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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빠서 회사에서 핸드폰도 못보는데 누가 제주도 가는 배가 침몰했다고 핸드폰으로 기사를 보니 전원구조했다던데 다 거짓말이더군요전 국민이 기억하는데 청와대 관련된 사람들만 기억못하는건 단체로 기억을 지우는 약을 먹었나요?누구보다 똑똑한 당신들 부끄럽지 않나요?공무원으로서 의사로서 군인으로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자식들 앞에 부끄러운 부모가 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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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그날 우리 아들이 2박3일 학교에서 단체로 수학여행갔다가 돌아오는 날이었답니다너무나 거짓말같은 일이라 뉴스를 보면서도 꿈처럼 멍하게 있었던 기억이 있네요~한나라의 국민으로서 스스로도 부모인 자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그들에게 향한 우리의 분노도 멈추지않을것입니다~자식에게 부끄럽지않은 부모가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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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지않는 슬픈기간을 어찌그리 지웠다 말할수 있을까요~ 무엇인가를 배우려 다니던중이였고 구조상황에 귀를 기울이며 가슴이 요동치던 그순간을 . 기억합니다. 전원구조라는 오보에 가슴을 쓸어내렸다가 잘못된 보도라는 사실에 텔레비젼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영화처럼 그 며칠동안 어딘가에서 살아돌아올수있기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목이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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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개월 아들을 업고 뉴스를 봤는데 배가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들을 업고 뉴스를 보며 어쩌노 어쩌노 아이들 어쩌노..부모는 소식을 들었을까 하며 같이 울고 있었습니다.경남사천 살았는데 날씨가 그렇게 맑지 않았던 걸로 기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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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그날 전 아니 저희 가족들은 세월호 사건 시간에 병원에 있었습니다...그날 이른 새벽 친정 아버지께서 119에 실려서 병원으로 들어가셨습니다...그날 모든 가족들이 병원 응급실에서 날을 샜고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들어가셨을때 저희는 중환자실옆 보호자 대기실에서 뉴스를 보고 있었습니다..뉴스를 보면서 모두 구조 했다는 오보를 직접 봤고그 후로도 계속 뉴스를 보고 아버지가 입원하신 병원에 드나들었습니다...세월호의 비극과 친정아버지의 비극이 같은날 벌어졌습니다...내 평생 잊을수 없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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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아들 유치원에 보내고 오전 급하게 기차표 예매하고 서울로 가면서 핸드폰으로 실시간 상황을 다 지켜보았습니다. 바다위에 엎어진 배를 조면서 구조가 되지 않는 답답함에 많이 분노하고 어이없었습니다. 그날. 저는 기억합니다. 아주 또렷히. 그들은 왜 거짓말을 할까요? 누가봐도 거짓말인데. 정말 뻔뻔하기 이를데 없네요. 하루 종일 핸드폰 실시간 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우리 외할머니 돌아가신날... 그래서 더 슬펐던 날. 저는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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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라 핸드폰을 내는 상황이어 남들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확인을 했습니다. 방과후 수업을 하러 교실로 올라가던 중 한 친구가 수학여행 가던 배가 빠졌다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그 친구의 놀라고 당황스러운 어조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다음 해, 저희 학년이 수학여행을 갈 때, 저희는 그때의 아이들과 같은 제주도에 갔습니다. 제 수학여행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그날도 함께 떠오릅니다. 어떻게, 잊으실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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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앞 큰 티비로 반 아이들과 함께 뉴스를 보았습니다. 가라앉는 배를 보면서 친구들과 함께 울었습니다. 그 날도,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수업 분위기가 침울했고 집중도 안되고 슬퍼지고 마음이 칙잡해졌습니다. 선생님들도 수업에 집중하시기 힘들어하셨습니다. 유가족들이 울면서 팽목항을 지키는 모습, 체육관에서 시신이 발견되길 기다리며 울고있는 가족들의 모습등을 쉬는시간마다 보며 함께 안타까워하고 슬퍼했습니다. 대통령은 그 7시간만이 아닌 지금까지도 세월호에 대해 명확한 발언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왜 죽었어야 했을까요 ? 실제 침몰이 있고 몇시간동안 아무도 구조를 하지 않았고 구조요청까지 취소했습니다.