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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 직원포함3명과 원자력발전소 출장.경부고속도로 운행중 점심을 먹기위해 칠곡휴계소입장하며 집사람에게 전화했는데 사고얘기를듣고 휴계소TV보니 전원구속을보고 다들 안도하며식사를 마쳤습니다. 식사후 집사람한테전화하니 오보였고 300여명 사망인듯하다며 . .2014년, 동행인원, 출장지가 고리인지. 월성인지생각은 안나지만 상황은 분명하게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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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저로서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질 시간도 여력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대학원 공부를 하다보니, 그날 몇 시간의 강의 시간 사이사이 빈 시간이 있어서 연구실에서 인터넷으로 한국 뉴스 검색하다 그 참혹한 비보를 접했습니다. 내 가족이 아니었어도, 내 친구가 아니었어도, 소중한 생명들이 그렇게 원통한 죽음을 맞을 수는 없는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한 명도 아니고, 열도 아닌, 300명의 숭고한 목숨이, 구조가 될 수 있었던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허망하게 수장되었다는 사실을 정말 믿을 수 가 없더군요. 그날 부터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인터넷을 체크하며, 기사들을 읽으며, 매일 매일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아무런 죄도 없는 목숨들이 허망하게 스러진 것에 대한 슬픔, 자기들만 살겠다고 300명의 목숨을 배에 버려둔 채 도망했던 자들에 대한 원망, 그리고 가족들의 아픔을 공유하지 않은채 국민의 감정을 무시했던 대통령에 대한 분노... 태어나서 그렇게 많이 울었던 기억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려옵니다.그날 그배에 사고를 당하신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빌며,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우리들의 의무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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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속보에 민감한 직업인지라 속보 기사가 나오는 것을 보고 당연히 학생들이 구조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점심 시간에 전원 구조 기사를 보고 그나마 다행이다라며 안심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보로 밝혀지고 나서는 하염없이 인터넷 창만 바라보며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고 또 바랐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뉴스 속보만 바라보던 그 날의 저를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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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억력이 나쁜 사람이다.하지만 4월 16일은 잊히지가 않는다.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분노할 것이다. 끊임 없이 진실을 요구 할 것이다.모든 고귀한 목숨의 억울함이 해소되는 그 날까지, 기억하고 또 눈물 흘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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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을 포기하고 백수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며 늦은 잠까지 게임을 하고 늦잠을 잤는데 세상에 뒤집혀 있었죠 온통 뉴스에서는 그 얘기만 나오고 그 때 쓰던 태블릿 PC도 생각이 나네요 화웨이에서 나온 미디어패드 FHD 10.1인치 버전이었어요 그걸로 당시 공중파까지도 온에어 재생이 되던 티빙 어플을 통해 뉴스를 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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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이 10일 남은 그 때, 평소와 같이 독서실에 공부하러 아침부터 나온 그날이었다. 그러나 계속 머릿 속에 맴도는 아침의 그 뉴스. 처음으로 나는 독서실에서 핸드폰을 끄지 못하고 있었다. 시험이 10일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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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수요일이였고축구 동아리에 참여했습니다. 학교는 대부분 기숙사를 사는 기숙형학교였으며시골에있는 폐쇄적 분위기의 학교였습니다. 점심식사가 끝나고 동아리시간에진도에서 우리와 동갑이었던 친구들이 타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교육청의 전원구조 오보문자 소식에 친구들과 함께 어떻게 그럴수있냐며 분노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녁쯤이 되었을때 수백명의 친구와 시민들이실종되었다는걸 깨달았고... 너무나도 큰 사고가 났구나.... 패닉상태여서 야자시간동안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라고해도 과장이 아닐만큼의 생활을 했던 수험생도그날만큼은 생생히 기억합니다. 헌데.. 대통령은 그날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니...이게 나라입니까..