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그날 세월호에 갇힌 승객들을 전원 구조했다는 오보를 보고는 안심했고. 우리나라의 국가력에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하지만 불과 몇분뒤 그 이야기는 눈가리고 아웅 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 차갑던 바다속으로 생명들이 사라지는 것을 가슴 아프게 보고만 있었습니다. 이나라의 주인은 우리인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제 자신이 너무 한탄스러웠습니다. 저는 잊지 못합니다, 아니 잊지 않습니다 그날은 국가의 신뢰가 떨어진 날이기에 생명들이 무의미 하게 사라진 날이기에우리가 다시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믿습니다. 진실은 바다 저 밑에 가라앉아 있는게 아니라 잠시 안개속에 가려진 것 이라고요.
-
아이와 집에서 텔레비젼을 보면서 하루종일 울었습니다. 자식을 낳고 보니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고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져서 아이 얼굴만 봐도 눈물이 났습니다. 이렇게 소중하게 키운 아이들 일텐데 이 아이를 잃고 살아갈 수 있을지... 몇 주 뒤 우울증이 와서 상담센터를 찾았습니다. 감정이입을 심하게 하는 편이라 우울하고 힘든 일은 가급적이면 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너무 자주 울고 우울해져서 안되겠다 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차마 잊지는 않았지만 잊으려고 노력해서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이제 아무리 힘들어도 기억하겠습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매일 #1111 문자도 보내고 있습니다.
-
체험학습 날이어서 아이들 데리고 낙동강 에코센터 갔던 날입니다.. 점심 먹으면서 뉴스 보고 깜짝 놀랐다가 금방 전원구조라고 뜨는거 보고는 안심하고 체험학습 계속... 저녁 뉴스 보고 참담했습니다...너무 아파서 떠올리기 힘든 기억이지만 잊어서는 안되는 진실이기에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
강의 중간 15분의 짬이 나서 학교식당에 갔습니다. 밥을 먹고 있는데 식당 한켠 TV에서 세월호 침몰 뉴스가 나오고 있습니다. 숟가락을 든 채 멍하니 뉴스를 보고 있는데 탑승객 전원 구조 자막이 뜹니다. 다행이다...뉴스를 보다 다시 강의를 갑니다. 쉬는 시간에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는데...오보였답니다 . 아이들이 아직 배 안에 있다고 ...아직 살아있다고...구조를 기다린다고...아무것도 모른 채 게임하고 시끄럽게 떠드는 학생들을 조용히 시키고 세월호에 대해 알려줍니다. 학생들이 아무 말도 못합니다. 장난인 줄 아나봅니다. 장난이 아니라고 사실이라고 말하는데 눈물이 납니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아무것도 못해주는 어른이라 미안하다고 웁니다...
-
점심 먹기 전 인터넷으로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보고 어머 어떻게해 그래도 해경들이 와서 구해주겠지하면서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점심먹으면서 티비에서 전원구조라는 오보 소식을 듣고 안심하고 김밥과 칼국수를 먹었습니다. 먹고 난후 얼마 안있다가 이 소식이 오보라고 하는 비보를 딛고 너무나 가슴이 먹먹해지고 아팠습니다.구할 수 있었는데 가만히 있어라는 그 말한마디에 사람들은 세월호와함께 가라앉았습니다.너무나 슬픈 것은 내가 그 가슴아팠던 사건을 삶이 고달프다보니 잊고 살았다는 것이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슬픕니다.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하고 죄송합니다.꼭 진실은 밝혀질때까지 기억하겠습니다.
-
날씨가 흐렸다..흐린 날씨처럼 그 날의 기억을 평생 가슴에 뭍고 살아가야하는 사고가 운명처럼 다가왔음을..속보가 뜨고 단 한 사람의 희생자없이 구조하라는 대통령의 발언과 전원구조라는 자막이 뜨고 ..전원구조 했구나~ 안도하고 집안일을 했던 것 같다..그리고..2014년 4월16일 이후부터 오늘까지 단 하루도 잊은 날이 없다.단 한 사람도 구하지 못한 정부!무능한 정부!각자도생해야 한다는 말이 농담이 아니라..진심인 우리들..구하지 못한..수장시킨..왜?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게 됐는지..우리는 끝까지 진실을 밝혀야한다.그리고 그 세월호참사 책임자들..마지막 한 명까지 죄값을 받게해야한다.2014년 4월16일..이 후부터 우리는 세월호 엄마고 아빠고 가족이었습니다..그렇게 아파하면서 오늘까지 왔습니다.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
회색구름이 땅으로 내려 앉을듯한 흐린 날이었습니다. 5살 아이의 봄소풍 날이었지요. 아이를 보내고 연구실로 가던 버스안에서 사고뉴스를 봤습니다. 노트북을 켜고 실시간 뉴스를 보며 부디 모두 구조되기를 간절히 바랬어요. 얼마뒤 전원구조 속보가 떴는데, 구조된 학생의 인터뷰는 그 바램을 무너뜨렸습니다. 어린 남학생이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사시나무 떨듯 흐느끼며 "친구들이 다 배안에 있는데. . ."라고 말하고 있었어요. 나는 배가 가라앉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무기력하게 책상에 앉아서 아이들이, 사람들이 죽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봄소풍에서 돌아온 내 아이가 셔틀에서 내리던 오후 네시반. 나는 아이와 눈을 마주칠 수 없었습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합니다.
