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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전국동시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후배의 예비후보등록 및 선거관련 준비중 오전 7시 10분전후로 KBS2의 생방송 아침마당(확실치 않지만???)의 하단자막에 여객선 침몰중이란 속보를 보게 되었으며 이후 모든일정 중단하고 전원구조라는 얼토당토 않는 TV오보를 보며 일순 환호하였으나 오후2시가 넘으면서 환호가 절망이 되었습니다. 이후 모든 눈과 귀는 생존을 기다리는 기레기언론의 능멸에 또 한번 분노하게 되며 간절한 바램을 담아 화명촛불과 서면촛불이 밝혀졌으나 모든희망이 사라진 지금까지 꺼지지 않는 진실규명을 위한 저항의 촛불이 되었습니다. 기레기언론과 순실이와 근혜외도 이 사항을 악용 및 폄하한 모든 인종들 단죄에 모두 힘을 모읍시다. 세월호 진실은 꼭 밝혀내야 됩니다. 우리는 또렷이 기억합니다. 2014.04.16 오전 8시54분 이후의 그 추악한 민낯을......3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날의 7시간에 대한 어떠한 행적도 내놓지 못하는 댓통년의 추악한 행실과 부역자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참혹함과 무능함의 극치를 보인 정부의 행태에 분노가 넘쳐 이젠 철저한 사실규명과 그에 합당한 처벌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 갑시다. 진실은 결코, 침몰 되어선 안됩니다.아직도 차가운 진도 앞바다 맹골수로에서 가족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아홉 분 권재근님 혁규부자와 고창석님 이영숙님 양승진님 조은화학생 허다윤학생 남현철학생 박영인학생 얼른 가족품으로 돌아오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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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골프 동호회에서 버스를 타고 라운딩가는 날이었습니다. 제가 총무라 버스 안에서 그날 일정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도중에 한 분이 세월호 소식을 핸드폰으로 보시다가 저에게 알려주셨습니다.회원님들에게 사고 소식을 전해주라면서요. 왜냐하면 저희 모임이 안양,수원 이쪽이라 혹시나 사고와 관련된 분이 있을지도 모른다면서요..저는 전달하면서 이렇게 큰 사고라고 생각지도 못하고 가볍게 전달하고 그날 일정을 설명하고있는데 또 다른 회원님이 모두 무사히 구출했다고 얘기하셔서 안심하고 도착 후 라운딩을 하였는데 나중에 억장이 무너지는 비보를 듣게되었습니다. 그때 함께하신 회원님들 모두 똑똑히 기억하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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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처럼 폄범하게 출근을 했고, 업무처리에 여념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회사 사람들과 업무용으로 사용하던 네이트온에서 배가 가라앉고 있고 사람들을 구조중이라고 했던 뉴스특보를 봤어요. 걱정이 되긴 했어도 당연히 구조 될거라고 생각했고, 또 얼마후에 전원구조라는 기사를 접한뒤에는 다행이구나 생각하고 크게 신경쓰지 않았죠.점심시간에 사고에 대해서 얘기를 나눌때에도 오전에 전원구조 되었다는 기사를 봤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원래는 사고 이틀뒤에 회사 워크샵을 가기로 되어있어서 미리 업무를 땡겨서 하느라 더 정신없는 하루였던것도 기억나요.그 날일이 전 이렇게 생생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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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때 조교님은 큰 일이 터졌으니 조심해서 집으로 가라고 하셧고 우리는 조교님이 우리를 겁주기 위한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서 우리는 정말 큰 사건이 터진것을 알고 놀랬지만 전원구조라는 뉴스가 떠서 안심하고 눈을 붙였다. 하지만 집에 도착하니 엄마는 티비를 넋을 놓고 보고계셨고 그순간 나는 사망자와 아직 구출되지 않은 사람의 수를 봤다. 그때 짐도 풀지않고 엄마옆에서 멍하니 뉴스를 보던게 아직 생생하게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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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고 얼마 안돼서 전원구조라는 소식을 듣고그래도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선진국형 구조를 하고있고 또 해경도 든든하다고 생각했지요...그런데 그 예쁜아이들이 구명조끼만 입고 선내에 있으며 구조되지 못했다는 소식을 보고 저는 그날 하루종일 일도 못하고 울고.. 