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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 담임이였다. 그리고 수학여행이 일주일쯤 뒤였고, 그날도 수학여행을 위한 준비사항을 아이들과 점검하고 잔소리를 할 예정이였다. 2교시 쉬는 시간에 처음 소식을 접했다.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대한 민국인데...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다. 시간이 날때마다 포털을 들락거리며 기쁜소식을 기다렸지만,... 하루 종일 뒤집어진 배를 보며 믿지도 않는 신에게 기도했다. 그리고 우리 나라는 분명히 저들을 구할 것이라고, 기술적으로 잘 모르지만, 그렇게 무한한 신뢰를 가졌다. 그러나 그뿐이였다. 그리고 그 뒤로는 울었다. 이유가 없었다. 화나서 울고 또 아이들과 시민들이 불쌍해서 울고.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기도하고 분노하고 울기만 했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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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 정확히 제가 무얼 하고 있었는지 명확하게 기억나진 않습니다.평소처럼 그냥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었겠지요. 커피 마시고 웹서핑하고... 어제 그제 했던 일을 반복하고 있었겠지요.하지만 그 흐릿한 배경속에 뚜렷이 남아 있는 기억은 우리의 아이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 정부와 권력 가진 자들의 무관심속에 하염없이 가라앉고 있는 모습입니다.슬픔이 먼저 찾아 왔고 눈물이 흘렀으며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아무것도 해줄 게 없는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사람이면,,적어도 사람이라면 저와 같은 심정이였을텐데.... 도대체 당신은 사람이긴 한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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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오보를 보고 그대로 동아리 활동을 하고 동아리 활동이 끝나고서야 세월호의 심각성을 알게되었습니다. 아직까지도 많은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국민여러분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그당시 안산 학생들은 아직까지도 주변에서 들리는 세월호 얘기에 상당히 민감하며 실제로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이 심각한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잊지 말아주세요. 안산에서는 참사후 오늘 이시간 까지 계속해서 세월호 7시간, 왜 구조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나 진상규명을 요구해왔지만 일부 국민들은 유가족들의 보상금문제, 세월호 인양 비용 등 본질을 흐리는 싸움으로 저희들을 많이 가슴아프게 했습니다. 이제서라도 모든 국민들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의 심각성을 깨닫고 함께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희 안산 학생들은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할 4월의 슬픔입니다. 국민여러분 끝까지 함꼐해주세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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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연구실에 있었습니다. 조용하고 아무 일 없는 평일 오전이었습니다. 수학여행 가는 아이들을 실은 배가 기울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서 인터넷 뉴스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기울어진 배가 담긴 사진과 기사들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놀라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연구실에 있던 동료들과 함께 이게 웬일이냐며 이야기할 때까지만 해도 그들이 당연히 구조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그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상했던대로 그들이 전원 구조되었다는 뉴스까지 듣고서 학교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점심 먹는 동안에 배가 기울다니 황당하다, 구조되었다니 다행이다 세상에 이런일이 있냐 애들 진짜 놀랐겠다... 라고 동료들과 이야기하며 웃었습니다. 늘 하던 일들을 그날도 계속 하면서 평소와 같은 하루를 보냈습니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구조되었다는 소식은 오보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잠겨가는 배를 보며 울고 있는 단원고 학생 가족의 모습을 뉴스에서 보았습니다. 나오지 못한 아이들, 그리고 그 가족을 생각하며 아무 생각을 할 수가 없던 그 시간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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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까지만 해도 어떡해 하면서도설마 못 구하겠냐는 생각이 있었다.설마가 현실이 되고추운 바닷물에 잠겨있을 아이를 생각하며너무나 간절하게 기도하고 원했다.지금 쓰면서도 눈물이 난다..물이 잠겨올 때 어떤 기분이였을까 아이들도설마 죽을거라고 생각했을까정말 아직도 믿고 싶지가 않다너무 마음이 아프고 못 구해서 미안하다 내 잘못이 아닌데 내잘못 같은 먹먹함이 항상 있다.침몰했다고 했어도 죽었을거라고 생각은 안 하고 희망을 바랬는데 무능한 정부의 대처능력에 답답해하며 눈물지었던 날이였다. 세월호 참사를 여객선 사고로 규정하는 정부와자기 가족이라면 저렇게 대응할 수 있을지, 세월호 가족을 욕하고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된 열사들을 욕하며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고 조장하는 현실은 너무나 서글프게 만든다. 존경받고 위로받아야할 유가족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현실에 암담함을 느낀다.나에게 그날은, 아니 지금까지도 희망은 사라졌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진실을 거짓을 이긴다는 걸 알기에 세월호7시간이 밝혀지고 범죄자들이 법 앞에 평등하길 바라며 마지막 희망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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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저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과 밥을 먹으면서 속보를 봤을때... 영화를 보는 것 같이 현실감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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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전 10시 30분만 해도 전원 구조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 다행이다.하지만 중계화면을 보면서 "아니구나" "왜 구조를 못하고 있을까 왜 구조를 하지 않을까"그날 우리 국가가 이정도 밖에 안되나?참담함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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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아버지가 입원하셔서 대소변을 받아내야하는 형편이었는데 엄마도 아프셔서.제가 대구까지 내려가 3박4일을 병원에 있다가 돌아오는 길이었어요.오후에 집에 와서야 뉴스를 보기시작했는데, 우리 큰아들이랑 같은 나이의 아이들이라 더 가슴이 떨렸더랬어요.그래도 어떻게든 구해내리라 믿었었는데...