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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아들 어린이집 등원시키고 집으로돌아와 티비켜서 그날의 방송을 지켜보며 그냥 하염없이 눈물만흘리며 어떻해 어떻해 만 하고 지켜보기만 햇답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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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저는 병원티비로 세월호 사고 소식을 봤었어요. 몸이 좋지못해서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티비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전원 구조라는 뉴스를 보고 다행이야 라고 했다가 오보라는 얘기에 정말 충격받았었던 기억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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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아침 아이들 등원준비시키면서 티비로 사고소식을 접한게 또렷하게 기억납니다전원구조라고해서 다행이라생각하며 가슴을 쓰러내렸었는데 그아이들이 아직도 돌아오고 있지못한다는게 너무 가슴이 아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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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구조되었다는 속보에 다행이라하며 더이상 뉴스에 집착하지 않고 아침을 시작했답니다.그러다 오후가 되어서야 비통한소식에 너무 마음이 아파 돌아온아이를 꼭 안아줬던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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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해서 뉴스 접하고 전원구조라길래 안심하고 수업했는데 오보라 하고.. 학교 계신 모든 선생님들과 걱정하며 뉴스 검색해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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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강의시간 창공실 맨 앞쪽 오른쪽 구석 테이블에 동기들과 앉아 있다가 네이버뉴스기사로 처음 소식을 접했어요 전원구조 성공이라길래 다행이다 하고 강의 듣다가 친구가 갑자기 문자로 "전원구조가 아니야 혁이 아직도 배 안에 있어 제발 다른 사람들한테도 알려줘 지금 다 거짓말이야 도와줘" 라는 문자를 받았고 뭐지..?하는 생각을 했어요 당시에 친구한테는 "상황이 지금 정리가 안되서 인원파악하고 뭐하느라 동생 아직 못만난거니까 다 전원구조 됬다니까 꼭 혁이 금방 만날꺼야 진정하고 기다려보자"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구하지못한 아이들 숫자는 늘어가고 전원구조가 오보라는 기사가 뜨고..그렇게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어요 친구의 동생이 희생자가 됬어요. 그 와중에도 나는 친구에게 기다려보자고 했네요..그 기다리라는 말때문에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했는데...너무 충격적이라 그때 시험준비기간이었는데도 손떨리고 정말 집중이 하나도 안됬어요 몇일을 내내 뉴스기사만 손떨며 지켜봤어요 그리고 혁이의 장례식날 안산에 잇는 온 장례식장이 자리가 없어서 저멀리 시흥에 있는 장례식장에 간 날동생의 모습을 보고 울부짖으며 "혁아 일어나 집에가자 누나랑 가자"하던 친구의 울음이 잊혀지지가 않아요제 동생의 친구도 희생자에요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기전에 예쁘고 좋은 새옷 입고 간다고 쇼핑 같이가자해서 같이 옷도 고르고 동생 친구가 여행캐리어 없다고 해서 자기 캐리어도 빌려주고 안개때문에 배가 출발하지 못한다고 했을때 서로 카톡보내면서 "누나 친구 배 안개때문에 못떠서 수학여행 못갈지도 모른대" 라고 말했었는데...친구가 구조자 명단에 없던걸 확인하고 제가 "괜찮아 금방 구조될꺼야"라고 말했을때 이미 누구도 믿지 못하던 동생의 눈이 기억나요 몇일 내내 방안에 박혀서 나오지 않던 동생...그리고 친구의 장례식을 다녀왔던 축 쳐진 동생의 어깨도 저는 기억이 나요저는 저 모든 상황이 너무 충격적이라 다 이렇게 기억이 나는데...어떻게 저 시간을 기억 못한다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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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절대못잊어요ㅠ둘째를 새벽에 낳고 잠깐자고일어났는데 침몰된 세월호를보고ㅠ꿈인지생시인지했네요 누군가의 탄생이 있는반면 안타까운 누군가의 죽음이 공존하는.. 꼭밝혀지길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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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전원 구조되었다길래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하지만 곧 오보라며 200여명이 배 안에 갇혀있다더군요. 