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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티비에 큰 사고에 대해 보도해줘서 밥먹으면서 지켜봤다. 그때까지는 설마 설마 했다.다시 촛불이 타올라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왜 우리는 300명의 목숨을 잃었을 때 이렇게까지 분연히 들고 일어나지 못했나. 혹시 300명 타인의 목숨보다 대통령이 뭉개버린 우리의 자존심이 더 중요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얘들아 이렇게 못난 어른이라 미안하다. 이게 다 어른들 책임이다. 너희들은 잘못 없다. 가만히 있으라는 통제에 침착하게 잘 따라준 너희는 잘못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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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고등학교 선배들도 그시간 수학여행으로 제주도에 있엇습니다. 처음 학교에서 배가 침몰했다는 기사를보고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인터넷으로 뉴스를보았고 전원구조라 하여 안심하고 수업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1시간뒤 잘못된 조사라고 하여 인터넷뉴스로 같이 걱정하며 전원구조 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조되지 못하였고 함께 7시간을 학교아이들과 걱정하면서 보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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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4학년, 여느때와 같이 집에서 인강과 함께 공부를 하고 있었고 밥을 먹을 겸 TV를 틀었는데 세월호가 침몰되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곧 전원구조 이야기가 나왔고 "와 어쩐일로 이렇게 대응이 빨랐대? 다행이네" 하고 마저 끄고 공부를 하는 도중에 핸드폰이 쉼없이 울리기 시작한다. 뉴스 봤냐고. 대량학살급이라고. 무시하고 공부를 할수도 있었지만 이끌리듯 TV를 켰고 믿을 수 없는 소식과 현장의 모습에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공무원이 되면 저런 사람들을 상사로 모시고 살아야되는건가? 그놈의 정치적중립 때문에 입을 다물고 살아야하는가? 의욕이 뚝 떨어지고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밖에 안나더라. 3년이 흐르기까지 어떻게 책임자 하나 나오지 않고 다들 나몰라라 하고 있는 것인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조직된 것들은 하나같이 국민에게 칼을 겨누고 지금이 민주국가 시대인지 절대왕정인지 당최 알수가 없다! #박근혜는_물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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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 하지마자Tv 에서 나온 뉴스전원구조 ...믿었다 그런데 웬걸몇시간 후 너무나 충격적인그 뒤로 매일매일JTBC 뉴스만 봤다구조되겠지라는 희망이 점점 사라져가는아픔이 더 커져가는지금도 기억한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배에 들어갔고아이는 친구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구명조끼를 수영하지 못하는 친구에게 양보를 하고 배에 들어갔고 이렇듯 그 안에서는 또 다른 이를 구하기 위해자신은 나오지 않고 배에 들어가는데정부는 뭘했는지그렇기에 꼭 밝혀져야 한다 7시간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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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당시 아나운서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입니다. 4시간 전에는 그래,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확실히 구조하겠지. 그런데 왜 장비없이도 할 수 있는 구조조차 안 하고 있는거지? 어느 채널을 틀던 화면속 해경은 밖에 나와있는 사람들만을 데려갈 뿐, 내부로 진입하지 않았습니다.그날 하루종일 TV를 켜놓고 있었지만 내부로 진입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못봤습니다.....그리고 4시간 후, 분명 그 전에도 본격적으로 구조하겠다-라고 했는데 여전히 [본격적인 구조]는 이뤄지지 않고 있고.. TV속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구조하겠다라는 ... 나중에나 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합니다.이 미친놈들이 뭐하는거야?!!!!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그리고... 그 뒤로도 본격적인 구조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마치 아이들이 죽기만을 바란 것 처럼요.