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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고 3이었던 나는 친구들로부터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친구가 뉴스기사를 보고 전원구조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어떻게 저렇게 빨리 저 많은 사람들을 구조할 수 있을까 의심도 하지 않고 다 구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하지만 그 소식은 다 거짓말이었다.학교가 끝난 후,나는 집에 와서 TV를 틀었다.처음에는 생존자가 좀 늘어나더니 그 이후로는 사망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한사람이라도 더 살아남길 기도하며 집중했다.그 날만 생각하면 진짜 울분이 터진다.선장도 선장대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고,해경도 해경대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한편으로는 "내가 이 나라에 살아도 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물론 사람들을 위해 희생을 무릎쓰고 하시는 분들도 많다.하지만 세월호 안에 있는 사람들도 구조되서 나온게 아니라 자신들이 알아서 구출한 걸 보면 우리나라에는 진짜 믿을 사람이 없다라는 인식이 내 머릿속에 깊이 박히게 되었다.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많은 사건사고들이 발생할 것이다.그때에는 이렇게 사람들이 알아서 구출하게 하지 말고 사람들을 구조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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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있을 때였어요. 친구들이랑 급식실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속보로 가라앉고 있는 배의 모습이 나오더라고요. 그 때 제 다른 고등학교 친구도 제주도로 수학 여행을 간다 했었기에 설마 내 친구의 일은 아닐까, 덜컥했던 기억이 나요.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당연히 전원 구조될 줄 알았고, 별 일 아니라 생각했어요. 실제로 수업하다가 중간에 전원 구조라는 검색어를 보고 안도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건 사실이 아니었네요. 20살이 되었던 작년, 광화문에서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는 걸 봤어요. 나는 이렇게 스무 살이 되어서, 이 곳에 왔는데. 동갑이었던 그들의 시간은 이렇게 멈춰 버렸구나. 나름의 빛을 채워 갔을 그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시간들이. 그렇게 멈췄구나. 마음이 복잡했어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왜 그렇게 멈춰 버렸는지 우리는 진실을 명확히 답할 수가 없구나, 싶어서요.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한다 해도, 확실히 막을 수 있다는 대답을 하지 못할 것 같아서요. 어느새 그날이 지난지도 1000일이 넘어갔네요. 물 속에서 올라온,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그 배의 모습을 보면서 그 배가 가라앉던 그날의 모습이 겹쳐 보였어요. 그 때의 점심을 먹고 있던 나와, 지금 뉴스를 보고 있는 나는. 개인적으로 많이 바뀌었다고 느꼈는데, 그 긴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밝혀내지 못해서 미안해요. 잊지 않을게요,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진실이 밝혀진 후에도, 그 진실을 잊지 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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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제가 발목이 아파서 물리치료를 받고있었습니다. 치료를 받던중 갑자기 치료실 뉴스에 속보로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었죠. 사실 그때는 "뭐 금방 끝나겠지..."하며 그냥 누워있었습니다. 근데 집으로 돌아와 티비를 켜보니 구조작업이 아직도 지대로 아루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는 헐 뭐야 아직도 이 정도야? 이러면서 그때부터 진심으로 형누나들을 위해 기도를 했습니다. 꼭 그들이 다시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 달라고..... 남편을 잃으면 과부 부모를 여의면 고아 라는 명사들이 있는데 자식을 잃은 부모들에게는 그런것이.없습니다. 부모들의 슬픔을 표현조차 못해서 그렇다는 말도 있지요.... 비록 살아돌아오지는 못한 형 누나들이 많지만 꼭 천국에가서 맘편히 살았으면 좋겠습니다...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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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6 오전교무실에 비치된 TV가 켜지고 뉴스가 나왔어요.프레젠테이션 용도만 하는 줄 교무실 TV가제 기능을 하는 것을 처음 보았지요.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을 태운 배가 침몰중이라는 장면.헬기도 있고 기울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당연히 모두 구출되는 줄 알았어요.당연히 모두 살아 돌아오겠지만 ..늘상 그렇듯 이 사고로 안전규정이나 여러가지가깐깐해지고 피곤해지겠다고 ..속으로 앞선 불평을 늘어놓았어요.우리 학교도 수학여행을 앞두고 있는데이 일로 제약이 또 생기겠군. 