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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엔 TV가 없습니다. 스마트폰이 있지만 스마트폰으로 뉴스도 잘 안 봅니다. 다만 신문을 보지요. 그래서 전 그날 오전 내내 몰랐습니다. 오후에 집에 온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을 하면서 차 안에서 켜 놓은 라디오에서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운전하면서 들었기도 했지만 뉴스 내용이 너무나 황당해서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날부터 며칠을 울면서 신문을 보고 뉴스를 보았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그때는 휴직 중이었지만 저도 아이들을 인솔하고 수학여행을 가곤 하는 교사이며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입니다. 저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나라에서 어찌 우리 아이들을 키울까하는 절망감도 생겼습니다. 미안하고 죄송하고 화가나고 몇날 몇일을 울면서 보냈습니다. 그랬지만 일상을 보내면서 기억 나지 않는 시간들이 더 많아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잊을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다시는 이런 어이없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세월호의 진실은 꼭 밝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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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미국에 사는 아이둘 엄마입니다..세월호 사건이 일어나던때 제가 사는 곳은 늦은오후 였습니다.밖에서 볼일 후 저녁먹을 설렁탕을 투고하러 한국식당에 갔다가 한국티브를 켜놓은 식당티비로 기울어져 있는 배를 놀라며 지켜봤습니다.집에와 남편과 저녁 먹으며 수학여행가는 아이들이 탄 배가 침몰한다는 뉴스가 나온다며 얘기하고 인터네으로 YTN 뉴스를 찾아 늦게까지 시청하며 마음을 조렸습니다.그날일은 작은것 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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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교시 수업을 마친 중간놀이 시간...학년 회의실에서 동료선생님의 수학여행 간 학생들이 탄 배가 뒤집혔다는 뉴스를 전달받고... 깜짝 놀란 것도 잠시, 모두 구조되었다는 소식에 안심하고...다시 3교시 수업 진행...꼭 밝혀져야 합니다.세월호의 진실은...국민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람다운 사람이 인정받는 그런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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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16. 울 황태자 한달여의 병원 생활 후 퇴원 한지 하루가 지난날 수술 통증에 신음하는 아이로 정신없이 보내는라 .아이의 신음과 T.V화면으로 속절없이 잠겨 가는 .....노무현 대통령님 돌아가신후로 첨으로 통곡하며 집안일을 했다.황태자가 인식을 하고 인상을 찡그려서 눈물을 거뒀지만 가슴에 차오르는 먹먹함에 아직 난 그날에 머물러 있다.박근혜 대통령이 어이가 없어 욕이 절로 나왔다. 눈 앞에 일어나는 일이 꿈이 아닐까했다.아직 안산에 가보지 못했다.부끄러워 갈 수가 없다.절대 잊지 않겠다고,아니.잊혀지지가 않는다.눈 감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겠지만 조금은 덜 아프게 기억하고 싶슴니다.무력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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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15일 밤시간에 뉴스를 접하고 휴대전화를 손에 붙들고 잠들지 못했습니다. 눈이 따가와 질 때까지 속보를 계속 읽으면서 더 아파지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쓰면서 밤을 새웠습니다. 살기 위해 숨을 쉬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배 안에 있다고 생각하니 잠들 수 없었습니다. 나이드신 분들도 젊은 이들도 모두 살아있기를 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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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출근을 하고 조금 뒤 소식을 들었을 때, 놀랐지만 전원구조라는 오보에 어느정도 안심을 하고 조금은 불안한 마음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나갔습니다.그날은 평소 도시락을 챙기던 저답지 않게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러 나갔었는데, 아무도 세월호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아.. 생각보다 심각한 일은 아닌가보다 하고 안심했던 기억이 납니다.그러나 곧 그 기대는 깨져버렸고, 시간은 흐르고 있는데 늘지 않는 생존자 숫자에 하염없이 절망하며 분노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바다도 배도 모르는 사람이기에, 바다에서의사고는 이렇게 속수무책에 아무도 손을 쓸수 없는 것인가 한동안 속상해 했었고, 속속들이 드러나는 깨름칙한 상황들에 의구심을 가지고 여태 지켜보고 있는 모든 과정들이 제 기억엔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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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14년 4월 16일에 대한 기억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분명 그런 일이 있는 날에는 인터넷 뉴스나 방송으로 지켜봤을 텐데 분명한 기억이 없어 페이스북을 한참 뒤져 봤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은 항공우주학회 발표 전날로 함께 논문을 썼던 동기들과 학회장 근처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엠티가는 학생들 마냥 신나게만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분명 그 동안 뉴스로 소식을 접했었을텐데 다음날 학회 발표 준비로 신경쓰지 못한게 너무 부끄럽고 죄송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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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학교 오전 수업을 가서 수업을 듣다가 친구가 수많은 인원의 배가 침몰했다고 했는데 에이 무슨 소리야 하고 네이버 메인에 접속하여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너무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저에게 그날은 어떤 특별한 날도 아닌 일상과 다를 바 없던 날인데도 그 시간을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그들은 왜 기억하지 못하는 겁니까?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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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때 대학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동료로부터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처음엔 몰랐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배에서 나오지 못 할줄은.. 