그날 하루종일 언제 구조되나 핸드폰만 붙잡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왔다는 문자들이 페이스북이나 인터넷 기사로 공개가 되었는데.. 같이 가슴 아파했고 함께 마음 졸였습니다. 도대체 왜 구조가 안되는 건지, 배가 아직 다 가라앉지 않았는데 왜 가라앉는 걸 지켜보고만 있는 건지.. 이해되지 않았던 7시간. 모두가 마음 졸이고 한 마음으로 뉴스만 붙들고 있던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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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복학생이었습니다. 뉴스속보를 통해 처음 세월호 사고소식을 접했고 계속해서 뉴스에서 보도되는 침몰상황을 지켜봤습니다. 사실은 너무 평범한 날이어서 무엇을 입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학관에서 친구들과 밥을 먹었고 계속해서 tv와 휴대폰을 들여다 보고 있었습니다. 배가 저렇게 천천히 가라앉으니 한명씩 구출하면 모두 빠져나올 수 있으리라 낙관했습니다. 하지만 믿을 수 없게도 아이들은 구조되지 않았습니다. 너무 어이가 없고 가슴이 아파서 말문이 막혔습니다. 내가 이런 곳에 살고있다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습니다. 추가 생존자가 한명이라도, 제발 단 한명만이라도 더 구조되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차가운 바다는 더이상 아이들을 돌려주지 않았습니다.우리에게는 대체 왜 라는 질문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하루이틀이 지난게 아닙니다. 2년하고도 반년이 넘게 지났습니다. 이 배는 왜 침몰했고 아이들은 왜 구조되지 못했나. 사건을 조작한 정황이 여러곳에서 드러나고 있는데 왜 관련자들은 이 의혹들을 덮으려고만 하는가. 진실은 규명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질문들에 답을 구하는건 우리가 반드시 해결해야할 숙제입니다. 이 시스템이 오류를 일으키도록 방조한 사실로부터 우리는 누구도 자유롭지 않습니다. 침묵만을 지킨다면, 우리는 또다른 세월호가 침몰하는 것을 다시 바라만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세월호 7시간. 우리는 그 시간동안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양심을 가진 한명의 인간으로서 그 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지난한 싸움이 될지라도 세월호의 진실규명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힘쓰겠습니다. 저에겐 그 시간을 잊을 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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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일하다 기사를 보고 바로 전원 구출이라는 말을 보고 안심했었어요 점심시간에 회사동료랑 밥먹으면서 그얘길하고 있는데 식당tv에서 배가 거의 침몰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걸로 기억이 나요 그후로 기사를 실시간으로 봤지만 청천벽력같은 소식만.. 첫 전원 구출이라는 오보가 아직도 분통이 터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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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기전 인터넷으로 뉴스를 접하고 충격과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수업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수업중에도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어서 계속 핸드폰으로 몰래몰래 뉴스를 보며 눈물 꾹 참았던 기억이 나고요. 그날 하루 종일 한국뉴스만 찾아보며 일주일 넘게 우울했었는데... 외국이라서 더욱 느껴지던 허무함과 슬픔과 분노가 아직도 생생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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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중간고사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경향신문 앱에서 알림이 왔습니다. 단원고 아이들이 탄 배가 사고가 났다구요. 너무 놀라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도 지금 티비로 뉴스보고 있다고 같이 기도하자고 했어요. 얼마 후 전원 구조됐다는 속보가 보였고 저는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수업에 갔습니다. 그러나 수업이 끝나고 핸드폰을 확인하니 오보였어요. 내 동생이 탄 것처럼 마음이 찢어졌습니다. 그 뒤로 3일 내내 핸드폰으로 뉴스 사이트만 새로고침하며 지냈어요.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하겠습니다 그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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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아이낳고 병원에 누웠있었습니다. 