하면서 ...하지만 그 불만 속에서도 "당연히 모두 돌아올 줄" 알았습니다. 누가 봐도 충분히 구할 수 있으니까...그리고 수업을 들어갔고,바쁜 하루를 보냈고 늦은 퇴근을 했어요.그런데 왜 어째서 ...왜 ...당연히 모두 구출될 줄 알고 늘어놓은제가 가졌던 불평들을이렇게나 미안하게 만들어버리죠?아침마다 뉴스를 보는 게 두려웠던 몇 주.온 국민 트라우마 .역시나 안전 제약은 깐깐해지고그 해 수학여행과 체험학습은 모두 취소되었습니다.애도의 의미 보다는 시끄러운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겠죠?뭐든 사소한 것만 터져도 이슈가 될테니 .받아야 할 연수가 늘어났고학생 안전에 신경써야 할 것들이 많아졌지만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마땅히 제 할일을 하고 있는 어른들에게는너무나 당연한 것들을 말장난으로 문서화 시켰고강제화 시킨 내용.책상에 앉아 온갖 피해 갈 구멍만 파 놓은 제약.다만 저 위에 계신 당신들이 ..돈 많은 당신들이 바뀌지 않으면그 끝없는 탐욕을 버리지 않으면우리 모두는 안전할 수 없고 행복할 수 없습니다.안전하고 평등하고 정직한 대한민국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그리고 잊지 않을게요. 미안합니다.Remember 0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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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학생이라 그당시 학교에 있을시간이었고 학교에서 선생님이 말씀해주셨어요.. 뉴스에서도 구조중이라고하고 얼마지나지않아? 모두 구조해서 생존했다는 뉴스가떠서 그런줄로만 알고있었어요 근데 그 뉴스가 오보라고 뜨면서 각 방송사의 뉴스들은 침몰중인 세월호를 생방송으로 내보내고 있었고 사망자몇명 실종자몆명 구조자몇명 이렇게 명수가 나왔어요 근데 처음에 말했던 구조자들의 수보다 점점 줄어들었고 그걸 계속해서 보고있자니 너무 절망적이었고 우울했어요 그 선장이 자기가 제일먼저 탈출해서 돈말리고있었다는 말도 들었고 제가 정말 억장이무너지는거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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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냔 4월 16일, 제 나이는 17살 고등학생1학년이었습니다. 오전 9시 쯤 교실마다 있는 텔레비전에서 세월호가 물에 잠겼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학교내 전교생들은 모두 충격에 빠졌습니다.가는 교실 마다, 만나는 친구마다 세월호얘기 뿐이었습니다. 수업과 수업사이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은 텔레비전을 틀어 생존자수를 확인하였고 시간이 지나도 좋은 소식은 없었습니다. 초조했습니다. 6시 40분쯤 급식을 먹으러 급식소 앞에 줄을 서있는데 모든학생들이 세월호 걱정뿐이었습니다. 그때의 등골의 서늘함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야자시간에도 생각이 너무 많아져 집중하지 못 했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왠지모를 묘한 기운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뭔가모를 찝찝함과 걱정,슬픔을 안고 집에 돌아오자 역시 집에서도 세월호 관련 뉴스를 보고있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슬픈듯 한 목소리로 저를 안아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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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6처음엔 당연히 구조될거라고 생각하면서 학교를 갔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아무것도 하지않는 해경들을보면서 교수님도 학생들도 모두 착잡한 심정으로 지켜볼 수 밖에 없었어.. 아무것도 하지못하고 나는 여전히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서 미안해 얘들아.. 누구보다 설레는 수학여행이였을텐데 얼마나 무서웠을까... 나는 감히 헤아릴 수도 없어.. 2014년 04월 16일.. 이젠 날짜만 들어도 울컥하는 날이 되어버렸어.. 얘들아 그땐 아무것도 못하고 분노하기만 했었는데 3년이 흐른 2017년 봄이 되어서야 우리에게 차갑게 돌아온 너희를 위해서 반드시 진실을 밝혀낼게. "어두운 진실과 현실은 우리가 마주할게.너희는 그곳에서 그 누구보다 즐겁고 설레는 최고의 수학여행을 보내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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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참사소식을 접했습니다. 이를 보며 안에 갖힌 분들의 구조소식과 해경의 미흡한 대응등을 보며 하루빨리 모두 구조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같이 슬퍼했죠.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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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이 구조되었다는 말에 안심하고 신경을 안쓰고있던 그 날.분명 전원 구조라 하였지만 , 그 날 밤에 들려오는 소식은 달랐다. 고 2, 18살 . 이제 밝게 빛날 나이에 물 속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떠난 그 곳에서는 밝게 빛나길, 고통없이 행복하길진실은 분명 떠오를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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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4일 해병1183기로 입대해서 훈련을 받고있었고, 처음으로 돌격머리로 이발하는데 갑자기 뉴스틀어주고....