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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잊을수 없다. 몸에 이상이 있다하여 병원에서 검진결과를 들으려 병원에 갔다가 비보를 들었으니... 다행히 현재로써는 별이상이 없다고 1년에 한번씩 정기점진을 받으면 된다고 ... 아이들은 병원에서 전원구조 되었다고 안도의 숨을 쉬며 하느님께 감사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는데... 오후에 달라진 소식을 듣고 아연실색했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앞으로도 잊을수 없고 잊어서는 안될 그날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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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가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였어요.. 1교시를 마친 후 2교시가 되고 체육을 하기 위해 체육관으로 올라갔어요. 열심히 수업을 했죠. 그때는 제가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못해서 "배가 침몰했대. 다 구조했다는데?" 라는 선생님의 말만 믿고 열심히 체육을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별이 되실 줄 알았다면 조금은 걱정도 하고.. 슬픈 마음도 가져보고.. 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7시간을 잊어버리신 분 보다 4배가 어린데, 4배 더 잘 기억하고 있네요. 0×4=0 이니까 0배인가요? 집에 와서 뉴스를 다시 찾아봤어요.. 사실 찾아볼 것도 없이 그날 티비는 하루 종일 켜있었어요.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생존자 명단.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읽었어요. 그런데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왜 이만큼밖에 구조를 못했지?" 가 아니라 "내 가족이 다치치 않아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었어요. 누가 됐든 걱정부터 해야 하는건데.. 그때 많이 어렸나봐요. 현재까지도 잊지 않고 있는 세월 호 당시의 7시간, 그 시간동안 우리의 그분은 대체 뭘 하고 계셨길래 잊어버리신 걸까요. 성형을 받으셨든 시술을 받으셨든 비선실세와 연설문을 준비하고 계셨든, 입으로 얘기를 들어야 믿겠네요. 다 음모론이죠? 저희 어머니 아버지가 믿고 뽑으신 분이 이렇게 그런 행동을 하셨다면 용서할 수 없고, 아무 일 아닌 줄 아셨던 거라면 더더욱 이해할 수 없네요. 저는 기억합니다 그날의 7시간은. 대통령님께선 그때 무엇을 하고 계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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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교시 음악 수업이 끝나고 남는 시간에 휴대폰을 봤고, 그때 세월호가 침몰이 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몇 분 뒤, 전원 구조라는 기사들이 올라와 친구들과 그냥 단순 사고로 넘기며 집에 왔습니다. 하지만 하교 후 뉴스에는 마음이 참 아팠던, 사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 친구가 됐을 수도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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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차 군산에 내려가고 있었습니다.그런데 우리 뒤로 각 방송사 차량들이 정말 미친듯이 달려오기에 길을 터줬더랬죠.휴게소에 들려 무슨 일인지 검색을 해보니 세월호 침몰 소식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아직 많이 기울어지지 않았기에 모두 다 구조되겠거니 하고 별 생각 없이 그날 하루를 보내고는 저녁에 숙소에 들어가서 TV를 틀었습니다.아... 그런데 학생들이 거의 못나왔다는 기사가 나오더군요. 정말 뭐라 할 말이 없었습니다. 뻔히 눈에 보이는데 구조를 못했다니...정말 끝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진실은 인양될 것입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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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자도 되나...계쇠 구조에 힘쓰고 있다고했다살아있더라도 바다속이라 추울텐데난 이렇게 따뜻한곳에서 자도 되나 싶었다.내일 아침엔 꼭 생존자 숫자가 많아지길 눈을 꼭감고 간절히 간절히 기도했었다.그 큰 배인데.... 온 국민이 다 걱정하는데....설마....다음날 생존자 수는 늘지 않았다.이때부터 그런 희망은 갖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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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주도에 8버 갔다 왔다. 비행기로 4번, 배로 3번. 배로 간 3번 중 한 번은 비바람이 불고 날씨가 좋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난 괜찮다. 차가운 바다로 가라앉지 않았다. 왜, 도대체 왜, 300명 남짓 되는 사람들이 죽어야 했던 걸까,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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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소식을 들었을때는 단순한 사고인줄 알았다. 