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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틀후 시드니 가족여행을 갈 마음에 들떠있을때 아침에 세월호 뉴스를 보고 믿을수가 없었고 영어회화 수업을 들으러 가서 엄마들과 원어민선생님과 아이들 얘기를 하며 애태웠던 기억이 납니다.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여행을 포기해야하나도 생각했습니다.여행내내 한국소식만 봤던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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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2014년4월16일목요일제주에살던저는어느단체에서에코랜드로소풍을갔죠재밌게놀고있는데소식이들려오고잠시후전원구조라는소식에"당연히그러겠지..그렇게큰배가금방침몰하지는않을테니..."생각하고는오후시간도즐겁게보냈죠에코랜드에는육지에서온고교수학여행학생들이있었고바로그주간에제아들은제주에서인천쪽(강화도)으로수학여행갔습니다 배를타고간것은아니지만..소풍을마치고돌아와보니전원구조는오보였고...저녁시간에배속깊은곳에서올라오는눈물과탄식이결국제에게큰트라우마를만들었습니다그래서지그또세월호뉴스를듣는것이힘듭니다그날저녁에저는이틀뒤토요일에근처바닷가로낚시가기오했던지인들과의약속을취소한다는문자를보냅니다아직300명의아이들이잠겨있는그바다에서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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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남편과 함께 뉴스를 봤어요배가 가라 앉는데 다행히 다 구했다고... 정말 다행이라고 웃으며 남편과 얘기하고 있었어요잠시 후 다시 뉴스가 나왔어요거의 모든 승객이 배 안에 갇혔고 수학여행을 가던학생들, 제주에 새 삶을 기대하며 이사가던 단란한 가족 ...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숨이 막혔어요 배는 기울어져가는데 돕겠다는 어선은 못가게 막고 아무도 오지 않았어요 위에서 돌기만 하던 헬기 하나 그리고 승객들을 나오지 못하게 막고 자기들만 살겠다고 배에 오르던 선장과 선원들을 태우던 배한척. 그게 다였죠 기억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민간의 도움도 막고 그대로 수몰된 배의 모습을...혹시 살아있을지 모를 사람들을 포기한 체 구하고 있다며 cg로 거짓보도하던 방송국들. 저 그 뒤로 방송3사 뉴스 안봅니다 어차피 자기들 입 맛에 꾸며진 뉴스따위그배에 또다른 제가 타고 있었고미래의 제 아이들이 타고 있었습니다.누군가의 부작위로 그 수 많은 생명들이 차가운 물 속에서 죽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도 사과도 없이 그저 감추고 진실을 밝히려던 사람들을 억압했던 그날. 그 수많은 시간들... 잊을수 없죠 지켜주지 못해서... 그 일에 책임을 묻지 못하고 침묵하고 있던 한 사람의 어른으로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부끄럽지 않으세요? 잠은 잘 오시던가요?집에 애들 얼굴은 부끄러워서 어떻게 보세요?하긴 그런 양심이 있었다면 지금 그런 뻔뻔한 얼굴로 잘 먹고 잘 자면 웃고 있을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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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출근을 했을때 속보로 뜬 뉴스에 설마...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탑승객 전원이 모두 무사하기를 빌었다. 지금도 그 날 얘기만 나오면 눈물이 나도 모르게 흐른다. 우리는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하루 빨리 진실이 드러나기를... 그리고 지금 거짓을 말하는 그들은 처벌받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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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네살이 될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습니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선박사고가 있었으나 구조되었다는 속보에 그저 그렇게 심드렁하게 넘겼습니다 별일도 아닌데 속보까지 내고 그러나 싶었죠... 그런데얼마 후에 이어지는 화면을보고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전국민이 지켜보고 있는데 구하지 않은채 배안의 사람들이 그저 사라져가는모습이 너무 허망했습니다. 첫아이임신땐 후쿠시마 원전이 터지는것을 목격했는데 둘째땐 세월호. . . . 임신할때마다 감당키 어려운 재난이 발생하는건지....아이엄마가 되기위한 마음공부를 스스로할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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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 2014년 4월 16일일하는 가구공방이 이사하느라고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다. 아침에 본격적으로 짐을 옮기기전 같이 일하던 누군가 수학여행 가던 배가 뒤집어졌는데 모두 구했다는 말을 스치 듯이 했다. 그말에 다행이다 하고 그냥 지나쳤다. 정신없이 물건 옮기고 정리했다. 그 난장판에서 보내기로 약속한 제품을 만들어야 된다는 말에 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짜증을 냈고 정신 없이 하루를 쫓기듯이 보내고 나니까 저녁 7시였다. 