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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 전원구출 이라는 문구를 보고 아.. 하고 안심을 했습니다. 다행이구나. 다행이다. 오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배에 갇힌 사람들을 전원 구조할거라는 믿음에 계속 뉴스를 지켜봤습니다. 배가 완전히 가라앉았음을 보고도, 그래도 구조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계속 기다렸습니다. 헛된 희망임을 알았을 때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났습니다.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구할 수 있었던 생명들을 구하지 못한 나라를 원망했습니다. 아직도 세월호 관련 사진과 글들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하지만 아프더라도 가슴 속 깊이 그날을 기억하겠습니다.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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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기억합니다. 2년 전에, 전 그 친구들과 같은 고등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그 날 매점 텔레비전에서 세월호 침몰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었어요. 시험기간이라, 공부에 집중해야 해서, 티비도 멀리하던 때였지만 그 뉴스만큼은 안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오보에 기뻐하고, 카풀에서 들은 소식에 절망하던 7시간. 어떻게 그 시간을 잊었다 말할 수 있습니까? 친구들과 우리 국민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까? 당신은 없다 말하는 7시간. 우리 모두는 기억하고 있습니다.대답하십시오. 그 날 당신은 무엇을 했습니까. 밝히십시오. 그리고 용서를 구하십시오. 잘못을 고하지 않은 당신은 언제까지나 무책임한 방관자에 불과할 것입니다. 어제 촛불집회를 다녀왔습니다. 단원고 친구의 아버님이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잊지 말아달라구요. 여러분, 유가족분들이 운영하는 416tv 가 있다고 합니다. 세월호 당시의 소식을 유가족분들이 직접 전합니다. 우리 모두의 관심과 기억이 필요합니다. 함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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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교육이 있어서 직장동료들과 갔습니다. 점심을 먹고 커피솝에서 뉴스를 접하고눈물을 보였던 정면에 앉아있던 직원이무슨 옷을 입었었는지 까지 기억이 생생해요어떻게 그날이 기억나지 않을까요??거짓말이거나 아니면 감정도 없는또는 민중들을 개돼지로 생각하는..인간이 아닌겁니다.차라리 거짓말인 것이 나을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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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동네 작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어요 모두 구조되었다고. 안심했죠.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저 멀리 태평양도 아니고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하는 배에서 아이들을 못 구하나. 그게 오후 3시쯤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저녁에... 아이들을 못구했다는 거예요그러면서 배가 그냥 가라앉는거예요저게 뭔가 했죠. 지금 내가 보고있는게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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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은 하지않지만 피겨스케이트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스캐니트 급수를 따기 위해 떨리는마음으로 시험장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대기실 tv로 세월호 사건을 알게되고 너무 충격적이었고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죄없는 언니오빠들과 그외의 많은 분들이 타고 있는배가 가라앉는걸 생각하면 아직도 끔찍합니다.이듬해 저는 세월호 참사 1주기 집회에가서 절대로 잊지않겠노라 다짐한게 지금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앞으로 세월호가 잊힐까 두렵습니다. 우리모두가 힘을 모아 생각하고 행동하고 박근혜를 몰아내고 안전한 한국사회를 만듭시다. 