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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같은 나이의 친구들이 었기에 처음 뉴스를 접했을 때부터 정말 안타까웠고 걱정이 됬었습니다. 점심을 먹기위해 줄을 서면서 전원구조 라는 기사를 봤고 안심했으며 점심식사후 오보라는 사실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던 기억이 있네요...그날의 기억이 이렇게 생생한데 하루 빨리 진실이 밝혀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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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그 시간 생방송을 사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먼서 보았다.가라앉고 있는 배에 학생들이 많이 타고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고 구조하는 배가 안보여 안타까와했던 기억도 또렷하다. 그 날은 입 맛이 없어 밥대신 샐러드를 받아서 먹었고 샐러드에는 토마토 소스의 스파게티도 있었다. 그 날의 날씨는 물 론 산책하였던 거리도 기억이 선명하다.내가 만일 그날 성형수술을 받았다면 몇분 몇 초에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또렷할 것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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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는 출근길 제주도가던 학생들의 사고사실 저에겐 어린나이에 안타깝다 가족들은 어쩌냐 이런 말한마디로 끝나는 사건이였습니다그 이후로도 출근시간때마다 보여주는 세월호 사건들 그에 연관된 비리들 얌전히 지시를 따르던 그 아이들은얼마나 무서웠을까요제 상황이 아니라 그 무서움의 정도조차감히 상상도 못합니다가족들의 아픔도 감히 상상도 못합니다잊지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이 나라를 위해 촛불을 들겠습니다그것이 저희가 세월호사건을 애도하는유일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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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학교에서 이 소식을 접했을 때는 전원 구조라고 해서 별다른 생각 없이 넘겼는데 가면 갈수록 구조된 사람 수가 줄어가고 실종자 수가 늘어가면서 이건 아니지 않나를 느꼈습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에게도 크게 와닿았던 세월호 사건바다 속에서 추위에 떨며 갇혔다는 공포심에 휩싸여있을 언니 오빠들을 생각하며 제 핸드폰은 손에서 떨어질 줄 몰랐고 느린 대처들 때문에 살 수 있는 사람들도 못 살았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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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교육"이었나? 여튼 수강인원이 많아 소강당에서 듣는 수업이었어요. 그 소강당은 사범대에서도 유난히 서늘한 곳이었지요. 그래서 그런가. 아직도 세월호 하면 그 소강당의 서늘한 느낌이 함께 기억납니다. 여느 때처럼 교수님이 들어오기전 휴대폰으로 포털사이트를 뒤적거리고 있었어요. 그때 반으로 기울어진 배 사진이 보였죠. 헐 미친. 그때 구조가 진행중이라는 기사도 함께 보았죠. 대서양 한가운데에 있는 배도 아니고, 진도 앞바다. 구조대가 빨리 도착하면 충분히 구할 수 있겠지. 오, 전원 구출했대! 그리고 교수님이 들어오신 후 수업. 그리고 수업이 끝날을 때는 ... 그 이후에 이어진 지지부진한 구조작업, 왔다 갔다 하는 탑승자 수, 학생들을 등진 선장과 선원들,존재하지 않았던 나라,남겨진 엄마 아빠들의 절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너무도 무력하게 느껴졌던 그 시간들. 거짓말처럼 영화 속 히어로가 나타나 한손으로 배를 끄집어 올려줬으면 했던 바람들. 비록 가라앉던 배를 끌어올리지는 못했지만 나의 기억 속 세월은 침몰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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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날과 같이 출근했던 그날.점심시간이 되서 제주도를 향하던 여객석이 침몰하였으나 전원구조 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습니다.회사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며 우리는 저런 상황이 오면 수영 해서 살아남자 라는 실없는 농담을 하며 식사를 마쳤습니다.하지만 그 뉴스가 오보였고 사망자가 한분 한분씩 늘어날수록 제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급박하고 절체절명의 위기였을텐데 나는 현재 안전하다는 이유만으로 농담과 함께 가볍게 넘겼던 제 자신이 부끄럽고 죄책감이 들었습니다.그 죄책감은 그날뿐만아니라 지금까지도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분들을 보면 마음속 어딘가에서 울컥울컥하고 차오릅니다.일개의 국민인 저도 제가 한 말 한마디에 아직까지도 죄책감을 느낍니다. 진실을 알고 있는 그분들에게 죄책감이란 없는건가요?다시 기억해내십시오. 그리고 제대로 된 진실된 사과를 하십시오.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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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러시더라고요. 그 날 밥을 먹고 있는데 속보에 여객선이 침몰하고 있다라고 뜨더라고 밥을 먹다말고 걱정하며 뉴스를 보는데 얼마안되어 전원구조라고 뜨는 걸 보고 안심하고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오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전원 구조라고 오보가 뜨던 그 시간에 자기가 먹던 밥을 지금도 기억한다고 아마 평소였다면 그냥 지나쳤을 하루 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소한 것 까지 기억할 만큼 우리에겐 세월호가 너무도 크게 자리 잡았는데 그들은 기억이 안난다고 합니다. 모른다고 합니다. 부디 그 날, 그 시간동안 무엇을 했는지 밝혀지기를 기다리겠습니다. 