배는 바다에 떠 있으니 몇몇 인명피해는 있겠지만 대부분 구조될거라 생각했다.뉴스에서 선장이 제일 먼저 탈출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이건 있을수 없는 일이다. 이건 사고가 아니다. 내가 뭘 할수 있을까? 웹사이트에서 의견을 공유하기 위해 관련 카페에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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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역꾸역 출근해 자리를 지켰다. 오늘의 밥벌이를 위해. 오전 9시가 좀 넘은 시각, 메신저 속보로 뉴스를 처음 봤다. 수학여행 가던 아이들이 탄 배에 문제가 생겼다고. 가슴이 철렁했지만 안심했다. 전원 구조. 한 치의 의심도 없었고, 일이 몰려왔고, 곧 잊었다. 그리고 11시. 구조 인원 수가 줄어들었다. 배 안에 남겨진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만 간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배가 침몰한단다. 꿈만 같다. 꿈이었으면 했다. 실감조차 나지 않는 와중 쏟아지는 자극적인 뉴스들. 배가 꼬리만 남기고 침몰할 때까지 나는 일을 했다. 먹고살아야 해서. 그들의 죽음이 말도 안 된다 느껴져서. 당신은, 어디서 무얼 했는가. 왜, 답을 하지 못하는가. 모두가 이렇게 묻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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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뉴스를보며 전원구조 오보를 보며 기뻐했었고 사상자와실종자가늘어날때마다 제지인것처럼가슴아파하였고 눈물이 났습니다 못다핀 꽃 피우세요 지켜주지 못하여서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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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10시경 회의가 있어 사내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른 층으로 이동 중이었습니다. 엘리베이터 모니터에 여객선 침몰소식이 나오고 있었고 배는 살짝 기운채로 바다에 떠 있었습니다. 타이타닉처럼 쪼개져서 가라앉는 것도 아니었고 육지와 근접한 곳이어서 탈출/구조할 시간은 충분해보였고 그래서 곧 신경을 끄고 회의에 참석하고 점심을 먹었습니다. 중간에 누군가 전원구조하였다길래 "다 구조 못한게 뉴스겠지- 당연하잖아!"라고 말했었는데 점심을 먹고 있는 구내식당 대형 모니터엔 자꾸 그 당연하지 못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집에가서 뉴스를 보며 자꾸만 한숨쉬는 엄마가 이상했는지 자꾸만 안기던 만 2살이었던 아이는 아직도 큰 배가 나오면 가라앉을까봐 무섭다는 얘기를 합니다. 만2세였던 아이도 평소와 똑같은 하루를 보냈던 저도 기억합니다. 그 시간들을 어떻게 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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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우리 큰 아이 생일입니다.오전에 뉴스에서 전원 구출 소식을 접하고 잊고 있다가.. 저녁에 아이 생일이라 같이 피자를 먹으면서 TV를 보곤 깜짝 놀라서 잠시 먹던 피자를 내려놓았던게 생각나네요.아직도 큰 아이는 2014.04.16 자기 생일날 먹은 피자와 뉴스를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절대로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살아갈겁니다.이러한일들이 절대로 다시 일어나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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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게 눈을 뜨고 평소와 다름없는 사람들과 마주하고 일을하고있었다 잠시 현장에 들럿다 돌아가는 엘라베이터앞 핸드폰에 울리는 속보를 보고는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냐며 전쟁터진것보다 더 철렁하더라 일을 하는 와중에도 어찌되엇나 검색을 하다 전원구조라는말에 안심을 했고 또 일을 하는 와중에 오보라는걸 알고는 너무나 망연자실하더라 어른들의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너무나 잘 들어서 안타까이 사그러진 아이들의 오늘을 생각하면 지금도 그 상실감은 말 할 수 없을 정도다아무런 관계가 없는 타인인 나도 이럴진데 유가족들의 마음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사람이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하루를 기억속에서 날린 자들을 인간이라 칭하는 것 조차 아깝다 평범한듯 시작해 절대 평범할 수 없어 온 국민의 마음을 아리게 만든 그 하루를 잊은 자는 우리의 기억에서도 잊혀져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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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뉴스를 통해 세월호 사고 소식을 들었고, 점원 구조했다는 보도에 안심했던 기억이 납니다.하지만 그 보도는 엄청난 오보였고 그렇게 300명이 넘는 우리 아이들이 죽어가는 동안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 무능한 대통령과 무능한 정부를 쓰리도록 아픈 마음으로 지켜보아야만 했었고,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의혹만 키우는 엽기적이고 비열한 해명에 가슴만 쓸어내리고 있습니다.