잊지않겠습니다.remember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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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사고가 있었는데 모두 구조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안심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세월호에서 떠나신 많은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제가 그곳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저도 그렇게 할수밖에 없었겠지요.... 지금도 그 날만 생각하면 마치 내가 그 곳에 있었는 것처럼 답답해지고 눈물이 납니다.그 날 이후 파란 하늘을 봐도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흐르고 꽃을 봐도 미안하고.... 그 날을 생각하고 이야기 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흐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합니다. 꼭......... 세월호 아이들의 부모님과 우리 모든 국민들의 가슴에 한을 심어준 그들에게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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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를 8시45분 등원차에 보내고 동내 엄마들의 이야기에 집에와서 YTN뉴스를 틀어봤던 기억이 정확히 납니다. 아이를 등원차에 태우던 수 많은 날중 그날이 기억이 나는건 배가 가라앉는 모습이 생중계 되다시피했던 그 광경를 보고 있다는 충격에 충격이ㅠㅠ 그날의 기억을 잡아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대들은 어찌 기억이 안난다 하십니가?혹 당신들께는 많은 날중 하루라서 그런가요?하늘이 알고 계십니다.하늘이 무섭지 않으십니까???꼭 부디 기억 찾으실때까지 오래오래 천벌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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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저녁 7시경 김포에서 제주로 비행기를 타고 가야하는 일정이 잡혀있었습니다. 회사에서 오전내내 인터넷뉴스기사를 지켜보며 제발 무사히 구조됐다는기사가 나오길 바라고 또 바랬습니다.점심시간에 회사동료들과 도시락을 먹으면서 세월호안에 있을 사람들을 걱정하고 또 걱정했습니다.어제일도 잘 기억못하는 쳇바퀴도는 일정속에 살고있지만.. 그날일은 너무도 선명히 어제일처럼 기억합니다... 어떻게 잊을수가있습니까... 그충격의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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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속보를 보고 ..설마했던 가슴저미는 기억들이 생생합니다아무일도 할 수 없었든 그날 저는 바닷속 으로 사라져가는 세월호를 보며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괘감에 빠졌던 그날 ....저는 7시간이 아니라 17시간을 기억합니다 그냥 TV 앞에서 넊놓고 있었습니다지금도 그날만 기억하면 가슴이 답답하고저립니다할 수 있고 살릴 수 있는 대한민국의 힘그날은 국민을 버렸습니다 이제는 묻고 싶고 듣고 싶습니다그리고 알고 싶습니다 그날의 7시간 - 양산에서 두아들의 아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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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상에서 컴퓨터로 업무보던중에 뉴스를 검색하니 배가 좌초되었다고 나왔습니다.주변에 구조배가 나타나서 금방 구조하겠거니 생각하니 무슨 속보로까지 나올일인가 하고 호들갑떤다 생각했던 기억이 아직도 ~~...그런데 상황이 전원구조되었네 아니네 하는뉴스를 보니 이거 은근 심각해지네 생각했던그 시간나도 4월 16일 그 특정한 날 너무 사건이 커서 다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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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니 티브를 보면서 배가 가라 앉는 모습을 보기만 했었어 요 왜 빨리 구조 작업을 못하는 지 의아해 하면서 멍하니 보고 있었어요 보다보니 실감도 안나고 티브에서 하는 소리가 좀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선두만 나와 있는 장면을 보면서 이건 정말 아닌데 ........ 그리고 사람들과 차를 마시면서 이건 정말 아닌데 하고 말하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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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은 바빴나봐요. 뉴스나 인터넷을 열어본 기억이 없어도. 오후에 서울 연희동에서 후배와 식사후 차를 마시고 있었어요. 갑자기 후배가 스마트폰을 보던중 "이건 또 뭐에요..." 하는데.... 그냥 정말 단순한 사곤줄 알았어요. 좀 있으면 구조하겠지. 아직 4월인데 물에 빠지면 춥겠다.. 정도? 그런데 저녁 뉴스에서도... 그 다음날 뉴스에도... 어쩜 이럴수가 있을까요?그날... 차를 마신 카페까지 기억이 나는데, 왜 그들은 기억이 안난다고 하는걸까요?말도 안되죠. 전국민이 뉴스만 보면서 이제나 저제나... 하던 날인데, 어떻게 그날일이 기억이 안날까요? 