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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평소처럼 TV앞에 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돌렸던 채널. 그 화면에는 이제 막 측면을 보이기 시작한 커다란 배가 뒤집혀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엔 "전원 구조"라는 글귀가 또렷이 박혀 있었습니다.그래서 아, 그냥 선박 사고가 났구나, 인명 피해는 없었구나, 채널을 돌렸습니다.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글귀가 바뀌었습니다.수백명이 아직 배 안에 갇혀있다는 끔찍한 사실.믿기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이 지날수록 구조자는 조금씩 많아졌지만,한 명이라도 더 구해달라는 기도가 무색하게 어느 순간 올라가던 숫자는 멈춰버렸습니다.그 날, 그 시간.검색어를 뒤덮고 있던 모든 이들의 염원.그 때의 관심을 다시 찾은 지금.그 날을 잊었던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죄송합니다.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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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를 타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이야 해양사고이니만큼 모두들 고명 조끼를 입고 물에 뛰어들지 않았을까라는생각을 했습니다그러면서 구조대는 그들의 일을 저는 제가 해야할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배고 침몰하는 순간에도 이제막 침몰하고 있으니 대다수 구출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그게 대한민국의 큰 트라우마를 남길 거라곤 생각 못했습니다 그때까지 말이죠 적어도 나라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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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북로로 성수동 가는길전원구조 소식 분명히 들었어요저 친구들 나중에 수학여행 에피소드하나 생기겠다고 웃음 지었는데가슴에 멍이 들었네요"저희는 그 당시 생각이 다 나요. 잊을 수 없고 뼈에 사무치는데 사회지도층이신 고위 공무원께서는 왜 모르고 기억이 안 나는지….”(김관홍 잠수사의 증언.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1차 청문회. 2015년 12월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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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휴학 중이라 늦잠을 자고 일어나 평소처럼 침대 옆에 있는 티비를 켰는데 배가 침몰한 모습을 보고, 심지어 그게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던 배라는 사실을 알고 너무 놀랐습니다. 그래도 전원 구조됐다고 하니 여느때처럼 밥을 먹으면서 할머니와 진짜 인생에 잊지 못할 해프닝이겠다 하며 이야기했던 기억이 납니다.그때 YTN에서 당시 구조된 학생에게 인터뷰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 애가 너무 추웠다고 대답하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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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직원이 일 처리를 잘못하는 바람에 문제가 되서 둘째 임신중에도 밤새서 일하고다음날 새벽같이 회사 가서 일처리중네이트 속보..세월호 침몰..몇분후 전원구조"그래 그렇게 큰 배가 침몰하는데.."라며 또다시 일에 열중..점심시간쯤 "어? 전원 구조라며??"하더니 점점 침몰한다는 한다는 세월호 소식..퇴근하면서 맘이 조마조마 DMB뉴스를 보는데 첫째 아이와 똑같은 나이에 아이가 엄마랑 아빠 오빠를 잃어버렸다고 가족을 찾는다고 .. 아이 나오는데 오빠가 구명조끼까지 벗어줬다라는 얘기에 집까지 오는 1시간 30분 내내 울었습니다..또 몇날 몇일 잠을 제대로 못잤습니다. 에어포켓에서 아이들이 발견되었다라는 소식도 들리길,..그 아이가 엄마 아빠 오빠를 찾았다는 소식이 들리길..결국은 제 소원은 그냥 희망사항뿐이었습니다...진짜 묻고 싶습니다..대통령은 그 7시간에 무엇을했습니까?왜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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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듣기 평가를 하는 날이었다.가끔은 몰래몰래 핸드폰을 내지 않는 날도 있었는데 그 날은 영어듣기평가를 위해 아침에 모두 핸드폰을 제출했다.시험이 끝난 후 쉬는시간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옆 학교 애들이 수학여행 가다가 배가 뒤집혔대.담임 선생님이 문을 열고 들어와 아이들을 자리에 앉혔다. 그 학교에 친구나 형제가 있는 사람이 있니, 몇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아이들은 핸드폰을 받아 뱃 속의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군가는 복도로 나와 울고 누군가는 팽목항에 내려가러 조퇴를 했다. 다 구조됐대, 전원구조라잖아, 걱정하지마. 나는 우는 친구의 어깨를 쓸으며 위로했다. 말 같지도 않은 뉴스를 믿고선. 보충시간에는 내내 핸드폰을 보며 소리없이 울었다. 인터넷의 메인화면에 크게 써져있는 단원고 라는 세 글자를 믿을 수가 없었다. 팽목항 생중계 영상을 보다가 참을 수 없어서 얼굴을 가리고 목소리를 죽여 엉엉 울었다.그 날 저녁에 친구가 카톡을 보내왔다. 자신의 친구 시신을 발견했다고. 