-
젖먹이 둘째를 친정엄마한테 맡기고 자유를 얻은듯한 느낌이었지만 수유텀이 있어서 그 시간을 만끽할 수 없었다. 그나마 할 수 있었던 일이 목욕탕 가서 묵은 때를 벗기는 것.목욕은 하고 나와 젖은 머리를 말리며 뉴스를 보니 배가 침몰해있고 전원구조라는 최악의 오보가 되고 만 그러나 그때만해도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던 자막을 보았다.그리고 집에 돌아와 티비를 켜니 오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 배에 수학여행을 가던 단원고 2학년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그 후 계속 기사검색과 인터넷카페에 드나들며 골든타임에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구조할 수 있기를 빌며 또 빌었다. 나 역시 휴직중이지만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던 고등학교 교사이므로 내 일 같았고 내 제자들 같았다.그렇게 그날을 또렷이 기억한다.그들의 죽음이 헛되이 되지 않기를 내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자 한다.그 첫번째가 절대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고 반드시 기억하겠다는 각오다.
-
단원고 근처의 중학교에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2014년 4월 16일부터 18일까지 제가 근무하던 중학교도 강원도로 수학여행을 가는 중이었고, 버스 기사님이 사고 사실을 알려주셨어요. 학부모님들로부터 수많은 전화를 받았고, 교장선생님은 아예 한 시간마다 보고를 하라는 지시도 하셨습니다. 학생들 중에 세월호 희생자의 친인척들이 꽤 있었고, 희생된 선생님들 중 두 명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날의 모든 상황이 아침부터 똑똑히 기억납니다. 그 아픔도, 슬픔도, 분노도 모두 똑똑히 기억납니다. 청문회 증인들의 증언이 그래서 더 아픕니다. 그래서 더 분노합니다. 진실은 밝혀질 겁니다. 그 때까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겠습니다.
-
아직도...세월호가 나오면 그 안에서 공포에 떨고.. 차오르는 물에 공포심을 느꼈을 애들을 생각하면...가슴이 먹먹해지고 미어집니다...우리는 그 아이들을, 그 슬픔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고.. 차갑게 세상을 떠나갔던 아이들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고위 관료들은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
전기 안전점검일을 하는 사람입니다.그날도 다른날과 같이 수용가를 방문하여 점검하고 동료와 같이 식사를 하려 동태집에 들렀는데 뉴스에 세월호 사고가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모두 구조되었다고 하기에 천만다행이다라고 식사를 하고 일을 하러 갔었는데 ...지금도 세월호 동영상이 나오면 볼수가 없습니다. 마치 내애가 그속에 있는것 같아 금새 눈앞이 흐려지는게 보기가 너무 가슴아픕니다.그렇게 허무하게 속수무책으로 어린 생명을 보낼수 밖에 없었는지...왜 사고가 발생했는지 그렇게 밖에 대처할수 없었는지 원인을 밝혀 어처구니 없게 가버린 생명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꼭 밝혀내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어떻게 잊을수 있나요 그날을 생때같은 애들이 그렇게 간날을...기억하지 않으려 해도 잊혀지지가 안는걸
-
선생님께서 배가 가라앉았다고 하셨다. 그러나 빠른 대처로 전원이 구조되었고 모두 안전하다는 뉴스를 전해 주셨다. 그 때까지만해도 나는 남의 일 처럼 시큰둥했다. 아침부터 시작된 철학 수업에 도저히 집중을 할 수 없었고 전원 구조라는 희망적인 소식은 나를 안심시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제주도로 들어 온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기로 했던 옆 학교 친구들은 수학여행이 미뤄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전원 구조라는 소식은 전부 오보였고 세월호 승객들은 모두 방치된 채 죽음을 맞았다. 정부 당국의 잘못된 상황 판단과 부족한 상황 대응력이 그들에게 죽음을 가져다 주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당시의 무능함은 승객들을 죽음을 야기했을 뿐 아니라 남은 유족들의 마음을 후벼파는 책임 회피로까지 이어졌다. 정부가 세월호 승객과 유족들의 반대편에 선다면 나는 기꺼이 유족들 옆에 서겠다. 나의 친구, 엄마 친구의 아들, 친구의 이모, 동생 친구의 형이 세월호에 탈 수도 있던 그 상황은 내가 아주 우연히 비극의 주인공이 되지않았음을 알려준다. 어떠한 방법으로도 유족들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릴 순 없겠지만, 세월호 안의 승객들을 나의 삼촌, 이모로 학생들을 나의 친구로 생각하고 슬픔에 동참하겠다. 우리는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합니다.
