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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은 수요일이었다. 그 날은 내가 유일하게 2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요일까지 정확히 기억하는 그런 하루다. 세월호가 침몰하기 시작했을 때 아마 고등학교 3학년이었으므로 나는 아침시간에 학교에서 해 주는 영어듣기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어느 쉬는시간에 친구들이 어떤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가다가 배가 침몰했다고 떴다며 어떡하냐는 소리를 들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걱정은 되면서도 당연히 요즘 세상에 금방 구조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그리고 점심시간, 나는 늘 항상 점심시간이되고 한 10분에서 15분이 지나야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그 날도 점심시간이되고 친구들이랑 조금 놀다가 인터넷 뉴스로 그 소식을 제대로 보았었다. "안산의 한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 이라는 걸 보았을 때 조금 심란했지만 설마 싶었다. 우리집과 어릴 때 부터 친했던 동생네 가족이 안산에 살고 있었고 그 동생은 나보다 한 살이 어린, 내 친동생의 친구였기 때문이었는데 그래도 안산에 많은 고등학교 중 그 곳이겠어?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았다. 막연한 불안감은 오후 4시 20분, 종례가 끝나고 수거해갔던 휴대폰을 받고 난 후에 크게 다가왔었다. 나는 늘 항상 종례가 끝나고 방과후 수업을 듣기 전에 SNS를 습관적으로 훑어봤었는데, 들어가자마자 내가 보았던 것은 그 동생의 언니가 올린 글이었다. 어릴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동생이 그 학교 학생으로, 그 배에 올랐다는 사실을 알게되자마자 나도모르게 친구들이 있는 곳에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 날 저녁, 멍때리며 자습하지 못하고 뉴스만 계속해서 보다가 교장선생님께 지적받은 것도 기억나고, 동생과우리 엄마아빠가 나한테 연락와서 저 학교 그아이 다니는 학교 아니냐고 물어봤을 때도 그래도 동생 걱정에 내가 어떻게 아냐며 모른다고 했던 것 조차 기억난다.그 아이는 결국 영영 볼 수가 없다. 내가 수능끝나면 찾아가야지 했던 생각도 이룰 수가 없게 되었다. 친하게 지냈던 그 아이네 언니에게도 , 그 집 부모님께도 힘이되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자칫 잘못하면 더 힘들어하실까봐 되려 연락도 못하고 살고 있다.아직도 그날만 떠올리면 우울하고 울컥하고 화가난다. 내가 친하게 지냈던 동생이 다니는 학교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금방 구조되겠지 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에게조차 너무 증오스럽다.나는 7시간이 아닌 그 날 하룻동안의 기억이. 그 날의 감정조차 아직도 생생한데 어떻게 기억이 안난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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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중학교 2학년 학생입니다.2014년, 저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습니다. 평소와 다르지않게 학원을 마치고 학원셔틀에 올라타고 라디오 방송으로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때는 그냥 사소한 배사고인가보다 했지만 집에와서 뉴스를 보니 정말 참담한 사고현장이었습니다. 따뜻하고 편안한 학원에서 제가 공부를 하고있을동안 언니오빠들은 차디찬 4월의 바닷속에서 누군가를그리워하며, 세상을 그리워하며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이 정말 가슴이 찢어질것같지만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이 더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나에게는 일상이었던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절박하고 외로운 상황속에서 맞이하는 죽음의 시간이었을것이니 이루말할수없는 마음아픈 일이었던것 같습니다 하늘은 왜 세상을향해 아직 피지못한 꽃들을 데려가셨을까요. 아마 하늘에서 천사가 없었나봅니다. 하지만 그들은 왜 이런 생생한 7시간을 기억하지못하고있을까요? 그 7시간은 그들이 숨기려해도 절대 지울수없는 시간이고 우리는 그 7시간을 절대잊지않을것입니다 항상 가슴속에 깊이 기억하고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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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감기로 진료받으러 이비인후과에 갔다가 거기서 세월호 침몰사고 소식을 보고 들었습니다.. 