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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대학교에 입학해서 기숙사생활하던 2014년 나의 스무살공강때 동기랑 기숙사 TV로 사고소식을 듣고 걱정되서 수업시간에도 계속 뉴스 찾아보던 기억이 난다처음에는 다 구조 됐다고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계속 보도 정정될 때마다 내 심장이 철렁 했었고 그날 밤에는 구조소식 보려고 TV앞에서 못떠났는데..그날은 뉴스를 틀어놔도 기숙사 학생들이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었다 불과 2년 조금 지난 기억인데그저 일반 시민이었단 나조차도 이렇게 기억이 생생한데그들은 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기억하기 싫은 것이 아닐까왜 죄없는 나의 동생들이, 청춘들이, 가족들이 차가운 바다에서 누군가의 구조를 기다린채 피워보지도 못한 꽃으로 남겨진 채 세상을 떠나야만 했는지그과정에서 어른들은 어떤 노력을 했는지 노력이란 것을 하기는 했는지 샅샅이 밝혀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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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당시에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중이어서 출근해서 컴퓨터로 업무를 보고 있었습니다.업무가 오전에는 많지 않기 때문에 스누라이프를 보던 중, 사고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전원구조, 오보, 걱정, 당시 스누라이프의 분위기가 아직도 생각납니다. 처음 접해보는 사고였기에 7시간동안 저는 구조가 가능할 것으로 믿고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7시간이 지나고도 골든타임, 공기주입, 다이빙벨... 희망이 있는 듯 했지만 결국 오늘까지 와버렸습니다. 대한민국을 희망에서 절망으로 만든 것은 그 불쌍한 아이들이 아니라, 사고 자체가 아니라, 기득권이었다는 것을 오늘에야 깨닫습니다. 나도 그 기득권일 수 있고 나도 희생자가 될 수 있는 이 상황을 이제는 바꿔야합니다. 이 촛불이 두렵다면 당신을 되돌아보고 모든 걸 내려놓으세요. 대한민국의 골든타임이 지나지 않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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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 오키나와에서 학회에 참석중이서 학회 강연을 듣고있었습니다. 강연 중간에 지인으로부터 카톡이 와서 사고가 났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잠깐 뉴스를 검색해보았는데 전원구조라는 소식을 듣고 다행이다라고 안도했던 기억이납니다. 그러고는 다시 강연내용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잠시후 오보였다고 아무도 구출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카톡방에서 쏟아졌고 강연이 끝났을 때쯤 다시 뉴스를 확인했을때는 절망적인 내용의 뉴스만 쏟아졌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국내에 없었지만 뉴스로 소식을 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는데 책임져야할, 책임 질수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대체 어디있었길래 바다건너있는사람보다 상황을 몰랐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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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핸드폰 녹취록을 들었는데 계란냄새가 난다고 말하더라구요. 아이들 휴대폰 조직적으로 기록 지웠다는 뉴스도 본 적 있습니다.신정훈 항해사가 참사 당일 오전 국정원에 전화한 점. 해경보트가 헤메지 않고 바로 선장과 선원들 쪽으로 바로 가서 태운것. 세월호가 침몰하는데 창문을 깨려고 아이들이 의자를 창에 던지는것. 도 본 적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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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노트북을 고치러 서비스센터 대기공간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티비가 총 세대였는데 한 곳에서 갑자기 속보라며 세월호라는 여객선이 침몰하고 있다고 그러더라구요. 놀랐지만 금방 제 차례여서 수리기사님과 마주 앉았습니다. 그러다가 뒷쪽에서 아이고, 소리가 들리길레 돌아봤더니 고등학교 수학여행 가는 길에 사고가 났다고 또 속보가 뜨더라구요. 단순한 여객선 난파 사고가 아니구나 싶어서 계속 티비를 주시했죠. 또 금방 전원 구조라고 뜨길레 친구랑 얼마나 안도하며 "역시 대한민국이라고, 역시 대한민국 해경이라고" 뿌듯했습니다. 그렇게 서비스센터에서 나와 학교로 돌아갔고 수업을 들었어요. 뉴스 속보 알림이 되어 있는 제 핸드폰은 수업 중에 계속 지잉 울려댔죠. 무슨 일이길레, 싶어서 꺼내보았더니 구조자는 아직까지 열 몇 명 뿐이고 배는 거의 가라앉았다는 거였습니다. 순간 아무 생각도 안들고 멍해졌어요. 하지만 수업 중이라 핸드폰을 껐죠. 강의가 끝나고 친구들과 침몰 중이라는 여객선에 대해서 얘기하기 시작해습니다. "전원구조라며?" 우린 모두 그렇게 얘기했었어요. 차마 오보라고 생각 못하고 진도라서 해류가 세니 구조가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싶었어요. 