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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 날을 생각하는 건 정말 힘이 듭니다. 짙고 짙은 깊은 바다를 바라만 봐도 아이들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지며 슬픔이 밀려옵니다.2014년 4월 16일 런던에 살 때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원구조"란 뉴스 자막 정확히 보았구요. 그래서 한숨돌렸는데, 그게 아니였다고 소식을 들으면서 분노를 어떻게 삭힐 수가 없었습니다. 내 자식이 소중하면 남의 자식도 소중한 거 아닌가요? 그 예쁜 아이들 구조는 커넝 아무것도 하지 않은 우리 어른들, 무슨 말로 사과가 되겠습니다. 아이들을 잃은 가족분들께 고개 숙여 사과드리고 위로해드리고 싶습니다. 지금은 귀국해서 바다가 쉽게 보이는 곳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바다를 쳐다보는 것도 아이들 생각에 힘들 때가 많습니다. 오래오래 기억하겠습니다. 기억하는 것으로 유가족분들께 작은 위로가 되셨으면 합니다.아이들아, 너희들이 느꼈을 두려움, 생각만해도 가슴아프고 슬프구나. 우리를 용서하지 말아라. 너무너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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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저문다. 노을이 잠긴다. 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가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한밤중에 바람이 분다. 바람 속에서 애기가 웃는다. 애기는 방 속을 들여다 본다. 들창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 먼 들길을 애기가 간다. 맨발 벗은 애기가 울면서 간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림자마저 아른거린다. <은수저>, 김광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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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전체가 침체되어있었던 그 날을 기억합니다. 늦게 뉴스를 접한 탓에 황망한 상태로 버스안에서 트위터와 뉴스를 읽으며 누구보다도 빨리 "좋은 소식"을 찾아내려고 애썼습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 내내 울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을 기억합니다. 좀 더 나은 현실을 만들어가겠다는 목표로 대학원생이 되었음에도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몸을 떨고 눈물을 삼켰던 것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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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쉬는 시간이었다. 습관처럼 휴대폰을 열어 포털사이트를 들어갔다. 여객선 한 척이 사고가 났다는 기사가 떴다. 배 안에 있던 사람은 전원 구조됐다고 후속 기사가 나왔다. 친구에게 이야기하니, "그래?" "이게 뭔 일이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망망대해도 아니고, 우리나라 바다에 배가 가라앉는 다는 말에 나도 친구들도 설마 그곳에서 사람이 죽을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자조적으로 "이 나라는 답이 없어"라고 말하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내게 위기가 닥쳤을 때 국가가 최선을 다해 나를 구해줄 거라고 믿고있었다. 그리고 그들도 예외는 아닐거라고 생각했겠지. 그 때의 나는 그만큼 어리석고 순진했다.아직 많은 사람이 그 배 안에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건, 처음 기사를 접한 그 쉬는시간 이후로부터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학교는, 우리 교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무거운 공기만이 감돌았다. 일부는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날, 평소처럼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뉴스를 보며, 오보가 아닌 그 기사가 오보이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그 순간의 긴장과 정적, 나는 아직도 그 모든것이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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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내가 다른 회사에서 파견근무 하는 날이라 우리사무실 일에서 연락오는 일도 처리 해야되서 컴퓨터모니터를. 계속보면서 일을 하게 되었다.9시부터 하루종일 모니터로 생중계 되는 그날을 .어떻게 구조자가 그렇게 없을수가 있는지 ? 사람을 구하고자는 행동이 저렇게 없지?시종일관 이상해 ?라고 하며 봤기에 잊을수가 없는 날이다.그래서 더 궁금하고 알아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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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4.16아들학교 음악콩쿨예선이열리던 날예선장소 내부는 공개안하지만드가는거 복도에서 보는 건 괜찮다해서 학교에 가기로 한 아침뉴스는 세월호소식을 전했다 전원구조됐다했고부모들이 진도로 가고있다고했으니맘을 놓았다학교로 가던 버스안에서무심코 인터넷기사를 봤더니전원구조는 오보란다버스에서 내려만난 다른 엄마에게전원구조가 오보였으니 어쩌냐고말했고그래도 어캐되지않을까근데 아님 어쩌냐그런 얘길했다예선이 치러지는 동안아들이 줄을 잘서는지긴장하는건 아닌지보면서도구조는 잘되는지 신경이 쓰였다그애들은 죽어가고있었을텐데나는 고작 학교콩쿨에서아들홧팅을 외쳤다니죄인이된 기분이었다그날일은아침부터 오후까지너무 생생하다하루종일 불안했고입이 바싹말라쇠맛이 났다그런데기억이 안나신단다그 기억을 못하신다면중증치매는 아니라도중증도치매는 되시겠다사무처리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상태로성년후견받으셔야겠고의사같은 전문직을 영위할수는 없으시겠다본인이 전문직이면나머지 사람은 다 바보인줄 아는건가그런 거짓말에 속는댁들이 생각하는그 바보같은 "우민"은 존재하지 않는다최소한 그럴듯하게 해라정말 기억이 안난다면당장 의사 그만두고성년후견신청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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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고라서 유비쿼터스라는 시간이있었는데 1교시부터3교시까지였고 수업중 몰래 인터냇으로 딴짓을 하다가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친구한테도 기사를 보라고 알려서 갑자기 html하다말고 기사를 보았습니다. 