아직도 그장면이 잊혀지질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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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 학기 초 동인천으로 소풍을 갔다 가서 티비도 없고 폰도 안하느라 몰랐는데 집에 가려고 집합을 하니 담임선생님께서 사고가 났다고 알려주셨다 전원 생존이라기에 그런줄 알고 있었지만 티비를 보고 쓰를 찾아보고 라디오를 듣고 충격에 빠져 나도 모르게 눈물이다 꼭 살아 돌아오기를 계속 빌었지만 살아 돌아온 생존자는 적었다 정부는 이 사실을 숨는 모습애 너무화 가났 너무 안타까웠다 얼마나 기대했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추웠을까 얼마나 살었을까 살고싶어 얼마나몸 부림쳤을까 라는ㅅ 생각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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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1~2교시 수업을 마치고 들어와 보니 참사 소식이 교무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설마, 설마...... 제발, 제발...... 하는 심정으로 다음 수업에 들어갔는데, 그 소식을 들은 이후부터 온 종일 멍한 정신으로 수업했었다. 그리고 교사로서 "움직이지 말라"고 동조한듯 가르쳐온 듯한 죄책감도 컸다.나 역시상식이 아닌 것에 대해 묻고 따지는 것을 가르치지 못했다는 데 대해 결과적으로 동조자가 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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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만큼 제 존재가 바스라지는 낙엽처럼 부질없을 때가 있을까요 . 컴퓨터수업시간에 스크린으로 속보를 전해 듣고 카카오톡, 페이스북 ,전화,문자 제가 할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이제는 우리마음에 응어리로만 남게된 친구들에게 , "괜찮은거지?? 어디 다친곳은 없지??"라고 연락했을때, 그 어떤일보다도 간절하게 답장이오기만을 바랬던순간 . 칼로 새긴듯 더이상 피는 나지않지만 흉터로 남아 여전히 아릿합니다. 이어지는 영어듣기시간에 항상 공부에 매달려살던 저였지만 더이상 스피커를통해 나오는 외인의 목소리가 그시간 속의 저에겐 의미없는 일이라 가냘픈 희망에 이 네모진 검은기계만을 붙잡고 울고 기대하고 빌었던 시간들 벌써959일이라는 적지않은시간이 흘렀지만 2014년4월16일 친구들의 차가운 7시간과 무력했던 우리가 보낸 두달간의 진혼곡 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 저는,그리고 우리는 이 악몽을 그저 꿈으로 잊혀지게 두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과 같은 어른이 되고싶지 않으니까. 아이로만 남을 그친구들도 분명 그럴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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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기억나진 않지만 자습시간에 돌아다니시며 말거시던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다.티비로 소식을 접했는지, 스마트폰을 보고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린 모두 분명 한 교실 안에 있었다.나는 히터는 뜨거워 패딩을 벗고 있었고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은 바다속에서 춥게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계속되는 정정 기사에 의아함을 가지며 그냥 그렇게 하루의 나머지 시간이 지나간 것으로 기억한다.그날의 그 기억은 통탄스럽게도 그렇게 지나갔다.다음날이 더욱 선명히 기억난다.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은 한명도 자고있지 않았고 수업시간에 한 선생님은 "나랏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나", "나랏님이 처음부터 잘 들어섰어야 했는데" 라고 말씀하셨다. 나랏님, 아니 "모두들" 무엇을 하고 계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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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머리가아파 조퇴를한날..티비를틀어놓고 죽을먹던중 세월호 참사가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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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 일 매주 그렇듯 오전 10시반에 랩미팅이 있던 날. 그날도 어김없이 아침 여덟시반까지 연구실에가서 그 날 랩미팅을 위한 데이터를 정리했다 열시가 조금 넘어 랩미팅 직전에 속보를 보았다. 랩미팅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랩미팅이 끝나니 11시 반 핸드폰을 켜보니 별 변화없는 상황. 석사 4학기의 하루는 그날 역시 정신이 없었지만 연구실 내의 화제는 온통 세월호. 걱정이 되었지만 에이 설마 하는 마음만 들었다. 그날은 혹시나 누군가 구조되지않을까 기다리는 마음에 티비를 켜고 그 앞에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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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다른 장소로 이동하던 중 긴급 속보가 뜨더니 몇 백 명을 태운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날 수학여행을 가는 학생들도 타 있었다고 했죠. 