그때까지 그냥 다 구했다는 말만 알고 있었다. 사장이 선심쓰듯이 이사 했으니까 저녁에 짜장면이라도 먹어야지 하면서 근처 중국집으로 갔다. 기다리면서 TV를 보는데 그제야 다 구했다는 말이 오보인걸 알았다. 화면엔 배가 거의 가라 앉아 있었고 구하는 중이라고 했다. 애들이 300명 넘게 아직 갖혀 있다고 . 수심이 40미터. 그래 40미터면 취미로 하는 다이빙으로도 들어가 봤던 깊이, 거기에 아무리 물살이 빨르고 시야가 없어도 ,가이드 줄 내리고 그런 일에 능숙한 프로들이 가서 일할텐데 그래도 절반은 구할 거라고 사람들한테 얘기 했다. 못구한 절반의 부모,가족들은 어떻하지 하면서. 그때 그런 걱정을 했다. 그래도 절반은 구할 줄 알았는데.,다 못구해도 절반은.......... 겨우 40미터 인데. 그래도 제대로 만 했으면 아니 할일만 했으면 다 구하지 못했더라도 지금 누군가는 살아있을었을텐데 이걸 어떻게 잊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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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아침, 온라인 외신 기자였던 저는 회사에 송고하고 출근할 트위터 기반 기사감을 서둘러 찾고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토픽거리 하나를 집어내 노트북으로 재빨리 번역-종합해서 막 보내려던 참이었습니다. 세월호가 침몰 중이라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수학여행 중인 고교생들이 수백 명 타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하찮은 송고를 보류했습니다. 점심 때 쯤 전원구조됐다는 속보가 나오더군요. 그걸 보고 "휴~ 다행이다" 하면서 비로소 토픽을 실었습니다. 오후에 참사를 확인하고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던 망실감에 울컥울컥 통곡이 나는 걸 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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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건너 미국에서 미국뉴스로 먼저 소식을 접한나는 처음엔 다른나라 얘긴줄 알았다. 여객선이 침몰했는데 아직까지 한명도 구하지 못했다고 하눈 방송을 보고 ..설마...설마....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 ......그럴리가 없다며...한명도 못 구해냈다니..그럴리가 없다고...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혼자서 얼마나우겨댔는지 모른다. 배가 완전히 잠기지도 않았는데 구조를 못할리가 없다며...며칠을 아이들 구조 소식을 기다리며 전화기를 놓치 못했고, 뉴스를 볼때마다...소중한 사람들을 애타게 부르는 가족들을 볼때면 같이 울고....모르는 아이들이지만 다 내 아들같고 내 딸 같아서..별이된 그 고운 아이들.....어둠은 빛을 이길수 없다.거짓은 참을 이길수 없다. 진실을 침몰하지 않는다.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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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보고, 뉴스보고...대체 한 국가의 컨트롤 타워가 어디서부터 문제엿는지조차 알수없엇던 그 시간 이엇습니다감투쓴 놈들는 생색내기 급급하고 그 똘마니들는 의전의전...사무실에서 일을하고 잇어도 눈과귀는 방송과 속보로만 향햇던 그때입니다.우리의 소중한 생명들께 미안하고 또 미안할 뿐 이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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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수학여행단을 싣고 제주로 오던 배가 침몰되었단 뉴스가 나오고 잠시 후 전원 구조되었단 소식에 안심을 하였는데 304명이 죽음에 이르렀다니에어포켓에 기대를 하면서 아침마다 생존자 이름이 뉴스에 나오길 매 순간 기다렸는데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같이 울고 기억해 주는것, 그때는 보름이었습니다. 밤에 운동을하면서 그 달을 보면서 많이 기도했습니다. 제 기도가 하늘에까지 닿지를 않았나봐요. 생존자가 한명도 없었으니지금도 밤에 길을 걸을 때면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2년전을 기억합니다. 거리를 지나는 고등학생을 보면 또 생각이 납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미안하게 살고 있을 뿐입니다. 진상이 규명되고 아직 돌아오지 못한 9명의 시신이라도. 얼마전 기억공간 리본에서 그 곳에서 일하시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진실이 밝혀질까요? 라는 질문에 오랜 시간이 지나면 아마도 밝혀지지 않을까요. 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그때까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을게요. 모두들 힘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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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평범한 제 삶속에서도 뚜럿이 기억나는 하루입니다.4.16대전으로 이사후 첫 수학여행떠난 큰딸을 보내고 학원수업가는 버스에서 첫 사고 소식을 들었죠.. 그리고 학원 도착 후에 인터넷으로 아이들전원 구조소식을 들어 안심하고 수업에 들어 갔는데. . . 