천벌을 받을거에요. 지금이라도 양심이 있다면... 꼭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감옥에 갈지언정,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라도 자식들에겐 떳떳한 부모가 되야 하지 않을까요? 기억합니다. 유가족 여러분...여러분은 외롭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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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회사원의 평범한 하루.. 일을 하며 슬쩍슬쩍 들어가보는 포탈 뉴스에서 오전 10시경 기사를 처음 접했디. (우리 회사는 10시 출근이다) 그래도 설마설마 했던 기억.. 점심시간 근처 식당에서 틀어놓은 티비 뉴스를 보며 아직도 몇백명이 저안에 있다니 하고 동료들과 경악반 걱정반이었던 기억.. 그래도..지금이 어느 시절인데 저렇게 보이는걸 설마 3백여명을 그렇게 다 놓쳐버릴줄은 몰랐다. 이후 며칠간 직장 동료들과 세월호 이야기를 많이 했고, 멀쩡하게 수학여행 보낸 아이들이 저렇게 어이없이 눈앞에서 가버렸다는 사실이 너무 기막히고 어이없어 인생에 대한 허무감이 들 정도였다. 그 이후 세월호는 나에게 깊은 우울감과 허무감같은 인생 열심히 살자는 마음에 박힌 큰 가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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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저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고, 영어 수업 시간이었습니다. 수업 중에 선생님께서 아무 말씀 없이 전자 모니터를 켜시고는 생중계 영상을 보시더라구요. 저희도 아무 말 없이 영상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배는 물에 잠겨 갔고.. 더 이상 보기 힘드셨는지 선생님께선 그렇게 수업을 중단하고 나가셨습니다.하지만 그 때까지도 저는 사람들이 많이 구조되었을 거라 생각했고, 실제로 학생 전원이 구조되어 인근 섬에 있다는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집에 돌아왔는데 엄마가 너무 많이 울고 계셨습니다. 엄마도 저처럼 모두 구조됐다고 믿고 계셨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던 것이죠. 그 때의 충격이 너무나 커서, 그 날 이후로 몇날며칠을 눈물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일반 학생인 저도 당시의 상황이 또렷한데, 당시 푸른 지붕의 닭은 무엇을 하고있었는지.. 당신은 말하지 않지만 우리는 이렇게 기억합니다. 그 7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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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이 날 학교에서 과학축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부스를 맡아 운영하고 있었는데 오후까지 정신이 없었어요.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제주도로 수학여행가는 배가 침몰해서 학생들이 갇혀있고 구조중이라고 했어요. 전부 구조됐다고 하길래 다행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저녁에 일 끝나고 한숨돌리고 있는데 그게 오보였다고 했어요. 그 다음부터는 두 손을 모으고 실시간으로 배가 가라앉는걸 지켜봐야 했습니다. 구명조끼를 입지 않고 지나쳐가는 학생에게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벗어주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는 교사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교사기 때문에 이입했습니다. 너무 잘 압니다 그게 어떤 건지. 나 같아도 얼른 이거 입고 올라가라고 했을거예요. 나는 또 찾으면 되니까 일단 너부터 입어라. 그 이후 공개되는 카톡메시지, 배 안의 학생들이 촬영해서 보낸 동영상을 울며 봤어요. 다음날 1교시가 시작되자마자 학생들에게 구명조끼 입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밀폐된 장소에 들어갈땐 대피로부터 기억하라고 가르쳤어요. 자발적으로 뛰어내린 학생들은 물 위에 떠 있었고 지역 어부들이 배를 끌고 나가 구했습니다. 해경은 뒤로 돌아 선원들을 구했어요. 헬기는 하늘만 빙빙 돌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왜 투입되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모두들 누군가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 명령은 내려지지 않았습니다.내내 하고 다니던 노란 팔찌를 이번 여름에 벗어두었다가 다시 팔에 끼면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왜 내가 부끄러워 해야 하는지 아직 정확히 잘 모르겠습니다. 부끄러워 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늘 부끄러움은 우리가 느껴야 할까요. 진실이 제자리를 찾을때까지 잊지 않고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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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그날 저는 그날 노래방에 있었습니다. 