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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전내 마음 졸이며 뉴스만 뒤적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전원 구조라는 보도가 준 안일한 안도감에 모든것을 덮어버렸던 걸까요. 오보란 걸 알고나서도 , 지난 2 년간 마음이 찢겨진 이들을 알면서도 모른듯 살아온 나 또한 공범입니다. 나만은 불의에 살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스스로 잊은 기억은 이제와 들춰보니 비겁함만 가득합니다.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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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독서실에서 시험공부를 하던 도중인터넷 뉴스로 소식을 하였고, "전원구조"라는 소식에 다행이네... 라며놀란 맘을 쓸어내렸고, 또 시간이 지난 뒤에는"전원 구조"라는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말에분노하였습니다.하루종일 뉴스를 보았고구조소식을 기다렸으나...돌아오는건 희생자가족분들의 분노와절규 뿐이었습니다.그날 기억이 생생합니다.평범하게 뉴스를 보던 저의 기억속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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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은 저에게는 아마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날일 것입니다. 2006년 4월 15일에 시작한 연애는 8년 후인 2014년 4월 15일에 끝이 났고 슬픔에 잠길 새도 없이 세월호의 많은 분들이 차가운 바다 속에 잠겨버린 그 날을 어찌 잊겠습니까.헤어짐의 아픔을 느끼고 있는 것조차 죄스럽고 미안하고 창피해서 그 때부터 저의 시간은 멈춰 있습니다. 제가 가입한 한 커뮤니티 사이트의 한 분이 세월호의 사진과 함께 아직 출발전이라고 남긴 글을 이미 가라앉고 있을 때야 보고 제발 무사히 돌아오라고 많이 울었습니다.그리고 여전히 저는 슬픔에 잠겨 시간이 멈춰 있습니다.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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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오전인가 점심식사중 일이 없어서 인터넷 뉴스보다가 뭔배가 침몰했고 사상자는 없다는거보고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었습니다.그리고 퇴근길에 버스에서 한숨자고 일어나서 핸드폰으로 뉴스보다가 사실을 알게되었죠그리고 집에도착해서 티비로 뉴스를 보면서 사건의 진행을 알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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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평범한 대학원생입니다.그날도 다를 것 없는 하루였습니다.아침에 고시촌 식당에서 친구와 밥을 먹으며 TV를 보았습니다.하지만 곧 전원 구조라는 소식도 함께 TV로 보았습니다. 아, 다행하게도 별 일이 없구나. 해경 여러분 참 고생하셨고, 위기 관리가 잘 되었구나라는 생각만 하고 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그리고 평소처럼 연구실에 가서 논문을 읽고, 공부를 했습니다.그리고 집에 돌아가 TV를 켰는데, 학생들이 배 안에 있고, 아직 구조중이라는 방송이 나왔습니다.너무나 어이가 없고, 화가 나고, 슬프고 뭐라 한 마디로 형용하기 힘든 감정을 느꼈습니다.무고한 아이들이 많이 추웠고, 무서웠고, 힘들었을텐데...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슬픔과 언론에 대한 불신과 분노, 무책임한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허탈함과 실망 등의 감정이 너무나 크게 다가왔습니다.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모든 관심은 뉴스와 기사였고, 결국 안타깝게도 많은 아이들이 다시 우리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그 날이 어제처럼 기억이 생생합니다.그 날만 생각하면, 아이들이 찍은 영상과, 아이들의 부모님들께서 오열하는 장면 등이 생각 나서 더욱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슬픔이 가득해 집니다.