이렇게 오래도록 고통속에 빠져있게될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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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생생한 전원구조다행이네 하며 지나갔는데 어찌 그 아까운 아이들을 허망하게 보냈는지 진정 ㅁ ㅊ ㄴ 은 뭐한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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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평가받는 날이라 평가준비하고 평가도중에 평가위원에게 배사고가 났는데 희생자는 없다 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그뒤 평가가 끝나고 한시부터 들리는 말도 안되는 소식에 모두 얼음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날의 뉴스를 어디서 어떻게 들었는지 잊을수가 없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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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집안일을 하고 있었어요 아이가 감기로 보육원을 쉬고 있었고 둘이 옹달옹달 보다 일본 뉴스를 보고 알았어요...일본 뉴스에도 이리 빨리 전해지던데...한국의 누구는 어디에 정신팔려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는지요!!! 정말 화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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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저는 연차를 내고 집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다른 가족들이 출근하고 난 뒤 TV를 보다가 속보를 접했습니다. 거실에 드러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났던 게 생각납니다. 그러다 전원구조 오보를 보고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TV를 껐습니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 카톡 단체방이 난리가 나서 전원구조가 오보임을 알고 이때부터 잠들면서까지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날 난 트레이닝복 차림이었고, 속상해서 저녁 약속도 취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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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난 고3이었다. 그리고 그 때 난 교실에 있었다. 친구 휴대폰으로, 탭으로 뉴스를 보고 소식을 접했다. 처음엔 모두가 구조되었다고 해서 "진짜 다행이다"생각했다. 그런데 오보란다. 나보다 한 살 어린 아이들이 바다속에 가라앉았고, 그 수는 304명이나 된다고 한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도 뿐이었다. 하나님 아버지, 제발 저 아이들을 무사히 다 구조해달라고. 제발 애타게 기다리는 부모님의 품으로 돌려달라고. 다이빙 벨을 믿었고, 정부를 믿었고, 국가를 믿었다. 희망은 있다고 믿었다.그런데 국가는 없었다. 아이들을 전력을 다해 구조할 컨트롤 타워는 없었다. 다이빙 벨도 헛된 이야기였다. 304명의 아이들이 별이 되었고, 그 중 9명은 아직도 추운 바닷속에 있다.이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고 행동하는 것이었다. 세월호 팔찌와 리본을 착용하고 다녔고, 세월호 추모식에 다녀와 아이들이 거기선 무섭지 않길, 춥진 않길 바랬다.진실이 침몰되지 않으려면 한 사람이라도 더 기억해야 한다.기억하자, 공감하자, 행동하자.Remember 20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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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된지 알고있다가...그렇게 맘놓고 있다가..그 많은 아이들을 구하지 않고 물속에 잠기게 만든 시간들.. 그후 ..세월호안에 있던 어른과 아이들 그들이 그냥 떠나 가는걸 지켜볼수밖에 없었던 미안함과 가슴아픔..치떨리는 정부의 모능함..그날을 그시간을 어찌 잊겠습니까..지금도 눈물이 마르지않고 흐릅니다.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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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둘째가 수학여행 가던날 안개 속에서 버스를 배웅했지요. 전원구조 오보, 갈팡질팡하는 청와대, 저녁에 등장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대통령을 보며 마음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하루 종일 가라앉는 배를 본 후 매일 악몽으로 잠에서 깨어나 한 생명이라도 구했을까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지만 4월 16일은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 생각만 해도 눈물이 흐릅니다. 아무 것도 믿을 수가 없어서 저희 아이들 수학여행도 보내지 못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떻게 그날을 기억하지 못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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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사실 다른 날과 다를바 없는 날이었습니다. 사무실에서 늘 하던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걸 찾다가 그런 뉴스르 봤습니다. 배가 침몰했고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전원 구조되었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 뉴스에 안도하고 날이 추우니 구조되었어도 많이 힘들었겠다 그렇게 생각했지요.그리고 다시 하던 일을 했습니다. 점심시간에 전원 구조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고 설마 한사람이라도 더...라고 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아픈 기억으로 남게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날, 그 시간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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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300명이 넘게 수장될 줄은 몰랐는데.. 가만히 있으라.. 방송.. 정말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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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 이파트 분양권 명의변경중이었으며 간간히 tv 를통해 세월호 침몰사고 장면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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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생생합니다. 조금 늦은 아침을 식당에서 먹으며커다란 배가 기울어져 있는 뉴스를 보던 것이.저렇게 큰 배가 가라 앉을 것이라고는상상도 하지 못한채 당연히 구조 되겠지...일을 하다가 뭔가 이상해서 뉴스를 보니말도 되지 않는 이상한 상황들의 연속.너무 무기력했고, 너무 슬프고 아팠습니다.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서 시민 회의에 갔고,그곳에서 우리가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그런 마음들이 모여 이후 진상규명 서명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대학로에서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그 길에서 혼자 서명지를 들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벌써 2년이 넘었습니다.2년이라는 시간 동안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아직도 세월호는 바닷속에 있고, 미수습자 9분은 그 바다에 남겨져 있습니다. 진상규명이 명명백백히 되는 그 날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그리고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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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이를 어린이집에도 못보내고 뉴스특보만을 보고 있었습니다.부모된 입장에서 느낄수있는 참담함, 무력한 어른으로써의 자괴감을 느끼며 뉴스만을 보면서 울고 있었어요. 세월호 주변을 서성이기만 하던 해경과 세월호 안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창문을 두드리던 아이들의 손을 잊을수가 없습니다.이제서야 내막이 드러나고있는 대통령의 7시간. 진실은 침몰하지 않아요.꼭 죗값치르세요.반드시 응징받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