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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 세월호가 침몰했다고 나왔죠. 하지만, 모두 구조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래? 다행이네 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취업때문에 교육을 받으러 갔었죠. 그리고 전원 구조가 오보라는걸 알고 말이 안나왔습니다. 더 황당한건 세월호가 침몰되어 넘어가고 있어도 정부가 한게 없다는겁니다. 진짜 무서운기억이지만, 잊지 않습니다. 아직 세월호에 미수습자분이 계시고, 세월호가 왜? 넘어갔는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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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처음으로 학교에서 아는언니와 영어선생님의 대화를 통해 세월호사건을 접했다. 처음에는 세월호가 뭐지..? 무슨 일이지? 싶었는데 영어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니 할머니께서 yt* 뉴스를 틀어놓고 계셨다. 나는 쇼파에 앉아서 뉴스를 같이 보았다. 뉴스에는 총 인원 수 , 사망자 수, 실종자 수 가 표로 이루어져 위에 떠있었고 침몰해가는 배가 나오고 있었다. 단원고등학교 학생 언니, 오빠들이 그 배에 타있다는 정보도 알게되었고, 나는 방으로 들어와 가방을 정리하면서 울었다. 정말 나도 뜬금없이 울었던것 같다. 나중에 울고나서 티비를 보니 사망인원 수만 늘어갈뿐 생존자는 희박했다. 사건의 심각성을 느꼈고 그 당시 나는 5학년이었다. 지금은 중학교 2학년이고, 매년 나는 세월호 사건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아직도 비난을 받고 있는 세월호 사건은 영원히 기억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기억합니다.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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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염을 걸리는 바람에 외출증을 끊고, 학교 근처에 있는 병원 안이었어요. 아마도, 그 기사는 학교에서 제가 제일 먼저 봤을 수도 있겠네요.학생 전원 구조라는 기사가 나오면서 병원에 계시는 모든 분들이 다행이라고 말씀하시던 생각이 납니다.그날은 날씨가 참 좋았어요. 조퇴를 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날씨가 참 좋더라고요. 그리고 그 날씨 좋은 날은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잊을 수가 없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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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29일 남은 고3 학생입니다. 문득 제가 이 페이지를 즐겨찾기 해놨다는 것이 기억나서 들어와 봤네요. 저는 오늘 참회록을 쓰려고 본명을 적었습니다. 시간이 멈춰버린 단원고 희생자분들보다 제가 한 살 더 많아졌어요. 10대의 마지막생활을 보내면서 힘들지만 즐거운 시간들을 경험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참. 답답하네요. 이 페이지에서 글을 3번 정도 쓴 것 같습니다. 사라져 버린 7시간, 아니 7시간 30분을 되찾기 위해 국민들은 많은 노력을 하였고, 또 기억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저 마음 속으로만 외치고 있었습니다. 이제서야 왜 윤동주 시인이 그토록 부끄러워 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오늘 밤, 저는 윤동주 시인보다 더 부끄러워 해야합니다. 그저 마음 속으로만 외쳐서 죄송합니다. 그저 지켜보기만 해서 죄송합니다. 어딘가에 있을 단원고 희생자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런 저를 용서하지 말라고. 저는 오늘 여기 참회록을 쓰며 항상 반성할 것 입니다. 소극적이었던 저의 태도를. 그리고 이 글을 항상 기억하며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행동할 것을 약속합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7시간 30분, 제가 1초라는 작은 시간이라도 되찾을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우리는, 저는, 2014년 4월 16일 그 날을 꼭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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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때였는데 음악시간이 끝나고 교실로 가니깐 담임 선생님이 배가 가라앉았다고 말하셨떤게 기억이 난다. 처음엔 무슨 말을 하시는지 몰랐는데 곧 나오는 뉴스를 보니까 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했다는 것이였다. 집에 와서 뉴스를 보면서 무사히 구출되길 바랬던 그 날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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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수학여행을 다녀온지 얼마 안 되어서 교실 여기저기서 수학여행 때의 이야기가 오고가던 때였다. 2교시 문학시간에 문학 선생님께서 들어오셔서 너희랑 동갑인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다가 사고가 났다더라, 근데 다 구조가 됐다더라 하시면서 기사를 보여주셨다. 우리는 다행이다, 하면서 넘겼다. 학원에 갔다가 어둑해진 밤에 집에 왔는데 부모님께서 초조한 얼굴로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다. 고등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가다가 사고가 났다고 그러셨다. 다 구조가 됐다던데? 하면서 텔레비전을 봤는데 심장이 쿵, 하고 내려 앉았다. 아니었다. 오보였던 것이다. 