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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일부터 출발 예정이었던 캐나다 여행준비를 설레는 마음으로 하고 있을때 뉴스를 보면서 여행의 즐거운 기대감을 모조리 반납했던 기억이 있네요.당시 배에타고 있던 그 아이들도 저와 같은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기대했겠죠.그 설레던 마음을 직접적으로 공감하게 되어티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굴렀던기억뿐입니다.어쨌든 저도 계획된 여행을 가게 되었지만, 중간에 환승을 위한 일본에서도 세월호 뉴스가 나오고 있었고, 현지에서 만난 캐나다인도 한국에서 왔다는 말을 했더니 세월호사고를 언급하며, 너무 안타깝다는 말을 듣기도 했네요.타국에서도 이 날의 기억을 하고 있는데, 왜 우리나라의 수장이라는 분은 그 때 무엇을 하셨는지 밝히지 못하는지 참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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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 날도 프리로 집에서 일하고 있었지.그 날 내가 보낸 디자인 시안이아직도 내 메일함에 있어.왜 기억이 안난다고 해...당신도 일하는 시간이었고, 국정을 봐야 할 시간이었잖아....기록도 있을거아냐....그 날의 기록만 봐도 알거아냐...그런데 왜 잊었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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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시험 기간이라 TV도 안보고 도서실에 박혀 살고 있을 때, 집에 잠시 들려 밥 먹으면서 TV 틀었을 때.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별 일 아니겠지, 생각했던 그 때 왜 저는 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지 모르겟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네요, 우리 모두에게. 진실이 결코 침몰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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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대학교에서의 시험을 마치고 동기들과 함께 세월호 이야기를 했습니다 전원구조됐대 다행이다 진짜 이렇게 말하면서 집에 왔는데 그게 오보일줄은 몰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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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 중이었습니다.뒷 자리에 앉아있던 대리님의 여객선이 침몰 하고 있다는 말에 황급히 포털을 켜보고 구조 중이라는 말에 안심했습니다.그 날 저녁 집에 와서 뉴스를 보며 오열했던 기억이 납니다.매일 매일 뉴스를 보며...남편이 걱정할 정도로 너무 울었고, 가슴이 아팠습니다.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나서 먹먹한데 잊을 수 있다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묻고 싶습니다.정말 기억이 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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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때와 같이 출근하고 담배피며 헨드폰을 손에 든채 세월호 전원구조를 보며 다행이라생각하고열심히 일하다 오후즈음 다시본 헨드폰엔 침몰된 사진과 어린이들이 거기에있다는 ..그래서 멍 하니 있었던 나의 또렷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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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어요.우연히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제주도로 향하던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접했고처음 사고소식을 접했을 때는 이렇게 큰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네요."요즘이 어떤 시댄데..당연 다 구하겠지.."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 답답하고 참담하더군요.그날은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아 실시간 뉴스보면서 진척상황 계속 보고있었네요...7시간의 진실을 반드시 규명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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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 중3이고, 그때는 갓 중학생이 되었던 때입니다. 2014년 4월 16일 아침, 그날은 학교에서 드론날리기 대회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새로 산 드론을 학교에 가져가 날려볼 생각을 하며 뿌듯해했죠. 그런데 아침을 먹던 중 라디오에서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이 침몰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헐? 어떡하지? 친구와 학교에 감면서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며 갔습니다. 그래도 해경이 금방 구조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학교에 갔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은 틀렸습니다. 400여명의 탑승객들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점심시간에 사회 선생님의 컴퓨터를 보고 알았습니다. 이토록 생생히 기억이나는데,.그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을까요?? 여러분은 어디서, 무얼 하고 계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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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제 동생도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습니다. 