전원 구조했다는 속보가 뜬 후에야 다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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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나는 재수학원에 있었다.여느날과 다름없이 새벽에 나와 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었다.핸드폰을 포함한 모든 전자기기를 냈기에 우리는 누구하나 그 끔찍한 소식을 몰랐다.누구하나 알려주지 않았고, 우리는 저녁시간이 되어서야 알수있었다..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얘기를 해주시던 사감선생님의 얼굴 그시간이후 친구와 나누던 대화까지도 기억이난다...그들은 기억하지않으려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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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또래 친구들처럼 나 또한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가기로 한지 몇주가 채 남지 않았었다 .친구들과의 즐거운 여행으로 계획 되었고 학창 시절 마지막 수학여행이기에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 그날만을 기다렸고 설레어 했다.수학여행 가기 몇 주 전 우리는 중간고사 앞두고 모두 번호 순서대로 일렬로 자리배치를 맞춰 자습을 하고 있었다.스마트폰이 보급화 되고 인터넷 검색을 매일 하는 우리는 그날도 지루한 시험공부에 잠깐 머리 식힌다는 이유로 인터넷에 들어가 당연스럽게 인기검색어를 눌러보았다.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검색어는 단원고, 세월호 침몰, 수학여행을 떠난 내 친구들이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그런데 그 소식을 듣고 벌컥 놀라 한 아이가 소리치며 알렸지만 곧 몇 분 뒤엔 다른 언론의 기사로 전원구조라는 속보를 읽었고 모두 안전하게 전원구조가 되었다는 말에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안심했다.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사실이 아니었다.왜 내 친구들은 그 차가운 바다속에 있어야 했을까.처음부터 끝까지 의심이 간다. 배가 침몰,아니 날씨가 안좋은데 오직 세월호만 출항을 한 것 부터 배가 가라 앉는 골든타임. 7시간의 모든 일들.. 뉴스를 보며 맘 졸여 했고 답답해했다.. 왜 아직도 아무것도 변한게 없고 밝혀진게 없는지 지금 현재도 의심 스럽다.7시간동안 무엇을 했길래. 아무런 지시 없이 내 친구들의 살려달라는 외침을 져버리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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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가 없다. 회사에서 긴급 속보에 의지하며 어떡하냐며 속을 태웠었다. 전원구조 오보에 다행이라 깊은 숨으로 몸을 다독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티비 속에 아는 얼굴이 보입니다. 단원고에서 부모님을 싣고 진도로 내려가는 버스에 긴급하게 오르는 ...이대로라면 국가의 원수가 기억하는 것이 두려운 진실을 은폐하는 ...이대로라면 우리모두가 세월호에 올라타 있는 것이라고 ...다음차례는 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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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수술하고 회복중이였다병원 침대에 누워 소식을 접했다걱정이 되어 티비를 끌수없었고전원 구조 소식에 마음 놓고 퇴원해서집에왔다몸이 아파 자고 일어나니 해가 져있었고남편이 말했다 전원 구조된게 아니래하염없이 눈물이 났다그때 수술한 자국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그때의 슬펐던 기억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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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구조됐다고해서 얼마나안심했었는데 많은사람들이 생명을잃은것이 너무슬픈일인데 대통령이란사람이 어떻게이럴수있는지 진실은밝혀질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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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출근을 했덛 날 뉴스를 보고 살아있기를 기도했지만... 계속 침몰되고 있다는 것을 믿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밤 아무것도 어떤것도 할수 없던 자신이. 아무것도 못하던 정부가 원망스러웠고 잠못이루던 밤으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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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하게 기억은 나지 않는다.하지만 기억하지 않으려해도 기억이 있는건 그때당시에 내 또래 아이들이 한순간에 무기력하게죽어나갔다는게 너무 마음이 아팠고 뭐라 말도 설명을 할 수 없을만큼 마음 한켠이 아려왔다는 것이다밤새내 술을 마시며 놀고있었고, 아침일찍 진도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그 후 진도체육관으로가서 봉사활동을 하려고 했지만, 실종자부모님들이 자식들 또래가 봉사활동을하면 자식생각나서 마음이 안좋으시다며 어린친구들의 봉사활동을 거부하셨다...