그리고 시간이 조금지나 제가 근무하는 대학에 다니는 학생 동생이 그 배에 타고있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학생은 살아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살고있는 지역의 고등학교가 그 세월호를 탈뻔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가끔 상상합니다. 그날 거기에 내가 있었다면 다들 밖으로 나오라고 했을텐데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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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학생이라 자다가 일어나서 평소처럼 티비를 틀었어요. 틀자마자 본게 세월호 뉴스였구요. 첨엔 너무 놀랐어요. 그래도 전원 구조라길래 어휴 다행이다..하고 채널을 돌렸고 한참있다가 다시 또 채널 돌리는데 아직도 그 뉴스더라구요. 그때서야 심각한걸 알았어요. 아직도 그날이 생생하게 기억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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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수업 듣고 있었어요 어른들도 친구들도 그 누구도, 아무도 이야기 해 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별 일 없는 줄 알고 그 날 밤에 치킨을 먹으면서 티비를 켰는데 방송사 뉴스마다 다 뒤집어져서 세월호 보도를 하고 있는 거예요 생존자 서너 명 밖에 안 뜬 거 보고 충격이 너무 커서 그대로 화장살 가서 토하면서 속 다 게우고 울면서 뉴스 봤어요 그리고 그 날 꿈에서 물에 퉁퉁 분 시체들이 제 발목을 잡고 살려달라 했었어요 진짜 세월호 일어 나고 전후로 이틀 정도는 먹는 것마다 다 토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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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직장에 갓 입사해 연수로 정신없던 4월, 출근 전 기숙사 식당에서 아침을 먹다 뉴스를 보고 멍해졌던 그날.. 이제 한국에서 함께 촛불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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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교시 진로 시간이였습니다. 휴대폰은 조회시간에 제출했기 때문에 "세월호라고 수학여행을 가던 배가 뒤집혔지만, 모두 안전하다" 이 말을 1시쯤 진로 선생님의 말씀으로 처음 접했던걸로 기억합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니 엄마가 뉴스를 보고계셨습니다. 그때도 어김없이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모두 구출됐다는 말, 그 시간동안 두려움에 있었을 언니, 오빠들과 여전히 이어지는 괴로움을 저는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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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밤샘근무를 했던날이에요. 아침 퇴근길에 뉴스를 보며 제동생과 같은 나이인 동생들 걱정에 노심초사 하다가 전원구조라는 소식을 들은 뒤 마음놓고 수면을 취했죠.그리고 저녁 5~6시경즈음 일어나보니, 세상이 180도 달라져있었습니다.그때의 충격은 지금도 잊지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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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대학교 4학년에 재학중이었고 집 근처에 있는 커피전문점에서 졸업을 위한 토익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노트북을 켜서 인터넷을 확인하는 순간, 너무나 충격적인 사고(사건이죠..)에 공부하려던 책의 내용이 눈에 제대로 들어오기까지는 며칠이나 더 걸려야했습니다.그 때 그 날을 기억하지 못할 국민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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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억합니다. 국민의 안위가 철저히 짖밟힌 진도 앞바다의 어느 이른 봄날을...우리는 기억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비명과 함께 사라진 7시간의 진실을...그래서 우리는 명합니다... 이제 그만 퇴진하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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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만 있을까뭔 방법이 있겠지그리고 가라앉았다내 가족에게 아무것도해줄수 없다는 것이 가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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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평일이여서 별 다른 특별함없이 아침점호를 끝내고 일과를 하고 있었습니다.그렇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경과하고 부대의 간부들이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안산에 학교 다니는 가족이 있냐, 그리고 시간이 다시 지나고는 안산 단원고에 가족이 있냐로, 처음에 는 영문도 모르다가 모든 일과 끝나고 티비를 전부 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세월호가 침몰되었다는 것에 부대원들은 잠시동안 전부 말은 쉽게 못하고 영혼이 나간듯이 멍하니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가며 슬픈 소식들이 전해지며 마음 한켠에 괴롭다고 느꼈던 4월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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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조끼끈으로 서로를 묶은채로 죽은 아이들의 기사를 보고 퇴근길. 길옆에 차를 세운채 엉엉 소리내어 울었던 기억이 떠올라 이 글쓰며 다시 눈물이 나네요. 그 순간 아이들의 심정이 그 한맺힘이 너무 사무쳐.... 죽어가기까지 그 몸과 맘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절대로 잊을수도 없고 반드시 세월호도 진실도 인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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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전에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차안에서 라디오로 처음 뉴스를 들었습니다. 낮12시가 넘은시간 집에오자마자 뉴스를 틀어놓고 보니, 가라앉는 배안에 아이들이 있다고 합니다. 숨이 막혀오고 기가막혀 아무것도 할수없고 눈물만흘리고 있었습니다.아무것도 하지않고 지켜보고있는 상황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어느순간 화면에 사망자이름이 대문짝만하게 나오고 어렵게탈출하여 멍하니 젖은몸으로 앉아있는 학생에게 사망한 친구의 이름을 물으며 어떤친구였느냐 묻는 기자의 모습에 기가막혀 채널을 돌렸습니다.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모습은 너무나 무능하고 잔인했던 기억을 잊을수 없습니다.우리아이는 단원고 아이들과 같은나이로 삼일뒤 같은장소인 제주도로 수학여행이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현관에서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내아들은 괜찮다고 나는 아니라고 안심할수없는 관계없는 일이 아니었습니다.내아이를 안고있는 제가 너무 죄송한마음이었습니다. 아무일없이 부모의품에 안겨주길 단원고 아이들의 부모들은 얼마나얼마나 간절히 바랬겠습니까그 간절함을 조금이나마 안다면 진실을 밝히는데 소홀할 수 없습니다. 정부와 대통령은 진실을숨긴 세월호공범입니다. 끝까지 밝혀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