뉴스를 보면서 제 동생과 같은 나이의 학생들이 배안에 구조되지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땐 심장이 오그라들다못해 철컹 내려앉았습니다. 설마.. 구출해내겠지.. 다 살아서 나오겠지.. 하지만, 배는 그대로 침몰했습니다. 대체 대통령은 무얼하고있었는지 그 7시간에 대해 꼭 밝혀지길 바랍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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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근무중이었는데 다른 동료를 통해 학생들이 탄 배가 기울어졌단 얘기를 들었습니다 당시엔 대수롭지 않게 무슨 이놈의 나라는 별 게 다 부실하다 하며 큰 배니까 승객들 구하느라 고생하겠네 하고 할 일 하러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점점 분위기가 심상치 않고 사람들이 티비 앞으로 모여들길래 인터넷 검색해봤더니 애들이 못 나오고 있다 했죠 정말 황당했습니다 배 밖으로 나오면 되는데 왜 안 나왔을까? 그 후로 별 희안한 사실들이 밝혀지더군요. 나오지 말고 그대로 있으 했다는 방송이 있었고 주요 승무원들은 대부분 구조가 되었고 해경이 구조를 안 했고 민간인 다이버들이 제지를 당했고 홍가혜라는 사람이 현장을 중계하다가 허언증 환자로 매장되었으며 유병언 관련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실시간으로 배가 기울어져가는 걸 봤습니다 까먹기가 쉽지 않은 일들이죠 생전 이런 일은 처음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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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광화문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다 우연히 아직 세월호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분들의 사진을 처음으로 보게 됐습니다. 광화문에 그렇게 많이 갔었는데.. 이제서야 찾아본 제가 너무 부끄러웠습니다.잊고 살았던 저를 반성하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됐습니다.제 인생에서 그렇게까지 슬픈 일은 드물었기에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저는 그 때 집에서 혼자 논문을 쓰고 있었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아침에 <배가 침몰되었다 그런데 승객들은 모두 구조되었다>는 속보를 보고 "아 다행이네.. 그런데 느낌이 뭔가 쌔하다"는 생각이 들어 티브이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뭔가 주먹구구식으로 전달되는 것 같았거든요.결국 곧 오보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 순간을 잊을 수 있습니까.전혀 모르는 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국가 시스템에 너무 화가 나서 억장이 무너져내리는 기분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뉴스를 찾아보며 형편이 어려운 부모님과 아이들의 안타까운 사정을 듣고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렸습니다.하지만 그것도 두어달. 어느 순간부터 사태 수습은커녕 말도 안 되는 꼼수를 부리고 있는 행정부와 정치권, 검찰을 보며 기가 차고 답답해서 뉴스를 보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그 일을 잊고 살았습니다.하지만 이번에 박근혜 게이트가 터지며 또 다시 언급되는 세월호를 보고 가슴에 뜨거운 것이 불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그동안 부패한 국가 시스템에 익숙해져 그 무기력감에 우리 국민들은 환멸감을 느끼면서도 아무런 손을 쓰지 않았습니다.국민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애잔함과 분노를 느끼지 못하는 상층부.저 역시 그런 기성 세대가 될까봐 두렵습니다.그래서 이제부터는 끊임없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조금씩 나라를 바꿔보려고 합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말하지 못하고틀린 것을 틀리다고 하지 못하는 세상억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세상이런 세상을 나의 아이에게 물려줄 수는 없습니다.우리 모두 옳은 방향이 어디인지 잊지 않고 조금씩 정진한다면, 그래도 지금보다는 살만한 세상이 될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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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조리로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텔레비전만 보고 있을 때 보게 된 믿을 수 없는 뉴스. 설마 저거 실제 상황이야? 설마, 모두 구조되고 해프닝으로 끝나겠지? 그런데.....엄마가 된 지 5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이제 막 태어난 , 세상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보물, 우리 아기..저 아이들도 모두 그런 아기들인데,저 아까운 아기들을 어떡하지.. 엄마들 은 어떡하지... 우리 아기를 보며 행복해 하다가도 , 상상하기도 싫은 걸 상상해버리고, 나는 절대 울애기 혼자 수학여행 안보낸다고 울먹이던 기억.기억하겠습니다. 우리 아기가 살아갈 세상은 반드시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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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수업을 했다. 아침에 출근하며 뉴스로 접했지만, 그냥 사고이고 당연히 모두 구조될 줄로 믿었다. 그날도 교실에서 아이들과 아웅다웅하며 1교시, 2교시......6교시까지 수업을 했다. 점심 시간에 잠깐 인터넷 뉴스를 접하면서 "설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그날 저녁부터 수업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나", "이렇게 그냥 있어도 되나"라는 생각과 의도적 떼죽임에 대한 분노로 수업은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 매번의 울컥거림으로 교실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날 7시간....