학교가 끝나고 여느 때와 똑같이 친구랑 저녁을 먹고 아무 생각 없이 알바에 갔습니다. 언제나 먼저 다가오셔서 인사를 건네시던 사장님께서 뉴스화면에서 눈을 떼시지 않으셨어요. 완전히 물에 잠겼다는, 어두운 밤바다 화면에 배의 제일 윗부분이 겨우 보일락 말락 하더라구요. 그날은 손님들과 사장님과 세월호 이야기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분위기가 침울했고 마음이 무거웠으며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굴 것 같았어요. 집에 돌아와서는 씻고 침대에 누워서 일어나면 구조자가 늘어나 있기를, 하고 잠에 든 기억이 아직도 시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합니다. 5시 즈음에 잠들었는데 말이죠, 그 다음날은 엄청 일찍 일어나기도 했지요. 바로 뉴스를 살피며 한 명이라도 더. 제발 한 명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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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졸업예정 취준생으로 오전, 오후 수업은 없었습니다. 다만 그 다음주에 있는 필기시험 준비를 위해 중도에서 공부를 할 예정이었습니다.도서관 가기전 평소 아침 같이 인터넷 웹툰이라도 볼 생각으로 네이버에 접속했는데 메인에 세월호 관련 기사가 있었고, 이후 전원 구조라는 기사를 보고 안심하고 학교로 향했습니다. 저녁 6시 전까지 도서관에 쳐박혀 공부하느라 바깥상황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공부를 마무리하고 집에와서 인터넷에 접속해보니 전원구조라는 기사는 000명 실종이라는 기사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놀란마음에 티빙에 접속해서 뉴스속보를 보았는데 말도 안되는 상황에 할말을 잃었습니다. 자취방에서 안타까운마음에 뉴스는 계속 틀어놓고, 혼자 기도하고 슬퍼하다가 할머니랑 통화하고.. 결국에는 울다가 잠들었습니다.그날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은 도대체 그날 무슨일을 한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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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그 시간, 수십명의 학우들과 함께 심리학 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 미래의 상담가를 꿈꾸며 상담가로써 어떤 태도로 상담을 해야 하고 어떤 상담가가 되어야하는지 배우는 날이었습니다. 이른 시각의 수업이라 교수님의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 눈이 감겼던 걸로 기억합니다. 잠이라도 쫓아보자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렸고 그때 처음 접했습니다. 그 때 수업을 듣고 있던 친구들도 조용히 서로에게 그 뉴스를 보여주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잠이 바로 깨버렸고 좀 더 찾아보니 전원 구조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다행이네. 전원 구조 라는 4글자에 안심하며 다른 기사를 찾아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난 후, 친구들과 밥을 먹으러 가는 길에 그것이 우리나라 역사상 최악의 오보 중 하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보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안심시켰던 그 기사는 오보였습니다. 오보라는 사실은 다들 구조됐다며 얘기를 하던 친구들과 저의 입을 막아버렸습니다. 밥을 먹으러 가자는 약속은 깨지고 다들 멍하니 계속 뜨는 기사들을 찾아볼 수 밖에 없었던 날이었습니다. 그 날은 그랬습니다. 잊은 줄 알았는데 기억을 하려고 하니 기억이 쏟아지네요. 국민들은 기억합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합니다. 그 날 무엇을 했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기억합니다. 국민들은 기억하는데 어째서 기억이 안나시나요.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 때 그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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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하고 바쁜 오전을 보냈어요. 점심먹기전 수근수근... 어수선하길래 뭔가해서 뉴스를 확인했고 전원구조라 하여 걱정 없이 점심 먹었어요.그뒤로는 계속.. 악몽 같은 하루였어요.그날의 전날도 그날의 다음날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은 잊혀지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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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3 이었고 체육시간에 선생님께서 알려주셨어요. 전원 구조래! 다행이다. 아 진짜 다행이다.. 했더니만 아니더군요. 야자 끝나고 집에 와서 뉴스를 보는데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이 7시간 기억이 안 날 수가 있나요. 그 날은 비가 와서 유독 더 추운 날이었던 것 까지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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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었어요.