이렇게 오래 진실을 요구하는 중, 그 때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최근의 기사들을 보며 언론이 모처럼의 역할을 잘 해주고 있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조그마한 촛불이라도 보태어, 돌아올 수 없는 아이들을 위로하고자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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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낮잠좀 잘려하다가 뽐뿌 쳐다보고 있다가 제주도 가는 배가 뒤집어졌다는 소식을 보고는 티비를 틀었습니다 초반에 제가티비로본기억은 배가 한쪽으로 넘어져있던 상황에 세월호라고불린다는것도 티비통해들었고세월호옆엤 작은배가 많이 잡아서 10척정도 보였습니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구조하는 모습을보는데1~2시간 있으니 아이들 구조다했다라는 소식을 티비로 들었습니다의문은 들더라구요 10척정도되는배에 수학여행이라고간 아이들을 다 태울수있나???아니나다를까 오보더라구요그러다 제아이들 학교마치고와서 우리집아이들 돌보다가 국술원이라는 학원보내고 티비에서 떨어질수없었네요제눈엔 배가 다 가라안고있는데 구조라고하는 행동이 이상했어요 사람이 그렇게 많이 탔는데 구조선은 얼마되지도않고 가까이사는 어부님들도 힘을 합해서 애들을 구조하시더라구요 구조선이라고 아주 큰배가 세월호 옆에서 도움줄지 알았는데 큰배는 구경도 할수없었고요 헬리콥터도 몇대가지도 않았어요 아이들을 먼저 구해애하는게 티비에서는 배조정하는 우두머리구하고 있는거 봤고요 어른을 우선으로 먼저 구하시더라구요 티비에나온 화면으로 봤을때 학부모님들 놀라서 팽목항으로 출발하는것도 보았고 구조된아이들은 병원으로 이송하는것도 보았습니다 그중에 엄마아빠를 동시에 잃은7살정도된 여자아이를 티비에서 방송한 걸 본기억도나고요 수학여행간 학부모님의 비통에잠긴 모습을 아직까지 잊지 못하네요 저역시 학부모라 가슴이 찢어지는 맘으로 티비를 보고 있었어요 그날제가 뭐했는지 사실만적을께요 제가 본것만적을께요 그날 전 잊지 못합니다제 기억이도움될지 모르지만 그날7시간은 제 머리속에 이렇게 기억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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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하루는 정말 또렷이 생각납니다. 대학교 신입생 중간고사를 준비하느라 기숙사 제 책상에서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노트북으로 처음 기사를 접하게 되었는데, 그날부터 계속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제가 그 배 안에 있으면.. 계속 상상했던 것 같아요. 마음이 너무 저릿하면서 정말 공포스러웠습니다. 물이 점차 차오르고.. 제 목이 죄어오는 느낌이었어요.. 가족들과 전화하면서 구조를 기도하고 바랬지만.. 그 동생들은 도대체 무슨 죄가 있었을까요... 이 나라의 국민이라면 과연 그 하루를 잊을 수 있을까요.. 너무나 통탄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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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친구와 약속이 있었습니다.함께 취업 준비를 하는 친구와 만나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를 풀기로 했고약속 장소로 가는 버스 안에서세월호 소식을 접했습니다.너무 걱정됐지만 전원 구조 소식을 듣고그 사실을 믿었고 믿고 싶었습니다.친구와 저는 만나자마자세월호 뉴스 봤냐고정말 걱정했는데 전원 구조돼서 다행이라고짧게 이야기를 나누고취업으로 받으 스트레스를수다로 한참 동안 풀었습니다.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배가 뒤집히는 영상을 보게 됐고그 안에 몇 백 명의 사람이 아직 있다는 걸알게 됐을 때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버스에서 뉴스 소식을 접하고 눈물이 난 건 제 인생 최초의 일이었습니다.그리고 그날은 제 막내동생이수학여행에서 돌아온 날이었습니다.역사 책에서 많이 봤던 일들은역사책 속 한 페이지였습니다.그런데 세월호는 제가 직접 목격했습니다.적어도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지키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믿음.모든 생명을 지키기지는 못하더라도지키려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믿음이산산이 부서져버렸습니다.우리 사회 시스템 어딘가가 고장 버렸고어디가 왜 어떻게 어떤 사람들 때문에고장났는지 알아야 합니다.2주 전 처음 촛불을 들고광장에 갔습니다.제일 먼저 든 생각은2014년 4월 16일 그날 이후에 바로촛불을 들고나가지 않았을까라는 후회였습니다.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게 만든 것들은 무엇인지대통령은 7시간 동안 뭘 했는지끝까지 물을 겁니다.세월호 철저한 진상 규명 이잘못된 세상을 바꾸는 시작이고그 간절한 마음은 쉽게 꺼지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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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세월호사건이 터지기전 까지 가족들과함께 곱창가게를 운영하고있었습니다. 요식업자체가 힘든일이기에 , 새벽1시까지 뒷정리 및 내일을 위해 잠들어있던 7시간이 되어있겠군요.