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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를 임신하고 있던 그 때 입덧이.너무 심해 쉬고있었는데들려온 사고 소식...티비 앞을 떠나지 못하고며칠을 함께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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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여념없이 일을하고잇는데 쉬는틈에 뉴스기사를보고잇엇죠 뉴스기사첫면에 속보가뜯거죠 무슨일인가보니선박사고가낫다고 하기에일하면서도 어떻게됬을까조마조마햇지만큰일은없을꺼다생각하고다시일을햇죠 집에와서도집에가는와중에도 계속뉴스기사만보면서 구조소식만을기다리고잇엇는데 들려오는건 구조자소식보다사망자소식들이더많이들리고 답답함은계속됫죠같이울고 기도도 햇지요아는분조카분이그학교학생이여서 그조카분은다행히 그날사정이생겨못갓지만그조카분도소식듣고 충격을받아서 울고난리도아니엿죠 미안하다고울기도하는걸제눈으로직접보니까 내가족이아니여도 내지인가족의친구들이지만 그들에게 그런일이생겼다고들으니 더더욱이 마음에와닿앗구요 내가족이그런일이잇다고생각하면 제가슴도찢어질듯이아픈데 유가족분들은얼마나가슴이찢어졋을까요......제발....잊을수없는 또한 절때 잊어서는 안되는 가슴에 묻을수도 묻어서도안되는 아직 그차가가운바다에 나오지못한 이들을위해서 세월호라는 배가 세상밖으로나와서 그사고의진실을 알려주세요함께기도햇고 함께 울엇기에 꼭 남은그들의 억울함을풀어주세요 왜그사고가났는지 왜 그사실을숨겨야했는지 모두가궁금해하는 7시간 의비밀을 풀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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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탁상 앞에 앉아 뉴스를 틀어놓고 시험공부를 하던 대학생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구조될리리고 믿고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번복되는 정황들에 너무나 혼란 스러웠습니다. 그런상황이 지속되면서 공부는 손에 쥐어지지도 않고 마냥 눈물만 흐르고, 신을 믿지 않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작정 기도만 했던 기억이 납니다. 밤새워 뉴스를 붙잡고 있었지만 허망한 결과에 다달았을때 정말 깊은 절망을 느꼈습니다. 그날 느낀 슬픔과 아픔, 그리고 분노는 제 가슴속에 각인처럼 남았습니다. 잊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영원히 기억하며 그날의 희생자 분들을 영원히제 가슴 속에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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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삼이었습니다. 전원 구조되었다는 오보를 믿고있다가 뒤통수를 맞았습니다. 쉬는 시간마다 뉴스를 틀어 상황을 확인했습니다. 저도 제주도 수학여행 당시 세월호에 탑승했었기 때문에 뉴스에 나오는 세월호 내부 시뮬레이션을 볼 때 마다 제 기억 속 세월호와 겹쳐져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저와 친구들이 웃고 떠들고 게임하고 밥을 먹던 장소가 누군가가 차갑게 죽어가는 장소가 되고 있다는 사실에 괴리감이 들었습니다. 지금 세월호 유가족의 기록이 담긴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눈물이 계속해서 흐릅니다. 저는 2014년 4월 16일에 흘렸던 눈물과 지금 흐르고 있는 눈물의 무게를 잊지 않겠습니다. 점점 물 밖으로 드러나고 있는 진실을 끝까지 마주하겠습니다. 저는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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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기억해요. 아침에 일어나서 여객선 침몰 뉴스를 접했습니다. 300명의 생사여부를 모른다는 뉴스를 보고 불안해 하고 있는데 좀 있으니 전원 생존이란 뉴스가 뜨더군요. 이야 다행이다 생각하고 그제서야 뉴스에서 눈을 떼고 제 할일을 했어요.오후에 티비를 틀었는데 낮에 발표한 전원 생존이 오보라더군요. 불안한 마음에 손톱만 깨물고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배안에 갇혀있는 사람들이 무사히 구조되길 기도하고 또 기도했어요. 불안함을 넘어서 손이 떨리고 눈물이 주체를 못하더군요.결국 그날 잠을 자지 못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선잠이 들었는데 제가 세월호 안에 갇힌 꿈을 꾸었어요.한동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처럼 심각한 불안증과 우울증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제가 이정도였으니 유가족 분들은 얼마나 힘드셨을까요...절대 이 날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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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출근시키고 우연히 본 뉴스에서나오는 침몰소식.전원 구조되었다는 뉴스를. 보고다행이라 생각하고3살난 아들과 다시 한숨 자고 일어났는데구조가 되어있지 않았다는...아이를 안고 뉴스를 보고 눈물을 흘리고..내 하루가 너무나 평범해서그들에게 아직까지 미안하네요더이상 춥지않기를...바라고 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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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시간에 머물러 있지 말고,지금 여기서 멈추어 있지 말고,마지막 1초까지 다해 진실을 밝혀 주세요.