나는 그때 그 문학시간을, 그리고 밤에 와서 본 텔레비전 뉴스를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다. 나는 이렇게 잊을 수 없는데 어떻게 그 날을 윗 사람들은 다 잊어버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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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저는 육군훈련소 입소대대에 있을 때였습니다. 입대한 지 이틀이 됐을 때, 아침에 지휘통제실로부터 방송이 나오더군요. "훈련병들 중에 안산 출신 학생" 또는 "단원고등학교 출신 학생" 이 있거나 "잠수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이 있으면 지휘통제실로 와보라고.. 왜 특정 학교와 지역 그리고 육군에서 이런 자격증을 찾고있는지 그 때 저는 몰랐습니다.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넘어갔습니다. 그러다 입소대대에 있다 연대로 넘어가면서 처음 맞은 주일날에 그 진실을 알게되었죠. 연무대 교회에서 목사님께서 틀어주신 영상에서 그 참혹한 실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탄 세월호에 많은 학생들이 갇혀있다고.. 실종자를 수색중에 있다는 말을 듣곤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유가족들은 슬픔에 잠겼고, 소식을 전하던 기자와 아나운서는 속에 쌓여가는 눈물을 흘리며 그 소식을 전했습니다.. 군인 신분으로써 할 수 있는게 없어 마음이 쓰였고 괴로웠습니다.. 할 수 있는것이 기도였고, 한 명이라도 살아서 돌아오길 바랄 뿐이었죠... 하나님, 이 아이들이 살아서 돌아오게 해 달라고.. 더 이상 슬픔이 이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한 줄기의 빛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어둠 뿐이었습니다. 세월호 사건이 터진 지 7시간이 지나서야 나타난 대통령. 사태 파악을 전혀 모른 채 국민들의 마음조차 헤아리지 못하는 대통령의 태도에서 실망을 감출 수 없었고 , 세월호에 얽힌 비리들이 줄줄이 터지며학생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어른들의 이기심에 분노했으며 전역 이후에 인양이 되지 않은 채 수수방관하며 자신들의 기득권만 챙겨가려는 503정부의 태도에서 암울함을 봤습니다. 결국 국민들은 빛으로 그 어둠과 맞서 싸웠습니다.. 어둠에 갇혀 방치되었던 그 아팠던 기억이 마침내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빛은 어둠을 밝히어 들여다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했습니다. 국민들이 든 진실이란 빛은 아픔과 절망을 비추어냈습니다.. 그 순간을 잊지 않겠습니다. 10년이 지나도 후손들이 기억해야할 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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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이었을때, 수학시간에 수업 대신에 영화를 보려는 중이었습니다. 영화 페이지로 넘어가기 전 짤막한 여객선 사고에 관한 뉴스 제목을 봤지만 별일 아닐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수업시간이 끝나고 보니 우리의 수많은 친구들이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 뉴스 제목을 보고도 별 생각하지않고 지나쳤던게, 그들이 고통에 잠겨있을때 교실에 앉아 영화를 보면서 웃었던게 너무 미안합니다. 저는 그 때 그 기억 절대 잊지 못할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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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2교시 수학 시간선생님이 들어오시더니 "서해안에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 뉴스를 봤다." 언제 보았냐는 질문에 방금 교무실에서 보고 내려오던 참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알아서 잘 해결될테니 공부나 하자고 하셨다. 그 이후로 들어오는 선생님들께 우리 반은 모두 배에 대해 질문했고,몇 명은 구했고 몇 명은 아직 못 찾았다고 답 하셨고, 집에 가서 뉴스를 확인할 때 까지도 실종자 수는 큰 변화가 없었다. 한동안 같은 뉴스 같은 장면만 반복되었고, 부모님은 실종자 유가족의 우는 모습을 보면서 훌쩍거리셨다.한창 즐거울 때, 행복할 때, 똑같이 사고가 났어도 모두 살아서 우리가 예전에 그랬지 하면서 웃을 수 있었을텐데, 영원토록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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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정보시간이었어요컴퓨터실에서 인터넷에 들어갔는데,배가 침몰하였다는 기사를 보게되었고옆친구와 걱정하던것도 잠시전원구조 되었다는 기사를 보게되었어요그때 "다행이다"라고 육성으로 내뱉은 그 감각이 아직도 생생해요저는 어렸을적 단원구에 살며 단원고등학교를 보고자랐고, 지금은 이사했지만 그래도 아직 안산과 가까운 지역에 살고있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전원구조 기사를 본 다음날, 다다음날, 일주일 후..제가 봤던 그 기사와 너무 다른 현실에, 저는 제가 컴퓨터실에서 본 전원구조기사가 제 꿈인줄 알았어요그때로부터 4년이 지났대요......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절대 잊지않겠습니다, 그 날 제가 보고 듣고 느꼈던 모든것을요... 영원토록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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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중학생이었던 나는 선생님을 통해 소식을 접했고 별 일 아니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하교 후 티비를 켰는데 뉴스엔 온통 그 이야기 밖에 없었다. 