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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회사의 사무실 풍경이 기억나요세월호 소식은 너무도 급작스러웠지만설마 별 일 아니려니 했고...이름은 왜 세월인가 촌스럽네 생각도 스쳐가고세월이 가면이란 가사도 스쳐가고바쁘게 일하는 짬짬이 기사를 보았어요.세월호 부근 현장은 왜인지 이상했죠.구조정은 둥둥 떠있을뿐인 것처럼 보였고왜인지 치열한 구조현장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뭐지? 왜 저러지?너무 답답하고 이상해서사무실에서 동료랑 이게 뭐냐고 한탄을 하며발을 굴렀죠.그런 중에도 무관심한 사람들도 있더군요.참으로 씁쓸했어요. 지금도 그렇듯이...우리는 이렇게 애타는데 왜 현장에구조하러 온 자들은 멍청히 제대로 대처도하지않고 구하러 들어가지도 않고설마 설마 설마정말 구하지 않았던 것일줄이야지금까지도 돌아오지 못한 9사람아직도 편히 눈감지 못한 희생자들잊지말고 구하지 않은 자들을단죄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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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서 일을 하면서 라디오를 항상 틀어놓는데...세월호가 침몰했다는 뉴스소식을 들었고 그안에는 수학여행을 가기위해 떠난 고등학교친구들이 대다수라는 소식을 들었죠...얼마후전원무사탈출했다는 소식을 듣고가슴을 쓸어내리고난지 얼마 지나지않아많은 아이들이 물속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너무 안타까웠어요...ㅠㅠ그안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얼마나 추웠을까 가족들곁으로 얼마나 가고싶었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려와요...ㅠㅠ 아직도 나오지못한 9명을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해집니다피지도 못한 꽃들을 위해 기도합니다.부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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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촛불 행진이 벌어지는 안국빌딩에 있던 레스토랑에서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제주도로 향하는 여객선의 사고소식을 접했고 초기에 발표된 뉴스에 전원구조가 되었다며 안도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다시 뉴스가 나오면서 하루종일 구조 소식을 기다리며 보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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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집에서, 학교에서, 타지에서 그 끔찍한 소식의 뉴스를 접하고 놀란 분들,그리고 전원 구조 되었다는 오보로 가슴을 쓸어내린 순간들, 그리고 이어진 악몽같은 시간들...많은 분들이 남겨주신 기억의 끈을 붙잡고 저도 잊지 않겠습니다. 다시금 꺼내보는 그 기억들 앞에서 눈물이 납니다. 이 사건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리고 꺼지지 말아야 할 촛불입니다. 다시는 인생의 꽃다운 시절을 다 누리지도 못한 채 희생당하는 아이들이 없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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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첫 기사를 보고 구조되겠지,배가 점점 가라 앉는 모습을 보고,왜 구조가 되지 않는거지?일을 하면서도 찝찝해서 자꾸 기사를 보게 되었던 그날...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그리고 계속 가라앉아 우리 아이들이 떠나갔던 그날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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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생생히 기억납니다... 아이를 2달 째 품고있을 무렵...입덧이 유난히 너무도 심해서 병원에서 수액을 맞고 돌아와 티비를 켜고 뉴스를 보며 쉬고 있었는데..뉴스에 전원구조라는 자막을 보고 다행이라며 친정엄마와 통화중이던 찰나 오보라는 속보와 집계를 본 순간 저 꽃도 못 피워본 아이들을 왜 데려가시려나 하늘도 무심하단 생각이 들면서 뱃속에 아이를 품고 있는 제 자신이 괜히 원망스럽고 저 아이들한테 너무 미안했습니다...저 아이들은 하늘로 가고있는데 저의 아이는 뱃속에서 빛을 보려고 준비중이라 더욱 더 미안했습니다....아이들이 선장말을 듣지않고 조금만 더 빨리 뛰어나왔더라면....