뭔가에 의해, 누군가에 의해 이런 일이 생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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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난 중1이었고 교정한지 얼마안되어서 엄청나게 이가 아팠다 오랫동안 끊은 미술학원 다시 시작하는 날이었는데 당시 쓰던폰은 스마트폰이었지만 LTE가 막혀있어서 집에와서야 내가학교에 있는동안 전원구조 되었다가 그게 가짜(??)라는 사실도 암20140416 후로 3~4일정도 우리반은 여자애들은 쉬는시간만 됨 다들 DMB 틀고 난리가 났다 남자애들은 기억은안나지만 아마 DMB보던 애들도 있었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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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이 희생이된 큰 사고.. 그 어둡고 추운 바다속에서 잠들었어요. 아무런 도움이 안되지만 마음속에 평생 잊어서는 안되는 4월16일... 끝까지 기억하고 가슴에 담아둘께요... 절대 진실은 침몰하지 않아요 진실이 떠오를때까지 기다려주세요 그리고 편히 잠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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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때였는데 처음에는 전원구조라고 떠서 강의듣다가 다행이라고 애들이랑 얘기했었어요.근데 오보라고 침몰하고 있다고 했을때 사실 그 때까지는 설마 요즘 세상에 승객들을 못구할까 그런 생각도 했었죠. 근데 점점 배는 가라앉고 한 명 한 명 사망자가 나오고 뉴스에 사망자 수 실종자 수가 위에 뜨는데 믿을 수가 없었어요. 멍하고 이게 무슨 일인가 2014년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밤 새 뉴스보고... 2016년의 끝인데 아직도 세월호가 인양되지 않았고 박근혜 정부는 숨기기만 하고 수많은 의혹들.. 2017년에 모든 것이 다 풀리고 희생자분들이 편안해졌으면...실종자분들도 부디 돌아오시길 기도합니다. 절대 잊지 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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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운동이 끝난 후 식사를 하려고 선후임들과 함께 자리에 앉았습니다. 배가 가라앉고 있다고 tv에서 보도합니다. 별일아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제 친동생과 같은 나이인 고2라고 합니다.분노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군인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기에 선거 외에 정치적 의사표시를 할 수 없습니다. 외출을 받으면 혼자서 몰래 광화문 광장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유족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지켜보다가 서명운동에도 동참하지 못하는 현실을 자책했고, 서러운 마음을 친구에게 고백하였습니다. 친구 왈 군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잘 안다. 안타까운 마음 가지고 영원히 잊지말자..미안합니다 나라를 지키고 있던 사람으로써 미안합니다. 그대들의 안타까운 희생 기억하겠습니다. 시간이 흘러 민간인이 된 지금 이야기합니다. 얘들아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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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회사에서 유튜브였나..인터넷으로 YTN중계를 보았습니다.화면속 뒤집어져서 가라앉은배와 경악스런 실종인원에 간절히 모두 무사히 구조되길 빌었습니다.그 실종이 고스란이 사망자가 될줄을 그날은 몰랐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그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했는지 알지못합니다. 살아남은 사람들과 그 유족들뿐만아니라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본 모든 이들또한 아직고 절망과 고통속에 있습니다.사회가 진실히 밝혀지고 죄가 있다면 그 죄값을 치르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사회는 여전이 무력하게 조명탄을 쏘아대던 그날 밤바다 위에 표류하게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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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갔다가 점심을 먹으러 내려와서 식당에서 확인하였습니다.아이들이 전원구조되었다고 보았는데, 다시 실종이라는 것을 확인 하였지요. 정말 절망적이더군요.. 나중에 전원 대기하고 있으라고 하는 방송을 보고 더욱 끔찍하였고요. 그런데, 대통령은 2014년 7월 8일 국회의원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그 7시간에 대한 행적 공개를 요구하였음에도 지금 2016년 12월 30일 기억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과연 2년 6개월 동안 국민들의 요구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요?? 국민들은 그 희생자들을 잊지 못하고 있지만, 국가의 지도자인 대통령은 그 사건을 잊으려고 책임을 회피하려고 있습니다. 국민과 대통령 사이에 신뢰를 스스로 버리고 있는 것이지요. 어둠은 빞을 이길수 없고, 거짓을 참을 이길수 없으며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세월호는 침몰하였어도 우리는 아직 세월호를 레테의 강으로 보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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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7개월쯤 친정엄마가 집에 오셔서 티비보시면서 큰사고가 났다고 하셨어요.