친구와 시신이라는 단어의 배열이 믿기지 않을만큼 두려워서 또 울었다. 그 날은 울고, 울고, 또 울다가 잠들었다. 누군가 아이들을 구해줄줄 알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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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대학교에 입학해서 기숙사생활하던 2014년 나의 스무살공강때 동기랑 기숙사 TV로 사고소식을 듣고 걱정되서 수업시간에도 계속 뉴스 찾아보던 기억이 난다처음에는 다 구조 됐다고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계속 보도 정정될 때마다 내 심장이 철렁 했었고 그날 밤에는 구조소식 보려고 TV앞에서 못떠났는데..그날은 뉴스를 틀어놔도 기숙사 학생들이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었다 불과 2년 조금 지난 기억인데그저 일반 시민이었단 나조차도 이렇게 기억이 생생한데그들은 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기억하기 싫은 것이 아닐까왜 죄없는 나의 동생들이, 청춘들이, 가족들이 차가운 바다에서 누군가의 구조를 기다린채 피워보지도 못한 꽃으로 남겨진 채 세상을 떠나야만 했는지그과정에서 어른들은 어떤 노력을 했는지 노력이란 것을 하기는 했는지 샅샅이 밝혀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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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당시에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중이어서 출근해서 컴퓨터로 업무를 보고 있었습니다.업무가 오전에는 많지 않기 때문에 스누라이프를 보던 중, 사고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전원구조, 오보, 걱정, 당시 스누라이프의 분위기가 아직도 생각납니다. 처음 접해보는 사고였기에 7시간동안 저는 구조가 가능할 것으로 믿고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7시간이 지나고도 골든타임, 공기주입, 다이빙벨... 희망이 있는 듯 했지만 결국 오늘까지 와버렸습니다. 대한민국을 희망에서 절망으로 만든 것은 그 불쌍한 아이들이 아니라, 사고 자체가 아니라, 기득권이었다는 것을 오늘에야 깨닫습니다. 나도 그 기득권일 수 있고 나도 희생자가 될 수 있는 이 상황을 이제는 바꿔야합니다. 이 촛불이 두렵다면 당신을 되돌아보고 모든 걸 내려놓으세요. 대한민국의 골든타임이 지나지 않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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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 오키나와에서 학회에 참석중이서 학회 강연을 듣고있었습니다. 강연 중간에 지인으로부터 카톡이 와서 사고가 났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잠깐 뉴스를 검색해보았는데 전원구조라는 소식을 듣고 다행이다라고 안도했던 기억이납니다. 그러고는 다시 강연내용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잠시후 오보였다고 아무도 구출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카톡방에서 쏟아졌고 강연이 끝났을 때쯤 다시 뉴스를 확인했을때는 절망적인 내용의 뉴스만 쏟아졌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국내에 없었지만 뉴스로 소식을 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는데 책임져야할, 책임 질수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대체 어디있었길래 바다건너있는사람보다 상황을 몰랐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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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핸드폰 녹취록을 들었는데 계란냄새가 난다고 말하더라구요. 아이들 휴대폰 조직적으로 기록 지웠다는 뉴스도 본 적 있습니다.신정훈 항해사가 참사 당일 오전 국정원에 전화한 점. 해경보트가 헤메지 않고 바로 선장과 선원들 쪽으로 바로 가서 태운것. 세월호가 침몰하는데 창문을 깨려고 아이들이 의자를 창에 던지는것. 도 본 적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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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노트북을 고치러 서비스센터 대기공간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티비가 총 세대였는데 한 곳에서 갑자기 속보라며 세월호라는 여객선이 침몰하고 있다고 그러더라구요. 놀랐지만 금방 제 차례여서 수리기사님과 마주 앉았습니다. 그러다가 뒷쪽에서 아이고, 소리가 들리길레 돌아봤더니 고등학교 수학여행 가는 길에 사고가 났다고 또 속보가 뜨더라구요. 단순한 여객선 난파 사고가 아니구나 싶어서 계속 티비를 주시했죠. 또 금방 전원 구조라고 뜨길레 친구랑 얼마나 안도하며 "역시 대한민국이라고, 역시 대한민국 해경이라고" 뿌듯했습니다. 그렇게 서비스센터에서 나와 학교로 돌아갔고 수업을 들었어요. 뉴스 속보 알림이 되어 있는 제 핸드폰은 수업 중에 계속 지잉 울려댔죠. 무슨 일이길레, 싶어서 꺼내보았더니 구조자는 아직까지 열 몇 명 뿐이고 배는 거의 가라앉았다는 거였습니다. 순간 아무 생각도 안들고 멍해졌어요. 하지만 수업 중이라 핸드폰을 껐죠. 강의가 끝나고 친구들과 침몰 중이라는 여객선에 대해서 얘기하기 시작해습니다. "전원구조라며?" 우린 모두 그렇게 얘기했었어요. 차마 오보라고 생각 못하고 진도라서 해류가 세니 구조가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싶었어요. 