이미 천사들이 되어버린 아이들에게는 아직도 미안하기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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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따라 평소엔 점심 시간쯤 일어나는 내가 유난히도 일찍 눈이 떠졌다 그 날 따라 텔레비전도 안보는 내가 일어나자마자 텔레비전을 켰다 그 날 따라 신문은 봐도 뉴스는 안믿는 내가 뉴스를 틀었다 그 날 따라 꿈을 꾸지 않는 내가계속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날 따라 신은 없다고 외치는 내가 신이라는 모든 신의 이름을 간절히 불렀다 그 날 따라 남을 위해 울지 않는 내가 하루종일 소리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 날 따라 잠이 많은 내가 오지 않는 잠을 청하며 이 꿈에서 깨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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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에 사무실 동료들과 함께 방문한 식당의 텔레비전 뉴스로 처음 소식을 접했습니다. 학생들이 탄 배가 전복되었으나 다행히 전원구조되었다는 보도가 자막과 함께 계속해서 나왔고, 그런데도 바다 한가운데 큰 배가 뒤집혀 있는 영상이 계속 나오는 걸 좀 의아하게 여겼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다 구조되었다니 다행이네, 하고 밥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몇 시간 뒤 인터넷 뉴스로 전원구조는 오보이며, 수많은 탑승자들이 대부분 배 안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너무나 답답하고 어이가 없어서 그날 저녁 내내 잠들기 전까지 뉴스를 계속해서 새로고침했었고요.. 아직까지도 왜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구조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모든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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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당시 미국에 거주중이었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 기웃거리다가 포털사이트 메인에 떠있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많은승객을 태운 배가 사고가 났고 배에 태운 승객은 다행히 전원구조되었다는 기사의 헤드라인만 보고 내용은 읽지도 않은채 전 무심코 뒤로가기를 눌렀습니다. 그날 그렇게 전 저녁식사를 마치고.. 곧 잠이들었습니다.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켠 저는 전원구조가 오보였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오보였답니다.. 아이들이 아직 배안에 있답니다.. 몸이부들부들 떨렸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죽어가던 7시간동안 따뜻한 이불안에서 자고었습니다..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눈에 눈물이 고입니다.잊지않겠습니다. 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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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인턴 중이었습니다.점심 먹기 전에 과제를 하고 있었는데,반에서 누군가가"지금 배 사고 났다던데?"라며 사고 소식을 알렸습니다.하지만 머지 않아포털 홈에서 "전원 구조" 라는 키워드로많은 기사들이 올라왔습니다.다행이다 라며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TV에서는 뉴스 속보가 나오고생존자의 숫자는 올라가지 않고사망자, 사상자, 실종자 숫자만 변동이 생겼습니다.심지어 탑승인원 조차 파악이 안되어몇 명이나 배 안에 갖혀있는지도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결국 우리는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지금까지도 말입니다.학생들의 7시간은 공포였고우리들의 7시간은 충격이었습니다.언론의 7시간은 방황이었고대통령의 7시간은 미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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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배가 가라앉고 있을 그 시간, 나는 영화비평 강의를 듣고 있었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수업을 커피로 근근히 버텨가며. 강의가 끝나고 밥을 먹으러 가서 본 핸드폰에는 세월호가 가라앉았지만 전원 구조하였다는 기사가 쓰여있었고 난 그 기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가라앉았지만 아이들은 다 구조가 되었다고 했으니. 점심 식사 후에도 남은 한 시간 공강은 강의실에 먼저 도착해 잠을 청했다.정말로 이걸 내가 앉아서 듣고 있어야하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딱딱하고 지루한 라디오 개론 수업을 들으며 핸드폰으로 게임하고 있었다. 어차피 교수님은 프린트 내용을 참새처럼 읽어주시기만 하니까. 시험문제는 알아서 찝어주시리라 하는 믿음으로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시간을 보냈다.강의가 다 끝나자마자 그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는 남자친구와 시청역까지 걸어가는 데이트를 했다. 