또 울고 ...몇일동안 티비를 켜놓은 채로..... 실종자수가 줄고 구조자 수가 늘어나기를 바랬지요....사망자수가 늘어나는 기사를 보며 정말 가슴이 찟어지는것 같았습니다그날...... 7시간.... 제가슴이 찟어지는 고통을 저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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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모 대기업의 1차 면접을 준비중이었습니다. 하루에 7시간 정도 스케줄을 잡아 면접 스터디를 하고 있었는데 중간 휴식시간에 리더가 "지금 뉴스 빨리 봐보세요!!"라고 외쳤던게 기억납니다. 학생들이 가라앉는 배 속에 있다는 기사였습니다. 금방 구할수 있을거라고, 희망적으로 쓰여있던 기사. 저희는 그 기사를 믿고 미래를 위해 면접 준비를 진행했습니다. 이후 늦은 오후 무렵 쉬는 시간을 한차례 더 가졌습니다. 다들 말없이 포털사이트를 키기 바빴습니다. 거의 다 구했다는 기사가 메인에 나와 있었습니다. "와 빨리 대처했나봐요" 다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저녁을 커피로 대신해 빈 배를 채우고, 다시 막바지 스케줄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스터디가 끝난 후 포털 사이트를 다시 키자 어린 학생들의 구조가 되지 않고 있다는 말이 바뀐 기사가 올라와 있더군요. 모두 당황해서 며칠후의 면접, 당장의 막차 시간을 잊고 배에 대한 정보를 찾기 바빴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 실내에 앉아서 준비를 할 시간에, 어린 학생들이 차가운 바닷물에 잠겨갔다는 그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2년이 넘게 지났지만 저는 그날을 뚜렷하게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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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던 그 날, 저에겐 전역 후 사회에서 맞이하는 첫 날이었습니다. 자유를 만끽하며 늦잠을 자고 일어나 티비를 켜니 저의 개인적 삶과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나 있었습니다.제가 2년 간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했다는 자부심은 사라지고 국가에 대한 배신감과 불신만이 마음 속에 자리잡았습니다. 제가 뉴리는 모든 삶이 희생자들에 대한 죄처럼 느껴졌습니다. 지금, 그 죄의식을 기억으로 남겨 영원히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는, 저는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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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수학여행 간 날이었다. 오전에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래서 엄마한테 전화드렸는데 동생은 비행기를 탔다고 했다. 마침 전원 구출이라는 속보가 떠서 안심하고 여느 때와 같은 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중 끔찍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동생을 걱정하고 내 일이 아니라 안심했던 내 자신이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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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기억력이 좋지않지만 그날은 똑똑히 기억합니다! 달력을 보아야 어제가 무슨 요일인지 오늘이 몇일이였는지 아는 제가 그날은 수요일이였단사실을 잊지못합니다 그날은 어느때와같이 교양 수업을 들으면서 저는 과제를 하고있었습니다 다른 학과 학생들이 배가 기울어졌대 고등학생들이 타고있대 라는 소리를 듣고 바로 핸드폰으로 찾아봤던 기억이 납니다 전원구조라는 기사를 봤을땐 정말 기뻤습니다 하지만... 진실이 아니얐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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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는 길에 들여다 본 스마트폰에서 수십 개의 속보가 떴습니다. 배가 침몰되었다는 겁니다. 이윽고 전원구조되었다는 소식에 친구와 별일이 다 있다며 점심을 먹었죠.평소처럼 수업을 듣고 하루가 마무리되어가는 4시 5시. 아침에 들은 기사가 오보라는 소식과 함께 급증하는 사망자수 실종자수를 바라보며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못하며 밤잠을 설쳤던 것이 기억납니다.