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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고2 모의평가 영어듣기 시간이었다.점심을 먹고 나서 친구들이 야!! 대박 수학여행가는 배 추락했대!!! 조금 뒤 와 다행이다ㅠㅠㅠ전원 구조됐대!!!!! 다시 뒤에 오보라는 소식과 함께 우리는 모두 분노를 삭히지 못하고 안절부절 너무 불안했습니다. 친구들 그리고 다른 승객들이 모두 구조가 되기를 탈출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또 바랐습니다.. 저는 그 날의 날씨와 제가 앉은 자리, 인터넷 기사, 친구들의 얼굴과 목소리 까지 똑똑히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날 마음이 편하지 않은 채로 알바를 갔습니다. 매장 직원들의 위치도 똑똑히 기억나요. 그 곳에서 직원들이 저와 동갑인 친구들 아니냐고 그러셨습니다. 저는 계속 핸드폰을 붙잡고 어떻게됐나 구조됐나 제발 사망자가 없어라 하고 기도를 하고 또 기도 했습니다... 저는 2014년 4월 16일의 기억을 잊지 못합니다.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세월호에 탑승해있던 모든 승객들, 선원들 한 분 한 분, 다 알지 못하여서 죄송합니다..허나 당신들의 죽음을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정말 많이 무섭고 슬프고 억울하고 안타깝고 춥고 괴로우셨죠.. 부디 하늘에서는 좋은 곳에서 따뜻하고 편안하고 행복하기를 바라겠습니다..각각 살아온 인생의 길이는 다르지만 짧던 길던 그 소중한 시간동안 존재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당신들은 모든사람들의 행복이었을겁니다. 당신들의 못다이룬 꿈과 살아보지 못한 나날들이 너무 안타깝고 애통합니다.. 하늘에서는 평안하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1073일동안 추운 바닷속에서 갇혀있던 분들,, 이제야 물 밖으로 나오게 해서 죄송합니다.. 이제는 더이상 춥지 않고 따뜻하게 편히 쉬세요... 세월호 피해자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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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당일 날 나는 학교에 있었고 그때가 아마 자습시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자습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지 자고 일어나보니깐 선생님께서 학생들이 수학여행 가려고 탄 배가 사고났는데 전원 구조가 됐다는 말에 다행이다 생각하고 별 생각이 없었어 학교 마치고 집에 와서 뉴스를 보는데 전원 구조는 오보였고 온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어 힘없는 내가 해 줄 수 없는게 아무것도 없어서 미안하고 구조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방법 밖에 없었어 지금도 그때 일만 생각하면 아직까지 눈물나고 가슴이 미워지고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진실은 꼭 밝혀질거야 매일 기도할게 너희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분들 승무원분들 다 기억하고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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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해외에서 유학중이 었습니다. 그날 따라 잠이 오지 않아 새벽에 깻습니다. 아마 새벽 5시쯤 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 노트북을 켜 뉴스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세월호 소식을 들었습니다. 너무 충격이었습니다. 제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 졌습니다. 세시간 동안 아무말 없이 계속 올라오는 뉴스를 지켜봤습니다. 그냥 다른 뉴스로 넘어가고 싶은데도 그게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깼습니다. "여보, 수학여행 가다가 배가 침몰했는데 애들이 배에 애들이 갇혀있데..." 아내도 그 소식을 접하고 많이 슬퍼했습니다. 더 최악의 상황은 그 후였습니다. 여기저기서 날라오는 정부의 잘못된 발표, 오보, 루머, 가짜뉴스들, 선동꾼, 정치꾼, 관심종자들까지 더해져서 뉴스로 접하는 저도 혼란스러웠는데 그 자리에 계신 피해자 가족분들은 오죽했을까요... 그 날 그리고 몇주간은 우울했던 기억이 납니다. 국가에 대한 제 신뢰가 깨져버린 날이기도 했습니다. 말하기도 죄송스럽지만, 피해자 가족분들의 상처가 하루 빨리 아물고 더불어 그분들이 원하는 정의가 실현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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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보면서너무나 가슴아팠네요허둥되며아우것도못하는구조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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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교길 버스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뉴스를 통해 처음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어리둥절하였는데, 집에 도착하여 tv뉴스를 보니 커다란 배가 바다 한가운데에서 침몰하고 있는 상황이 중계되고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생존자 수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사망자와 실종자 수만 늘어가는 것을 보며 마음 아팠던 기억이 있습니다. 현재는 슬픔을 넘어 왜 날이 좋지 못했던 때에 세월호만 출항을 해야했는지, 왜 그 때 그 많은 사람들을 구조할 수 없었는지, 왜 정부에서는 지금도 세월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의 진실을 알려주지 않는지에 대한 분노로 감정이 변화하였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우리는 기억합니다. 앞으로도 잊지 않겠습니다. 