일부러가 아니면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고등학교 3학년때 친구들과 학교에서 나눠 단 노란리본을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제발 명확하게 해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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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여느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고3의 봄날이었습니다. 언제나처럼 반 아이들 다같이 모여 점심시간에 음악방송을 보려고했을때, 기사를 처음 접했습니다. 반아이들 모두 경악을 금치못했지요, 그러나 전원구조소식에 "와 다행이다..."라며 모두 안도했습니다. 그러나 수업이 모두 끝나고 휴대폰을 받아서 포털사이트에 들어가자, 그것이 오보라는 것을 접했습니다. 야자시간에도, 학원에서도... 제 눈길과 마음은 온통 한살어린 동생들에게 가있었습니다. 학원 선생님은 결국 제게 다 잘될테니 이제 공부하자고 말씀하실정도로 집중하지못한 하루였어요. 저는 고3이었는데, 금요일에 (사설이지만) 모의고사가 있었는데도 아무생각도 들지않았어요. 다음날 모든 수업시간에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언급하셨어요. 상황은 날로 안좋아지고, 그날은 마침 제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가 라디오 DJ를 하던 날이었어요. 저도 용기내 처음 사연을 보내보았습니다. DJ가 제 사연을 읽어주었지만, 저는 아직도 그 사연이 읽히지 않았다면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연이 시간을 되돌려 하루전날로 가고싶다는 사연이었거든요. 생생히 그날의 기억, 감정 모두 살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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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그 날, 아홉살 딸내미가 열이 많이 올랐습니다. 배가 침몰했다는 뉴스를 듣고, 전원 구조를 했다는 보도를 듣고,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제 머릿속은 온통 열나는 딸 걱정뿐이었죠.그날밤...수많은 아이들이 물속에서 나오지 못한 것을 알고는 많이 아팠습니다. 아이가 열만 나도 걱정되는 것이 엄마의 마음인데...어린 딸을 아들을 바다에 묻은 엄마들의 마음이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내 딸 걱정으로 보낸 하루가 너무나 미안했습니다.제가 기억하는 416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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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생생합니다. 교장선생님께서도 TV생중계 보시면서 같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학생들 모두 구조 됐다고! !오전 오보를 믿고 아무생각없이 근무하다 오후에 소식을 듣고 에이 설마설마하다 정신없이 일하고 퇴근해서 제대로 뉴스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그날 아팠던 제 가슴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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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소식을 접할 때는 전원 구조라는 오보가 잔뜩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교 후 집에서 본 뉴스는 달랐습니다. 나보다 고작 한 살이 많은 수많은 학생의 죽음과 행복한 시간을 꿈꾸며 제주도로 향하던 사람들의 죽음...현실이 믿기지 않아 내가 혹시 꿈을 꾸고 있어? 하고 묻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날 제가 어떤 자리에서 어떤 자세로 티비를 보고 있었는지, 그날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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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뉴스 보면서사고가 났대 애들이.. 어떡하냐... 하면서울먹이는데 나는 대수롭지 않게 우리 엄마감성 폭발이네 라며 방구석에 들어갔다심상치않아 기사를 찾아보니 심각하더라배가 가라앉는다는데왜 갑판이 아니라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야했지구조는왜안하고..전원구조됬다는 오보부터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인거야살면서 그렇게 답답한 적이 없었기에똑똑히 기억한다왜그런거야?대답하라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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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그때에 나는 공시생이었습니다.매일 독서실과 집을 오가는 생활을 하던 때 식사를 하면서 처음 속보를 보았습니다. 전원구출했다는 보도에 ""그래도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전원구출이 아니었습니다.수많은 사람들이 차가운 물 속에 있었습니다.실낱같은 희망이었지만 어서 빨리 구출되기만을 바라고 있었습니다.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희생자의 가족들과 수많은 국민들이 그냥 보고만 있을수밖에 없었습니다.나는 기억합니다.그 때의 놀람, 슬픔, 무력감, 구출에 모든 사력을 다 하지 않은 국민을 버린 대통령, 말바꾸기고 변명하기에 급급한 관계부처들, 누구하나 책임지려 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 2016년 12월 3일 오늘, 나는 아직도 2014년 4월 16일을 기억합니다. 