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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 때 였어요. 제가 동아리 활동으로 4.19 기념관에 갔다가 친구랑 같이 동네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고있었는데 가게 안에있는 조그만 티비에 세월호 뉴스가 뜨더라구요. 배 안에 탄 사람들 대부분이 고등학생이라고 하길래 정말 놀랐었고, 저랑 두살 차이밖에 안났기 때문에 마음이 더 안좋았죠 . 근데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구조 됐다고 뉴스가 나서 친구와 저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고 분식집에서 나와 저는 집에서 다시 소식을 접하기 전 까지 까맣게 잊고 놀았습니다, 그 뉴스를 믿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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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살고 있는 저는 뉴스기사를 보던 남편의 한마디 "한국에서 배사고가 났는데 전원 구조되었대" 를 듣고 " 다행이다" 이렇게 말하고 아무렇지 않게 일상의 일들을 하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얼마뒤 오보라는 소식을 접한 뒤 점점 무언가 이상해진다라는 느낌. 인터넷을 통해 접한 많은 학생들이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됬습니다. "왜 구조를 못할까?" 가 아닌 "왜 구조를 안할까?" 의 제 물음이 현실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진상규명 될때까지 끝까지 기억하고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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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은 경기도교육청에서 진행하는 고등학교 2학년 대상 영어듣기평가날이었다.당시 나는 고3이었기에 언제나 그랬듯 다음날 있을 영어듣기평가를 준비하면서, 또한 중간고사를 공부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어서 친구들과 1층으로 뛰어내려가 밥을 받고 자리에 앉아 떠들고 있었다.항상 핸드폰의 실시간 검색어를 확인하면서 밥을 먹었는데, 그 당시에 핸드폰 밧데리가 없어서 친구에게 지금 실시간 검색어가 뭐냐고 물어봤었다. 친구는 "세월호 전복"이라고 말했다.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나는 그냥 작은 통통배가 전복되었다고 생각했다. 실시간 검색어를 알려주던 친구도 키워드만 알려주었지, 상세하게 알려주지 않았다.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렇게 여느 일상과 다르지 않게 8교시까지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자습을 하러 가기 전 다시 한 번 실시간 검색어를 보았고 여전히 떠있는 "세월호 전복"을 클릭하고서 나는 그 하루를 아무 생각없이 보낸 것을 후회했다. 내가 다른 날들과 다르지 않게 보내고 있던 평범한 하루를, 누군가는 바닷속에서 하염없이 구조를 기다리다가 그렇게 하늘로 갔다. 내가 조금만 더 기사를 일찍 봤더라면, 내가 조금만 더 친구에게 물어봤다면, 그 아이들을 위해 기도했을텐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대로 짐을 싸서 집에 돌아갔다.세월호가 3~400명을 태운 유람선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큰 배가 쉽게 전복될것이라는 생각은 더더욱 하지 못했다.2014년 4월 16일의 하루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루이다. 며칠 전 세월호 추모곡인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리는 곡을 들었다. 자그만한 빛 하나라도 존재한다면 그 곳은 더이상 어둠이 아니다. 이제라도 나는 기억하려한다. 가끔씩 잊혀지고 있던 그날을 기억하려하고, 작은 촛불하나를 키려한다. 나 혼자만의 불빛이 아닌 수백만명이 모인 촛불로 어둠으로 덮으려는 정부를, 권력을 이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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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을먹으면서 뉴스를 보았다. 세월호가 가라앉고있었다는거다. 하지만 난 배가 가라앉을때도 있다는생각에 무신경했다 그래도 마음에걸려 학교에서 햔드폰을 내지않고 페이스북을통해 세월호가 가라앉고있다는 소식과 모두 구조했다는 소식을 봤다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난 생각이 짧았었다. 거짓이었다 . 너무 화가났고 어이가없었다. 그때당시 세월호선장만을 욕했지만 과연 그사람만 욕을 먹었어야하나 그7시간동안 우리도 핸드폰을보고 집에서도 뉴스로보면서 7시간을 방성했지만 대통령사람은 단한번도 나오지않았고 배가 모두 잠길쯤 대통령이란사람이 왔다. 수도없이 욕이나왔다 왜이제서야 모습을나타내는지... 