처음에는 전원 구조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사고가 아닌가 보다 요즘 세상이 어느 세상인데 다 구조됐겠지 하는 생각도 잠시 시간 조금 흐른 후 이것은 오보였다 실종자가 300명이 넘는다.는 뉴스를 보고 하나둘 친구들에게로 부모님께서 전화를 걸어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 들었냐 너희들도 다치지 않게 조심해라 무슨 일이 있다면 전화해라 걱정을 하시기 시작했죠 저는. 부모님의 전화를 받으며 차디찬 배 안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부모님의 목소리조차 들을 수 없는 바다 한가운데서 얼마나 춥고 외롭게 있을까 무능력한 우리나라 조치 덕분에 몇백 명의 부모님들의 마음은 무너지는구나. 하며 실종자 모두가 살아 돌아와 걱정하는 가족들 품에 안기길 빌었죠.국민들에게 신속하고 정확하게 모든 사실을 알려 주세요.7시간.. 짧은 시간 아닙니다. 긴 시간이죠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우리는 기억합니다. 그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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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선생님들께서 사고 소식을 알렸었고, 전원 구조라는 사실까지 들은 이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친구와 학원 가기 전에 편의점에서 불닭볶음면을 먹고 있었고 편의점에 달린 작은 tv에서 뉴스가 나왔다. 전원 구조 사실은 오보이며,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직도 물에 빠져 있다고. 그 날 무슨 정신으로 밥을 끝까지 먹고 학원에 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뉴스를 들었을 때 친구와 눈시울이 붉어진 채 차가운 바다에서 떨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덩달아 손이 떨리던 기억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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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분들과 사무실 근처에서 칼국수를 먹고 있었죠. 전원 구출 이라는 뉴스에 어린학생들이 대피 매뉴얼이나 그런걸 잘 따라줬나 보구나. 기특하네. 라고 생각했어요. 외국엔 그런 일들이 종종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 내가 어리석었다는 걸 깨닫는건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기특한 우리 학생들은 어른들의 말을 잘 따른 죄로......돌아오지 못했으니까요......진짜 제가 생각을 잘못한거죠. 여기는 외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인데...................대한민국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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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는 친구들과 학교수업을 마치고 카페에서 둘러앉아 이런저런 얘기와중에 세월호 뉴스를 접하였고 전원구출 이라는 대문짝만한 뉴스 속보에 그래도 다행이라고 전부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라는 말을 하며 계속 뉴스속보를 보고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전원구출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구하지 못한 아이들과 승객들의 숫자가 더 많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렸고 하루종일 핸드폰만 바라보며 살이있는 아이들의 이야기와 죽여도 시원찮을 선장의 도망 아직도 나오지 못한 아이들과 승객들의 소식에 하루종일 아파했던 그날의 기억이 요즘 자주 깜빡하는 저도 이날을 기억하자 하면 생생히 기억나는데 왜 그분께서는 기억이 나질않으신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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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점심 준비를 하며 들었던 라디오 디제가 세월호가 침몰했지만 전원 구조 되었다는 멘트를 듣고 다행이다 싶었는데직장에 다녀와 접한 저녁뉴스는 황당스러웠다..ㅠㅠ설마 그날 그엄청난 일을 파란지붕의 그들은 대수롭지않은 사고로 치부해버렸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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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일을해서 주방에서 여느때와다름없이 라디오를틀고 일을하는데 긴급속보로 세월호침몰을 들었다가 전원구조라그래서 다행이다 그래도잘구출됐네 하다가 갑자기 실종인원이 많아져서 어떻게어떻게 무슨상황인거야 밥먹으면서도 실시간으로계속뉴스보고 전원구조오보에 화도내고 트위터에확산되는 생존자들 소식 실종자들소식 마지막카톡캡쳐본들보면서 너무슬퍼했던그시간들 얼른구조되길바랬던 그슬펐던그시간을 왜기억하지못할까요 아마평생기억할꺼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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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내려갔던 날.