얼굴 보는 시간도 적은데다, 중간중간 들러서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기에. 그 날은 유난히 산낙지가 먹고 싶어 근처 횟집에 들러 산낙지와 개불을 시켰다. 개불을 한 번도 못 먹어봤다는 남자친구의 말에 오늘은 꼭 먹어보라는 얘기와 함께 시선은 티비로 돌아갔다. 티비에서는 "어? 분명 전원 구조라고 했는데...?"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눈 앞에 있음에도, 먹으면서 미안한 감정이 든 것은 분명 태어나고 처음이리라. 정작 그들을 구조해야하는 것은 나라고, 지켜줘야하는 것도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저 방관만 했다. 자그마치 2년이라는 시간동안. 내가 먹은 산낙지는 아직 내 속에 들러붙어 내려가지 않은 것만 같이 너무 답답하다. 난 그 7시간을 이렇게 생생히, 어제일 처럼 기억하건데 당신들은 왜 기억을 못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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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름없이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객선이 침몰하고 있다고 기사가 나왔고, 이내 "전원구조"라고 속보가 나왔길래 다행이다.... 하며 다시 업무에 집중했었습니다.그런데... 얼마 후 다시 접한 기사는 너무 충격이었습니다.죽어도 용서할 수 없는 정말 나쁜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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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다가 실검 속보를 보고 구조되었다니 다행이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랬던 마음조차 너무 미안합니다ㅜㅜ 설마 설마 라고 생각하며...제발 제발 이라고 기도했는데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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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당시 저는 달라스에 한가한 가게에 서 일하고 있었기에 인터넷을 끼고 살았습니다.달라스 오후 다섯시 넘어서쯤. 한국시간으로는 오전 7시가 넘었을때이죠...어디선가 배가 침몰했다는 기사가 올라와서 부랴부랴 라이브 뉴스같은것을 틀었습니다.배가 살짝 기울어져만 있었지 아직은 대부분이 물 위에 있었습니다.당연히 ! 다 구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계속 지켜 보았습니다.이상한것은 배 주변 바닷물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것입니다.배가 저렇게 기울어 가라앉고 있는데.. 왜 아무도 나오지 않지?그렇게 한참을 보다가 전원구조라는 보도가 나와서 아... 다 구조 되어서 물에 사람이 없었던거구나.. 하며 가게문을 닫고 집으로 부리나케 돌아와서 재차 확인을 위해 다시 티비를 켠 순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전원구조가 오보라니... 오보라니...믿을수가 없어 각 방송국 라이브를 링크마다 다 열어 놓고 여기서는 무슨말 하나 저기서는 무슨말하나 다 틀어놨습니다.구조자는 초반 몇십명.... 배가 물위에 한참이나 둥둥떠있는걸, 나는 봤는데.... 왜 우리는 한명도 구하지 못한건지... 살겠다고 나온 칠십여명말고 구조를 기다리던 사람들을... 우린 단 한명도 구하지 못했습니다. 컴퓨터 앞을 떠나지 않고 그것만 봤기에 너무 생생합니다.물위에 떠있던 배 부터 꼬리만 남았던 배까지....... 잊을 수 없습니다. 잊지 않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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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지에서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네요.그리고 학교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었죠.중학교, 고등학교 은사님들이 계신 곳 이었으니까요.모두가 나왔다는 소식에 안도함에도 잠시점점 실종자가 늘어나더니 말도 안되는 숫자가 뉴스에 표시가 되더군요...참담했습니다.저의 윤리쌤이였던 교감선생님은 스스로 아이들의 곁으로 떠나갔습니다.참으로 유쾌하신 분이었는데 그리 혼자서 책임지셨어야 했었는지진짜 책임질 사람들은 멀쩡히 저리도 돌아다니고 해서는 안될말도 저리 내뱉는데....왜 아직도 2년여나 지난 지금도 우리는 진실을 찾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뭐가 그리 꺼림칙한게 많아서 이리도 숨기는 것인지 정말 알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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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뉴스를 챙겨보는 사람이 아니기때문에, 평소처럼 씻고 등교를 했습니다. 