그녀를 뽑은 국민들이 처음으로 원망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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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다름없이 날씨는 화창했지만, 식사를 하던 식당의 텔레비전에서는 끔찍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수학여행을 가던 어린 학생들이 탄 배의 침몰...저도 제주도 수학여행을 배를 타고 가보았던지라 얼마나 큰 배의 얼마나 큰 객실에서 아이들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 지 상상이 되었죠. 기대와 달리 구조는 전혀 진척이 없었고 인터넷에서 한 이미지를 보게 되었죠.배가 기울면서 객실의 출구가 머리위로 향해있고 턱끝까지 바닷물이 차오르는 이미지. . .절대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상상만으로도 저는 그 날 아이들이 느꼈을 공포감이 이렇게 선명한데. . . 구조에 힘써야 했던 사람들은 어쩜 그리 무책임한걸까요. 통탄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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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항상 오후 출근이라 늦게 일어납니다.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보면서 잠을 깨고 침대를 나오는데, 그 날은 인터넷창을 누르자마자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저는 안산 사람이고, 너무 익숙한 그 이름에 잠이 확 깨서 뉴스를 계속 찾아봤습니다.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전원 구조라는 기사가 메인에 뜨는걸 봤고, 출근 준비 후 시간이 흐르고 다시 봤을 때는 그 기사는 사실이 아니였다는 것과 점점 침몰하고 있다는 내용에 엄청 걱정스러웠습니다. 그 날 하루는 그.. 산소포켓?이 있을 수도 있으니 희망을 가져보자는 말들이 있었고 저 또한 계속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희망은 시간이 흐를 수록 절망이 되었지만 그 과정 또한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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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어린이집,학교에 보내고 집안일 중이였어요 방송에서는 다들 세월호 얘기뿐이였고 전원구조라는 말에 감탄했는데 오보라고 ....뉴스보면서 실종자가 이렇게 많이 생길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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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이 있었을 때...백수였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시간이였지만...4월 16일에 7시간 동안 무슨일을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납니다.아침에 일어나서 티비를 돌리다가 속보를 보았고 그속보가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내용이였습니다. 그리고 전원 구조에서 구조인원을 번복하였다고 ytn남자 앵커가 말하는 것도 기억이나고 계속 뉴스를 보면서 구조인원을 획인하였던것도 기억 납니다.... 그리고 친구들과 뉴스를 봤냐고 안타까워하고 가슴아파했던 것도 기억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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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장대응으로 죄 없는 학생들이 죽었다. 그 학생들도 꿈이 있고, 하고 싶은 일도 , 앞으로 해야 할 일도 있는데.. 대통령이 그 모든 학생들의 꿈을 짓밟아 버렸다. 나는 꼭 알고 싶다. 사라진 7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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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3이었습니다. 그날은 다른 날과 똑같이 아침 일찍 학교에 와서 자습을 하고 수업을 듣고... 그 전날과 다를 게 없던 오전이었습니다. 그날의 첫 수업은 일본어 시간이었고 일본어 선생님께서 아침에 수학여행을 갔던 친구들의 배가 가라앉았다는 기사를 알려주셨었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전원이 구출되었다는 소식까지 알려주셨습니다. 반 친구들과 저는 처음엔 너무 놀랐었는데 바로 구조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와 그 애들한테 엄청나게 기억에 남을 수학여행이 되겠구나 우리는 어땠었지? 하면서 수학여행의 기억을 떠올리고 웃고 지나갔었습니다. 그렇게 다른 날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하루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수업을 마치고 핸드폰을 받아들고 제가 본 뉴스는 오전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습니다. 대부분이 구조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배는 점점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충격을 받았고 한동안 모두가 패닉 상태였습니다. 모두가 구조되길 밤새 생중계를 보면서 기도했고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다른 날과 똑같이 평범하게 지나갈 수 있었던 그날의 사건...늦은 대처로 이렇게 가슴 아프게, 절대 잊히지 않는 날이 되었습니다. ...정말 아직도 기억이 나지 않으신가요? 