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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한 소식에 힘겹게 점심밥을 삼키던 그날, 저는 대한민국을 지키는 수많은 군인 중 한명이었습니다. "전원 구조"라는 기쁜 소식에 미소 지으며 식당 의자를 박찬 한명의 사람이기도 합니다. 헌데, 업무를 마치고 돌아와보니, 그 소식은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티비에서 울려퍼지는 유족들의 탄식과 절규만이 그 공허함을 천천히 삼켜가고 있었습니다. 그날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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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지금 저의 예쁜 딸이 제 뱃속에 있고, 저는 서울스퀘어에서 근무하고 있었어요.점심을 먹으러 가면서 수학여행 가는 아이들이 탄배가 전복됐지만 무사히 전원 구출되었다는 소식에 안도하면서 식사는 했는데.. 이게 웬걸 아이들은 너무 차가운 물속에서 하나 둘 씩 주검이 되고 있었네요...지금 세살 딸아이를 생각하며 아직 피지 못한 아이들이 너무 마음아프고, 그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아주 조금이나마 헤아리고 싶네요. 2년 반이 지난 지금도 그 아픈, 안타까운 맘이 가시기는 커녕 점점 커지는 것 같습니다.우리 아이들 부디 그 세상에서는 이런 세상을 다시 겪지 않길....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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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오전, 저는 친구들과 중국집에서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당시 가게에서 틀어준 티비 안에서는 승객 300여명을 싣고 있는 배가 가라앉고 있지만 전원 구조를 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언론은 잘못된 보도를 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배 안에 남은 사람들의 수는 늘어만 갔습니다. 그날 저와 친구들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만 있었습니다. 대참사 앞에서 저와 친구들은 무기력했습니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국가 시스템과 7시간 동안 사라진 대통령, 무엇을 해야할지 혼란스러웠습니다. 그 날 이후 친구들과 국화꽃을 들고 거리로 나갔습니다. 100일, 1년, 2년이 흘렀습니다. 날짜는 좋은 일에만 세는 줄 알았다던 유가족의 말이 생각납니다. 결국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진실은 2016년 4월 16일 그날 아침에 머무른 채 남았습니다. 여전히 저와 친구들은 대통령이 사라졌던 그 시간, 어디서 무얼하고 있었는지 조차 모릅니다. 여전히 광화문에서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광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와 친구들은 그 날의 세월호 참사를 기억합니다. 여전히 진실을 밝히기 위한 싸움에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기억하는 것이 투쟁이라고 한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기억하고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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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병간호하기 위해 병실에서 환자들과 티비 보던 그때 그져 무사히 모두 구조 될거란 생각으로 정말 구조될거란 믿음으로 있던 그순간 배가 바닷속으로 들어 가더군요ㅜ ㅜ꿈일 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오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아닐거라 생각했습니다 내새끼같은 아이들이 바닷속에 있을거란 생각 못했습니다기억하면 할수록 그저 눈물만 납니다 정말 기가 막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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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을 해서 얼마후 수학여행을 간 아이들의 배가 사고들 당했는데 전원구조라는 말을 듣고 다행이다. 며 별생각없이 업무에 열중했었다. 점심시간 식당에서 틀어놓은 뉴스를 보고 이게 뭐지 싶었다. 그때 메뉴도 기억난다. 매운칼국수... 뉴스를 보느라 다 먹지못하고 남기고 나왔었다.그리고 회사로 돌아와 뉴스에서 관심을 돌릴수 없었다. 또 믿었다. 구조하고 있다는 소식을..몇일동안 생중계되고 있는 안까타운 소식에 계속 편히 잠을 잘수 없었고. 무서웠다.나는 지금도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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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 우리회사사람과 같이 회의실에서 실적회의를 하고 있었다.점심시간 TV의 전원을 켠 순간 세월호가 가라앉는 것을 보고 말았다.가슴으로 빌었다. 모두 무사하길.하지만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뭐하고 있었는지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나는 기억한다.더러운 당신의 권력욕을...나는 기억한다.더러운 당신 주변의 개들을...나는 나의 자식에게 전해 줄꺼다.