모두의 기억 속 흐려질지도 모르지만 나 하나라도 끝까지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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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여느때 다름없이 학교 등교 하고 1교시 수업을 마치고 난 후 였던 것 같습니다2교시 시작과함께 교과선생님께 배 침몰하였다 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전원구조 되었다는 속보를 보았고 그런줄만 알고 안심하고 넘겼습니다야자를 하고 집가는 스쿨버스안 오보였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두 뺨위로 알지 못할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희생자분들의 문자때문에 더 많이 울었던 거 같습니다 비용때문에 부모님께 부담이 될까 장난스런 말투속에 묻어났던 여리고 속이 깊었던 학생들 1년 2년 지날수록 사회적 인식속에서 무뎌질수밖에 없었지만 꼭 기억하고 밝혀내겠습니다 꼭 약속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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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이말말고는 전할말이없다이런나라에 태어나게해서 미안해모든 죄책감을짊어지고 오늘도 열심히살았어4월16일 오늘과 똑같은하루를 그때도 살았어어제는 하늘에 별이 떴더라별이 정말 많고많아서 너희들인가했어지금 지켜보고있니? 기다려 조금만 더 지켜봐줘 우리 열심히할게다시는 너희같은상황이 오지않게할게미안해 잊지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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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고도 아득한 곳에서 외롭게 떨고 있을 때,나는 먼 곳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것 밖에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모두 무사하길.. 아픈 사람 없이 모두가 구조되길..아침에 전원 구조되었다는 뉴스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다행이라고 큰일날 뻔 했다고친구들과 웃으며 얘길한게 생생한데밤 10시가 넘어 야자를 마치고 접한 소식은세상 모두를 가슴 아프게 했다.아직도 무엇이 잘못된 건지도 모르고꼭두각시 인형처럼 텅 빈 머리로삐걱삐걱 춤만 추고 있는 사람들과진실을 감추고 거짓을 늘어놓고있는비열하고 비겁한 이 세상을우리가 바꿔 보려 해.외롭게 아파했을 모두를 추모하며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기다리며0416 절대 잊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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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다름 없이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전 10시 반 쯤 인터넷 기사를 통해 세월호 사고 소식을 들었고 너무 충격을 받아 거의 실시간으로 기사를 확인하느라 일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전원 구출이라는 얘기를 듣고 맘 놓고 점심을 먹었었는데 오보라더군요.. 그 이후 몇날며칠은 분노와 슬픔과 미안함과 허망함에 가득찬 날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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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병이었습니다. 정신교육을 받던 중 중대장님이 단원고에 아는 사람있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죠 그때는 별일이 아닌줄 알았습니다. 그 후 오후에 배가 침몰했다는걸 알았고 소대장은 북한의 일이 아닐까 하더군요. 저는 별일아닌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수료를 하고서야 이런 일이 있었다는걸 알았습니다..... 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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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16일은 제가 고3때 집을 가기 1시간전인 4시쯤이었습니다. 저는 특성화고를 다녔고 취업준비때문에 컴퓨터실을 자주 이용했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컴퓨터로 인터넷을 하다가 검색어, 기사 등에 세월호에 관한 부분이 많이 올라와있었습니다. 핸드폰은 제출했었기때문에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그전엔 알지 못했습니다. 기사엔 많은 단원고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갔다가 배가 침몰하여 구조되지 못하고 있다고 올라왔었고 친구들하고 기사를 보다가 한 할머니께서 손자와 단둘이 사는데 손자는아직 구출명단에 없는 것을 보시고 우는 사진을 보게되었습니다. 그 사진은 곧 동영상으로 올라왔고 친구들하고 그 동영상을보고는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집을 가는길에는 친구들하고 전화를하며 같은 학생의 입장으로써 눈물을 많이 흘렸고 집을 가니 엄마께서도 뉴스를 보시며 많은 눈물을 흘리셨던걸 아직도 또렷히 기억합니다. Sbs kbs mbc 등에선 계속 똑같은 장면만 내보냈었고 너무 답답하고 걱정되는 마음에 Jtbc에서 방송해주는 뉴스를 생방송으로 계속 매일 보았습니다. jtbc에서 방송해주는 다큐를 보면서 제발 모두 무사히 구조되길 울며 기도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땐 제일이 아니였는데도 정말 가족인듯 절실하게 모두가 무사하길 기도했었고 많이 울었던것같습니다.. 대한민국이 우울증에 걸린 시기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직도 생각하면 가슴 한쪽이 너무 아프고 미안합니다. 저에겐 정말 잊을수없었던 지금도 잊을수없는 앞으로도 영원히 기억할 2012년 4월 16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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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직장에서 서버 작업으로 서버실 내에 있다가여객선 침몰이라는 소식을 잠깐 접하고 작업 때문에 저녁 늦은 시간에 뉴스를 보며 엄청난 충격을 받았었어요.. 많은 사람이 갖혀 있었다..그리고 그 많은 인원에 학생들이 아이들이 있었다..그날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서 지워지지 안아요..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눈물 흘리고 아파 했지요..제 메신저 닉네임이 절대 잊지안았습니다.. 입니다.잊지 안습니다.. 잊을 수 없습니다.. 7시간이 밝혀지고 상처 받은 많은 이들이 진실을 알 때까지 잊지안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아직도 아무것도 해드린 것도 달라진 것도 없어서요.. 