학교가 끝나고 여느 때와 똑같이 친구랑 저녁을 먹고 아무 생각 없이 알바에 갔습니다. 언제나 먼저 다가오셔서 인사를 건네시던 사장님께서 뉴스화면에서 눈을 떼시지 않으셨어요. 완전히 물에 잠겼다는, 어두운 밤바다 화면에 배의 제일 윗부분이 겨우 보일락 말락 하더라구요. 그날은 손님들과 사장님과 세월호 이야기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분위기가 침울했고 마음이 무거웠으며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굴 것 같았어요. 집에 돌아와서는 씻고 침대에 누워서 일어나면 구조자가 늘어나 있기를, 하고 잠에 든 기억이 아직도 시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합니다. 5시 즈음에 잠들었는데 말이죠, 그 다음날은 엄청 일찍 일어나기도 했지요. 바로 뉴스를 살피며 한 명이라도 더. 제발 한 명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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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졸업예정 취준생으로 오전, 오후 수업은 없었습니다. 다만 그 다음주에 있는 필기시험 준비를 위해 중도에서 공부를 할 예정이었습니다.도서관 가기전 평소 아침 같이 인터넷 웹툰이라도 볼 생각으로 네이버에 접속했는데 메인에 세월호 관련 기사가 있었고, 이후 전원 구조라는 기사를 보고 안심하고 학교로 향했습니다. 저녁 6시 전까지 도서관에 쳐박혀 공부하느라 바깥상황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공부를 마무리하고 집에와서 인터넷에 접속해보니 전원구조라는 기사는 000명 실종이라는 기사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놀란마음에 티빙에 접속해서 뉴스속보를 보았는데 말도 안되는 상황에 할말을 잃었습니다. 자취방에서 안타까운마음에 뉴스는 계속 틀어놓고, 혼자 기도하고 슬퍼하다가 할머니랑 통화하고.. 결국에는 울다가 잠들었습니다.그날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은 도대체 그날 무슨일을 한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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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그 시간, 수십명의 학우들과 함께 심리학 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 미래의 상담가를 꿈꾸며 상담가로써 어떤 태도로 상담을 해야 하고 어떤 상담가가 되어야하는지 배우는 날이었습니다. 이른 시각의 수업이라 교수님의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 눈이 감겼던 걸로 기억합니다. 잠이라도 쫓아보자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렸고 그때 처음 접했습니다. 그 때 수업을 듣고 있던 친구들도 조용히 서로에게 그 뉴스를 보여주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잠이 바로 깨버렸고 좀 더 찾아보니 전원 구조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다행이네. 전원 구조 라는 4글자에 안심하며 다른 기사를 찾아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난 후, 친구들과 밥을 먹으러 가는 길에 그것이 우리나라 역사상 최악의 오보 중 하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보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안심시켰던 그 기사는 오보였습니다. 오보라는 사실은 다들 구조됐다며 얘기를 하던 친구들과 저의 입을 막아버렸습니다. 밥을 먹으러 가자는 약속은 깨지고 다들 멍하니 계속 뜨는 기사들을 찾아볼 수 밖에 없었던 날이었습니다. 그 날은 그랬습니다. 잊은 줄 알았는데 기억을 하려고 하니 기억이 쏟아지네요. 국민들은 기억합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합니다. 그 날 무엇을 했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기억합니다. 국민들은 기억하는데 어째서 기억이 안나시나요.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 때 그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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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하고 바쁜 오전을 보냈어요. 점심먹기전 수근수근... 어수선하길래 뭔가해서 뉴스를 확인했고 전원구조라 하여 걱정 없이 점심 먹었어요.그뒤로는 계속.. 악몽 같은 하루였어요.그날의 전날도 그날의 다음날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은 잊혀지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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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3 이었고 체육시간에 선생님께서 알려주셨어요. 전원 구조래! 다행이다. 아 진짜 다행이다.. 했더니만 아니더군요. 야자 끝나고 집에 와서 뉴스를 보는데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이 7시간 기억이 안 날 수가 있나요. 그 날은 비가 와서 유독 더 추운 날이었던 것 까지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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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었어요.일을 잠시 쉬던때였어요. 원룸에 혼자 있었어요. 뉴스속보가 나왔죠. 구했다고 해서 구한줄 알았어요.물질적인 손해야 어쨋건 사람을 구했으니 됐겠지. 