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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지 일주일쯤되었는데 항상 그 사람만 생각나던따뜻한 봄날이었어요수학여행가던 아이들을 태운 배가 가라 앉았다는소식을 듣고 시련이고 뭐고 회사 동료들과 하루종일 애들 걱정했어요전원 구조에 안도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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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오전, 2~3교시 법과정치 시간에 선생님과 수능특강을 풀고 있었죠. 그때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어요.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던 배가 침몰했는데 전원 구조 되었다고요. 저희 반 친구들이랑 다행이라며 안도했죠. 야자 끝나고 핸드폰으로 확인해보니 선생님께서 보신 그 기사는 오보였더라구요. 집가는 봉고차 안에서 기사 하나하나 읽으며 눈물이 글썽글썽. 결국 내리자마자 마중나온 엄마를 보고는 울음을 터뜨렸죠. 나오지 얼마 안 된 악동뮤지션의 "작은별"이란 노래가 있었는데 가사가 마치 어두운 배에 갇힌 단원고 친구들이 하는 말 같아서 들을 때마다 울컥했어요. 물론 지금도 그렇구요. 잊지 않을거에요. 반드시 기억할겁니다. 내가, 우리 모두가 기억할거에요. 그리고 우리가 해내는 모습을 따뜻한 그곳에서 꼭 지켜봐줬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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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끝나고 엄마와 전화통화하면서 집에오는 길이였다. 엄마가 배가 침몰했다는거 아냐구 하시길래 놀라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전원구조 되었다고 하셔서 오 다행이다.. 하며 별 신경을 쓰지않고 집에 돌아왔다. 리모컨을 잡고 티비 뉴스를 트는 순간 생존자: ~명 사망자:~명 이렇게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뉴스를 보자마자 당황하였다. "엄..엄마 전원구조아닌가봐..." 말도 안돼.. 배가 저렇게 갈아앉고 있는데 전원구조라는 말은 어디서 나온거고.. 아직도 차가운 바다에서 죽어가는 학생들떠올리기가 겁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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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때였고, 항상 하던 것처럼 카카오스토리를 즐겨하다가 카카오스토리에 세월호 소식이 알려지고 카카오스토리친구나 친구의 친구들 중에 유족이나 세월호 희생자의 지인들이 글을 올리며 많이 걱정을 했던게 기억에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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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새벽에 퇴근하고 자다일어났는데 뉴스가..하루종일 뉴스에서 시선을 못떼고 일하는도중에도 눈물이 계속 나던데..아직도 분노가 치밀어오른다.개인적으로 바다에 빠져서 구조된적이 있는 사람인데 사고의 기억으로 바다뿐만이 아니라 물에 대해 공포가 생겼다.근데 앞이 막힌상태로 의지와 상관없이 갇혀있었던 그분들의 고통이 상상됩니다ㅠ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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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회의를 마치고 업무를 시작 하려 하는데 속보가 떴어요.. 무사구조가 오보 였다는 사실에 너무 놀라서 하루종일 뉴스를 보며 심지어 뉴스를 틀어놓고 회사 사람들과 입응 모아 걱정 했어요..그 날을 어떻게 잊겠습니까못 잊습니다.. 생떼같은 아이들이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눈으로만 봐야함이 그토록 발을 동동 구르게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고 제발 제발 하며 퇴근 후에도 몇날 며칠을 티비앞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고 거짓말 처럼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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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평범한 아침이었습니다. 급한 일들을 하느라 사고 소식을 모르고 있었고 동료가 얘기해서 사고를 알았고요. 모두 구조했다는 기사를 봤고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줄 알고 또 일을 하다가, 오보였다는 걸 확인했고 너무 놀라고 화가 났습니다.얘기해준 동료도 잊지 않고 있고 다른 동료에게 화를 냈던 것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기사를 보다가 화를 냈네요..) 그날은 퇴근하자마자 집에 갔고 뉴스를 보면서 울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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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참사 당시 대학교 3학년 2학기 중간고사를보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학생식당에서 점심을 먹다가 tv를 통해서 참사 소식을 들었습니다뉴스를 보다가 전원구조 소식을 들었을때안심한 마음이 들어 시험을 준비했습니다하지만 그것은 전원구조가 아니였고 오보였고구조되길 살아있길 물살이 잠잠해지길 바랬지만 우리의 바램과는 다른 소식들에 모두들 아파하고 슬퍼했습니다지금도 958일째 세월호는 바다속에 있습니다9명의 사람, 우리의 가족이 있습니다미수습자 가운데 한분이 제가 다녔던 학교 선배님입니다.