당신의 일곱 시간을 기억하세요. 기억해내세요. 나는 아직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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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몰래 핸드폰으로 네이버를 켰고, 속보 기사로 세월호가 침몰했고 전원 구조되었다는 헤드라인을 보았다. 그래서 별 신경 쓰지 않고 하루를 마무리하고 석식을 먹고 밖에 나가서 내 볼 일도 봤다. 그리고 야자를 하러 교실에 돌아오니 애들이 교실 텔레비전으로 뉴스를 보고 있었고 화면 오른쪽 상단엔 구조자 명단이 떠 있었다. 전국 단위의 기숙학교였고 우리 반엔 안산에서 온 친구가 있었다. 그리고 그 친구는 뉴스도 못 보고 교실 베란다에서 울고 있었다. 그걸 본 난 아까 전원 구조랬는데? 라는 말을 꺼낼 수 조차 없었다. 날이 갈수록, 비극이 심화될수록, 기사를 처음 봤을 때, 더 알아보지 않고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린 내 자신에 대한 어떠한 혐오감까지 들었다. 내 고등학교 생활은 기숙학교였던만큼 딱히 하루를 꼽을 수 없을만큼 오늘이 어제같고 어제가 오늘같은 비슷한 날들이었지만 그 날의 기억만은 선명하다. 비가 많이 왔었고, 내가 석식 시간에 나가서 어딜 갔다 왔는지, 뭘 샀는지, 무슨 우산을 들고 있었는지 모두 기억이 난다. 그 날의 비극이 그런 사소한 일상마저 모두 기억에 박히게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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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만 해도 당연히 다 구할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해지는거야 하루종일 업무도 못하고 인터넷만 보면서 그 화면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날부터 아주 오랫동안 매일 울었어 그리고 매일 기억해 매일매일 기억해 잊지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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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시간강사입니다.그날은 중간고사 직전 마지막수업일이었습니다. 오전엔 수업이 빼곡 들어차 있어서 뉴스를 볼 새가 없었습니다.점심시간 모바일로 소식을 접하고처음에는 사실 믿기지가 않고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좀 있으니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하더군요. 그렇게 울다가 눈물 자국을 지우고 다시 오후 수업에 들어갈 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배 안에 있을 아이들보다 겨우 한두살 많은 그 학생들의 눈을 똑바로 보기 어려웠던 것도 기억납니다.나같은 어른들이 얼마나 잘못 살았으면 세상이 이 꼴이 났을까. 선생이랍시고 이 젊은이들 앞에서 뭐 잘난 소리를 할 수 있을까. 입을 떼기가 어려웠습니다.그래도 바로 다음 주에 시험인데, 진도는 끝내야겠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수업을 했습니다. 수업이 뭐 대수라고....지금도 그때의 학생들과 함께 얘기하고 기도해야 했던 것은 아닐까, 후회가 됩니다. 그때의 충격과 슬픔과 미안함과 회한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잊지 않으려고, 그래서 달리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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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아침에 TV를 시청하지않는데 그날은 TV를 보게 되었던거 같습니다.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고 눈을 땔 수없는 안타까움과 망연자실함이란.....ㅜㅜ 2년이 지난 이 엄중한 시기에야 하나씩 둘씩 밝혀지는 그날의 대통령의 행적에 아니라고만 하지 무엇을했는지는 솔직히 밝히지 못하는 진실은 과연무엇일까요?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놀아난 무능한 대통령의 그날의 행적이 명명백백히 밝혀서 그 책임을 꼭 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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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그날은 평범한 고3인 저의 모의고사가 있는 날이 었습니다. 1교시인 국어시험이 끝나고 친구들과 모여 교탁에서 선생님 몰래 컴퓨터를 하다가 뉴스를 보았고 , 그 뉴스에는 전원 구조라는 속보소식과 함께 가라앉는 배와 안심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전원구조라는 그 4글자에 안심했습니다. 2교시 100분의 수학시험이 끝나고 다시 뉴스를 보았을 때는 전원구조라는 속보가 실종이라는 단어로 바뀌어있었고 그 안심은 시간이 하루이틀지나가면서 걱정으로 슬픔으로 망연자실로 분노로바뀌어갔습니다.그 날은 절대 잊지 않아야하며 잊어서는 안됩니다.적지않은 사람들은 이제 그만 잊으라고 합니다. 아직 시작도 하지않은 7시간의 비밀, 가려진 7시간, 숨기고 있는 7시간, 꼭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합니다.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듯이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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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친구와 머리를 자르러 갔습니다. 제 차례가 되기 전에 전원 구출 뉴스를 봤고 머리를 잘랐습니다.자르고 나오니 오보라는 내용과 연이은 속보가 이어졌습니다.아아 조금도 잊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