저기요 얘기하는걸보아 이해도못하는데 7시간동안 정작 당신은 무엇을 하고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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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던 고통과 힘겨루기 하던 시간들이 떠올라 잠들지 못하다 그날에 남겨뒀던 기록들을 꺼내어 봤어요그저 가슴이 아프다가 미어지다가 저리다가 착잡하다가 참담하다가 비통하다가 침통하다가 숨통이 막히다가 분통이 터지다가역겨운줄 스스로의 양심에도 모르는 속물들 인생 그렇게 사는거 아니라고 재수없는 아가리 섞어빠진 눈탱이 휘어버린 잣대 그게 너라고이녀석들 죽어도 못죽는구나 싶어요 어떻하면 좋아요더많이 분노하고 더많이 저주할꺼야 용서받지 못할짓 해서는 안되는 거라고우리 아이들 잊지 말아주세요 청와대를 떠나며 가족들이 언론에 울부짖습니다 제가다 죄송합니다 저분들 다른것도 아니고 영정사진을 안고 왜 청와대까지 가셔야 했는지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줄 알았는데 더 애통하네요 더 애가 타네요 가슴을 치네요세월호 관련 트윗들이 사라졌음 잠못자고 슬퍼했던 악몽같던 일들이 절대 있었던 일들이 없어지진 않아 시간을 되돌릴수 있을 만큼 대단하지도 않잖아? 신도 못해 그건얽힌 고리 같은 세월호 사건 하나님은 무슨 말씀 하시려는 걸까 그럼에도 달라지지 않는 세상은 또 뭐?도망치시면 안되요 그고통 딸 아들들 위해서라도 도망치시면 안되요 저사람들 온몸 찢겨져 죽으라고 그만한 대가 치르라고하늘도 미친날 눈물나는 노래 (바보엄마 Ost 신효범 자장가)진실로 해결되지 못한다면 오랜시간 흘러도 울컥거릴 꺼에요 평생 용서받지 못할 꺼에요 거짓된 진실이 진실 눈뜨고 살만합니까?하나님이 물으세요 얼마나 울었던 거니? 이제 안울게요 했더니 가슴에 숨이 불어 넣어지는 기분 하늘의 아이들이 나와 같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뜻밖의 무지개 소식 우리 아이들 흔들리지 않는 집에 거하기를 허락하신것 같아요세월호가 남의일? 직접적 해는 없는지 모르지만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쯤 아시면 될듯 쇼크독트린 죄로서 죄를 덮는짓 면죄될수 없는 죄로 무너져 내리기를 진심으로 기도하고 싶다어쩌다 보니 일기장을 펼쳤어요 잊지말자구요 그때의 그마음들 분노했고 슬퍼했고 허탈해 하며 밥알을 삼키지도 못했던 차갑게 얼어 돌아온 그때의 그순간들의 우리 아가들 기억해요? 멈춰버린 아직도 그대로인 세월호의 진실을 위해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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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로 계속 속보를 보고 있었고 ....전원 구조라고 해서 그냥 일상을 보냈으나저녁무렵부터 이상하게 돌아가는 구조상황에트위터를 놓을수가 없었어요 ... 생존자들의 트윗까지 모두 볼수있던 그날 저녁에만이라도 구해줬음 좋았을텐데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미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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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게 흐렸던 날이였던거같아요안개도 자욱하게 내려와있었고..할아버지가 아침에 말해주셧어요학생들이 타고있는 배가 뒤집혔다고 난리났다고 말입니다별거아니겠지 나랑은 아무 상관없는일인데 했었습니다알고보니 사고를 당한 학생들이 다 저와 같은해에 태어난 친구들이었습니다97년생 이룬것보다 아직 못이룬게 많고 해본거보다 아직 해볼게 더 많은 엷여덟살 친구들이 물속에 같혀서 나오지못하고있다는걸 알게된후부터 초등학교때부터 오래동안 알고지낸 친구들의 얘기처럼 가슴이 아팠습니다그땐 그저 슬퍼하기만했었는데 이제는 제친구들이 그렇게 되도록 방관하고만있었던 정부가 너무나도 못미덥습니다제 친구들을 위해 나는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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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난 고등학교 3학년이었구 수업을하고있었나? 뉴스에서 큰배가 침몰하고있데요...얼마뒤 전원구조란 속보가 올라왔고 전 뉴스가 거짓말이 아닐꺼라 믿어의심치 않았어요. 신속함과 정확함을 겸비해야할 뉴스에서 몇분새 실종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날부터밤마다 뉴스를 보고 학부모님들의 곡소리를들으며 저도 생존학생이 있기를 기도하였습니다.. 많은동생들과 사람들은 별이되었습니다 그렇게 많은사람들이 죽어나갔지만 대한민국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힘으로 바뀔수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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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8시 10분 등교일 때였습니다.1교시 수업을 끝내고 나왔을 때독서지도사 선생님이 세월호가 사고가 났고 안산단원고 학생들이 타고 있다했죠.네? 단원고요? 하고 놀랐습니다.제 첫 발령지가 안산이라 단원고를 잘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도 설마 하는 생각에 다음 수업을 들어갔습니다.2교시 수업이 끝나고 나온 시간이 10시 반전원 구출됐다해서 안심했습니다.3시간 연속 수업인 좀 바쁜 날이었죠.3교시 수업이 끝났을 때 상황이 이상해졌죠.오보라고.4교시 내내 뉴스만 봤습니다.몇 주 뒤에 제주도 수학여행 이었어요.기분이 싸했습니다.애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고요.학교 분위기는 허청거렸지만 해야할 수업을 다 하고 무척 우울하게그러면서도 불안하게 지나갔던 7시간이었습니다.교사인 저로선 이일이 몇 주 뒤였으면 우리일이었다는 걸 지울 수가 없습니다.그리고 한 달 이상 술로 보낸 시간. 정상으로 살 수가 없었네요.밤마다 아이들이 죽어가는 뉴스를 매일 봤습니다.엄청 기도했죠.