눈을 뜨고 핸드폰을 집어들었때는 승객분들을 다 구했다는 소식을접해 안도감을 느끼면서 가게에서 일할 준비를 하고있었습니다.근데 5분이 지나지않아 오보였다는 소식과함께 저는 머리에 헤머를 맞은거처럼 느껴졌어요.그리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구요.지금도 2014년4월16일을 잊을수없는,아주많이 슬픔 날입니다.박근혜 대통령님 당신의 7시간은 무엇이였는지 궁금합니다. 꼭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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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이어서 친구들과 파티중이었습니다.신나게 놀고 집에 들어와보니 뉴스에서 쉼없이 보도가 쏟아지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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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저는 호주인 친구가 한국에서 입양한 십대의 딸과 한국방문하여 오후에 만나기로 약속하고순천에서 서울로 차를 몰고 가던 중이었습니다. 정신없이 가족들 출근시키고 오전 9시쯤 출발 후 10시 쯤 오수 휴게소에 들렀다가 소식을 들었고 그 후 서울까지 가는 도중 거의 모든 휴게소마다 차를 멈추고 휴대폰 인터넷을 확인했습니다. 눈물이 앞을가려 운전하기도 힘들었고 차를 멈출 때마다 제 인생 처음 오열과 통곡을 했습니다. 차안이고 혼자있는데도 혹시 소리를 내면 구조에 방해될까봐 소리를 삼켰습니다. 보통 4시간 걸리는 거리인데 서울 경복궁에 도착해보니 7시간이 걸려 도착했습니다.. 호주인 친구의 오랫동안 준비한 한국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아 차 안에서 두어 시간 호흡을 가다듬고 저녁 6시 북촌의 한 식당에서 그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호주인 여성이 호주에서 남편이 전화했다며 먼저 이야기를 꺼내더군요. "나도 엄마로서.... 나도 십대 엄마인데..." 우리는 같이 울었습니다. 그 다음 날 2016년 4월 17일 잠이 깨어 맞은 아침. 세상에 태어나 가장 슬프고 막막했던 그 아침의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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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업무 일정이 기록되어 있어야할 한 나라의 대통령은, 대재난이 발생한 2014년 4월 16일 당시 무려 7시간 동안의 행적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기억합니다. 학부 마지막 학년을 시작한 봄학기 중간고사 기간, 전 날 한 과목 시험을 마치고 다음 과목을 준비하기 위해 피곤한 상태로 몸을 일으켰습니다. 다행히 오후에 수업이 있어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하려던 차에, 틀어놓은 TV에서 처음으로 세월호 사고 관련 소식을 들었습니다. 소식을 접하고 놀란 마음으로 나갈 준비를 하였는데, 학생들 전원 구조라는 소식을 다시 접해 안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안도도 잠시, 이어지는 뉴스들은 수백명에 이르는 어린 학생들이 침몰해가는 배에 갇혀 구조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한창 어린 학생들이, 그것도 정말 많은 수의 학생들이 차가운 바다 속에 대책없이 갇혀있다는 소식에 많이 놀라고 먹먹한 마음이 가득했습니다.그 후 학교에 가 동아리 활동 준비를 하고, 수업 준비를 하고, 저녁 팀플까지 마친 후 집에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TV를 켜놓고 구조소식을 내내 기다렸지만, 끝내 기다리던 소식은 듣지 못하였고, 참담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네, 저는 기억납니다. 늦은 아침을 먹다 말고 뉴스 소식에 손가락이 떨려왔던 그 날이요. 아직도 생생합니다. 정치인분들, 의료관계자분들, 정부 관계자분들, 그리고 대통령님 정녕 기억이 나지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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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가 없어 대신 인터넷으로 일하면서 뉴스를 듣고 있었는데 속보가 떴습니다.아무래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이다 보니 수학여행 간 학생들이 탄 배가 사고 났다는 소식에 더 놀랐었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모두 구조됐다는 소식에 다시 일을 하고 있었어요.그리고 얼마 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날 차를 몰로 출근을 하면서도, 가서 아이들을 마주하고 수업을 하면서도 계속 멍해 있었습니다. 