저런 인간들이 나라를 어지럽게하였지만,96%의 국민들이 바로 잡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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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광주에서 4월 15일밤 늦게 일을 마치고 잠시 숙소에서 눈을 부치고, 4/16일 아침 일찍 자동차를 몰고 서울로 올라오다 휴계소에서 아침식사를 하면서 세월호가 침몰하는 것을 보고,서, 내가 자동차를 운전하고 서을에 도착하면 모든 승객들이 모두 구출 되겠지 하며 올라 왔다, 그러나 구출이 안 됐다는 저녁 뉴스를 보고, "아니 이럴수가 있나 , 그 소중한 생명들이, 딱 우리 딸아이와 같은 나이의 아이들이~~~~ 차마 말을 잊지 못하고, 가슴이 먹먹한 기억이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의정확한 이유를 규명하고, 박근혜는 직무유기&& 국민 모두에게 아프게한 죄를 물어 내란죄 적용하여, 당장 체포, 구속 수사하고, 전재산 몰수하고, 무기징역을 구형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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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출근 후 일을 하다 폰으로 수학여행 학생들을 탄 배가 사고가 났다는 속보를 보았다 놀랐지만 전원구출이라는 소식에 다행이다 생각하여 일을 하고 있었다 너희들이 죽음의 공포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던 그 시간에.....정부의 거짓 발표들 ... 열심히 구조하고 있다고 믿었다 바보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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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를게 없는 아침이었고 뉴스에 나온 자막에 참.. 어이가 없었으나 곧 모두 구조될 것이라 믿었던 기억이 나네요. 다행이도 전원구조라는 소식도 봤고 안심했었는데.. 다시 오보라는 말에 기운이 빠졌습니다. ㅠ 뽐뿌라는 사이트에 단원고 2학년 현탁군이 남긴 세월호 출발 사진을 보며 제발 좋은 소식으로 현탁군의 글이 올라오길 바랬던 기억이 나네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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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삭 사진을 찍기 위해 스튜디오로 가는 도중에 뉴스를 들었습니다.어머머.. 이런일도 일어나는구나.. 너무도 놀라 운전하는 남편에게 뉴스를 거진 생중계하다 시피 했더랬죠.그러다 침몰한 배에서 전원 다 구조됬다는 뉴스가 올라오고..어머 정말 다행이다 싶었는데.몇분이 지나지 않아 오보였다는 뉴스가 올라왔답니다.어찌나 가슴이 철렁 내려 앉던지....더군다나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는 고등학생들이 탔다는 소식에... 전부 구해낼수 있을꺼라고 확신했답니다.그러나..점점 시간이 지나도...그 어떤 뉴스에서도....들리지 않았습니다.무사히 그 배에 탔던 모든 사람들이..배 밖으로 무사히 구조됬다는 소식은그 어디에서도 .. 들리지 않더군요.. 뱃속 아이의 태동을 느끼며 만삭촬영을 하던 중간중간에도 제 손에서는 핸드폰을놓지 못했답니다.그리고, 그날 이후...이 나라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걸......이 나라 국민이.. 외국이 아닌 이 나라에서어려움이 처한다 해도 나라는 국민을 지켜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지금 내 아이에게... 대한민국을 어떤 나라로 가르쳐야 할지 하루하루 뉴스를 보며지금 이순간도 막막하기만 합니다.제발...우리 모두가 기억하려 애쓰는 그날의 7시간을....... 청와대 그 분도 기억하길 바랍니다. 만약 2014년 4월 16일 그 날...그 세월호에최순실의 딸이 탔더라면.... 말도 안되는 얘기지만.. 그랬다면....지금 이 순간 그 날의 아픈 7시간을 기억하며 글을 쓰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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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저는 밤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늘 꿈꿔오던 어학연수를 가겠다며 오래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외국에 있었거든요.아마 그 일곱 시간 동안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푹 잤겠지요.나중에 배가 가라앉았다는 소식을 듣고, 배 안에 있는 사람 대다수가 아직 고등학교도 채 졸업하지 않은 어린 친구들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저의 시간들이 너무도 미안했습니다.그들보다 더 많이 살면서 보고 듣고 경험했던 모든 시간들이, 마치 나만 누리는 특권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많이 아프고, 미안했습니다.여전히, 미안하고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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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나네요전원구조! 라는 선명한 속보도 기억나구요...마지막전화를 못받았다는 어느부모의 인터뷰ㅠ배는 기우는데...창문으로 물이차오르는데아이가 밖을보고있는데해경은 그 주위를 맴돌뿐 아무것도 안하더라구요정말 아무것도 안하더라구요왜그렇게 할수 있는게 없었는지반대편에 줄이라도 매서 더 기울지않게 붙들어주면 안되는지...헬기 수십대 동원에서 줄에걸어 배좀 안넘어가게하면 안되는지...기우는배를 계속 보는것 외엔 할게없었던정말 그누구도 아무것도 안하고수많은 어린목숨을 생중계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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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가 태어난 날 304명이 수장 되었습니다.