허망하던지요 기억합니다 잊지 않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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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TV를 보다 정말 놀랐습니다.허망하게 침몰해버린 세월호....지금도 가슴아프고 눈물이 납니다.잊지 않을게요 기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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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처럼 예쁘고 착한 아이들이 차디찬 바닷물에 허무하게 가라앉은걸요..아이를 키우는 부모입장에서 얼마나 비통하고 가슴아팠는지 모릅니다..적어도 인간이라면 이정도는 다 느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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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뉴스롤 보면서 엄청울었습니다. 그날을 어찌 잊을수가 있을까요? 죽음의 문턱에서 가족에게 전화하고 문자하고. .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4월 16일 그날을 기억합니다. .세월호 유가족 여러분들 힘들 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