고2, 학교는 기독학교였고 수요일은 항상 예배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예배준비를 하던 중 반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를 흘깃 들었지만 너무 바빴기에 잘 구출이 됐으리라 생각하고 1교시를 끝내고 나왔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나가면 다 모두 세월호 이야기 뿐이었고, 다 구조가 되었다고 했다가 오보라고 밝혀졌습니다. 저와동갑인 친구들포함 많은 사람들이 사고를 당했는데,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걱정이 되었지만, 다 구조가 될 거라는 믿음으로 기다리고있었죠. 그런데 어쩐지 싸하던 느낌에 직접 검색해봤습니다. 기사에는 안산에 있는 고등학교 라고 언급되었고, 점점 불안했습니다. 초6때 전학갔던 학교에서 친했던 친구들, 반 친구들... 그들이 그 자리에 있었고 그 사실을 알게됐을 때부터 눈물만 계속 쏟았던 것 같습니다. 계속 핸드폰을 붙잡고 기사를 찾으며 실시간으로 뜨는 속보를 보고, 집에서는 뉴스보면서 차라리 이게 오보이기를... 이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릅니다. 주저 앉아서 꺽꺽울고, 같은 학교를 다녔던 친구와 전화하며 불안에 떨었습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구조가 될 거라는 믿음보다 불안함이 더 커졌고, 쉽게 잠에 들지 못했습니다. 제 친구들이 그 자리에 있었기때문에 물론 더 힘들어하고, 불안했지만 아마 그건 모르는 사람이었어도 그랬을겁니다. 다만, 중요한 건 배가 가라앉는 시간동안 저를 포함해 온 국민이 모든승객의 구조를 염원하고, 믿고, 또 걱정했다는 것은 사실이며, 친구들을 포함한 배에 있던 모든 승객들은 두려움에 떨고, 힘들어했음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동안 구조도 제대로 이뤄지지않았을 뿐만아니라 정확해야하며 사실을 보도해야하는 언론이 오보를 했으며, 위급한 순간에 대통령께서 사라졌습니다. 7시간, 저에겐 당황스럽고 믿고싶은 시간이었고, 불안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누군가에는 그런 시간이 아니었는지 그로부터 계속되는 논란이 일고있습니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집니다. 진실을 원해서 촛불을 밝히는 국민에게 진실을 밝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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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한복판에서 와인에 건배를 하며 신문 속보로 온 소식을 접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데.. 당연히, 곧 모두 구출되었다란 뉴스가 나오겠지"란 생각에 같이 출장 온 다른 사람들에게는 소식을 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이후 매시간, 매분 마음 졸이면서 어떻게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하나란 생각...마음 졸이며 애타게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은 어떻게 하나란 생각.. 지금까지 한 시도 그런 생각 놓은 적 없습니다. 어떻게 그 날을 잊습니까.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제대로 생각이 박힌 사람이라면. 그 날은 절대로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됩니다. 그 날의 기억은 항상 제 기억 속에, 제 마음 속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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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를가봤습니다 어렸을때 살던 그곳 그곳은 그대로인데사람들은 변했다하네요왜변했냐고묻거든그건 묻는사람이 더잘안다고 해주세요그렇게나마 하루하루를 쉬고싶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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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첫 뉴스를 수학여행을 끝내고 버스를타고 학교로 가던중 들었다. 뉴스가 뜨고 버스에선 친구들의 부모님과 우리부모님의 전화가 계속 왔던거같다. 수학여행이라는 공통점에 나도 모르게 무서웠고 핸드폰으로 뉴스를 계속 봤다 . 계속 구출중이라 떴던 뉴스에 안심했던거같다 그땐 몰랐었지 그 구출중으로 인해 구출됨 사람은 많지 않다는걸 집에도착한뒤 티비로 다시한번 뉴스를 보며 알았다 정말 아직도 그 버스에서의 충격이 잊혀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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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 사는 교포예요. 그 때 다라 잠시 한국 방송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채널이 있었어요. 어느 방송사였더라. 각자 방에서 컴퓨터하고 핸드폰 만지기 자쁜 세 식구 인데.. 아버지가 속보를 보시고 소리치셔서 세식구가 거실로 뛰어가서 뉴스를 보던 기억이 나네요. 오보를 보며 엄마랑 부둥켜안고 울었지요. 시차때문에 여긴 이미 저녁이었는데.. 나중엔 다행이라며 세식구가 술도 한잔 한 것 같아요. 점점 뉴스가 앞뒤가 안맞는 것 같았지만 다음날 알았죠. 뭔가 많이 이상하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