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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둘째가 수학여행 가던날 안개 속에서 버스를 배웅했지요. 전원구조 오보, 갈팡질팡하는 청와대, 저녁에 등장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대통령을 보며 마음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하루 종일 가라앉는 배를 본 후 매일 악몽으로 잠에서 깨어나 한 생명이라도 구했을까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지만 4월 16일은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 생각만 해도 눈물이 흐릅니다. 아무 것도 믿을 수가 없어서 저희 아이들 수학여행도 보내지 못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떻게 그날을 기억하지 못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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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사실 다른 날과 다를바 없는 날이었습니다. 사무실에서 늘 하던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걸 찾다가 그런 뉴스르 봤습니다. 배가 침몰했고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전원 구조되었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 뉴스에 안도하고 날이 추우니 구조되었어도 많이 힘들었겠다 그렇게 생각했지요.그리고 다시 하던 일을 했습니다. 점심시간에 전원 구조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고 설마 한사람이라도 더...라고 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아픈 기억으로 남게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날, 그 시간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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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300명이 넘게 수장될 줄은 몰랐는데.. 가만히 있으라.. 방송.. 정말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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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 이파트 분양권 명의변경중이었으며 간간히 tv 를통해 세월호 침몰사고 장면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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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생생합니다. 조금 늦은 아침을 식당에서 먹으며커다란 배가 기울어져 있는 뉴스를 보던 것이.저렇게 큰 배가 가라 앉을 것이라고는상상도 하지 못한채 당연히 구조 되겠지...일을 하다가 뭔가 이상해서 뉴스를 보니말도 되지 않는 이상한 상황들의 연속.너무 무기력했고, 너무 슬프고 아팠습니다.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서 시민 회의에 갔고,그곳에서 우리가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그런 마음들이 모여 이후 진상규명 서명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대학로에서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그 길에서 혼자 서명지를 들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벌써 2년이 넘었습니다.2년이라는 시간 동안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아직도 세월호는 바닷속에 있고, 미수습자 9분은 그 바다에 남겨져 있습니다. 진상규명이 명명백백히 되는 그 날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그리고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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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이를 어린이집에도 못보내고 뉴스특보만을 보고 있었습니다.부모된 입장에서 느낄수있는 참담함, 무력한 어른으로써의 자괴감을 느끼며 뉴스만을 보면서 울고 있었어요. 세월호 주변을 서성이기만 하던 해경과 세월호 안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창문을 두드리던 아이들의 손을 잊을수가 없습니다.이제서야 내막이 드러나고있는 대통령의 7시간. 진실은 침몰하지 않아요.꼭 죗값치르세요.반드시 응징받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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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에 손세차를 맡기고 세차장에있는 티비로 뉴스특보를 보았습니다.다 살렸다는 뉴스내용이 순식간에 바뀌면서 3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나오지못하고있다고.......배는 뒤집어져있고 꼭대기마저 가라앉고있었던 그시간은 11시쯤..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만봐야했던.......생명을품고있는 임산부였던 저는 그상황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올만큼 충격적이었습니다.그아이들..... 전국민이기억하는 그아이들과 그날..그날은 나라의 추모기일이 되어야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기억해주세요 그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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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체능계입니다. 매일 연습하느라 그날 사고가 난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일말의 관심도 갖지 못한게 너무나 후회됩니다.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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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임신중에 경기도 연수원에서 2박3일 회사 교육을 받고 있었습니다.휴식시간중 들려온 세월호 소식고 함께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진해되던 강의시간.전원구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안심하다가 점점 이상한 소식이 들려 많이 안타까워 했었습니다.어제아침을 뭘 먹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 제가 세살된 그때 뱃속에 있던 둘째를 보면 떠오르는 그날의일.잊혀져서도 잊혀질수도 없는 그날. 진실은 규명되어져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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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기다리던 구조가 됬다는 뉴스가 없고 구조진행 상황이 너무 답답한데 할수있는게 없어서 참으로 무기력했고 가슴이 아팠습니다.하지만 한참 시간이 지난 후 뉴스나 댓글을 보며 유가족분들을 오해하기도 하고 가슴이 아파서 일부러 더 안보기도 했습니다.하지만 이번 촛불집회에서 내가 너무 잘못했고 그 아이들에게 미안했습니다.이제 부터라도 진실이 밝혀질수 있는 일이라면 힘을 보태겠습니다.