국민을 지키지 못한 대통령은 대통령이 아니라던 박근혜 당시 국회의원은 그렇게 300명의 사람이 빠져죽도록 내버려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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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억은 야자시간 자습시간이었어요휴대폰을 내지 않은 친구들이 인터넷 뉴스를 보고 선박이 가라앉었다고 하더라구요에이 구조되겠지 라는 생각에 저는 무심했었어요구조됬다는 역시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었네요오보라는 사실을 알고 우는 친구들도 있었어요그 당시는 왜 친구들이 우는지 이해가 안됬어요이 나라의 높은신 분들을 믿었던 순진한 학생이었나봐요 시간이 지나고 여전히 구조가 되지 않는다는 보도에 답답했어요 보고만 있어야하는 상황과 대응도 대책도 없는 이 나라가요전 아직도 몇 년 전 그때 감정이 기억납니다당신은 그때 어떤 감정이었나요? 답답했나요? 죄송했나요? 다급했나요?진심을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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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상황실에서 작업중이였습니다.처음에는 사고가 났다. 다음에는 전원 구조다. 그래서 안심했었던 기억이 나네요...그것이 잘못된 보도인 것을 알고나서 매일 같이 뉴스를 봤는데 뉴스에서 말하던 희망이 다 거짓이였다는 것을 6개월 후 전역 후에나 알게 되었네요...아무것도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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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 날 일하고 있었어.뉴스 속보 그런거 못볼 정도로 일하고 있어서 너희들이 빠져서 죽었는지 전원구조 오보가 떴는지도 모르고 일하고 있었어.뒤늦게 퇴근하고 나서야 알았어.너희들은 그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나는 무력하게 지하철을 타고 편하게 의자에 앉아서 일하고 있었구나.정말로 미안해 미안해.... 그리고 이제 하나하나씩 밝혀지고 있어. 너희들의 억울한 죽음들 꼭 이대로 묻혀지게 두지 않을게 미안해 어른들이라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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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점심시간 식당에 모인 선생님들과 뉴스 본 이야기를 나누며 "다 구조됐다는데.. 다행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출구없는 미로속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하는 것 같습니다. 뭔가 억울하고 마음이 아프고 답답해지는 마음은 더해가고 시간이 흘러 1년쯤 지나니 세월호를 입밖으로 말해도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고 찾아보지 않으면 관련 기사는 나오지도 않고..... 혼자서 억울하고 마음아파하기만 했습니다. 이제는 모두 함께 용기를 애서 이 답답함과 억울함을 공감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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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애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막내 아이랑 시간을 보내던 중 티브이에서 뉴스를 통해 소식을 듣고 곧 전원 구조라는 희소식에 기뻐하다 뭔가 심상치 않은 뉴스 흐름에 하루종일 슬프고 우울하고 뉴스만 뉴스만 보았던 기억이 나네요 아가와 함께 보내는 여느날과 같은 일상이었지만 하루종일 세월호에 관심이 쏠렸던 날이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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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평범한 월급쟁이 직장인입니다. 2014년 4월 16일 그 날 오전 9시부터 있었던 아침회의를 마치고 10시가 다 되어서야 사무실 책상으로 돌아와 기사를 보고 사고 소식을 접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국가안보의 수장인 대통령이 처음 보고받았다는 그 시간이랑 같네요..) 1990년대 초반에 제가 초등학생일 때 있었던 서해훼리호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옛날에 그런 큰 참사가 있었으니 이제 같은 실수는 하지 않겠지하고,, 기대를 했고,, 오전에 전원 구조라는 소식을 듣고 역시 이제 시스템적으로 대처를 잘 하는구나하고 안심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말 그대로 기대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오전 근무를 마치고 점심을 먹기전에 매일 헬스장을 가곤 했습니다. 여느 때처럼 헬스복으로 갈아입고 몸을 풀고,, 샤워실과 가장 가까운 쪽의 런닝머신을 택하여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운동을 할 때는 정오뉴스를 보곤했기 때문에 런닝머신 앞에 설치된 TV를 켰더니,,, 뱃머리만 떠있고 수장된 세월호의 참혹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화면의 상단에는 구조자,,,수치가 나왔고, 아직 구조 못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그때 알고 너무도 놀랐습니다. 