일을 잠시 쉬던때였어요. 원룸에 혼자 있었어요. 뉴스속보가 나왔죠. 구했다고 해서 구한줄 알았어요.물질적인 손해야 어쨋건 사람을 구했으니 됐겠지. 하지만 곧 끝날줄 알았던 속보는 끝나지 않았고 그렇게 몇달을 TV우측 상단에 생존자 00명과 하단에 자막으로 연이어 나오는 실종자명단을 봐야만 했습니다. 사람이 갖혀있는 그 거대한 배가 서서히 침몰해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바라보는것은 비현실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차마 보고싶지 않은 장면들고 듣고 싶지 않은 소식들. 그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죄스럽게 고개를 숙인 살아남은 아이들.피난민처럼 누워있는 실종자 가족들.그날을 마치 어제처럼 기억합니다. 왜 그들은 단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나요. 저는 유족도 아니고 실종자 가족도 아닌데도 이렇게 생생하게 그날을 기억합니다. 사라져버린 대통령과 기자회견을 하며 웃던 대변인과 현장에 와서 라면이나 찾던 그들을 잊지 않을겁니다. 아니 잊지못합니다. 그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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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몇 시간 전에 일어난 일도 기억 안날 만큼 기억력이 모자란 나. 그렇지만 그 날...나는 내가 앉은 자리, 나와 함께 이야기 나누던 뉴질랜드에서 온 동료의 걱정스런 눈빛, 그녀의 목소리와 마우스클릭하며 생존자 현황을 살피던 내 손의 떨림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는데.. 그대는 어찌 그런가요... 그 일이 그대에게는 그저 무료한 일상 속에 티끌만큼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그런 사소한 일이었던가요... 그 안타까운 일이.. 아이들이... 그 눈물과 외침들이... 그 날의 그 일분 일초... 내 눈과 마음에 새겨진 그날의 기억은 저 깊은 곳 기억의 사진첩 속에서... 당신이 살아있는 동안은 매일매일 꺼내어질 것입니다. 나는 이 슬픈 기억의 송환을 기꺼이 받아들일 충분한 준비가 되었으니 그대여.. 숨지 말고 나와 이제는 당신의 기억을 끄집어내 주길 바랍니다. 죽기 전 그 기억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통 속에 사라지기전에..저기 저 파란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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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전 그때 배에타고있었던 친구들과 같은나이였던 고2였습니다. 조만간 있을 수학여행을 기대하며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수업을 듣고있었습니다. 한국지리 시간이였습니다. 친구한명이 수업중 "배가 침몰했데" 라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때만해도 전 "모두다 구조했겠지" 라는 생각이였고 전원구조 기사를 보고 다행이네 란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오보임을 알고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구조했던 헬기, 해경함정에서 스피커로 모두 퇴선해달라는 이야기만 했다면 배가 완전히 가라앉기 전까지 좀더 많은 친구들을 살릴수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한마디면 됬을텐데 어째서 그런것조차 하지않았나 지금도 생각하면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기울어지는 배에서 "가만히 있으라" 라는 말을 들으며 그대로 있어야했던 친구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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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단원고 옆 학교인 경안고를 나온 97년생 입니다.그날 여느때와 같이 수업을 듣고 쉬는시간에 소식을 접했습니다.처음엔 애들이 빠졌다길래 걱정을 하다가 잠시 후에 전원 구출이란 기사가 나와 그걸 보고 안심이 되었습니다.......얼마 되지 않아 오보라고 나오더군요.......사실, 그 배에는 제 초등학교,중학교를 같이 지낸 친구가 있었고, 매일 생존자 명단을 확인했지만 친구는 결국 주님의 곁으로 떠났습니다.시간이 지나고 생각할 수록 진실을 피하는 어른들이 원망스럽습니다.특히, 한나라의 원수는 국민을 자식처럼 돌보아야하는데 지금 회피하려고만 하는 이 상황에 어이가 없고 화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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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당시 중2였던 학생이었습니다 . 여느때와 같이 저는 학교에서 생활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 분명히 기억나는데 영어 시간이었습니다. 아침이었는데 기사에 "세월호 침몰"이라는 기사가 뜨기 시작하였습니다. 애들과 어떡해어떡해 하던 저는 곧이어 "전원구조" 라고 써있는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친구들과 함께 "아 놀랬네 야 전원구조래 걱정마 . " 라고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 그렇게 있다가 하교 후 약국에 들렀습니다. "어떡해.." 