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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일어나서 등교준비 중 처음 기사를 접했는데 그 순간은 그렇게 큰 사건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수업에 들어가서 교수님께서 세월호얘기를 다시 얘기해주셨는데 그제서야 심각함을 느끼고 실시간으로 뉴스를 시청했습니다.처음에는 조금 기울었던 정도였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배가 점점 가라앉는게 보였고 마음이 너무나도 타들어갔습니다.가장 선명했던 장면은 결국 배가 다 가라앉고 뱃머리만 바다 위에 살짝 보였던 순간이었는데 너무 충격적이어서 아직까지도 생생합니다..바닷속으로 빨려들어간 아이들과 다른 관광객들을 생각하면 그 순간의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까 상상도 안될정도로 마음이 아픕니다..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사고이자 바뀌어야 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부끄러운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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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쌤 잘 지내시죠? 쌤 반에 성인되서 놀러갔을 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네요 ㅎㅎ 남자애들이라고 엄청 까불기도 하고 먹을거사왔다고 신나게 달려들기도하고 난리도 아니였죠ㅋㅋ 그때 그애들 보면서 마냥 귀엽다고 ㅎㅎ 근데 힘드시겠다고 걱정스런 말한마디에 지혜쌤이 너네가 더 심했어~라고 하셨을때 진짜 웃겼는데ㅜㅜ 옛날얘기 하면서 악의 구렁텅이, 백설공주,교내봉사, 동영상 등등 ㅜㅜ 쌤! 우리 얘기마저 한다고 다녀오시면 맥주한잔 하기로 하셔놓고.... 정말 너무해요ㅜㅜ 약속 어기시고.. 지각하면 그렇게 혼내셔놓고...!! 국수먹여주신다면서요...쌤제가 신나게 축가 불러드린다고 했잖아요...ㅜㅜ지금 잘 지내고 계시죠?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냥 추억팔이 해보고 싶었어요... 보고싶다. 우리지혜쌤... 다른 아이들과함께 매년 잊지않을거에요 여전히 앞으로도 존경합니다.편히 쉬시고 그곳에서 아이들과 행복하게 지내세요 사랑해요 선생님 정말 보고싶네요 ...우리 단원고 후배들도 많이 추웠지?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너흰 너무나도 소중한 아이들이였고 평생 미안한 마음 잊지않고 살아갈게 어른들이 못나서 정말 정말 미안해.. 매년 꽃이되어 돌아와주길 삼가 고인의 병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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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봉우리만 남긴 채 가라앉은 그분들과 그분들과 함께 했던 시간 속에 쳇바퀴처럼 갇혀 살고 있는 분들의 마음을 그 누가 이해하고 위로해드릴 수 있을까요. 전 그저 하루 빨리 진실들이 밝혀져 아직은 우리 사회에 정의가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줬음 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잊지 않고 더 나은 내일이 왔으면 좋겠습니다.잊지 않겠습니다, 아니 못 할 겁니다. 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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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때 학교 재봉틀 앞에 앉아있었다. 스마트폰을 뒤적이다 "전원 구조"라는 기사를 보고, 같은 수업을 듣는 동생에게 얘네 수학여행 무용담 하나 생겼네. 하고 이야기했었다.작업을 마친 몇 시간 뒤에 다시 스마트폰을 뒤적이다 울게 되었다.이렇게 금방 인양할 수 있었는데 대체 그 동안 정부는 뭘 감추고 싶어했나 박근혜 정권이 원망스럽다.이제, 남은 미수습자 분들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길..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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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저는 그 날 과학 수업을 받다가 선생님께서 "배가 기울어졌는데 전원구출이 됐다 다들 안전할거다"라 하셔서 당연히 모두 구출된 줄 알았어요 근데 그게 알고보니까 오보였고 제발 구출이되었으면 하고 빌었는데... 중학교 2학년이었던 저는 어느덧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어요 잊지않을게요 세월호 제발 .....잊지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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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수요일, 저는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저도 그 당시에도, 지금도 안산에 살고 있기에 기억이 생생합니다. 날은 전국 영어 듣기평가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저희 학교도 여느 학교와 같이 매일 아침마다 핸드폰을 걷어갔으나 몇몇 친구들은 제출하지 않았죠.. 오전 11시에 듣기 평가가 끝나고 잠시 뒤 반은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 단원고 학생들이 타고 있던 배가 침몰했다는 것입니다. 단원고는 같은 안산 소재의 학교이기에 학년이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건너 건너 아는 동생들이 많았습니다. 온 반이 아수라장이 됐고 다들 학원 아는 동생이 타고 있는데, 내 사촌동생이 타고있는데 등 모두가 어떡하냐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수업이 시작됐고 수업이 끝날때 쯤 전원구조됐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모두 진짜 다행이라고 아마 지금 연락 안되는건 정신 없어서 그럴거라고 안도하고 여느 하루와 같이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오후 수업을 할때쯤 그게 오보였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또 다시 학교 전체가 충격에 휩싸였죠.. 