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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싶지않은.. 그날을 조심스레 떠올려봅니다. 저는 당시 중학교 3학년으로 야자가있던 저는 친구들과 석식을 먹는 중이였습니다. 한 친구가 뉴스기사를 보고 저희들에게 "배가 침몰했는데 전원 구조됐대!" 라고 전해주었고 이 말을 들은 저는 별 일 아니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로 업데이트되는 기사들을 읽으며 거짓말인줄 알았습니다 아니 거짓말 이어야만 했습니다. . .. 사실임을 안 저는 너무 황당하고 또 너무 화가났습니다.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채 혼자 빠져나온 선장 , 7시간의 비밀을 갖고있는 대통령 그외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많은 사람들. 모두 벌받을겁니다 반드시.유가족분들 모두 힘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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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수학여행을 가러 세월호라는 배를 타고 갔다. 그런데 세월호라는 배에 있었던 선장과 그 선원들은 배에서 뛰어내리고 세월호에 탔던 사람들 그리고 학생 선생님들만 빼놓고 갔다.세월호에 탔던 사람들 학생 선생님들은 그걸 모르고 어떻게해야할지모르겠다고 방황하고있다.세월호 선장과 선원들..도망가니까 기분이 좋겠습니다? 이 세월호에 탔던 사람들은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을 갔는데 말입니다.하지만 거의 3년만에 세월호 배는 빛을 보게되었습니다. 세월호에 탔던 모든 분들이 조금이나마 빛을 바라보게되어서 정말 다행입니다.그리고 이걸 이제 기억속에 사라지고 있는 사람들이있지만 저는 이 사건을 계속 생각하겠습니다. 정말 국민으로써 죄송합니다 세월호 유가족분들..세월호라는 배에 있던 사람들 학생 선생님들 추웠던 3년이라는 기간에 이제는 따뜻하게 지내시고 하늘나라에 가서 좋은 것들로만 보고 살아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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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저와 제친구들은 중학교 2학년 이었고 저희는 수학여행을 마치고 집을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그전날 충분히 잠을 자서 그런지 집가는 버스 내내 눈을 뜨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할까 심심해하며 버스내의 티비를 보게 되었습니다.2년전이라 그런지 제대로된 내용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수학여행가는 배 침몰했지만 전원구조 되었다 이런내용이었습니다 저와 제친구들은 전원 구조되서 다행이라고 그래도 나중에 저것도 추억일것같다며 그런 농담아닌 농담했습니다. 지금생각해보면 왜 대체 그런말했을까 철없구나 생각없구나 하는 생각만 떠오릅니다. 전원구조라는 말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집에 가까워질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그 소식은 잘못된것이라고 들려왔습니다 실종자의 수는 점점 늘어나갔어요그리고 결국 2017년 3월 아직까지 미수습자 9분이 남았습니다. 말도안되게 많은 18살의 피지못한 꽃들과 그 꽃들을 피우기 위해 지도해주신 선생님들 그리고 다른 가족단위의 희생자들 , 제가 기억하지 못해 죄송스러운 다른 세월호의 희생자여러분 3년이 지난 이제서야 여러분의 생에 마지막 장소였던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던 세월호가 인양되었고요 한분이라도 더 구조할수 있었던 그 7시간의 책임자가 구속되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 여러분 진실은 이제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어떤말로도 그 비극에대해 위로가 되지 않으시겠지만 여러분 뒤에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있습니다 남은 진실 또한 하루빨리 밝혀지길 빌어요하늘나라로 간 언니오빠들 그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제가 18살이 되었어요 거긴 어때요? 언니오빠들이 왜 죽어야했는지 왜 물속에서 고통스럽게 희생되어야 했는지 아직 우린 알지 못했어요 누구의 책임인지 침몰한 원인은 무엇인지요..하지만 이제서야 한걸음 다가간것 같아요여러분의 시간은 18살에 멈춰버렸지만 진실의 시계는 이제 돌아가고있어요세월호 희생자여러분 하늘에서는 편히 행복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Remember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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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구조된, 해프닝으로 지나갈 사고인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구조자는 도통 늘지 않았습니다.