미수습자 9명 모두 하루 빨리 가족분들의 품으로 돌아오고반드시 인양 되어야하고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304명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끝까지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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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학년 전체가 수련회를 갔던 날이었다.부모님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신나고 재밌는 2박 3일을 보낸 후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 어렴풋이 잠이 들었었다.이윽고, 시끌벅적한 소리에 잠이 깬 나는 바로 뒤에 있던 TV를 쳐다보았다.TV에서는 어느 전문가와 뉴스앵커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처음엔, 그저 사고일 줄 알았다. 몇시간 뒤면 모두 빠져나와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갈 줄 알았다.그저 대한민국의 12살 아이였던 난, 그렇게 알았다.집에 도착해 인사를 하고 잠에 들었다가 깨어났을 때엔, 내 휴대폰에는 수많은 알림이 와 있었다.내 카카오스토리에는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만이 가득 차 있었다.나는 두려워졌다. 이 사고로 하여금 꽃다운 나이의 언니 오빠들이, 목숨을 지게 된다는게 화가 났다.왜 tv와 라디오에서 떠드는 어른들은 왜 그들을 돕지 않았던걸까? 왜 꽃이 지는것만을 바라보고 있었을까?7은 행운의 숫자라면서요. 대통령님?7시간동안 과연 무슨 일을 하신건가요? 그 청춘들이, 우리나라의 미래들이, 우리 언니오빠들이 숨이 가빠올동안 대체 어디에서 뭘 하시고 계셨던건가요. 왜 그러신거에요.나는, 이윽고 시간이 흘러 14살이 되었다.난 아직도 세월호를 잊지 못한다. 다른 이들도 그럴것이다.세월이 흐르고 내가 17살이 되어도, 18살이 되어도 자신의 꿈 한번 펼치지 못한 언니 오빠들을 위해 대신 힘쓰고 일어날것이다.난, 그들을 위해 촛불을 들었다. 세월호의 사람들을 위해. 내가 살아갈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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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교실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는데 한 친구가 휴대폰으로 세월호 소식을 전했다. 배가 침몰했는데 다 구했다고, 우리 위 학년 선배들이 탔는데 다 구조됐다는 것을 듣고 진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기분좋게 수업을 듣고 집에 갔는데 엄마가 뉴스를 보고있었다. 근데 뉴스에서 실종자 수가 100명을 넘고 며칠 지나자 200명이 넘었고 하나 둘 씩 넘어가더니 사망자가 304명이나 되는 엄청난 재앙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그 다음주에 수학여행을 제주도로 가는 선배들은 충격에 휩싸였고 모든 일정을 취소되었고 학교 분위기가 많이 어두워졌고 노란 리본을 만들기 시작했고 수업시간마다 추모영상을 보면서 울고 기도했다. 많이 슬픈 시간이었다. 그 시간들은 지금도 똑똑히 기억나고 지금도 유튜브로 찾아보고 잊지않으려고 노력한다. 제발 진실이 밝혀지고 나쁜 사람들이 죗값을 치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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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지겹다는 분도 계시는데... 어떻게 잊겠습니까? 오전 11시쯤인가에 뉴스접한걸로 기억합니다. 사고소식듣고 아이들이 많이 타고 있는 배니까 꼭 피해없이 다들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전원구조됐다는 기사가 떠서 별일아니었구나 안심하고 회사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었네요. 퇴근하고 집에 와보니 전원구조는 오보고 많은 아이들이 물속에 갇혀있다는 뉴스속보를 보고 가족들 모두 자기일처럼 많이 울었습니다. 배어딘가에 공기가 남아있는 곳이 있을수도 있다고 믿고 지인도 아니고 당사자도 아니지만 제발 살아돌아오기를 기도하며 밥도 잘안넘어가고 잠도 잘못잤었죠. 그리고 아직도 다 돌아오지못하고 저밑 추운곳에 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 아이들의 부모님은 아직도 악몽같을 겁니다. 어떻게 그분들앞에서 보상을 얘기하고 이시대에 사는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그사건을 잊을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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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2였다 수련회끝나고 집으로돌아가는 마지막날이였다 교관선생님이 세월호 배가 침몰했지만 아이들 다 구출했다고 다행이라고 말씀하고 혹시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핸드폰으로 문자 남겨드리고 전화한통하라고도 말씀하셨다 각자 연락드리고 버스에올라 아무생각없이 핸드폰하며 세월호얘기를하고있었다 정말 다행이라고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점점 심각해져갔고 집에 도착했을때는 아무 대책없는 상황이 이어져갔다 그날 우리학교에서는 밤 늦게까지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남아 기도하고있었다......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이 되어버린언니오빠들 절대 잊지않을게요 Remember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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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가 얼마 남지 않아 학교 열람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공부 후 엄마와 전화를 하며 우리나라 그래도 좋은 나라니까 금방 구하겠지 뭐 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계속 나오는 기사를 보면서 전원 생존이래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었지만, 갈수록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도 나라를 믿으며 국가에서 구해주겠지. 