나와 같은 그 하나하나의 생명과 인생과 세상이 티비 상단에 하나의 수치로 기록되고 있는 것이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제 호습이 멎었을지도 모르는 수몰된 학생들을 생각하면 지금 내 건강을 위해서 땀흘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오후 근무를 계속해나갔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만 해도 희망의 끈을 놓치는 않았습니다. 세월호 내에 공기가 들어갈만한 공간에 생존자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국가에서 나서서 먼가 해주겠지 하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기 위해서 있는 국가이니까요. 그런 국가를 믿고 저는 교육도 받고, 군대도 다녀오고, 그렇게 그날도 일하면서 번 돈으로 세금을 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지켜줄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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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날들과 마찬가지로 출근을 하고 근무를 하는중 인터넷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고등학생들이 타고 있는 배 한척이 기울어져 있고 전원구출에 성공 했다는 기사...하지만 얼마 뒤 전원구출이 아닌 생존자와 사망자 수가 보이는 기사를 또 접하게 되었습니다...만약 저 배에 내가 탔더라면 라는 생각과 부모님부터 떠오르게 되더라구요어린학생들이 그 배안에서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지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잊지못할 4.16 기억이 없다는 우리나라대통령너무나 챙피하고 원망스러운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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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지인과 함께 웹사이트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속보로 뜬 기사를 봤습니다. 화면상의 배는 약간 기운 상태여서, 큰 배니까 그렇게 빨리 가라앉지는 않겠지. 다 구조 되겠네. 하고 가볍게 생각하고 다시 일에 몰두했죠. 오후에야 그 긴 시간동안 아무 구조활동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화가 쏠려서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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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가 조금 넘은시간 그날은 연구기관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던 내가 연구조사를 위해 완도 앞바다의 한 전복 양식장 에서 연구조사용 시료채취를 하고있던 시간입니다. 당시 전라남도 소속 연구선이 진도로 구조지원 가던중 우리 근처를 지나가기에 일행중 한분과 연구선의 선원분과 안면이 있어 잠시 정선한 후에 당시 세월호 상황을 들려줬던게 기업납니다. 당시엔 탑승객 전원구조라고 언론에 나왔으며 지원가시던분들도 대수롭지않게 현장 파악을 위해 지원 나간다 하였습니다. 여개선 침몰은 안타깝지만 승객 전원 구조라는 소식에 그래도 다행이다. 라며 대수롭지않게 여기며 본업에 충실했 습니다. 하지만 하루종일 바다위에서 쟉업하고 6시경 육상으로 올라와서 저녁식사하러 들어갔던 식당에서 봤던 뉴스에 경악을 금치 못했 습니다. 전원구조라던 뉴슨 최악의 참사로 보도되고있었습니다. 뉴슬 보던내내 무능력한 정부의 모습에 분노를 삭이지 못했던 그날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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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서울역으로 출근였고 갑자기 나오는 속보를 보고 깜짝 놀랐으나 곧 모두 구했다는 보도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하지만 그게 곧 오보라고 밝혀져 슬픔에 잠겨있던 하루죠.선명하게 기억하는데 조금씩 침몰해가는 배를 보며 빨리 좀 구하지 모하나 걱정하며 보낸 하루였는데 이걸 어떻게 기억을 못하는지... 온 나라가 다 슬픔에 빠졌던 날을...왜 기억 못하는지...선명하게 그날 있던일이 다 기억나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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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나오는 속보를 보고 모두 구조가 되었다는 그 뉴스를 보고 안심을 했지만 ..오보였다는 사실에 너무 슬픈하루였습니다.당연히 모두 구출되어서 나오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지만 자기만 살겠다고 나왔던 선원들...너무 화가 나고 힘들더군요.미래를 책임져야 할 우리 학생들이 차갑고 짠 바다속에서 그렇게 죽어가고 있었는데요..