하지만 곧 끝날줄 알았던 속보는 끝나지 않았고 그렇게 몇달을 TV우측 상단에 생존자 00명과 하단에 자막으로 연이어 나오는 실종자명단을 봐야만 했습니다. 사람이 갖혀있는 그 거대한 배가 서서히 침몰해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바라보는것은 비현실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차마 보고싶지 않은 장면들고 듣고 싶지 않은 소식들. 그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죄스럽게 고개를 숙인 살아남은 아이들.피난민처럼 누워있는 실종자 가족들.그날을 마치 어제처럼 기억합니다. 왜 그들은 단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나요. 저는 유족도 아니고 실종자 가족도 아닌데도 이렇게 생생하게 그날을 기억합니다. 사라져버린 대통령과 기자회견을 하며 웃던 대변인과 현장에 와서 라면이나 찾던 그들을 잊지 않을겁니다. 아니 잊지못합니다. 그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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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몇 시간 전에 일어난 일도 기억 안날 만큼 기억력이 모자란 나. 그렇지만 그 날...나는 내가 앉은 자리, 나와 함께 이야기 나누던 뉴질랜드에서 온 동료의 걱정스런 눈빛, 그녀의 목소리와 마우스클릭하며 생존자 현황을 살피던 내 손의 떨림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는데.. 그대는 어찌 그런가요... 그 일이 그대에게는 그저 무료한 일상 속에 티끌만큼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그런 사소한 일이었던가요... 그 안타까운 일이.. 아이들이... 그 눈물과 외침들이... 그 날의 그 일분 일초... 내 눈과 마음에 새겨진 그날의 기억은 저 깊은 곳 기억의 사진첩 속에서... 당신이 살아있는 동안은 매일매일 꺼내어질 것입니다. 나는 이 슬픈 기억의 송환을 기꺼이 받아들일 충분한 준비가 되었으니 그대여.. 숨지 말고 나와 이제는 당신의 기억을 끄집어내 주길 바랍니다. 죽기 전 그 기억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통 속에 사라지기전에..저기 저 파란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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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전 그때 배에타고있었던 친구들과 같은나이였던 고2였습니다. 조만간 있을 수학여행을 기대하며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수업을 듣고있었습니다. 한국지리 시간이였습니다. 친구한명이 수업중 "배가 침몰했데" 라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때만해도 전 "모두다 구조했겠지" 라는 생각이였고 전원구조 기사를 보고 다행이네 란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오보임을 알고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구조했던 헬기, 해경함정에서 스피커로 모두 퇴선해달라는 이야기만 했다면 배가 완전히 가라앉기 전까지 좀더 많은 친구들을 살릴수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한마디면 됬을텐데 어째서 그런것조차 하지않았나 지금도 생각하면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기울어지는 배에서 "가만히 있으라" 라는 말을 들으며 그대로 있어야했던 친구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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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단원고 옆 학교인 경안고를 나온 97년생 입니다.그날 여느때와 같이 수업을 듣고 쉬는시간에 소식을 접했습니다.처음엔 애들이 빠졌다길래 걱정을 하다가 잠시 후에 전원 구출이란 기사가 나와 그걸 보고 안심이 되었습니다.......얼마 되지 않아 오보라고 나오더군요.......사실, 그 배에는 제 초등학교,중학교를 같이 지낸 친구가 있었고, 매일 생존자 명단을 확인했지만 친구는 결국 주님의 곁으로 떠났습니다.시간이 지나고 생각할 수록 진실을 피하는 어른들이 원망스럽습니다.특히, 한나라의 원수는 국민을 자식처럼 돌보아야하는데 지금 회피하려고만 하는 이 상황에 어이가 없고 화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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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당시 중2였던 학생이었습니다 . 여느때와 같이 저는 학교에서 생활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 분명히 기억나는데 영어 시간이었습니다. 아침이었는데 기사에 "세월호 침몰"이라는 기사가 뜨기 시작하였습니다. 애들과 어떡해어떡해 하던 저는 곧이어 "전원구조" 라고 써있는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친구들과 함께 "아 놀랬네 야 전원구조래 걱정마 . " 라고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 그렇게 있다가 하교 후 약국에 들렀습니다. "어떡해.." 하는 사람들의 반응. 티비로 고개를 돌렸는데 "실종 몇명 , 사망 몇명 , 생존 몇명 " " 전원구조의 기사는 오류" 라는 뉴스였습니다. 전 그냥 그때 정신이 멍했습니다. 누가 망치로 치고 간 듯한 느낌에 집으로 가 하루 종일 뉴스만 틀고 우는것을 반복했습니다. 저는 그 "전원구조"라고 쓰였던 기사를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 항상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