무기력하게 매일을 보낸 시간들아직도 죄책감이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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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 평소처럼 집에서 티비를 보고 있었다. 티비에서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간 배가 기울어졌다고. 잠시 후 전원구조라는 뉴스 속보가 떴고 다행이다 싶었다. 그러나 오보로 밝혀졌고 사망자 실종자 숫자가 점점 늘어나는걸 지켜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던 그 날들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제발 한 아이라도...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만들 수 있다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열심히 기도했었습니다. 꽃다운 나이에 열매를 맺지 못하고 떠난 우리의 아이들. 지금 이 하늘 어딘가에서 진실을 밝혀달라.......간절히 울고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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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mbc 굿모닝 새아침입니다 생방을 끝내고 오전뉴스를 준비했다. 속보. 진도 부근 500명이 탄 여객선이 침몰중이라고했다. 그 후 중간중간. 크게 속보자막이 떴다. <전원구조>부터 계속 바뀌는 속보자막을 보며 무엇인가 잘 못되어 간다고 생각했다. 대통령은 빨리 지시 안 하고 뭘하는거지? 해경은? 선배들부터 다른 부서까지 회사가 술렁거렸다. 주조실에 급하게 속보자막포맷을 만들어주러 갔고 미친듯 초조했다. 제주도 수학여행가던 학생들이라고 했는데... 학부모들은 어떤 심경일까... 너무도 충격적인 날... 그날 배가 침몰할 때까지... 왜 구조를 안 하는거냐는 말만 백번은 한 것 같다. 오전부터 데스크까지. 세월호로 뉴스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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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는 평소때와 비슷하게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함께 말이죠... 저는 나름대로 저와 제 나라, 이 모든 환경이 다 밝게 보였었습니다.그 뉴스를 보기 전까지는요.뉴스를 보자마자 제발. 제발 모두 구조되기를 간절히 소망했던것이 기억납니다. 그것 외에는 특별한것이 없었던것 같습니다.너무나도 평범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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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대학교 강의가 있었어요.수업 시작 직전에 네이버 뉴스를 봤는데, 배가 침몰하고 있지만 전원구조가 되었다는 글을 봤습니다. 학생들에게 "얘들아, 제주도 가던 배가 침몰했대. 그런데 전원구조란다. 정말 다행이지?" 라고 말하고 수업을 시작했습니다.그날은 8시간 연속 수업이 있는날이고, 학교가 통신사정이 별로 좋지 않아서 수업이 끝난후에 기사를 다시 봤어요.전원 구조는 오보였고,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배속에 있다는 글을 보고 머리가 하얘졌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계속 눈물이 났습니다. 그 다음날 수업도 그 다음주 수업에도 학생들만 보면 계속 눈물만 흘렸습니다. 저뿐 아니라 제 주변의 모두가 그랬습니다. 우리 학생들과 두살차이나는 그 아이들.그 아이들의 사라진 꿈이, 그 가족들의 절망이 제 것인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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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처럼 일어나자마자 알바갈 준비를 하며 뉴스를 켰고, 한국의 수학여행가는 학생들이 탄 배의 침몰 뉴스에 심장이 덜컹했다가 전원구조,라는 단어에 놀란가슴 쓸어내리고, 그맘때 애들이니 비속어도 쓰면서 죽는줄알았어, 엄마아빠 배 가라앉았어 그래 얼마나 놀랬니 조심해서 올라와, 같은 대화가 오갈거라고 생각하며 알바를 하러갔고, 늘 같이 바쁘게 알바를 끝내고 돌아와서 켠 티비뉴스에는 일본인 앵커가 평소같지 않은 걱정어린 표정으로 아침의 그 아이들이 다 아직도 바다에 있다고 전하고 있었다. 그게 꿈이었으면 좋았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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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적으로 사람은 충격적인 사건을 접할 때 자신이 있던 곳과 하던 일을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모두 기억하게 된다고 합니다. 저는 911테러, 대구지하철참사, 故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등 제 인생에서 충격적인 사건을 접하던 그날의 일상들을 모두 기억합니다. 아주 평범한 일상이었는데도 말이죠.2014년 4월 16일도 마찬가집니다. 대학교 4학년 1학기 중간고사 기간이었고, 전날 밤을 새고 아침에 일어나 "전원구조" 오보를 접하고 안도하며 다시 잠을 청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고 그 끔찍한 비극을 접하게 되었죠.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학교 도서관에 갔습니다. 