-
커뮤니케이션이론 수업을 수강하고, 집으로 돌아와 김세은 교수님에 대한 감상을 썼었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일기를 적은 날이다.
-
내아이도 내친척도 아닌 얼굴한번본적없는 아이들이었지만 셀수없는날들을 슬퍼하고 분노하고 무기력했음을 기억합니다
-
귀촌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침 느지막이 접한 TV 화면에서 나왔던 기울어진 배...하늘에 날아다니는 헬기, 물에 떠 있는 선박들, 바쁘게 움직이는 듯 보였던 사람들...곧, 모두가 살아 나올 것을 믿으며 가슴 졸이며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그날 아침...결국은 내가 보고 있던 TV 속의 바로 그 배 안, 바로 그 때, 아이들이 살아 숨쉬고, 두려운 마음을 움켜쥐고 재잘 거리고, 사랑한다고, 구조될거라고, 서로를 부둥켜 안고 떨고 있었다는 사실이...너무나 생생해서 지금도 기울어진 배만 보면 가슴이 울컥한데,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니...이런 천하에 쳐 죽일 놈들...
-
TV에 방송되면서 1분 1분 배가 가라 앉던 그 절박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참담함을 또렷히 기억하고 있습니다.배가 다 가라 앉도록 아무것도 못하던 많은 사람의 절망 어린 한숨소리와 눈물을 TV에서 봤습니다.
-
터키 페티예에서 카파도키아로 가는 야간버스에서 속보로 사고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터키 고속버스에는 개인 모니터가 달려있는데 사고 소식이 속보로 전해졌고 핸드폰으로도 한국 난리났다는 문자가 쏟아졌습니다...
-
2014년 4월 16일,그날을 생생히 기억합니다.그날 아침 9시 30분쯤, 용인의 어느 병원 공사 건설현장...일을 하다가 잠깐 여유가 생겨서우연히 제 스마트폰으로포탈사이트를 검색하다가세월호 사고 소식을 알게 됐었습니다.하루 종일 틈만 나면 제 폰으로사건 상황을 검색했었습니다.저는 세월호 유가족도 아니고사고와 직접 관련된 사람도 아닙니다.그런 저도 그날 제가 어디서 무슨 일을했는지, 그날의 사고 소식의 충격과 함께지금까지도 또렷이 기억합니다.이날을 기억 못한다는 사람들....그건 정말 거짓말이라고 봅니다.
-
저는 그 때 전남대학교 공과대학 모 공학부의 한 연구실 제 자리에서 컴퓨터를 켠 상태였습니다. 포털에서 진도 여객선 침몰이라는 키워드가 떴고 연구실 선배 동료들도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전원 구조라는 속보가 떴을 때에는 불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게 오보라고 판명이 되었을 때에는 "그럼 그렇지 그러면 세월호에 탑승한 단원고 학생들은 어떻게 되었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세월호에 탑승한 승객들, 특히 단원고 학생들이 대부분 죽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자 너무 분통이 터졌고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잖아요. 가장 죄책감이 들었던 것이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날 완도에서 무슨 해조류박람회 같은 것을 계속하는데 가족 단위로 가자고 하는 거에요. 저는 끔찍한 세월호 참사가 터졌고 수색 중이고 시신 인양하는데 가지 말자고 했는데 끝내 가자고 한 게 지금도 자꾸 걸립니다. 이 와중에도 가족끼리 여행가고 미역이나 사겠다고 이러니...... 아무리 생계 걱정에 세월호 참사 이후 진도 완도 부근에서 채취한 미역이 잘 안 팔리게 될 것을 걱정한다 하더라고 이런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는 분위기를 살펴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했습니다. 물론 끔찍하니까 세월호 현장에 가지 말자 이런 주장은 아닙니다. 지금도 분노할 시간에 실력이나 쌓아라 이런 식이니...... 앞으로 사는 게 참 걱정됩니다. 시간이 지나니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나도 여기에 일조했다 나도 잘못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윗분들 제발 기억이 없다고만 하지 마시고!!! 진실을 털어놓으시길 바랍니다!!! 세월호 7시간 진상규명 꼭 이루어져야 합니다!!!
-
그날 대전에서 회의를 하다가 페북에서 처음 소식을 접했습니다. 마침 전남쪽에서 참석한 사람이 있어 큰 사고 났는데 아냐고 물어보니 다 구했다고 한다 걱정 안해도 된다는 이야길 듣고 안심 했는데... 잠시후 오보라는 어이없는 소식에 가슴이 무너졌던 그날의 기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