사실 4월 16일은 부모님 결혼기념일이라서 사건이 일어나기도 전에는 우리 가족에게 있어서 특별한 날이었는데 이젠 온 국민이 기억하는 추모의 날이 되었다. 그날 뉴스를 보면서 그제서야 어떤 상황인지 실감이 났고 눈물을 흘렸던 게 생각이 난다. 그 뒤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나지만 그 후 1년 후, 2년 후, 3년 후의 오늘은 생각이 난다. 그 뒤로 나는 두번의 졸업을 했고 성인이 되었다. 시간이 이렇게도 빨리 흘러갔구나.. 사건으로부터 4년후인 오늘도 내 기억속에 자리잡겠지. 일상생활을 하다보면 바빠서 잊어버릴때가 많은데 오늘만큼은 이 슬픔을 꺼내보고 다시 곱씹어 보려고 한다. 이 슬픔 자체를 온전히 느끼면서 다짐한다. 앞으로도 계속 기억할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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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혼자 프로필사진을 바꾸고 혼자 슬픈 마음을 간직한 채 희생자분들에게 사과를 했었다. 난 이렇게 평범하게 살아가고있는게 너무 미안해서. 차디찬 바다에 갇쳐있었을 분들을 생각하니 너무 슬펐었다. 항상 잊지 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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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 뉴스를 본 지 얼마 안되어서 전원 구조 오보를 봤다."그래도 금방 전부 구조했네? "...먹던 점심을 다 먹고 학교를 다녀와서 과제를 위해 컴퓨터를 켰다. 열심히 구조작업을 진행하고 있댄다."몇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구조작업이야? 뭐 그래도 전원구조 뉴스 날 정도면 금방 끝나겠지"...그렇게 2번이나 어긋나버리게 만든 그 오보가 너무 미워서, 납득할 수 없는 그들의 일처리와 대처가 너무 속보여서, 그리고 순간의 내 "무관심"이 너무 미안해서 나는 학교에서 토의주제를 세월호로 잡고 무언가 깨져버린 나의 마음을 열심히 토해내었다.깨져버린 믿음에 대한 이제 상처는, 그동안 막연하게 혹은 당연하게 믿었던 것들을 의심해보는 버릇으로 남았다.가끔은 문득 그런 생각해본다. 굳이 "일어날 이유가 없던 일" 때문에 우리 친구들이 얼마나 아팠으면 우리마저 아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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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날 왕복 한시간 반의 학교에 가기 위해 등교 중이었고 마을 버스 기사님이 틀어놓으신 라디오를 듣게 되었다. 여객선이 침몰 중이며 학생들을 구조 중이라고. 다행이다. 구조 되고 있다니. 하고 넘겼다. 집에 오는 길에 휴대폰을 들여다보니 구조가 된게 아니라고 했다. 어라..? 아직도...? 하고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다. 집에 돌아와서 tv를 켰다. 바다가 거의 다 삼켜버린 배를 보며 손으로는 쉴새없이 휴대폰 인터넷 창의 새로고침을 눌렀다. 혹시나 새로운 소식이 들려올까. 중간고사가 얼마 남지 않은 때였는데 공부는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냥 계속 휴대폰과 sns를 보며 계속 뜨는 뉴스들에만 집중했을 뿐. 얼마나 무서울까. 얼마나 추울까. 제발 기적이 있기를 얼마나 바란 하루였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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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에 있는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그 날은 마침 공강이었다. 단원고에서 좀 떨어진 학원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이 뉴스 소식을 알려주었다. 사실 처음에는, 다 구조되겠지 하는 막연한 마음에 걱정하지 않았었다. 그렇지만 7시간이 지나고 집에 돌아가는 버스를 탈 때, 나는 너무나도 달라진 안산의 분위기에 위화감이 들었다. 지금까지도 내 앞에 앉아있던, 내 또래 여성이 펑펑 울며 동생인 듯한 이름을 부른 목소리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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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의 그날 함께하지 못해 미안합니다.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참사의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여러분의 걸음에 동행하겠습니다.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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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기억합니다.그리고 그들을 기억합니다.잊지않고 진상규명까지 함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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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아무렇지않게 출근을했는데 사고소식과 전원구출했다는 기사에 큰사고 아니겠구나 싶었는데 몇시간뒤 전원구출이 오보인것을보고 이게 무슨일인가 싶었다 그래도 다 구할수있겠지하고 희망을 걸었는데 날씨는 점점 더 안좋아져가고 수색작업도 힘들다는 기사에 내 가족일인냥 한없이 슬펐고 그때는 이제 기사만봐도 가슴이 아팠던거같다 생존한사람은 생존해서 힘들고 생존하지못한사람은 생존하지못해 가족,지인들이 힘든 그런 날이였던거같다잊을수없는0416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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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뉴스 속보와 오보의 충격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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