생때같은 자식 태어난 날 목숨보다 귀한 아이들이 사라졌는데 어찌 잊습니까.죽어도 잊지 못하고 잊어서도 안됩니다.책임자는 반드시 처벌받아죗값을 치루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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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보고 서해 훼리호만큼은 아니구나 안심했다가 바다속에 처박힌 채 배 모서리만 보여주던 뉴스 영상이 생생합니다. 왜 아무도 구할수 없었는지 초기 구조인원에서 도무지 늘지 않는 숫자를 보며 의아했던 기억이 있네요... 나는 기억하는데 왜 그들은 기억을 못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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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아직 중학교 막 입학 한 때라 정부 일에서 대해 전혀 모르고 관심 없었는데 그 날 그 세월호가 침몰했던 날만은 기억한 합니다 제각 국가 일 때문에 정말 최고로 빡 쳤었던 거를 평생 비난을 받고 살아야 될 사람들이 살아있다는 게 빡 치고 그 사람들 때문에 여러 사람이 죽었다는 게 너무 화도 납니다 박근혜 대통령 님은 대텅령에 설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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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어느때나 다를 것 없는 친구들의 웃음소리로 끊이지 않던 날이였다. 어디서 한 친구가 큰 목소리로 기사를 읽어 내려간다. 순간 구조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 눈엔 눈물이 고였고 모두가 슬픈 표정을 하고 한탄하고 있었다. 하지만 몇시간이 지나도 변화는 없었고 당신은 변함없이 무표정이었다. 한 사람 두 사람 무너져 내리는데 당신은 사라진 그 몇시간 동안 무슨 표정으로 있었나요 그때 당신은 어디서 무얼하고 계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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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 날의 사고소식을 처음 접했던건 전원구조 라는 타이틀의 뉴스였다. 전원구조라는 말만 보고서, 다행이란 생각에 당분간 뉴스는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잠시 후 접하게 된건 내가 알고, 내가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그 후로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뉴스에서 눈을 땔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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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16일 오전 10시경 오랜만에 친정에가서 왔다갔다 할일없이 돌아다니다. TV뉴스속보로 배안에 갇혀있는 아이들이 전원구조됐다는 보도를 처음 접했습니다. 다행이다. 참 다행이야 하고도 채널을 돌리지 않고 고정시킨 뒤 다른일을 하다 전원구조됐다는 보도가 오보라는걸 알고 그때부터 발만동동 뉴스만 계속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뉴스에는 1도 관심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기억도 잘 안하는편이지만 2013년 4월16일 제가 어디에 있었는지. 뭘 하고 있었는지 그날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절대 잊을수 없는 날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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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는 기억이 나지않지만 학교에서 학교마치고 소식을전해들은것같습니다 뉴스의 오보에 한참을 걱정하고 구조를 못하는 구조대원들을보며 그 안에서 떨고잇엇을 언니 오빠들의 표정이나 얼굴이 생각나는 것같습니다 이런일에도 주사나맞고잇엇던 우리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하야를 해야합니다. 416 세월호사건 절때 잊지 않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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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기억한다. 계속 되는 해외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들어와새로운 시작을 하기 위해 쉬고 있을때 였다.늦게 일어난 아침 9시쯤 씻지도 않고 거실 의자에 앉아 무의식적으로 티비를 켰고05번 부터 채널 돌리기를 하다. 티비에 나오는 뉴스 속보를 멍하니 보고 있으면서 친구들과의 단톡창에 세월호 어떻하니. 라고 글을 남겼다. 그렇게 아침밥도 안먹고 혼자 티비는 보고 있기를....2시간후 아침운동을 마치고 언니가 들어와서 같이 티비를 보며 하루종일 맘 졸이며 있었던 하루들..난 4월 16일도 기억하고, 4월 17일, 18일, 19일 모두 기억한다. 세월호가 있던 주말 유난히 시내에 사람들이 없었던 저녁도 기억한다.7시간이 전부 기억이 안날수는 있다고 해도.최소한의 기억이라도 해서 우리 친구들이 왜 그렇게 될수 밖에 없었는지 미안해 해야 하는게 아닌가... 아직까지 당신을 믿는 100만 보다 4800만이 원하고 있으니 들려줘야 하는게 아닌가요? 무능한것도 참을 수 있고 다 참을 수 있는데, 그 무능함의 희생양이 우리 아이들이고, 누군가의 엄마, 아빠, 오빠, 언니 이면 안되잖아요. 제발 마지막 마지막으로 당신한테 요구 합니다. 사실을 말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