그 배에는 저희 학교에 근무 하셨던 양승진 선생님이 근무하셨었고, 강민규 교감선생님은 단원고 교감선생님으로 부임하시기 직전에 저희학교 교감선생님이었기에 학생들과 선생님들 모두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학교가 끝났습니다. 언론에선 계속해서 오보가 나오고, 언론마다 말이 달라 어느 것을 믿어야하는지 몰라 답답했습니다. 제 기억엔 그 날 비가 내렸던것 같은데 국어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지금 단원고 아이들이 울고있다..." 며칠 뒤, 강민규 교감선생님께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학교에서 접하고 우린 모두 울었습니다.. 점심시간이나 석식시간때 줄을 기다리고 있으면 가끔 교감선생님께서 웃으면서 말도 걸어주시고 인사도 해주셨기에 그 웃는 모습이 기억나서 너무 슬펐습니다. 얼굴을 찌푸리는 일이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학생들에게 매번 웃는 얼굴로 대하셨던 분이신데 .. 그리고 매 수학여행이나 수련회때도 꼭 함께하셔서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노력하셨던 분이었습니다. 제 친구네 어머니가 당시 학부모 위원장님이라 교감선생님과 친분이 있으셨는데, 그 친구를 통해 교감선생님이 사실 저희학교에 남고 싶으셨는데 단원고로 가셨던 것이란 이야기를 듣고 더욱 안타까웠고, 왜 돌아가셨는지에 대한 것도 듣고 나서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장례식장에 갔는데 저희또래인 자녀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대체 왜 언론은 전원구조 되었다는 오보를 냈으며, 왜 이렇게 많은 희생자를 남겼을까요? 박근혜 전 대통령은 7시간동안 어디서 무얼 했을까요? 아직까지도 다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참 무섭지만 하루빨리 밝혀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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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오빠들이 무서웠을때 선장이라는 놈은 뭐했는지.. 절대 잊지않을께요 언니 오빠들 이제는 하늘에서 편하게 쉬고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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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에 밥먹으면서 티비를 보다가"괜찮아요. 저거 타이타닉 이후로 구명보트나 구명조끼는 사람숫자보다 많이 실려있어서 다~살수 있어요 밥이나 먹죠"그렇게 구조 0명 이라는 결과를 보니말은 안나오고...... 기가막히고 망치로 머리를 두둘겨 맞고 내가 지금 몇년도에 살고 있는가..... 내가 알고있는 상식은 이썩을 나라에 통하지 않겠다......진짜 어른이 되서 부끄러움을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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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고등학생이었고 교실에서 수업을 받던 중소식을 접했다.모두 한마음으로 전원 구조가 되길 바랬고틈 날 때마다 뉴스를 틀어 무사히 구조가 됐는지 지켜보았다.당시 수업도 잊은 채 눈물을 흘리시던 선생님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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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나의 영어 선생님은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을 태운 배가 침몰될 뻔 했는데, 다행히 전원구조가 되었더라." 하는 말씀을 전해주셨고, 우리는 다행이라고 하며 늘 그랬듯이 졸면서 영어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오보라는 사실을 한 친구가 이야기했고, 그때부터 그 날은 핸드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방송은 보험금을 계산했고, 어떤 사람들은 방송에 지시에 따른 사람들을 탓했지만 점점 가라앉는 배를 들면서 제가 한 생각은 "내가, 그리고 내 가족들과 친구들이 저 안에 있구나" 였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잊지 못합니다.P.S. 다음 달 15일에 팔 위쪽에 그 날 하루종일 들여다봤던 장면을 새길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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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캐나다에 있었지만, 뉴스로 생중계를 보고 있었습니다. 잊지않겠습니다. Remember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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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때 중학교 2학년이었다. 한참 2교시 국어수업을 듣고 있었고, 선생님이 배 사고가 났다며 기사를 틀어주셨다. 다행히 전원구조라는 기사를 보며 반 친구들 모두 천만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었다. 그리고 몇시간 안 있어 다시 정정기사가 났고, 티비로 봤던 울부짖는 사람들의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집에 가서도 그 날은 뉴스를 계속 틀어놓고 봤었다. 영영 가지 않을 것 같던 세월이 이렇게 흘렀고,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다. 요즘도 세월호 관련 기사만 보면 그렇게 울컥한다. 천일이 조금 더 지난 지금, 이제는 제발 진실까지 인양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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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동갑이에요. 학교에 있다 들었어요. 별것도 아닌 해프닝인줄 알았어요 근데 아니더군요, 나랑 동갑인 애들이, 오붓하게 놀러가시던 분들이 그렇게 황망하게.. 진짜 황망하게.지금 이글을 쓰면서도 울고있어요 눈물이 멈추질 못해요 왜 죽어야했나요 왜 그렇게 슬프게 떠나야만 했을까요 내맘에 영원히 남을거에요. 