하는 사람들의 반응. 티비로 고개를 돌렸는데 "실종 몇명 , 사망 몇명 , 생존 몇명 " " 전원구조의 기사는 오류" 라는 뉴스였습니다. 전 그냥 그때 정신이 멍했습니다. 누가 망치로 치고 간 듯한 느낌에 집으로 가 하루 종일 뉴스만 틀고 우는것을 반복했습니다. 저는 그 "전원구조"라고 쓰였던 기사를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 항상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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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친구들과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전원구조라는 말에 와 다행이다라며 자취방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하는데 티비에 전원구조가 아니라는 뉴스가 계속 나왔습니다. 그때부터 모든 단톡방이 세월호 이야기로 가득했습니다. 하루종일 초조하고 맘이아파서 친구들과 그 이야기만 했던걸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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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익어가는 쭈꾸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식당 티브이에서 나오는 뉴스를 흘려들으며. 식당 오기 몇 시간 전 들은 전원 구조라는 뉴스에, 모든 신경을 놓아버리고 멍하니 그 따뜻한 김이 가득한 식당에 앉아, 티브이의 그 아이들을 얘기를 흘려듣고 있었다. 양념이 가득 묻은 쭈꾸미가 빨리 익기를 바라면서. 그 순간 홍보팀이였던 나에게 대표의 문자가 도착했다. 뉴스 확인! 모든 업무 중지. 그제서야 들려왔다. 난 왜 그리 쉽게 안심이라는 감정으로 무신경해졌을까. 난 얼마나 무자비한 사람인가. 유리창에 뜨거운 김이 서려있던 대학로 쭈꾸미 집의 불판을 바라보는 동안, 가장 추웠을 아이들에게. 문자로 뒤늦게 상황을 알아차린 나의 무신경함이 미칠듯이 부끄러워 그동안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못 뱉었다. 기억할께 그리고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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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구조라는 오보가 진실이라 생각하고웃음치료 강사가 단원고 아이들이 모두 구조되었다며 크게 웃자 하였다몇백명이 박장대소를 했다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사실이 아님을 알았다밥을 넘길수가 없었고그 후로 울며 기도하고 촛불을 들었다2년7개월내가 길위에서 싸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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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근무를 하면서 오전에 세월호 침몰 속보를 처음 네이버 메인화면에서 보았습니다.엑셀, PPT 등 각족 서류를 만들던 하루여서 그저 전원 구조라는 기사 한 줄을 지나치듯 읽고 다 구했구나 안심하고 평범한 근무시간을 보냈습니다.12:30 동료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면서 모여서 얘기를 나누면서 전원 구조는 오보였다는 사실과 침몰한 배의 승객들 중 고등학교 수학여행 팀이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서로들 말도 안되는 일이라며 이야기를 전했고황당하고 무섭고 소름이 끼쳤습니다.그리고 저는 평범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세월호 여러분의 소식은 뉴스로 들으면서요. 그날 그 하루의 평범함이 참 미안합니다.. 그래서 이 곳에 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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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낮 12시가 조금 지난 시각에 밖에서 일하다 집에 들어가서 처음 세월호를 보았습니다. 농사를 짓고 있는 저는 그날도 바빠서 점심만 얼른 먹고 다시 일하러 가야했는데 시어머니께서"아까부터 배가 바다에 빠져서 난리가 났다" 하셔서 뉴스를 보게 되었죠.. 배가 뒤집혀 있긴 했어도 주변에 배도 있고, "요즘이 어떤시대인데 금방 구조되겠네 " 라고 생각하곤 다시 일터로 갔었죠.그런데 그날저녁 집에 와서 보니 전혀 이해할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후 2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세월호란 말을 들으면 내자식을 보낸심정으로 가슴이 너무아프고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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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기숙사에서 힘겹게 일어나면서 뉴스를 봤습니다. 그리고 그날 하루 내내 끊임없이 인터넷창을 새로고침하면서 모두 무사히 구조되었다는 한 줄의 소식만을 기다렸습니다. 그 때를 다시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너무 아프고 무기력해집니다. 그리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너무 쉽게 그 사람들을 기억에서 지웠던 것 같습니다. 이번만큼은 그들을 다시 기억하고, 무너진 주권을 외면하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