그당시엔 외부소식이 완전단절된때라 가벼운사고인줄알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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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 그날, 제가 뭘 하고있었는지조차 기억이안날만큼 시간이 오래..많이도 지났습니다. 하지만 그날7시간의 가슴아팠던....사건을 뉴스로 보면서 내 가족일처럼 눈물을수없이 흘리면서 생존자들이 한명이라도 늘어나길 ..간절히 ..누구보다 간절히 빌었습니다.허나 늘어나는건 사망자수뿐이였고...도대체 그런 사건이 왜 일어나야만 했던건지 하늘이 원망스럽고 분통하고 ..너무 가슴이먹먹합니다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너무 나는데 ..이제는 정말 우리 아이들을 편하게 보내줘야할때가 온것같습니다..가족분들 부디 마음 잘 추스리시고 슬퍼하는.국민 여러분들또한 우리 아이들 잘 갈수있도록 기도해주시고.,평생 가슴속에서 우리 아이들 잊지않겠습니다.세월호 피해자분들의 명복을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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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캐나다온지 한달이 조금 지나서 오전 아니면 학교갔다와서인거 같아요 핸드폰으로 네이버를 들어갔는데 큰 여객선이 문제가있다는 기사를 보고 아이고 어떡해 이랬는데 조금 있다가 모두 다 안전하게 구조되었다고 기사가 떳더라구요 그래서 안심했는데 갑자기 실종자도 뜨고 뉴스 속보뜨고 얼마나 놀랬는지...저랑 같은 또래의 친구들의 나이거든요 캐나다에 있어서 친구들이 수학여행가는거 부러워했었는데 그렇게 즐거워야하고 기대되야하는 수학여행에 이런일이 벌어져서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또 그 시간에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대체 무엇을했는지 정말 떳떳이 말해줬으면 좋겠네요.. 뭐가 숨기는게 있어서 이렇게 얘기를 안하는지... 저도 기억하는 그날을 어떻게 기억을 못 할 수 있나 싶기도하고... 마지막 실종자분들까지 다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시길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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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교 하는전철에서 처음 소식을 접햇어요 ..저는 그날아침 분명 기억합니다 ..날씨가 매우 흐렷습니다. 마음속으로 날씨가 밝아 지길 기도 햇엇습니다 .. 오후에 지쳐서 전철안에서 계속 뉴스를 봤습니다. 분명 처음 구조가 다 되엇다고 해서 안심할찰라 그게 오보엿다는게 나올때 쯤이였습니다 .. 그때부터 세월호 방송이 다 나올때쯤 배가 침몰되어가구 구조대가 오는데 왜.. 구조대가 저렇게 조금 올수 있나? 아니 저렇게 큰 배이고 많은 사람들과 학생들이 있는데 왜 아무런 조치가 없엇나? 하는생각으로 전철애서 내려서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걸어갔습니다. 제가 아침에 날을 밝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서 이런일이 생긴것 같구 너무 미안함 마음이 들엇기 때문입니다.. 그후 과제를 하면서 계속 보구 있었는데 배는 잠겼구 그이후 배를 들어 올릴수 없다는 말에 우리 나라가 아무것도 할수 없는 것에 짜증이 났고 창피 했습니다.. 그 이후에 물안에 들가서 구조작업 했었을때도 왜 많은 사람들을 구출해내지 못하나 라는 생각으로 아무것도 할수 없엇던 제가 너무 짜증났습니다. 저는 이날을 아직도 잊을수 없습니다...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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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미국땅 멀리에서도 세월호 유가족들과 미수습자 부모님들, 유가족을에게 위로를 보내드립니다.. 아무것도 할수없어서.. 이 먼 미국땅에서 그저 화면으로만 바라볼수 밖게 없어서.. 너무나 미안하고 어린나이에 차가운 바다속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아직도 이글을 쓰고있는동안 손이 떨립니다.. 기억합니다.. 2014년 4월 16일.. Remember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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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해도 목이 메고 안타까운 현실에 가슴이 아파요.뉴스에서 소식을 접하고 sns에 많은 얘기들이 퍼졌을 때 무사히 구조되겠지 라며 했던 그때의 제 모습이 너무 죄스럽습니다 상황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많은 희생자를 낳았을 때 눈물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별거아니라고 구조될거라고 생각했던 제 가 너무 바보같았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나도 밝혀지지 않는 이 현실이 원망스러울뿐입니다 진실은 꼭 밝혀질것이고 어서 빨리 9명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유가족분들 모두 힘내시고 여러분 모두 잊지않고 기억해주세요 20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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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학교 1학년 신입생이었습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오전 수업을 듣기 위해 준비 중이었습니다. 