그날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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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생활 중 가장 중요한 졸업작품 프로젝트로 작업에 매진해 전날 밤을 새우고 정오가 다 되어서야 자취방에서 눈을 떴습니다. 오후 두시에 있는 전공 수업에 가야하기 때문에 씻으려다가 포털에 들어가본 저는 메인을 가득 메운 선박 사고 기사들에 침대 위에 앉은 채로 꼬박 한시간을 기사를 찾아 읽다가 결국 수업에 결석을하고 온 하루를 번번히 뒤바뀌는 보도에 혼란스러워하며 보냈습니다. 내가 나가지 않으면 누구와도 만날 일 없는 자취방 한구석에서 저도 마치 침몰하는 것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물이 차오르고 있을 배와는 전혀 다른 편안한 자취방이었지만 불도 켜지 않고 밥도 먹지 않고 구석에 앉아 믿기지 않는 하루를 그렇게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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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8시 20분경 학교에 등교하고 평소대로 티비를 켰습니다.그리고 집안 일을 하던중 우연히 화면에 여객선 침몰 속보가 뜨는 걸 보고 청소를 멈추고 티비를 봤습니다.곧 전원 구조했다는 앵커의 말을 듣고 마음을 쓸어내며 집안일을 계속했죠.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티비는 끄지 않고 있었는데 시시각각으로 들려오는 소리가 달라졌습니다.처음엔 전원구조. ...구조인원 숫자는 점점 작아지고 점점 많은 아이들이 아직 구조가 되지 못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발만 동동 구르며 주변 지인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뉴스 좀 보라고....점심시간이 훌쩍 지난지도 모르고 티비보고 엉엉 울다가 기도 했습니다."하느님 제발....아이들을 구해주세요...제발 .."그날을 물한모금 넘기는 것도 밥한수저 뜨는것도 할수가 없었습니다.저 차가운 바다에 아이들이 갖혀서 엄마아빠를 애타게 부르며 살려달라 버둥거렸을 생각에...왜 이렇게 구조자 집게도 안맞고 뉴스는 찌라시만도 못한가.대체 국민안전처에선 무엇을 하고 있는가.너무 힘들었습니다.몇일전 광화문 집회 참석해서 세월호 유족들이 세워놓은 분양소에 갔을때...차마 고개를 들어 아이들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어여쁘고 어여쁜 우리 아이들에게 어른으로서, 이나라 국민으로서 너무나 미안하고 미안했습니다.우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어른이라 너무 미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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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9시까지 출근을 해서 일을 하다가 11시 30분에 이른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으로 향했었죠tv에서는 세월호 침몰기사와 함께 전원구조라는 자막을 내보내고 있었습니다 그걸보고 "아 다행이다" 많이 놀랐겠지만 전원구조라니 맘을 놓고 있었습니다식사를 마치고 다시 일터로 돌아와 일을하는데 다음텀 식사자들 얘기가 구조자는 일부에 불과했고 아직 배안에 남았다고......이 얘기를 듣는 순간 차가운 물에 있을 아이들이 너무 가여웠고 마음이 아팠습니다그날의 TV 오보는 뇌리에 남아 아직도 안타깝습니다그 자막이 사실이었더라면.......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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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일본에서 마침 비즈니스 미팅 건으로 회사에 찾아온 일본인 분이 있었어요. 저는 회사 회의실에서 간단히 제품에 대한 계획안 논의를 마치고 그분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 내용 중 그분이 글쎄 "오늘 아침 뉴스 보니까 한국에서 선박 하나가 사고 났다는데요"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마침 그 소식을 딱 휴대폰으로 확인했는데, 문제는 제가 오보를 봤다는 것이었죠. "그거 다 구조되었다는데요? 다행이네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어요. 그리고 그날 오후엔 뉴스에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거짓말을 한 것과 같은 미안함이 제게 몰려왔어요. 오보가 현실이길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너무나 안타까웠어요. 이렇게 저는 2014년 4월 16일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어떡해..."