깨끗하고 완전무결한 진상규명에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더이상 교복 입은 우리 아이들 모습에 눈물짓지 않도록, 유가족들의 가슴에 조금이나마 한을 덜 수 있도록 온 사회가 해결에 적극 나서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저 또한 미약한 개인의 힘이나마 최선을 다해 기억과 참여로 힘을 보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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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대학원 수업을 위해 학교 갈 준비를 하던 날이었습니다. 잠깐 페이스북 어플을 보니 세월호 침몰이 뉴스로 떴고 잠시 후 전원 구조라는 오보가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더군다나 학생들이 그렇게 많이 있었는데 구조하지 못했다는 것에 분노를 느꼈습니다. 학교에 가서는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교수님과 점심 식사를 하고 다른 날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냈습니다. 아이들이 사투를 벌일 때 나는 아주 평범한 봄 날을 보냈다는 사실이 괴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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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로만 접했던 그날의 사건해줄수있는게 없었고마음아파서 뉴스조차 보기가 힘들었던ㅜㅜ안타까운마음을 계속 담고있었네요무너저가는 희망을 끌어안고두려움에 가득찬 작고 약한 아이들의 울부짖음을절대 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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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학교지각해서 더 늦게갈려고친구들 다 수업받을때 혼자 학교앞에잇는 분식점에서 주먹밥이랑 떡볶이먹으면서 분식점이모랑 티비본게기억난다 티비를보다가 갑자기 배가 흔들리고잇다고 시작해서 뒤집어지고잇다는 기사가나오고 별거아니겟지 하고여기고학교를들어갓다 생각보다심각한일이였고 반애들이랑 학생한명한명이구출할때마다 반애들은 안심되엇구 집에돌아가서도 길거리에서도학교에서도수업시간쉬는시간에도세월호에대한이야기는끊어지지않앗고 지금2년이흐른지금도나는여전히 이야기를하구잇다 잊지말아요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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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9시 반 출출한 배를 채우려 집 앞 식당에 자리를 잡고 제육볶음을 주문했다. 둘러않은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TV를 향해 있었다. 제주로 가던 배 한 척이 서해 바다 한 가운데에서 침몰하고 있다는 뉴스였다. 영상 속에 배는 아직 가라앉기에는 한참 시간이 남아보였고, 이 정도 로 이슈가 된 사건이니 어련히 구조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선 오후가 될 때까지 뉴스를 찾아보지 않았다. 다시 식당을 찾아 자리에 앉았을 때야 그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이 아직 구출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그 많은 시간동안 도대체 무엇을 했길래! 지금이라도 구조되기를 기원했지만, 현실은 잔혹했다. 4월 16일. 그 전날도 그 다음날도 내가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날만큼은 아직도 눈 앞에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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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하루 종일 회사 업무로 메신저로 동료들과 대화하고, 점심을 먹고, 그리고 잠깐 차를 마시고..정말로 반복되는 그 많은 365일 중의 하루의 일과를 똑같이 보내고 있었습니다.사소하지만, 가족들과 나 자신의 미래를 위해 온전히 다 했던 7시간. 그리고 아이들이 미래에 가졌어야 할 그 7시간.왜 그들은 그 7시간을 자신들의 역사에서 지워야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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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는 고3이기에 공부하다 핸드폰으로기사를 봣는데 수학여행가던 세월호에서많은 나와 나이가 1~2살 적은 동생들이자가운바다에서 죽어가고있다는 소식을접하고 충격에 빠졌 습니다.지금도 생각나면 눈물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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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고 예정되 회의를 들어깄습니다. 회의에 모인 사람들이 걱정스런 말투로 아이들은 괜찮을지, 혹시아는 선생님이 계시지는 않는지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의 그 사람들의 불안한 얼굴표정, 걱정스런 낮은 목소리 하나 하나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슬프고 가슴이 미어지지만 잊혀지지 않는 기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