그래도 따뜻하게 너무 잘 대해주셨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에 체육관2층에서 암담한 그 광경을 2시간가량 지켜보다가 갈 수 밖에 없었다생생하게 지나가진 않는다. 다만, 내가 무얼했고 어떤마음이었는지는 전 국민 모두가 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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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그때 고3이었습니다. 학교의 규정에 따라 휴대폰은 끈채 하루를 보냈고 야간 자율학습이 끝난 뒤 옆반 친구를 기다리며 인터넷 기사를 훑는 순간 그 순간이 아직도 뚜렷하게 기억납니다200명이 넘는 학생들의 실종 ... 약 12시간전에 벌어진 사건이었지만 12시간이 지나서야 안 제가 너무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그뒤로 매일 뉴스를 보며 눈물을 흘렸던 그 때를 , 수능특강 영어지문에 나온 타이타닉 지문을 보며 눈물을 흘렸던 그 때를 절대 잊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2년하고도 더 긴 시간이 지났지만 잊지 않았습니다 평생 잊지 않을겁니다 대통령의 그날의 7시간... 꼭 밝혀져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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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회식 중이었는데 회사 동료들 모두 충격 받은 나머지 식사도 잊조 다들 뉴스만 보고 있었어요. 전원 구조됏다는 뉴스가 되퓰이 되자 그제서야 한시름 놓고 식사하기 시작했는데..... 진짜 이럴 수는 없습니다.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 원한 풀어줘야 해요. 진실을 밝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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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똑같았어요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버스를 타고 걸어갔죠.. 회사를 가기 위해서죠..정확한 시간은 기억나진 않지만 인터넷에 세월호 침몰 기사를 봤어요..별로 대수롭지 않았어요... 배는 잠겨있지만 곧 구조하러 가겠지...그 당시에는 몇 명의 사람이 타고 있었는지, 그 배가 어느정도 규모 였는지도 짐작을 못했어요점심을 먹으러 1층 식당으로 갔어요.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고등어 김치찜을 먹었어요. 식당에 조그마한 텔레비전에 세월호가 거의 잠겨 있는게 보였어요.. 그 당시 구하러 오겠지.. 구하러.. 아이들이 그렇게 몇날 몇일을 바닷속에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어요...그리고 사무실로 돌아왔죠..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세월호 기사를 보는 것과 업무를 번갈아가며 했어요그랬어요..사람들이 구조될 거라는 확신을 가졌어요..불교도 기독교도 아니지만 구조해 달라고 기도 했어요.하지만 내 기도는 들어주지 않았아요깨달았죠..그 확신과 기도는 아무 쓸모없는 일이라는 것을..행동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내가 바보 같이 기도만 하고 있어서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것을...아이들아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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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이 한 자리에서 지켜보아야만 했던 그 지옥같았던 실제 상황.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울컥해 눈물이 나온다. 2년이 넘는 시간동안 참으로 불편하게 살아왔다. 가까운 친지들부터 지나가면서 한 마디씩 던지는 사람들의 말. 말. 말 ...차가운 물속에서 나오지도 못했던 그 분들의 가족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마음이 불편한데 그 유가족의 마음은 그 긴 시간동안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아직도 그날의 기억은 생생하다. 우리나라는 2년여전 그 날 그대로다. 바뀐게 하나도 없고 밝혀진게 하나도 없다. 살려내라~2년전으로 모든걸 돌려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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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전원 구조라는 뉴스를 보고 안심하며 일하다가 저녁에 다시 학생들이 아직 배 안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때부터 세월호 소식에만 촉각을 세우고 기쁜 소식이 들리길 기다렸었는데... 너무 어린, 죄도 없는 생명들이 죽어가는 걸 보고만 있었다는 죄책감과 무능함에 지금도 눈물이 흐릅니다.지금도 눈물 흘리는 것과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가는 것 밖에 할 수 없지만 끝까지 어린 생명들을 잊지 않고 가슴속에 품고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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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전시회장으로 도착했는데, 조선족 회사분께서 한국에 난리가 났는데 뉴스를 봤냐고 물어보더라구요. 와이파이가 터지니 잽싸게 뉴스를 검색해보니, 전원 구조라고 떠서 안심하고 업무를 시작 했습니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틈틈히 뉴스를 보고 아주 절망 했었죠. 업무 시간이 종료되고 안마를 받으러 갔는데, 중국 공영방송에서 계속 관련 뉴스를 보도하고 있었던 게 기억납니다. 숙소로 돌아와 잠드는 그 시간까지 실감이 되지 않았습니다. 자꾸 세월호 안에 갇혀있을 아이들 생각에 눈물이 나고, 내일이면 더 희망적인 뉴스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잠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