미수습자 9명도 어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세월호 희생자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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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2년전군대에서막휴식을취하고있는데그날이제생일이기도합니다그런데군대동기들이TV시청하고있는데세월호침몰소식이접해지면서정말안타깝고참기억이아직도생생하기도합니다이로인해안산단원고학생들과선생님들이참안타깝다고생각합니다제가전역후서울광화문광장에세월호유가족분들이정말로고생이많다고합니다그이후부터최근뉴스볼때마다세월호인양현장을지켜보았는데인양을성공했지만잊지않은9명미수습자를무사히가족들을폼으로돌아올수있게응원하겠습니다그리고잊지않은기억교실도팽목항도정말로잊지않게다고다짐하겠습니다언제나항상응원하겠고요저는그래도4.16을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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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4.16 평소처럼 학교에 가서 수업듣고 밥먹고 하교 했다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뉴스에서 세월호가 침몰되고 처음에는 별사고 아니였다는 오보를 기억한다 사고초반부터 뉴스뜨고 모두 주목하고 있었는데 우리들이 기사보며 안도하고 긴장하고 걱정할때 그분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3년이 지났지만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하지만 그사람들한테는 30넌전에 일마냥 기억이 안나나보다 난 30년이 지나도 기억 날꺼같은데to remember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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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중3이되어 학교에서 수업을듣고있는데 한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지금 어떤학교학생들이 수학여행을가디 배가 사고를 당햇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와 더불어 전원 무사 구조했다며 그래도 다행히지 않냐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그렇구나 라는생각을하고 집으로 하교했습니다. 하지만 전원 구조는 거짓이었고 결국엔 수 많은 목숨들을 앗아가버렸습니다. 그 사건을보면서 유가족들을보면서 저또한 슬퍼 눈물이 흐르기도 했습니다아마 이 기억은 몇십년이 흘러도 잊지못할 슬픔일 것 같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나고 가슴아픈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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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달라는 말에 기다리라고 답했고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그들이 생사를 오가는동안 한 나라의 대통령은 자신은 미모를 가꾸고있었고 그 시간동안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세월호의 선장은 팬티바람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외면한채 혼자 탈출했습니다.안산 단원고등학교의 교감선생님이 돌아가셨고 수많은 유가족들에게 대못을 박았습니다.대못을 박은 그 사람들은 세월호에 있던그들의 살려달라는, 구해달라는 외침을 듣지 못한것이 아니라 듣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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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6 여느때와 다름없이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학교 컴퓨터로 뉴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 전원 구조 라는 문구를 보고 정말 걱정도 하지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학원까지 다녀오고 신나는 마음으로 집에 와서 TV를 켜고 쉬고있었는데 전원 구조도 아니였고 조금이아닌 아주 큰 일이 일어났단걸 알 수 있었습니다 제 일이 아니라 걱정하지 않았고 별 일 아닌 것 같아 걱정하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무섭고 두려우셨을텐데 걱정하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제가 이제 그 나이에 서있는데요 잊지않고 기억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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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난 내 기억의 파편을 긁어 보아보자면,나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하루였지만, 누구에게는 정말 특별했을, 하루....조요히 지는 태양과 함께, 배는 차가운 물살과 함께 가라앉고 있었다....그저, 말 없이 지켜만 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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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아픔의 크기는 잴수 없지만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날의 아픔을.답답한 진실을 외면해버린 자국민의 대통령,우리는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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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일어나고 첫구조를한다는 소식에 잠도 못자고 핸드폰으로 뉴스만봣던게 생각난다...그때는내가 동생이엿지만...지금은 내가 오빠 형인게 너무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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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엔 내가 너보다 동생이었는데 어느새 내가 너에게 누나가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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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친구들과 밥을 먹다 식당 텔레비젼으로 세월호 침몰 보도를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 저게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이냐며 식당 사람들 모두 한탄 했는데 밥을 다먹고 나오니 이번에는 인터넷에 오보였다는 내용이 기사로 올라오더군요. 뭐야 별거 아니였네 하고 넘겼는데........시간이 지나도 친구들과 저는 그날 일을 잊지 못합니다 분명히 오보였다며 올라오는 기사 다음에는... 