진실은 침몰하지 않고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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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어요. 옆에 팀장님께서 세월호 뉴스를 보고 알려주셨고 잠시 뒤 전원구조되었다고 해서 계속 근무했었는데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오후엔 말도 안되는 뉴스들을 접하면서 얼마나 어이없고 당황스러웠던지. 요즘도 여전히 말도 안되는 뉴스들을 접하면서 뭐라도 하고싶은데 답답하기만하네요. 지금까지와는 다른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나라가 되길, 또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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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항상 가슴에 기억하면서 살겠습니다. 뉴스에 나오던 그날의 오보들이 너무나 생생합니다. 구조가 다 되었다 해서 안심하고 일을 시작...몇 시간후의 참담함...그리고 지금까지.. 잊을 수도 잊어져서도 안되는 그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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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유난히 꽃이 일찍 피고 졌던 그날의 봄어김없이 회사에 출근했고 정신없이 오전을 보내고 있을 무렵믿을 수 없는 소식이 들려와잘 켜도 않던 회사 TV를 틀어모두 같이 하던 일을 멈추고속보에서 눈을 떼지 못한그날의 오전은믿을 수 없었고믿기지 않았고먹먹하고 답답했고미안했다시간은 흐르고 있지만우리는 잊지 않아야 할그들의 시간은 아직 거기 있다.그날의 진실....우리는 포기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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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전 대학생이였습니다.어수선한 학교 화장실안에서 지나가던 친구 하나가 배가 뒤집어졋다고 말하더군요.사람은 안다쳣나 물었더니 전원구조 되었다더라라고 친구가 답했습니다.그래서 전 괜찮은줄 알았습니다.수업을 모두 마치고 집에 돌아와 그것이 오보였단 사실을, 구명조끼도 채 입지 못한 채, 배 안에 아직 사람이 있다는 뉴스를 다시 보기 전까지는저는 정말 괜찮을줄 알았습니다.당연히 다 구조했으리라 생각했습니다.허나 그것은 착각이였고 정부는 무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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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구조되었다는 언론의 보도에 가슴을 쓸어내리기가 무섭게 받아들이게된 사고 소식은 정말 사실이라고 믿기 힘들었습니다 수학여행이나 단체 여행의 문제점에 선행해서 그 7시간동안 우리나라의 수장으로서 가장 소중한 생명을 뒤로한채 어떤 일을 했는지 진실규명은 반드시 되어야할 것입니다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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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오보를 믿었다.너나할것 없이 관련 부처에서 구조를 하고 있으리라 믿었고하지 않을 이유를 생각해보지 않았으니까. 시커먼 바다로 침잠해가는 뱃머리를 보며 아득한 절망감을 느꼈다. 일상이 시작되고 다들 말은 없었지만 투명하게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죄스러웠다. 교복입은 아이들만 봐도 나는 길을 비켜서서 비슬비슬 피했다. 이 나라를 이토록 저주한 날이 없었다. 모든게 붕괴되어 주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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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를 얼마 안 남기고, 강의동 1층 로비에서 친구와 공부 중이었습니다. 로비에는 음소거된 텔레비전이 두개 있었습니다. 보통 때는 텔레비전을 등지고 앉아서 공부했는데, 그날은 텔레비전에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중간고사 공부가 급하다는 생각에 책에 눈을 두려 해봐도 눈물이 차올라서 다시 고개를 들어 구조 소식이 나오기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저녁식사를 해야해서 나오는데, 맨발로 슬리퍼를 신은지라 발이 너무 시려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날도 그다음날도 그다다음날도 온 몸이 시려울 학생들의 걱정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간절히 기다리던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2년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는 그날 자신들의 7시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한 이유는 아직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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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제일 처음 본 뉴스는 세월호 좌초. 350명 학생 전원구조...그 뉴스를 보면서 다행이네... 쟤네들 평생한번 가보는 제주도 수학여행인데 뭐됐네... 욕 엄청하고 있겠네... 나중에 시간되면 친구들끼리 또 가라... 할수없지뭐...이러고서 수학여행이 무산된건 참 안타깝지만 한명도 죽지 않았음에, 단지 여행무산, 옷이젖고, 욕지거리를 하고 있을 평범한 고삐리들의 모습이 그려져서 그냥 낄낄대고 웃었던게 기억이 납니다.참으로 어이없는... 오보...그날의 모습들은 도대체 왜... 배안에서 뭐하고들있는거야... 라는 욕지거리와 함께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거야... 라는 혼란함만이 기억을 채우고 있습니다.생각하기도 싫은 그날의 기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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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를 하고있었습니다저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아이를 기다린 것입니다뉴스를 보았습니다단원고의 아이들이 올라오길 기다렸습니다차가운 물에서 올라와 따뜻한 담요를 두르며 무사히 구조되어 다행이라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기다렸습니다어린이집에 갔던 아이가 돌아와도 단원고의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지금도 미처 돌아오지 못 한 아이들을 기다립니다계속 기억하며 기다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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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속보로 세월호 전원 구조 오보를 봤어요.사고가 났고 승객들이 구조되었으니 되었다,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어요.그러고는 늘 그렇듯 친구와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했죠.밥을 먹으려고 대학교 앞에 국밥집을 갔는데 작은 모니터로 나오는 뉴스는 정말 믿기지 않았어요.세월호의 모습이 반도 채 보이지 않는 모습, 고무보트를 타고 세월호 주변에 있는 구조대. 정말 탁하고 가슴이 막혀 더이상 밥을 먹을 수가 없어서 그대로 가게를 나왔고공부가 손에 잡힐 거 같지 않아 집으로 돌아와 뉴스만 잡고 있었어요.세세히 다른 일들은 기억나지 않아도 그 허망함, 간절함은 너무나 생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