설거지를 하다 급하게 뛰어나갔는데 전원구조 자막이 뜨고 구조자들 화면이 나오길래 정말 다행이라고 얘기나누고 남은 일을 했지요..점심쯤 다시 티비를 봤는데 구조/실종 400 명 이런식으로 뜨고 뱃머리들려있고 이런상황이라..마음이 급해지더라구요그래도 다 구조할줄 알았어요..배가 다 가라앉은것도 아니고..그럴줄은 몰랐어요..그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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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tv를 틀었는데 사고가 났다고 한다. 배사고가.... 출근하는 신랑에게 소리쳐서 신랑을 불러 tv를 같이 봤어요. 신랑이 출근하고 배가 뒤집혀가는 tv를 보며 청소기를 밀었고... 애동지라 아이들 사고가 많다는게 정말인거냐 그런게 정말 있는거냐 엄마와 통화를 했어요. 저 부모들 어쩌면 좋냐...눈물을 흘렸고 아이들이 왜 바다로 헤엄쳐 나오지 않는거냐 언니와 통화도 했어요.그날은 하루 종일 tv를 켜두었고 점심을 먹지 않았어요.2014년 4월16일 그 한달 후, 1년 후...아니... 2016년 4월16에도 전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해요. 하지만, 그날 만은 2014년 4월 16일 만은 기억해요. 그날은 그냥 일상이 아니 었으니....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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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아침 회의 끝내고 나오는데속보로 나와서 대화창마다 세월호소식 링크 받고,놀래서 폰으로 뉴스 본 기억 생생합니다!!어쩌지? 뭐지 ㅠㅠㅠ 나도 배타고 고등학교때 수학여행갔었는데??? 까지 생각했었어요!그러고 퇴근할때까지, 담날 출근할때까지 ㅠㅠ 그 소식뿐 ㅜㅜㅜㅜㅜㅜㅜ어찌 잊을 수 있습니까.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입니다 이건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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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로 접했었고, 오보가 나오고, 오보를 정정하고, 그리고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아직까지 팽목항에는 당신들의 자식들을 기다리는 부모님들이 계십니다. 정권의 희생자가 단원고의 학생이든, 선생님이든, 일반 승객이든. 세월호 인양은 최대한빨리 무조건 돼야하고, 그 속에 숨기려는 사실이든, 숨겨진 사실이든 밝혀야하고, 밝혀질 것이고, 밝혀져야 합니다. 항상 그리고 영원히, 응원하고 작은 목소리나마 힘을 보태겠습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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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 일찍 모 거래처에 출장가서 그 곳 사내 식당에서 점심 얻어 먹던 중 직원들이 하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전원 구조 되었다는 말에 가볍게 넘겼는데 오후에 복귀해서 인터넷으로 세월호의 실상을 확인한 후 망연자실하였습니다어찌 대명천지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일을까 하루종일 울분에 찼었습니다이런 일을 기억도 안하고 기록도 안하는 대통령은 대통령이 아닙니다 악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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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막막한 입시 날 중 하나, 여느때와 다름 없던 아침 막막한 날은 한순간 먹먹함으로 바뀌었고 누구에게 지지않는 나의 대학 합격의 간절함은 너의 살고자하는 간절함에 비교도 할 수 없게 되었어 너가 있다고 배가 점점 가라 앉는다고 누군가 크게 외쳐도 미국의 도움을 받는다 카더라 인양작업을 한다더라 못한다더라는 추측성 이야기만 떠돌뿐 너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확신하지 못한채 마치 아무도 없는 암흑에서 홀로 소리 치는 것 처럼 메아리만 크게 울릴뿐 그 외침이 야속하게도 너는 점점 아래로 아래로 내려만 갔어 내 나이 19살, 2014년 4월 16일의 난 어른이 대단한건 줄 알았어 너의 손톱이 다 빠질 정도로 배를 긁기 전까진 말이야. 하지만 어른은 대단하지 않았고 몇몇의 영웅들이 장렬히 전사하시고도 너는 나오지 못했어 세상이 그렇게 시끄럽고 부모님들의 원망과 애절함과 슬픔은 귀를 막아도 외면하지 못할 정도 였는데.. 너가 믿던 어른은 어디서 뭘 했을까 애초에 너가 믿던 어른이 존재는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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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초등학교에 입학한 저희 아들 공개 수업날이었어요.. 장래희망으로 파워레인저 앤진 블루가 되고 싶다는 저희 아들의 그림도 보았고, 축구선수가 되고싶다는 같은반 아이의 축구장 잔디의 색을 다르게 표현한걸보고 감탄도 하고 했더랬어요. 공개 수업이 끝나고 같은반엄마들과 학교근처 카페에가서 샌드위치도 먹고 커피도 마셨어요.그 카페에있는동안 스마트폰으로 - 오보로 밝혀졌지만- 수학여행간 단원고 아이들의 전원구조기사를 보며 엄마들끼리 다행이라고 얘기도 나누었지요.. 전 그날 무슨옷을 입었는지, 무슨 가방을 들고,무슨 신발을 신었는지, 옆에앉은 엄마는 누구이며,어느 카페에갔는지, 제가 어디에 앉았는지 다 기억이 나요..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