난 아무일 없을 거라 믿고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그날 7시간 이후는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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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기억 속에서가슴 속에서시간 속에서지워지고 있다지워지고 있으나이 아픔은이 울분은이 슬픔은더욱 커져가고 있으니이를 어찌하여야 하나이를 어찌하여야 하나기억은 지원지나슬픔은 커져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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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 근무하는 프리랜서라 밖에 나갈 일이 거의 없는 제가 모처럼 서울로 외출했던 날이었습니다.그날 저는 강남역 인근의 뒷골목에 있는 커피숍에서 맞선을 보는 중이었습니다. 90년대 분위기가 풍기는 작고 오래된 가게였고, 상대 남자는 일에 지쳤는지, 제가 별로였는지 심드렁한 분위기였습니다. 저 또한 앉아 있는 시간이 아깝구나 생각했고요.그날 그와 나누었던 시시껄렁한 이야기는 거의 기억에 없습니다. 하지만 집을 나서기 전 우연히 보았던 세월호 뉴스에 관한 대화는 뚜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사고 얘기 들으셨죠?""네, 그런데 다 구했대요.""정말 다행이에요.""그러게요."서로 밋밋한 대화를 나누던 사이였지만 세월호 승객의 조 이야기에 잠깐 마주보고 웃었습니다. 그게 끝이었죠.그렇게 차 한 잔 마시고 가게를 나오니 빗발이 굵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다행히 우산을 들고 왔고 그 남자는 아니라서 편의점까지 같이 우산을 쓰고 갔습니다. 그리고 헤어졌습니다. 지금은 그 남자 이름은커녕 얼굴도 기억나질 않습니다. 하지만 그날 그와 나눴던 세월호에 관한 짧은 대화와 집에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접했던 구조 소식 때문에 받았던 충격은 아직도 생합니다. 시외 버스를 타고 구리 대교가 보이는 도로를 달리며 접했던 기사에는 200명 넘는 승객이, 단원고의 학생들이 아직도 뱃속에, 바닷속에 있다고 하더군요. 믿기지 않아서 멍하니 강물만 바라봤습니다.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한 달 내내 온종일 뉴스를 틀어 놓고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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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속보로 사고소식을 접하고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나했는데 이어진 보도에 전원 구조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사무실 동료들과 기뻐했었다. 그러나 다시 전해진 오보 소식에 절망했고... 그렇지만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 나름 최신 기술력을 자랑하는 선진 국가이고 해양 기술력을 보유한 국가이니 배에 갇힌 사람들을 구하는 것은 문제 없을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나의 7시간은 국가를 믿으며 배에 갇힌 사람들이 모두 구조 될 것이라는 굳은 희망을 가지며 보낸 시간이었다. "설마"라는 단어조차도 떠올리지 않으며 희망만을 생각했던 그 7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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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전 저는 밥집에서 청국장을 먹고 있었습니다. 큰 배가 좌초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있었어요. 별 일 아니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대한민국에서...설마 못 구하겠느냐 식당 주인에게도 그렇게 말 했어요. 다음 날이 수업이라 학교로 바로 들어갔어요. 근데 그날 뉴스에서 구조했다는 소식을 결국 못 들었어요. 대학원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아이들을 걱정하면서 서로 눈물을 흘렸어요..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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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방송사에서 세월호 전원구조 오보를 냈다. 나도 전부 구조된 줄 알고 있었다.하지만 아니었다. 초조하고 땀의 등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결국 200여명이 수장된 채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왜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까, 왜 어떤 지시도 내리지 않을까 분노와 공포에 손톱을 물어 뜯으며 구조 현장 영상을 지켜봤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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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처음 뉴스를 보고 전원 구조에 참 다행이라고 느꼈다가 다시 전해오는 뉴스에 오열하며 느꼈던 제 슬픔은 2년이 지났지만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그 날 제 플래너를 찾아봤습니다.오전 11시 종각 업무 회의, 오후 1시 여의도 회의..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평범한 저도 그 날의 기억과 기록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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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어린이집 보내고어린이집 친구 엄마들과 만나서점심을 먹으러 갔어요그때 식당에서 뉴스를 봤네요그 기억은 언제나 생생합니다절대 잊혀지지가 않아요아이 엄마중 한명 이름이 지영이거든요그날의 의인 지영씨와 같은 이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