하지만 우리들이 마음으로 행동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조금 더 기다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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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교시 수학시간 수업 중 먼저 선생님께서 얘기를 꺼내셨다.전원구조 됐다고한다. 걱정말고 수업하자그리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오보란다.반 전체가 술렁였다. 그래도 당연히 구하겠지 했다.하지만 날이 갈 수록 좌절했고, 내 친구들을 필두로 세월호 특별법 서명을 받았다.그리고 아직 까지도 밝혀지지않은 진실.누군가에게는 당연하다고 믿어졌던 국가의 존재언제쯤이면 모두가 웃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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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평소처럼 일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 말했다. 웅성거리며 TV를 켰는데 전원구조라고 나오길래 다들 안심하며 Tv를 꺼버렸다. 그날은 후배들과 점심모임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샤브샤브집에서 보내준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전원구조라 정말 다행이라고 이야기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샤브샤브를 맛있게 먹었다.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며. 점심먹고 들어왔는데 분위기가 묘했다. 전원구조가 아닐 수도 있단다. 그리고 사무실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의 14년 4월 16일은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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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저 수험생 신분의 한낱 학생이였다. 자습시간에 들어오신 선생님의 말씀으로만 우리는 그 사실을 알았다.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다가 배가 전복되었다더라." 같은 교실안에 앉아 있던 우리 모두는 안타까워했다.얼마 후 올라온 소식, 모두가 구조 되었단다. 아, 정말로 다행이다. 그런 후에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마저 공부를 하고 있었다.그런데,오보였단다. 아직 너희를 구조하지 못하였다더라. 그 이후에 우리는 모두 패닉 상태였지. 점심시간에도 모든 아이들이 같은 이야기를 다른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했어. 비록 같은 학교 학생이 아닐지라도 당장 복도를 지나치며 만날 수 있는 그런 너희들이, 아직도 차디 찬 바다에 있다니... 하지만 일은 진척이 없었고 모두가 발만 동동 굴렀다. 너무나 가슴아픈 일이였고 너무나 무서운 일이였다. 나는늦은 새벽까지 잠자지 못하고 구조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없다. 그저 잊히지 않도록 하겠다. 단 한명이라도 기억을 더 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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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3개월다닌 회사에서 짤린지 한달정도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오전 수학여행 가던 아이들이 다 구조되었다는 라디오였는지, 신문이었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그 기사를 보고 우리나라 빠르게 대처했네 라고 넘겼는데 .. 한시간정도 있다가 구조되지 않았다는 기사들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저녁 아이들이 침몰하는 배안에서 죽어갔단 기사들을 보고도 나의 힘듦이 더욱힘들었습니다. 이제서야 아이들이 추운바다에서 죽었다는게 어떤의미인지 알것 같습니다. 나만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무관심했었습니다. 이제는 이웃과 함께 살고 싶습니다. 나의 힘듦보다 더 힘들어하는 사람들과 함게 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의 죽음은 매우시리고 아프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시민의식을 일깨워 준 희생이 되어 주어 고맙고 미안합니다... 평생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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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를 하고있는 중에 뉴스를 봤어요. 믿기지않아서 동료들과 걱정하는중에 전원구조라는 소식을듣고 안심했다가 다시 오보라는 충격적인 소식. . . 진짜 일이 손이 안잡힐정도로 걱정에 휩싸여있다가 배가 점점 기울며 가라앉고있다는 뉴스에 망연자실하고 배안에서 분명 살아있을것이라고 희망도 가져봤어요. 그이후에 아이들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오는 모습을보며 많이 울고 함께 분노했습니다. 안산합동분향소의 그 많은 영정들 앞에 섰을때는 가슴이 너무 아파 울부짖듯이 눈물을 흘렸네요. . .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사고를 만든 책임자들이 모두 합당한 처벌을 받을때까지 계속 감시하고 목소릴 높여 항의하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모든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 꼭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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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을 했고,인터넷으로 간간히 소식을 듣다가,구조가 다 됐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을 놓고 있었고,그런데 아니더라는 말은 들었지만그래도 하나둘씩 구하고 있었겠지라고만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퇴근하고 집 근처 밥집에서 밥 시키고 기다리는데,아직 속보가 계속 나오고 있었고,문득,아침 몇시에 속보가 시작됐는지 떠오르면서왈칵 눈물이 났습니다.믿을 수가 없었거든요.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