끊임 없는 사망자와 실종자들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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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3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지금, 그 날을 다시 기억해보게 됩니다. 전원 구조인 줄 알고 마음을 놓았던 시간, 그게 오보라는 게 밝혀져 더 컸던 충격, "구조"란 단어가 쓰인 뉴스 속보만 기다렸던 근 일주일 이상의 날들...모든 것이 마치 2014년으로 돌아간 듯 선명합니다. 내 일이 아닐 수 있었습니다. 그저 교통사고 쯤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조금 마음이 편할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 일은 우리 모두의 일이었고, 내 일이었습니다. 피해를 입으신 분들에 감히 비할 수 없지만, 저 역시 참 많은 눈물을 흘렸고, 아파했습니다. 그 때 그 7시간, 7일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깊은 상처로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아직도 그 때의 기억이 없는 사람들, 아니, 기억이 없다고 믿고 싶은 사람들을 대신해 끝까지 기억하겠습니다. 모든 희생자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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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그렇기에 거의 자습을 하는 매일매일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자습을 할 때면 라디오를 들었고 그렇기에 매일 오전 부터 밤까지 라디오를 시간에 맞춰 들었습니다. 그날도 늘 그렇듯 아침 라디오를 듣고 있었습니다. 아주 잠깐 디제이는 속보라며 사고 소식을 알렸고, 전원 구출되었다고. 그렇게 말하고 넘어갔습니다. 전원 구출되었다고 분명히 들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방송이 시작하고, 점점 시간이 갈수록 그것이 아니라는 뉴스와 전원 구출되었다는 뉴스가 혼란스럽게 라디오를 타고 나왔습니다. 어느새 반 모두가 알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점점 뉴스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뉴스는 혼란스러웠고 반 아이들 모두 그저 무사히 구출되기만을 바랐습니다. 하지만 그대로 더 진전 없이 시간은 흘렀고 3년이 흘렀습니다. 아직도 그 뉴스의 장면과 그 뉴스 화면에서 나오는 소리가 기억납니다. 아직도 라디오에서 전원 구출되었다고 하던 목소리가, 계속 상황이 바뀌는 뉴스가 기억납니다. 라디오에서 무사를 바라던 사연도 생각납니다.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2015년에는 그날 광화문에 갔습니다. 그저 국화를 두고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날은 캡사이신과 물대포가 있고 제가 가는 길을 막던 경찰도 있었습니다. 2016년에도 그날은 국화를 두러 갔습니다. 올해도 갈 것 입니다. 잊지 못할 것 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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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이동수업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가다 tv앞에 모여 웅성대던 친구들을 보았습니다. 이상하다, 왜 선생님이 야단치지 않으시지, 생각하며 친구들은 따라 tv 앞에 선 순간 화면 속 차갑게 침몰하는 세월호를 보았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가던 친구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러 떠나던 가족들, 희망과 꿈으로 가득 차 있던 배가 가라앉는 것을 보았습니다. 학교에서 공부를 할 때, 따뜻한 봄햇살을 느낄 때,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고 큰 소리로 외칠 때, 매 순간순간마다 세월호를 기억합니다. 그들은 기억 나지 않는다며, 잘 모르겠다며 애써 지우고 부정하지만 결국 진실은 어둠을 뚫고 밝혀질 겁니다. 그리고 세월호는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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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시 수업이 없었어요, 교과 연구실에 앉아서 인터넷 창으로 수학여행 가는 아이들 배가 좌초중이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세상에, 어쩌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오전수업을 마치고 급식실에서 전원 구조 이야기를 들었어요. 다행이다, 저 애들은 나중에 어른이되면 오늘의 이야기를 무용담으로 떠들거다 하는 얘기를 했어요. 그리고 오후수업을 마치고 왔더니 전원 구조가 오보래고 배는 아이들과 함께차가운 바다에 갇혔다고하고 티브이에서는 에어포켓 원리를 설명하고있고 저녁에는 친구를 만나서 밥을 먹었는데 둘이 같이 팡펑 울었어요. 그냥 그런 하루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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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영어 듣기 평가를 시작하기 전 흔히 들리던 라디오에서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사실 저는 그 때 제대로 못 들었어요. 끝나고 동아리 활동을 할 때 친구가 그거 들었어? 라고 하기에 뉴스를 찾아봤고 그때는 전원구조라는 오보가 떴을 때였습니다. 아 다행이다 다 전원구조래! 이러고 다시 동아리를 하고 있었는데 그거 오보래. 아직 다들 거기에 있대. 라는 말이 들려왔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와 무슨 그런거로 오보를 내냐. 부모님들 가슴 찢어지겠다 정도였습니다. 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그 아이들이 저와 동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가까운 동네에 살던 아이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저희 동네에는 그 배를 사실 우리 지역에 있는 다른 고등학교가 탔을 수도 있다. 라는 말이 돌던 때였습니다. 네 그제서야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내 친구들이 그렇게 사라졌을수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저는 한심하게도 그제서야 분노했고 절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