제발 기적이란 게 있어주길 얼마나 빌었는지 모르겠네요ㅠㅠㅠㅠ가슴을 짓누르는 그 돌덩이를, 2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도 다 풀어내지 못해서 희생자 분들께 정말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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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도 입사의 기쁨을 잊지 못하던 시절의 연수원이었습니다. 교육을 받으면서 갑작스럽게 모바일 뉴스를 통해 사고 소식을 접했고, 점심을 먹으러 나올 때쯤엔 전원 구조의 오보를 접했으며, 점심을 다 먹고 숙소에 쉬러 들어가니 수많은 분들의 실종 소식을 접했습니다. 어떻게 그 날을 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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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출근해서 언제나 그랬듯이 대한민국이 간밤에 안녕했는지 인터넷뉴스검색을 했습니다.9시 23분 경부터 속보를 접했던거 같습니다. 회사 동료들에게 알렸지만 모두들 보면서 믿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점점더 기울어가는 세월호...30도 이상 기울어가는데도 해경은 커녕 헬기조차도 급파되지 않았고, 탈출을 위해 갑판위로 나와있어야할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목이 메여서 꾸역꾸역 간신히 점심식사를 마칠 무렵...전원구조???말도 안되는 오보를 국민의 방송 KBS에서 하더군요.400여명이 넘게 탄, 3분의 1이 기울어 가라앉은 유람선에서 1~2시간안에 전원구조????? 전....그날을 기억합니다.슈퍼맨이라도 되서 두손 번쩍 들어올릴 수만 있다면...정말 있다면 아메리칸 히어로들이 나타나주길....하지만 아무도 그럴 수 없음에 좌절해야했고 절망 했습니다.전 ...그날을 기억합니다.그날 그 시간부터 눈물이 마르지 않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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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첨엔 단순 사건 사고로 생각했지만방송국으로 빗발치는 제보 전화와 당시 긴급상황으로 정신이 없었어요. 허위제보 부터 팽목항으로 파견지원 얘기와해당지역이 아닌 곳의 방송국이었지만아직도 그날의 일은 생생합니다게다가 그 날은 동생 생일이었기에.아이들과 나이차가 비슷한 동생이었기에동생의 케이크를 사고서 잡으로 가는 그 길에케이크가 정말. 무겁게 느껴졌던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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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지루하게 이어지던 회의를 끝내고회의실 밖을 나오니 사무실이 묘하게 웅성거렸다여객선이 침몰했다고그런데 곧 전원구조 되었다고그걸로 끝인줄 알았다하지만 그 이후로도 며칠간 하루종일 뉴스를 놓지못하고 눈물지어야 했으며2년 반이 훌쩍 넘은 오늘에까지 이렇게 마음 앓고 고통스러워 하고있을줄은 몰랐다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그러나 끝날때까지 놓지 않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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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병으로 군복무 중에 주변 군무원과 장교들이 인터넷을 보고 전해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전원 구조 소식을 들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오보라는 소식을 듣고 매우 걱정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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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구조 오보를 보고 가끔있는 사고였나보다 했으나한두시간 후쯤 뉴스를 보니 너무 답답한 뉴스만 나오더군요.그때의 느낌과 감정과 상황을기억합니다.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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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름없이 출근을 했습니다. 아침마다 폰으로 인터넷 뉴스를 챙겨보곤 했는데 그 날도 마찬가지였어요. 제가 일하던 팀에서 제가 가장 먼저 세월호 소식을 들었고 팀원들에게 "수학여행 가던 배가 침몰했는데 다 구조됐대요. 어휴 순간 타이타닉 생각이 났네." 라고 말하고는 오전 업무를 계속하고있었는데 전원 구조됐다는 게 오보라는 걸 듣고 타이타닉 얘기를 한 제 자신이 너무 미안했습니다. 그래도 다 구조가 될거라 믿었는데.....다람쥐 챗바퀴 도는 평소와 다를 것이 없는 하루였지만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아직 어제처럼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