오후 내내 긴 회의를 했고 회의가 잘 되어 노래방에 갔습니다. 기분 좋게 노래하고 나서 집에 돌아갈 때에 비로소,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지요. 밤 늦게까지 뉴스를 보다가 잠들었는데, 꿈에 물에 둥둥 시신이 떠다니는 가운데 제가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뭔가 상황이 심각하구나 했지만, 설마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아무도 구조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랴 하면서 TV를 켰습니다. 불행하게도 그건 현실이었습니다. 여러번 빈소를 찾았고, 절대 잊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제 일상에서 차츰 어린 아이들과 부모들이 잊혀져 갔습니다. 제 직장은 그 이후 안전대책 비슷한 것을 마련한다고 했지만, 모든 것은 악화되었습니다. 저는 공기관에 근무하는데, 모든 것은 정말 제가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이번에만은 정말로 우리 역사를 자꾸 뒤로 끌어 당기는 그런 힘들을 과감하게 도려내는 혁명의 역사를 쓸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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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엔 TV가 없습니다. 스마트폰이 있지만 스마트폰으로 뉴스도 잘 안 봅니다. 다만 신문을 보지요. 그래서 전 그날 오전 내내 몰랐습니다. 오후에 집에 온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을 하면서 차 안에서 켜 놓은 라디오에서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운전하면서 들었기도 했지만 뉴스 내용이 너무나 황당해서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날부터 며칠을 울면서 신문을 보고 뉴스를 보았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그때는 휴직 중이었지만 저도 아이들을 인솔하고 수학여행을 가곤 하는 교사이며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입니다. 저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나라에서 어찌 우리 아이들을 키울까하는 절망감도 생겼습니다. 미안하고 죄송하고 화가나고 몇날 몇일을 울면서 보냈습니다. 그랬지만 일상을 보내면서 기억 나지 않는 시간들이 더 많아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잊을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다시는 이런 어이없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세월호의 진실은 꼭 밝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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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미국에 사는 아이둘 엄마입니다..세월호 사건이 일어나던때 제가 사는 곳은 늦은오후 였습니다.밖에서 볼일 후 저녁먹을 설렁탕을 투고하러 한국식당에 갔다가 한국티브를 켜놓은 식당티비로 기울어져 있는 배를 놀라며 지켜봤습니다.집에와 남편과 저녁 먹으며 수학여행가는 아이들이 탄 배가 침몰한다는 뉴스가 나온다며 얘기하고 인터네으로 YTN 뉴스를 찾아 늦게까지 시청하며 마음을 조렸습니다.그날일은 작은것 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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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교시 수업을 마친 중간놀이 시간...학년 회의실에서 동료선생님의 수학여행 간 학생들이 탄 배가 뒤집혔다는 뉴스를 전달받고... 깜짝 놀란 것도 잠시, 모두 구조되었다는 소식에 안심하고...다시 3교시 수업 진행...꼭 밝혀져야 합니다.세월호의 진실은...국민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람다운 사람이 인정받는 그런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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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16. 울 황태자 한달여의 병원 생활 후 퇴원 한지 하루가 지난날 수술 통증에 신음하는 아이로 정신없이 보내는라 .아이의 신음과 T.V화면으로 속절없이 잠겨 가는 .....노무현 대통령님 돌아가신후로 첨으로 통곡하며 집안일을 했다.황태자가 인식을 하고 인상을 찡그려서 눈물을 거뒀지만 가슴에 차오르는 먹먹함에 아직 난 그날에 머물러 있다.박근혜 대통령이 어이가 없어 욕이 절로 나왔다. 눈 앞에 일어나는 일이 꿈이 아닐까했다.아직 안산에 가보지 못했다.부끄러워 갈 수가 없다.절대 잊지 않겠다고,아니.잊혀지지가 않는다.눈 감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겠지만 조금은 덜 아프게 기억하고 싶슴니다.무력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