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한 7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이제 나는 비오는 4월 16일이 다가올 때면 꾸역꾸역 올라오는 울음을 터뜨립니다. 정의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때 당신은 그때 교회는 어디에 있었단 말입니까 울부짖고 또 울부짖었습니다.나는 세월호 세대입니다. 이날의 무기력함을 나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날의 고통을 내 몸에 새겨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진실에 떳떳하게 마주하는 세상을 꿈꿀 겁니다. 정의가 강 같이 공의가 물 같이 흐르는 세상을 꿈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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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같았던 일상, 등교한지 얼마되지 않아 발생했던 세월호 사건.. 우리는 곧 구조될거라 생각하고 정상적으로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올 쯤 모두 구조 되었다는 속보에 안심하였다. 그때 부터 난 대한민국의 언론은 믿지 않았고, 고발뉴스 등의 언론만 믿게 되었다. 정말 답답하고 화가 났다. 대한민국의 구조체계는 과거, 백화점이 무너졌을때나 다리가 붕괴되었을때와 다르지 않았다. 중2의 나는 인터넷을 뒤져서 실시간 해역방송만 찾았고, 유가족들을 보며 너무나도 울었고, 그곳엔 나와 함께 커뮤니티를 했던 형이 있었고,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미치는듯 했다..그 후 당연스럽게 대한민국은 침울했고 모든 수학여행등이 취소 되었다. 나와 친구들은 분향소를 다녀왔고, 수학여행의 짜증을 부렸던 친구들과는 달리 난..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좌절할 틈이없이 뭔가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주변분들의 만류에도 노란리본을 준비했고, 그들은 나의모습에 변화했다.다시 생각해보니 2014년은 정말 침울하게 지냈다. 너무 미안했던 내마음에 그땐 안산근처로 갈생각도 못했고. 세월호라는 단어만 들으면 울곤했으니.. 그후 햇수로만 3년동안 난 성장했고 당시의 형,누나들과 동갑이 되었다. 그 선배들과 나는 대한민국의 교육제도에서 경쟁하는 사이가 되었으리라.그러나 그들은 돌아오지 못했고, 세월호가 인양되는 이 시기에 노란리본을 만들고, 촛불시민혁명에 참여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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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점심때쯤 출근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느긋하게 일어나서 준비하고 출근을 했는데 직장 동료분이 사고 얘기를 해주셨어요. 수학여행 가던 학생들도 타고 있던 배라서 다들 무사히 구조되길 바라며 기다리고 있었죠. 전원구출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그리 큰 일 일거라곤 생각도 못하고 있었어요. 저녁이 되고 나서야 그게 오보였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생존자가 제발 1명이라도 구조되길 바라고 있었는데, 그 이후로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누군가의 시간은 그 이후로 계속 멈춰있었겠지요. 진실은 절대 멈추지 않고 잊혀지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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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군전역을 3월에 하고 복학준비를 하던 때입니다. 4월 16일에 아침에 뉴스를 보는데 수학여행 가던 세월호배가 기울어졌다는 소식을 봤고 이미 뉴스 속에는 구출자몇명 이렇게 표시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구출자가 계속 증가해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11시인가?10시쯤에 전원구출 기사가 났었고 그 후 오보기사였다고 정정되면서 사태가 심각하다는걸 알게 되엇습니다. 그 후로 세월호관련 뉴스를 집중해서 보았고 정부의 무능함을 다시 한번 알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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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여느 때와 똑같이 평범하게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전 근무를 하던 중 학생들이 많이 탄 배가 침몰중이라는 뉴스를 보고 걱정하다가 점심쯤 대부분이 구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외근을 다녀오니 구출 소식은 오보였고 많은 사람들이 배에서 탈출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아직 갇혀있는 사람들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기원하면서 뉴스를 보았지만 바라던 소식은 결국 나오지 않았습니다.