그날 하루종일 공부 하는둥 마는둥 내내 뉴스 생방을 틀어놓고 마음졸이던 그 도서관 자리마저 저는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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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백수였던 저는 거실에서 컴퓨터를 하면서 옆의 티비를 같이 보고 있었어요.화면에 속보뜨는 걸 보고 알았는데, 엄청 놀랐었지만 곧 전원 구조소식을 듣고 엄마랑 다행이라며 다시 컴퓨터를 했었죠....물론 뉴스는 계속 틀어뒀었어요..그러다 오보였다는 걸 알게되고 그 뒤로는 계속 뉴스만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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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저는 18살이였습니다.세월호참사 기준 이주전에 학교에서 동급생들과 제주도 수학여행을 갔다왔었어요그리고 이주 후 제주도의 추억이 서서히 잠잠해질때 쯤 4월 16일 아침 믿을 수 없는 소식을 접하고 학교에 왔습니다. 그리고 친구들과 학교에서 틈틈이 기사를 찾아보는데 전원구조라는 오보가 떴었죠 그렇게 누군가는 구출되고 골든타임,에어포켓 등등 그 당일 날 뉴스와 기사에 나오던 단어들을 잊지못합니다.아직까지도 친구들과 많이 얘기를해요 우리는 참사날 이주전에 제주도에 갔다 돌아왔는데 그 친구들,그 사람들도 돌아올 수 있었는데...해결되지 못하여 가슴속에서 메아리처럼 맴돌기만 해요 2014년 4월 16일의 7시간은 절대 잊지 못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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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구조 속보가 뜨길래 내심 안심하며 ...미리 약속되어있던 카페에 지인 2분과 커피를 마시며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었고...오후에 집에 도착했을때 오보라는것을 알게되어 티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카페이름도 위치도 함께 나누었던 메뉴도 모두 기억한다.. 자식 가진 어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티비에서 뉴스를 보며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아내는 것 뿐이었다. 어제 민경욱 대변인이 난리났다 뒤에 따라 온 환한 웃음은 진정 살의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 준 웃음이었다.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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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평소와 같이 이동 수업이 있어 친구들과 함께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교실에 들어가 보니 선생님께서 큰 스크린에 뉴스를 띄어놓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스크린에서는 기울어진 배에서 사람들이 구조되는 장면이 중계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뉴스를 보시느라 수업을 진행하지 않으셨고 반 친구들은 이때다 싶어 떠들고 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선생님과 뉴스를 함께 지켜봤던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옆에 있는 친구들과 놀기 바빴고 저 또한 그랬습니다. 그 당시 저희들은 너무나도 당연히 세월호에 타고있는 사람들이 전원 구조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몇 시간 뒤 친구들과 전원 구조 되었다는 기사를 보았고 안도했습니다. 하지만 곧 그 기사가 오보였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저는 충격에 빠졌었습니다. 이런 오보를 낸 그 기자가 원망스러웠고 급격하게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배가 거의 다 잠겨버렸다는 뉴스를 보자 눈물이 터졌지만 새로운 뉴스들을 찾아보며 작은 희망을 걸어보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끝내 구조되지 못했고 저는 절망했습니다. 그 당시 구조되지 못했던 제 또래 아이들, 선생님들, 배에 타고 있었던 모든 사람들 뿐만 아니라 유가족들까지도 저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제 촛불은 꺼지지 않았고 계속 타오를 것입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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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반복적으로 운동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가 식당 TV에 세월호 사고와 전원 구조라는 뉴스를 보며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집에돌아와그것이 오보였다는 방송을 접하고 종일 TV를 바라보며 한명이라도 구조되길 바라며 특별방송을시청했습니다왜 아무도 구조하러 근처에 가지않을까?전에 통영함이라는게 있었는데 왜 출동하지않을까?그물을 달고 헬기들은 왜 안 날아올까?안타까운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생존자 소식보다는 차가운 주검들이 늘어나는길보며 에어포켓에 안에 어떻게 들어가서 구조할수있을까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