나와같이 열여덟 낭랑했던 애들과 행복한 여행을 눈앞에두고 떠나게된 분들....제맘에 늘 남을거에요 약속할게요 절대로 그리 잊혀지지 않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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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오전에 일을 시작하면서 속보를 들었습니다. 사무실에는 TV나 라디오가 없었기에 가지고 있던 타블렛에 부랴부랴 채널앱을 설치하고 라이브 화상을 틀었습니다.일을 하는둥 마는둥 연신 화면에 눈이 돌아가고 있는데, 자막과 속보가 나오더군요.전원구조라고.안심하고 전원을 끄고 일에 몰두했습니다. 점심도 맛있게 먹고 사무실을 들어왔구요.그러나..속보로 뜨는 인터넷 뉴스에서는 다른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시 화면을 켜자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을 어찌잊겠습니까.내 동생, 내 아이, 내 조카 같은 아이들이 살고자 발버둥 치는데 아무것도 하지않는 인간의 탈을 뒤집어쓴 자들이 있는데 그걸 어찌 잊겠습니까.팔에 차고 다니는 노란색 팔찌도.. 차 뒤에 붙은 노란색 리본도.. 매일 보내는 문자도...어느것도 그 아이들에게 도움이 안될것입니다.이제부터라도 철저한 진상규명이 시늉이 아닌 진짜로 진행되어야 할것입니다. 수괴가 일단 구속이 되면 그 밑의 잔챙이들까지 모두 잡아들여 진상을 규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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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서 가라앉는 배를 보며, 내 수학 여행때 생각을 하고 그 아이들의 부모님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고 무기력해졌어요. 아직도 세월호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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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가네요.떠올리기만 해도 울컥하고 눈물나는 그 날이 벌써 3년가까이 되었다니, 아직도 이렇게나 많은 이들이 생생히 기억하는 그 날이. 3년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어제일같은 그 날이. 나는 평생 가슴에 새겨 잊지 않겠습니다. 잊어서는 안 될 우리들의 7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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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4월16일 서울 참 맑고 예쁜 날씨 였습니다.인터넷 기사를 보면서 진도에서 수학여행을 가던배가 사고를 당했으나 모두 구조 하였다는 기사 였습니다 . 그때가 11:30을 조금 넘긴 시간 이였죠.당연한 거라고 다행이네 라고 생각 하고 있었습니다 . 작은 통통 배도 아니고 큰 여객기 였기에 그리고 우리나라의 각 해당 기관을 믿었기에 구조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 했습니다 . 이때 까지만 해도 미래에 아 그런 일이 있었지 할만한 작은 헤프닝 같았습니다 . 하지만 모두 거짓이었습니다 . 오후 2시를 넘어 갈때 쯤 배는 이미 몇시간전 완전히 침몰 하였고 그 안에 수많은 학생들과 일반시민 들이 세월호와 함께 침몰 하였습니다. 그때 기준으로 4년전 천안함에서 기사처럼 공기주입을 하고 있다고 믿고 싶었습니다 . 그 많은 사람들을 그냥 죽게 두지 않을것이라고 .. 하지만 온나라가 패닉에 빠질 만하게 자의적으로 탈출한 사람 외에 모두가 깊은 바다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렇게 우리 눈 앞에 사라져 버린 세월호가 만 3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후에야 다시 나타났네요 . 부디 아직 돌아 오지 못한 9분이 그안에 계시길 그때 그날 모두가 살아 돌아오길 바랐던 마음으로 바라 봅니다 .. 잊지 않을께요 20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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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당일 그날을 잊지 못합니다. 전 희생자 가족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이 겪은 가슴아픈 그날을 하루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그날 저는 회사에 있었고 당일 새벽 5시까지 야근을 하고, 잠시 집에 갔다가 다시 회사로 와 해당 결과물을 정리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사고 소식은 포털 사이트를 통해 처음 보았는데 처음에는 장난 같았습니다. 하지만 광고주에게 제안서를 제출하러 택시타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배안에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음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 답답하고 마음이.아프고 꼭 내 가족이 그곳에 있는 것 처럼 눈물이 나서 하루종일 일하기가 힘들었습니다. 3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배를 보니 반갑기도 하고 또 겉잡을 수 없이 슬픕니다. 미수습자 9분의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며 모든 희생자 가족분들과 트라우마를 이기며 살아가고 계신 생존자 여러분을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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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시간 시차가 나는 애틀란타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신문을 통해 처음 접하고, 도착한 후 티비를 껴고 살았습니다. 안타까움만 안은 채, 내내 지켜만 봐야했고, 지금까지 분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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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에서 배가침몰됬다는말을듣고 구조하겠지생각했는데.. 너무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