출발하기 전에 뉴스에서 전원구출했다는 내용을 확인하고 다행이다 생각했었지.집에 도착. 안방에 앉아 티비를 보고 있던 아빠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할머니와 할아버지 두분 다 병원에 계셨고, 병원에서도 계속 그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할아버지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이 일에 대해서 어떻게 얘기했을까 잠시 아쉬워했던 기억도 난다.잊을 수 없다. 그 뒤로 뉴스를 챙겨보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으며, 다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리라는 다짐과 함께 지지하는 정당에 입당도 했다. 나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정당이 힘을 낼 수 있도록 나도 주권자로서 좀 더 바른 목소리를 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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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미건조하게 모스크바에서 하루하루 일하고 있던 날 중에 그 날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 것은 한 달에 한 번 있던 은행 외근날이었기 때문입니다.한국과 시차는 6시간, 그 날 따라 너무 바빠서 친구들 연락도 받지 못하고 은행에 겨우 도착해 쇼파에 앉아 그때까지도 입어야했던 두꺼운 외투를 벗는데, 맞은편 티비 뉴스에서 러시아어가 아닌 한국어가 나왔습니다.망망대해, 가라앉는 배. 넋놓고 뉴스만 봤던 것 같아요. 모스크바에서 꿀잠을 자고 있을 때, 아이들은 아마 기울어져가는 배와 사투를 벌였을겁니다. 헬스장 티비에서도 뉴스를 봤어요. 인터넷으로 한국 뉴스를 금방 볼 수 있지만, 그래도 러시아에서 의식적으로라도 러시아에서 방영되는 이 처참한 뉴스를 보고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시간이 이렇게 흐르고 저는 한국에 있습니다. 잊지말아야지 하면서 희미해지는게 부끄러워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기억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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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여느때와 다름없이 병원 실습을 하던날이었어요. 오전 근무를 했던 날이라 실습 중 점심을 먹으러 나왔더니 친구들이 수학여행을 갔던 아이들이 사고가 났다고 근데 다들 구출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 다행이다.. 사고났던 아이들 충격받았었겠네.. 괜찮으려나.. 하고 남은 실습하러 들어갔었죠.근데 실습 끝나고 나와서 인터넷을 하는데 전원 구출이 아니라고하더군요.. 다음날 병원가서도 의사쌤 간호사쌤들이랑 어떡하냐고 다들 같이 걱정하고.. 그 후로 계속 실습하면서 낮에는 실습, 밤에는 뉴스나 팽목항 생중계 보는 생활을 반복했던거 같아요... 근데 2년이 지난 지금까지 해결된 게 아무것도 없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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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같이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인터넷을 통해 본 세월호 소식... 처음에 많이 놀랐지만 배가 완전히 침몰된 상황이 아니였고... 구조작업이 시작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렸습니다.얼마 있지 않아 전원 구조라는 기사가 떴고, 회사 사람들 모두 너무 다행이다 하며 안심했었는데 그게 오보일 줄은 꿈에도 생각못했습니다.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2014년 4월 16일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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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마침 운동을 하러 가는 날이라, 오전에 헬스장에 갔었습니다. 가는 길에 커피도 한 잔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장을 봐야겠다 생각했던 평범한 날. 그런데 헬스장에 갔더니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운동도 하지 않고 티비 앞에 서서 헬스장 관장님과 같이 뉴스만 보다가 집에 돌아왔습니다. 전원 구조됐다는 오보를 보고, 그래도 다들 살아 있으니 됐다면서 관장님과 떠들고 웃었습니다. 돌아오면서 카페에 들러 여유롭게 커피도 한잔 마셨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보니 난리가 났더군요. 배는 다 침몰했어도 아직 선체 안에 에어포켓이 있으니 생존자가 있을 거라는, 절규에 가까운 희망에 매달린 채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인터넷만 들락거리며 구조소식을 기다렸지만, 기다리던 소식은 그날도, 다음날도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