진심으로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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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준비중일때라서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기사보구 전원구조래서 아 다행이네 하고 다시 공부했어요 ㅋㅋㅋㅋㅋ 경제학강의 듣다가 집에 밥먹으러 와서 밥먹고 폰보는데 오보인거 알고 충격먹고 다시 도서관 갔는데 집중이 너무 안돼서.. 폰 계속 보다 결국 하루치 공부량 못채우고 새벽까지 공부하다가 때려치고 집와서 또 기사 찾아읽으면서 울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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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본관에서 암센터로 넘어가는 길에 안과외래 앞에 있는 TV모니터에서 뉴스봤어요.그리고 내 일을 묵묵히 할수 밖에 없었지만 잊을수가 없네요. 미안합니다. 평안히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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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저의 친언니가 그 전날 제주도를 가서 더 기억에 남죠 저희 언니는 비록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를 갔지만 만약 배를 타고 갔더라면.. 후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세월호를 잊은적이 단 한순간도 없습니다 어떻게 잊습니까 잊을수가 없죠 아니 못잊습니다 저희 언니 사는곳도 단원고 근처입니다 우는 소리가 많이 들린다고 합니다... 아들아 딸아 울부짓는 소리가 매일 매일 들린다고 합니다 저도 웁니다 마음속으로도 울고 세월호 생각만 하면 눈물이 흐릅니다 진실을 밝혀 주세요 1000일 이나 되었지만 1000일 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진실은 아직 하나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진상규명 필요합니다 꼭 밝혀 주세요 기도합니다 아직도 차가운 바닷속에 있는 아이들과 그들 얼마나 춥고 무섭고 가족들이 보고싶을까요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에 진짜 가만히 있었을 그들을 생각하면 참 말이 안나옵니다 제발 꼭 밝혀 주시고 인양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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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력이 나쁜 제가 몇일전 일도 기억못하는제가 그날만큼은 정확하고 확실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출근해서 동료들과 전원구조라는 보도듣고 다행이라며 안심하고있다 오보라고 정정보도 나왔을때 너무놀라 하루종일 일을 못했었네요..슬픔의 날. 죽을때까지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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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평소와 다르지 않게 아빠가 데려다 주시는 차로 학교로 등교를 했습니다.저는 그때 휴대폰이 고장나서 휴대폰이 없는 상태로 학교를 갔습니다.그런데 친구들이 기사를 보더니 저에게 단원고에서 언니 오빠들이 수학여행을 가다가 배가 침몰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저는 저와 아주 친한 언니가 단원고라는 사실을 깨닫고 갑자기 눈물이 나면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집에 가서도 언니에게 전화도 해보고 문자도 해보았는데 답이 없었습니다. 저는 뉴스를 보면서 기도 하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현재 3년이 지나도 저는 그날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전원구조라고 저희를 속였던 기자들..저는 그말만 믿고 다행이라고 정말 다행이라고 좋아했는데 오보라고 기사가 다시 나는 순간 어이가 없고 화부터 났습니다. 아무 죄도 없는 학생들을 잔인하게 죽음으로 몰아노은 사람들을 꼭 처벌해야 합니다. 꼭 기억하고 잊지 못할 것입니다. 너무 미안합니다..할 수 있는게 없어서REMEMBER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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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당신들이 한 일은 뭔가요?...시간이 지나면 잊혀 질줄 알았나요?거짓말로 덮을수 있다고 생각했나요?국민이 닭대가리 인줄 알았나요?20140416살아 있는 동안 저 날짜는 절대로 잊지 못할겁니다.언젠가는 누군가 양심선언 할 겁니다.반드시...유족분들에게 다시 한번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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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을 어찌 잊을 수가 있을까요? 저는 사회복지 실습을 위해 그 날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 돌보고 아이들 간식과 저녁을 준비하는 것을 도왔지요. 그래도 정신은 온통 뉴스와 포털 사이트 소식에 가 있었네요.누구에게는 생애 처음이었을 제주도 여행이 마지막 참혹한 일이 되어버린 그 날을 왜 청와대 사는 그 사람은 작년인지, 재작년인지도 헷갈려 하는 걸까요? 사죄와 책임은커녕 유가족들을 말로 여러 번 죽이는 이 작태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요?전 국민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안겨준 그 날 잊을 수 없습니다. 유가족들이, 촛불을 든 시민들이 지치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하여 명명백백 밝혀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