가슴 아프고 안타깝고 분노한 그런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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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그때 학원에있었던걸로 기억합니다.그리고 저는 학원끝나고오면 항상 티비를켜는 습관이있는데 오자마자 티비를 켰더니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그당시에는 뉴스에 모두 생존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갑자기 오보라고 떠서 너무 안타깝고보는 나는너무답답하고 차라리 제가 들어가서 구해주고 싶은마음뿐이였습니다... 그날 그사건만일어나지않았다면 지금쯤 단원고학생이였던 분들은 모두 대학생활을 하고있겠죠... 제가만약 과거로 돌아갈수있다면 2014년 4월 15일에 돌아가서 그배에 탔던 모든사람들에게 그배를 타지말라고 하고싶습니다.. 4.16 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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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에 살고 있습니다. 그날은 늦잠을 잔 탓에 뉴스를 보지 못하고 급히 학교에 갔습니다. 늘 그랬듯 쉬는시간이 되어 학교 앞 카페에 몰려가 커피를 마시는데 친구가 와서 어깨를 툭 치며 위로의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잊지 않았습니다.잊을 수가 없습니다.멀리서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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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집에서 학원을 가기위해 준비하던 친구를 기다리고있었다. 할개없어서 친구집에있던 티비를틀었는데 아래자막에 뉴스속보가 떠서 곧바로 뉴스를 틀었는데 사망자가 나왔다는걸 보았다 다들 안전하게 구출될줄 알고 학원르로 갔지망 점점 사망자가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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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저는 중3이였습니다. 학교에서 오전에 전원구조 성공이란 말에 안심을 하고 집으로 하교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책상앞에 앉아서 티비를 켜놓았었는데요 세월호 뉴스만 계속 나왔습니다. 뉴스내용을 듣고 보면서 공부는 머리속에 들어오지 않고 한없이 울기만 했습니다. 구조자분들의 인터뷰와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의 인터뷰를 보는데 너무 울컥하더라고요. 그 이후로 제 짧지 않은 인생동ㅇ안 계속 기억하며 살다보니 그 꽃다운 나이도 제가 지나고 고3이 되었네요. 이젠 더이상 추위에 움추리지 말고 따뜻한 봄날의 날씨처럼 포근한 가족의 품으로 돌와주세요 항상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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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아침, 뉴스를 보던 엄마가 사고가 났다고 외쳤습니다. 배가 침몰했다고... 반쯤 잠겼던 배라 모두 무사할줄 알았고 구출되었다는 소식에 안도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가 전원구출은 오보였고 사망자가 있다는 어이없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결국 학생들과 선생님이 수학여행을 가다가 참사를 당했다는 뉴스를 보고 엄마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선장과 일부만 탈출했다는,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를 내리고 탈출했다는 믿기 힘든 뉴스를 접하고 또 눈물이 났습니다. 그렇게 믿기힘든 뉴스들로 우울한 4월이 3년째 지속됩니다. 옆에서 지켜보기만해도 아픈데 유가족 분들은 얼마나 힘드실까요... 잊으라고 악을쓰는 입과 펜을 기억하겠습니다. 진실이 밝혀지고 관련자들이 처벌받는 그 날까지 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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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봄 울진에 있는 원자력발전소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버스로 작업현장으로이동하며 늘 보던 바다가 그날은 언제 더 파도가 거세 보였다. 그때 동료 중 한명이 진도 앞 바다에서 여객선이 침몰 중이라고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라고....