전원 구조라는 뉴스도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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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도 평소와 다름 없이 근무중 이었습니다 스마트폰 네이버 메인에서 침몰중이라는 기사를 처음 보았습니다 구명조끼 입고 대기중이라기에 당연히 다 구할수 있을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그런데..그날 오후 퇴근하며 집에 가는 길 황망하게 횡단보도 앞에 서 있던 것까지 다 기억납니다그때의 기분, 그 거리 전부 다요..관련자 분들도 당연히 그날을 기억하고 있을겁니다 이제는 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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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에서 일어나서 수업가려고 책상앞에서 준비하는 중에 기사를 보았어요. 여객선이 침몰 중이라는 속보를 보고 룸메에게 큰 사고가 아니었음 좋겠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곧 전원 구조라는 뉴스를 보고 다행이라고 말했었구요.. 그날 같은과 친구 생일이라서 다함께 식사하러 나가는 길에 전원구조가 오보였다고, 아직 구조하지 못한 사람들이 수백명이 된다는 뉴스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었어요.. 절대 잊을수 없는 날일거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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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해서 인터넷으로 첫 사고 소식을 접했고 아이들이, 사람들이 차가운 바닷 속으로 빠져들어가는걸 생방송으로 보았습니다. 저 아이들과 같은 아이를 둔 아빠로써 너무나 무기력한 자신과 너무나 무책임한 이 나라의 시스템에 절망과 분노로 점철되었던 하루로 기억합니다. 현재에 이르러서도 반성과 시스템 정비는 커녕 국정농단을 일삼고 온 국민을 상대로 사기극을 펼친 대통령과 그 부역자들에게 분노합니다. 세월호의 비극은 사고가 아닌 그 들로 인해 예고된 것이었습니다.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 날의 참담함과 억울하게 간 이 들에 대한 슬픔,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이들에 대한 분노. 절대로 잊지 않고 기억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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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그 비보를 처음 접한 것은 전원구조되었다는 뉴스속보를 통해서였다.침몰하는 배와 분주한 사람들, 그 하단에 적힌 한 줄의 낭보는 나를 비롯한 동기들를 안심시켰고나는 "참 잘 되었네!" 혼잣말을 남긴 뒤, 이내 먼 바다의 큰일 날뻔한 이야기를 뒤로 한채 당구를 치러가고야만다.나에게 그것은 아직까지도 너무나도 죄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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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랑 자습실에서 노트북으로 뉴스를 처음 접했어요. 그 때 마침 저희 고등학교도 제주도로 가는 졸업여행이 예정 되어 있었는데 그래서 더 감정이이입이 되고 우리가 저 배에 타고 있었으면 어땠을까 무섭고 아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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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뉴스를 처음 보았습니다. 식당에서는 항상 뉴스채널을 틀어놓기에 밥 먹으면서 보는데 빨간 속보 자막에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이 침몰했다며, 전원 구조되었다는 내용이었죠. 화면으로는 멀리서 줌 땡긴, 머리만 조금 남은 배 부분이 보이길래 "어떻게 저렇게 몽땅 침몰해 버린걸까. 그래도 전원 구조했다니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밥 다 먹을 즈음 여객 안내원 한 명이 구조 과정 중 사망했다기에 "에휴 젊은 친구가 안됐네" 생각하며 자리로 복귀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이 뉴스들은 정반대로 바뀌었습니다. 300명이 넘는 아이들이 구조되지 못했다고.... 퇴근 후 집에 와 부모님이랑 뉴스를 보며 절망한 기억이 아직도 나네요. 애들은 다 어떻게 된거냐고 참담한 마음으로 뉴스를 보았지요. 그날 뭘 했는지 저희 어머니도 똑똑히 기억하고 계십니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이 충격적인 소식 들은 날을 잊지 못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기억이 안 난다는 거짓말은 이제 그만 멈춰주세요. 그날의 참담한 심정이 요새 계속 반복되는 기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