를 속으로 외치던 그 날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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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등교시키고 티비를 보는데 세월호 뉴스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전원 구조라는 뉴스를 접하고 가슴을 쓸어 내렸네요. 날이 맑은 오전에 난 사고라서 다행이다리는 생각을 하고 목욕탕에 갔습니다. 사우나를 하려고 사우나실에 들어갔는데 사우나안 티비에서 오보였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 놀란 기억이 납니다. 그날의 기억이 시시각각 너무 선명한데 그날을 전혀 기억못하는 사람이 있다니 너무 신기하네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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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뉴스속보가 올라왔다고등학생들 수학여행 가던 여객선 침몰전원 구조배에 약간 구멍이 났는데안전한 배로 옮겨갔구나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대수롭지 않은 일이어야 했다그런데 그게 그렇지가 않고자꾸만 구조자 숫자가 바뀐다핸드폰을 손에서 뗄 수가 없었다세월호 뉴스 검색과 새로고침을 반복하며오후쯤 대통령이 헛소릴 지껄이고저 사람은 원래 헛소리 전문이지그랬는데그냥 그렇게 넘기면 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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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충북 옥천에서 조그만 제조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날, 그 시간 저는 청주시 성안길에 있는 "충북중소기업우수제품 전시판매장" 에서 월례행사인, 입점업체 할인행사 중이었지요!.판매장 출입구 밖에 판매대를 설치해 놓고 홍보, 판매중, 옆 매대의 사장님 께서 그런 엄청난 소식을 들려주었어요.온 하루가 다 저물어가도록 뉴스에 귀기울이며 빨리 학생들을 모두 구조해 달라고 조바심치며, 기도했었던 기억이 또렷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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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파서 지울 수만 있다면 아니 그전에 돌릴 수만 있다면 그 날 4월 16일의 베트남 사무실에서 설마 몇십명 아니 몇명만 어찌 잘못되더라도 다 구조되겠지 하고 믿고 기도하고 또 바랬다그렇게 큰 배가 벌건 대낮에 해경과 심지어 언론사 카메라가 생중계하는 그곳에서 그렇게 많은 어린 생명들이 꿈도 못펴보고 그리 갈거라고는 결코 생각지 못했다 지금도 그때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내 스스로가 부작위의 살인동조자같아 한없이 괴롭고 힘들고 아이들 볼 면목이 없다천사같은 아이들 생각만하면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른다 무릎꿇고 그 아이들에게 비는 마지막 전에 모든 진실을 숨김없이 명명백백 밝히는 것만이 살아있는 우리모두의 숙제이다그래야 천사같은 아이들에게 편히 눈감고 쉬라는 마지막 인사를 보낼 수 있고 나도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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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는 트레이너로 헬스장에서 일하고 있었던 때입니다. 런닝머신에 있는 티비들이 일제히 침몰해가는 파란 배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한가한 시간대였어서 걱정스럽게 바라보았ㅈ만 전원 구조라는 말에 다행이다 하며 뒤돌아서 운동을 가르키고 회원들과 이야기를 하였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되돌아봤을때는 오보였다는 기사가 나왔었죠. 그대로 휴게실에 들어가 기도를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 이렇게나 제 자신이 저의 기도가 무기력하게 느껴졌던 적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하루가 끝날때까지 실종인원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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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무단 결근으로 매장오픈하고 주방이모님과 잠깐 티타임을 갖고있는데 핸드폰으로 사고소식을 접했죠 처음 사상자없이 전부 구조되었다는 소식에 기뻐하다 오보라는 소식에 안타까움에 답답함에 한숨만 쉬고일하던 날 기억합니다 잊지 못합니다. 그날을 어찌 잊을까요 매장에서 한숨만쉬고 아무것도 할수없기에 미안하고 미안한 날이 였는데요......기억합니다 그날의 7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