모두들 웅성였지만 곧 구조가 될 거라는생각에 생계가 걸린 작업장에서 열심히 일을 했었다. 그날 퇴근 후부터 일어난 국가라는 조직의 행태는 실로 분노를 일으켰다.그 후 내 마음속엔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다.세월호 이야기만 뉴스만 나와도 눈 앞이 흐려지고 가슴이 먹먹해 온다. 2명의 자식을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아니 그 어린 생명들이 국가에 의해 차가운 바다 속에서 ...부모가 아니더라도 친척이 아니더라도가슴 아프고 눈물이 나고푸르고 푸른 동해의 바닷물이 깊고 깊은동해의 바다 속이...아직도 그날의 바다는 눈 앞에 펼쳐진 것처럼 느껴진다. 마음의 자책감 때문에 찾아뵙지 못했지만 용기내어 3주기 추모행사에 다녀왔다. 그때 그 바다는 죽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을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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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저의 휴가신고하는당일이었습니다.신병위로휴가를뺀 진짜 첫번째휴가날. 기쁜마음으로 나왔지만 급히 뉴스를보고 깜짝놀랐습니다. 더군다나 집앞이 바로 단원고였었기때문에..진짜 놀랐죠.. 전원 구조라는 기사를보고 다행이구나 했지만 오보였다니.. 너무나 화가났습니다 두번죽이는구나 아주 나라가 미쳐가는구나. 그주휴가는 계속 기사만보면서 보냈던기억이나네요. 친구들이랑 만나도 세월호이야기만 했었죠. 하루빨리 미수습자분들이 돌아왔으면좋겠고 진실이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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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 마지막 밤.믿기지 않는 소식에 치를 떨었습니다.그 후 제주도 여행을 얼마전 하던 중, 박근혜가 구속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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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회사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습니다.아침에 출근하며 배가 침몰중이라는 뉴스를 보며 출근하였습니다. 물론 구조중이라는 뉴스도 보았고요. 별일 아니겠지 하며 출근했고 그 후 몇시간은 업무로 매우 바쁜 시간이었기에 사실 업무 하던 기억만 있습니다.그 당시 저희 회사에 탕비실에 테레비전이 있는데, 게임회사이다 보니 정기점검 시간이 있었고, 그러다보니 중간에 탕비실에서 테레비젼을 볼 시간이 있었습니다. 한 9시 반정도 10시 사이 정도 였을 겁니다.그 당시 지금은 퇴사하신 과거 팀장님과 그때 겨우 머리 부분만 떠 올라 있는 배 모습을 보며 저거 어쩌나, 빨리 건져내야 하는데 안그러면 다 죽겠다며 걱정했던 기억이 있습니다.정말 침몰하지 않았어야 할, 충분히 구조가 가능했을 배입니다. 그때 누군가가 제대로 지시만 하고 국정만 제대로 운영되었다면 충분히 살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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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골프장에서 일을 했는데 마침 아침 출근이었습니다. 평소처럼 스마트폰으로 네이버에 접속했는데 검색어가 심상치 않아서 와이티엔을 검색해서 뉴스를 틀었고 하루종일 눈을 뗄 수 없었어요.전원구조라는 오보에 마음을 쓸어내리다가그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울면서 정부를 비난했습니다. 그러다 첫 희생자가 나왔고 일이고 뭐고가족 친지랑 통화하며 서로 다른 내용을 아는 건 없는지 공유했죠. 많이 울었습니다.울고 또 울고 목이 쉬고 눈이 안떠질만큼 죽도록 울었어요. 그러다 박근혜가 중대본에 나와서헛소리를 했죠.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그날의 날씨와 내가 입은 옷까지 선명해요.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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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미안하고 미안합니다작년 4월16일에 제가 살던곳에서는 비바람이 몰아쳤습니다끝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못한 분들의 슬픔인걸 알기에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하늘만 바라보았어요이제라도 모두 돌아오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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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근무. 아침퇴근하고 집에 누웠습니다.잠들면서 기사를 접하고 처음 전원구조 소식에다행이다고 잠들었었는데....잊지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