그 때 티비 아래에 속보가 하나 떴습니다. 바다에 배가 가라앉고 있다고. 처음엔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일은 많았으니까요. 근데 그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고 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이 300명 정도 타고 있답니다. 그래서 준비하던 것을 멈추고 티비 앞에 앉아 뉴스 속보 화면만 보고 있었습니다. 곧 승객 전원을 구출했다는 것을 보고 마음 놓고 학교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 오후 수업을 들으러 갔을 때 알았습니다. 그게 오보였다는 걸요. 아직 학생과 일반 시민 300명이 배 안에 있다는 걸 알고 나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수업 내용이 뭐였는지 어떻게 집에 왔는지 아무 것도 기억이 안나고 정신 차려보니 또다시 티비 앞이었어요. 아침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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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학교였지만 안산에 있는 고등학교를 재학중이었으며, 직접적이진 않지만 가까운 친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교실이 아닌 다른곳에서 수업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오는 쉬는시간에 알게 된 세월호 사고.... 그 직후에 들려오던 전원구조 소식과 모두 오보였다는 뉴스. 어린 마음에 너무 놀라서 믿기지도 않는 맘을 추스르고 핸드폰만 들여다 보고 있었습니다. 돌아오겠지, 괜찮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바라던 소식은 오지 않았습니다. 울다가 쓰러지는 친구, 밥을 한끼도 못넘겨 탈진하는 친구... 온통 주변은 우울로 가득찼습니다 한동안은 저 또한 매일 눈물을 흘리며 눈이 퉁퉁 부은채로 학교에 등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랬던 날이 벌써 3년이 지나 21살이 된 지금의 시점에도 여전히 세월호는 너무 아픈 기억이고 눈물이 흐르는데 주변에서 그만하라고 합니다. 대체 뭘 그만해야하고 그들은 뭘 했을까요. 저는 여전히 그날을 기억합니다. 앞으로도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미수습자 9분도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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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역사시간에 처음 들은 세월호 소식그때까지만 해도 사망자는 없던때라 ""에이 설마 죽겠어?" "당연히 전부 다 구조하겠지 뭐" 이런 생각뿐이였다. 생각했던대로 뉴스에선 전원구조라는 말이 떴다. 결국 오보였지만 이건 정말 당연한 결과이여야했다. 그러나 첫 사망자가 나오고 사망자 수가 점점 올라가고 실종자 수가 점점 줄어갈때 어떻게 이럴수가 있는건지 정말 믿기지않았다. 어떻게 한명도 못 구해낼수가 있는지 우리나라가 이정도밖에 되지 않았는지 박근혜는 이 부분에서 자괴감을 느껴야한다. 하루가 갈수록 달라지는것은 없었다. 사망자수만 늘어가고 나라에 대한 믿음은 줄어갔다. 그리고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한 9분구조도 제대로 안했으면 시신 수습이라도 잘해야했다. 이나라는 도대체 잘하는게 뭘까?돈도 없으면서 돈으로 덮을려하고 사건에 대해선 회피만 한다. 유가족에 대한 진심있는 사과도 반성도 없다. 다 똑같다. 그들의 목적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그날이 잊혀지게 하는것이다. 우리는 그 목적이라도 이룰수 없게끔 그 날을 기억하고 진실을 밝혀야한다. 드디어 미루던 인양에 성공했다. 정부는 이제 더 이상 덮지말고 끝까지 밝혀야한다. 왜 잘못없는 사람들이 죽어갔는지,구하려는 시도조차 하지않았는지, 인양은 왜 계속 미뤘는지, 모두가 알아야한다. 기다릴수없다 이미 충분히 기다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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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사고가 낫던날, 저는 학교에 잇엇고 쉬는시간중 속보로 세월호가 사고 낫다는 소식을 들엇습니다. 그때는 사건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인지하지 못하고 잇엇죠. 그리고 몇시간뒤 전원구출이라고 해서 다행이네~ 하고 넘어갈려햇는데 마음에서 뭔가 찝찝하고 그런기분이 들엇습니다. 결국에 세월호가 가라앉고.. 많은 아이들과, 민간인분들, 선생님들 또한 길고 긴 여행들을 끝마치고 돌아오셧죠...정말 마음이 아팟습니다. 기적이 일어낫다면 좋앗겟다고 자는밤마다 빌고 빌엇습니다. 하지만 기적은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 않더군요... 지금이라도 세월호 배가 인양이 되어서... 다행입니다.부디 모든분들 하늘나라에서 잘지내시길 바라고,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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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죄송합니다 그 날을 절대 잊지 않겠다 다짐 했었는데 바쁜 일상이란 핑계로 3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그 날을 잊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또 미안합니다.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REMEMBER 2014 0416 진실이 반드시 수면위로 떠오르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