생각하며 계속 공부를 하였습니다. 제가 이 시간에 공부를 하지 않고 세월호 사건에 관심을 더 가졌더라면, 세상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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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학생입니다. 그 날도 늦게 일어나서 오후수업에 갈 준비를 했던게 기억납니다. 처음 침몰 소식을 들었을 때, 요즘 시대에 사망자가 날리가 없고, 구명조끼 입으면 다 살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전원구조 오보도 믿었었죠.. 그날 학내커뮤니티에서 누가 세월호에 타고 있다며 거짓글을 올렸던게 아직도 기억납니다. 아무생각 없이 먹었던 점심과, 도무지 먹기 힘들던 저녁을 기억합니다. 20140416, 이 나라가, 이 정권이, 이토록 무능한지,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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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제주도는 바람이 많이 불고 비내리는 우중충한 날씨였다. 사고를 슬퍼하기라도 하듯이...그때 나는 친구들과 비행기를 타고 막 제주도에 도착했는데, 핸드폰을 켜자마자 가족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걱정이 담긴 문자와 전화가 쏟아졌다. 지금 사고났는데 너희는 괜찮냐고. 이후 점심을 먹을때 전원구조라는 속보를 보고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하지만 계속 바뀌는 뉴스내용에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느끼게됐고 친구들과 숙소에서 티비를 켜 뉴스를 보면서 그들이 무사하길 바랬다.그렇게 우리의 수학여행은 조용히 지나갔다.이후에 그들이 무사히 제주도에 도착했다면 우리와 가까운 곳의 숙소에 머물고 같은곳에서 밥을 먹어 한곳에서 만날 것이었으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먼저 난다. 나와 같은 나이의 친구들이 어떤 공포를 느꼈을지 나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만큼 무섭다. 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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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수업에 정신없는 하루 보내고 있었어요 수업도중 속보뉴스를 봤지만 전원구조 소식에 괜찮을꺼라 생각했는데 사실 물위에 떠있던 뱃머리를 보면서도 괜찮을꺼야 했는데 많이울고 뜬눈으로 맞이한 3일째아침 믿을수없는 광경에 가슴이 내려앉았어요 ...미안해 괜찮길 두손모아 바랬어... 왜 아무런 조치가 없었어요? 왜 덮으려는 언론만 터뜨렸던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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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점에서 점심때쯤 뭘 살 때 전원구조됐다는 오 보를 접했어요. 친구들과 몹시 기뻐했었죠 그런데 야자할때쯤 일이 잘못되어감을 깨달았죠. 그리고 그 이후에 많이 울었어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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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조별로 모여 실습을 하던 중 과목 담당 선생님이자 담임 선생님이 잠깐 나갔다 들어 오시면서"애들아 진도에서 배 침몰 하고 있대 너희랑 같은 나이 애들도 있단다 우짜노"이 한마디에 반 애들은 술렁 거렸고 나 또한 친구들 이랑 헐 어떡해 하면서 불쌍해 하고 걱정했다.다행히 몇분이 지나지 않아 담임선생님은"애들아 전원 구조 했대"라고 말씀 하셨고이윽고 또 한번 애들은 다행이다 완전 다행이다 하면서 안심했지만 약 5시간이 지나고 수업이 다 끝나 종례를 마친 후 받은 핸드폰을 켜 네이버 앱을 열자 뉴스 메인엔 속보라고 보란듯이 빨간색 글씨로 쓰여진 글자 옆엔 전원 구조 대신이미 구조자 보다 사망자가 더 있다는걸 알 수 있었고우리랑 동갑인 단원고 학생들이 대부분 탑승했단것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기대와 기도와 달리 끝까지 구조자의 수가 사망자 수를 앞지르지 못 한걸 보았고 여전히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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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이 홍도 흑산도 여행 을 가셨다가 돌아오는 날이라 아침 출근하면서 뉴스를 접하고혹시 여행중 돌아오시는 길이라 더 마음 졸이며 통화하면서 계속 뉴스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세월호는 아니었지만 1년전 똑같은 코스로 수학여행을 간 큰 아들이 생각나서 마음 졸이며 지켜봤습니다. 너무나 안타깝고 그런 비상상황에 어떤 조치도 없이 침몰해 가는. 배를 지켜보면서 지금도 너무 안타깝고 미안하고 가슴 아픈 일이라 기억이 또렷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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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아침을 먹으려고 집에 가면서 들었다가슴 조이며 보고 있다가 전원구조 라는 말을 듣고 환호하며 밥을 차리는데....구조는 개뿔!! 그날 한끼도 못먹었다그날부터 눈물로 보낸 시간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인간도 아닌것들!!다시 그날들이 떠오르며 죽이고싶은 분노가 치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