대통령은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겁니까?우리 모두는 기억하는 그날을 잊었다니요..이 나라에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저런사람이라니 정말 화가 나네요..그날을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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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난 백수였다.되지 않는 취업에 좌절하며 돼지마냥 잠만 처 자다가 늦은 아침에 일어나서 TV를 켜니여객선이 좌초됐다는 뉴스를 봤다.영상도 함께 나왔는데 , 다행히 파도는 그리 높지 않았고 헬기와 구조대가 이미 도착해 있길래, 아 그래도 사람은 무사하겠구나 싶었다. 곧 전원구조라는 뉴스도 들었다. 시간과 기상과 사람 3박자가 골고루 맞아서 큰 사고는 면했구나 싶었다.면접보러 오라는 전화가 오고, 씻고나서 면접을 보고 왔더니, 전원 구조가 오보였단 소릴 들었다. 뭔일인가 싶었는데배는 침몰해있고, 사람들을 못구했단다. 구명정이나 에어볼이랬던가 암튼 그거에 희망을 갖는단다..이건 뭔개소린가싶었다. 아니환한시간에 누군가 허리에 줄 하나 둘러 매고 하나하나 끌어내도 다 구할수 있는 시간에 한명을 못구했다니..순간 구역질이 났다. 이게 내가 사는 국가구나 싶었다. 내가 위기에 처했을때국가는 나를 구해주지 못하겠구나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리고는 유병언이란 놈의 책임을 물어야한다는 쪽으로 언론이 몰아갔다. 1차 책임은 그놈한테 있을지 모른다. 그 사고는 물론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2차 책임은 국가에 있다. 멀쩡히 눈 뜨고도 아무도 구해내지 못했다.천억번 양보하여 1차 책임자가 교통사고(높은 자리에 있는어떤개새끼들이 이 사건을 이렇게 불렀다지?)라고 치자. 2차 책임자들은 학살을 저질렀다. 죽어가는 것을 방관했다. 국민이 분노한건 여기에 있다고 본다. 여야네 지랄맞은 소리말고,국가라는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거다.그때의 아픔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아픈데남을 아프게 한새퀴가 잊어버렸단다...그게 우리 사는 나라의 소위 윗대가리들의 머리속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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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당시 캐디였습니다. 첫 라운드를 돌고 점심식사를 하면서 보게 된 뉴스에서는 정말.. 영화에서만 벌어질 것 같은 소식을 듣게 됬습니다. 정말.. 제 주변 모두 걱정하면서, 동료들과 많은 사람들은 기도하며 울던 장면들이 기억납니다. 그리고 모두 구조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는 정말 기뻤습니다. 하지만, 이게 오보였다는 사실을 알게됬죠. 그리고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곧 구조가 될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과학이 발전했고, 세상이 변했는데.. 하지만.. 끝내 구해지지 못했고. 우리 어린 학생들, 그 배에 타고 있었던 그들.. 그들이 도대체 무슨 죄일까요.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많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그들 .. 도대체 무슨 짓을 했던겁니까.. 진실을 원합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엄중한 처벌이 정말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됩니다. 절대로 .. 절대로.. 이렇게 그냥 지나가면 안될 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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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백수였던 저는하루종일 티비와 스마트폰만 쳐다봤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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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를 위한 작은 장사를 하고 있었고,딸 아이의 출산을 기다리고 있던 시간이었습니다.속보를 듣는 순간부터 머릿속이 멍해지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곧 딸아이를 만난다는 기쁜 기다림의 마음이 그날, 그 순간, 사라져버리는 순간 이었습니다.그날 저녁,생계를 위해 가게 문을 열고, 매장에 음악을 켜는 순간.."내가 이래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장사를 하기위해, 손님을 위해, 즐거운 음악을 켜야 한다는 생각에.."내가 이래도 되는 걸까?"정말 몇 일이고 , 가게 문을 닫고 싶은 감정이 들더군요.저 역시 모든 국민들과 함께 우울증이 걸리는 듯 했습니다.임신중인 애기 엄마에게 우울증이 오는걸 막아 보려고 집에서는 아예 뉴스도 보지않았네요..종교인이건, 비종교인이건택시를 타도, 밥을 먹어도, 일을 하고 있어도모두가 TV 속 구조장면만 바라보고, 기도하고, 원하던 그 시간...그런데.. 어떻게? 그 시간이 기억이 나지 않을 수 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