수업이 끝나고 나온후엔 아이들이 아직 바다에 있다는 거에요..물에선 1부만 숨을 못 쉬어도 . ... . .하늘이 무너지듯 가슴이 덜컥하고 수학여행간 아이안부가 궁금했어요..그 아이들 걱정에 눈물이 솓아지면서도 우리딸 생각했던것도 미안해요.. .그래서 평생기억하며 속죄할거에요.이런 세상 만든 어른의 한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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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같이 똑같은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그날은 기억이 또렷히 납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모든 국민들은 그날 무엇을 하면서 TV나 인터넷으로 소식을 접했고 안타깝고 슬픈마음을 가졌던 기억이 있는데,왜 기억을 못할까요?저도 그날 회사에서 업무를 하던 중간중간에 지점창구에 있는 대형티비로 처음 소식을 보았습니다.손님을 상담하면서도 자꾸 눈은 티비를 향하더군요. 대기하는 손님들도 티비에서 눈을 떼지 못했었고,안심을 하다가 오보로 또 다시 마음졸이고....매일 똑같은 공간에서 매일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직장인도 그날의 기억이 또렷히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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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어요. 네이트온 아래에 지나가는 뉴스 제목에서 사고 소식을 알게 되었고, 모두 구했다는 소식도 알게 되었죠. 그래서 안도감을 느끼며 일을 했답니다.그러다 오보임을 알게 되고 점점 초조했죠.평소처럼을 일을 한 날이라 엄청나게 크게 다른 기억은 없지만, 그래도 사건 순간의 기억은 뚜렷하네요.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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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전 너무나도 놀라 하루종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승객들의 구조 소식에 안도하다가 뒤이어 전해진 오보소식에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을 실감했습니다. 세월호 그 배! 사고나기 2주전 그 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큰 아들...머리속이 아득하고...가슴이 먹먹하고...아이들 생각에 절망했던 길고 긴 하루였습니다.전 그날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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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사무실에서 메신저로 올라오는 뉴스를 처음봤을때만해도 이렇게 될줄은 몰랐습니다. 뉴스에서는 모든 구조방법이 동원되고있다고했습니다.예상보다 구조시간이 길어지고있을때도 뉴스에서 에어포캣..등등을 거론하면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보도할때,저도 끝까지 희망이 있다고 믿었습니다.하지막 결국 아무도 구하지 못했습니다.끝까지 희망을 놓치않고있었기때문에 충격이 더컸고,굉장히 절망적인 기분이었습니다.이런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가 너무 무능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하지만 그뿐.또 시간이 흐르면서 저는 그냥 이절망적이 사건을 그냥 잊으려고했습니다.내가 할수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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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너무나 마음 아프게 기억합니다. 쌍문역앞 가판에서 장사할때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하루종일 나오는 뉴스들.... 저녁에는 분노와 미안한 마음에 장사를 일찍 접어야 했습니다. 왜이리 먹먹한지... 미안하다.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는 어른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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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이지리아 출장중 숙소에서 알자지라 톱뉴스를 보고 세월호를 알았습니다. 같이 있던 외국인들이 테러났냐고 안부를 물었고, 왜 구조가 늦냐는 질문에 대답을 못했습니다. 그냥 하염없이 침몰하는 세월호를 같이 머물던 일본, 중국인들과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안타깝고 슬프고 부끄러웠습니다. 나이지리아에서 상상도 못할 일이라는 말에 대꾸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날을 정확하게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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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구조라는 속보가 뜨는 걸 보며, 함께 뉴스를 보던 아빠와 "단원고 2학년 쟤네들 저거 나중에 어른 되고 동창회 하면 저 이야기만으로도 이야기가 끊이질 않겠다~" 하고 안도하며 약속 장소로 향하기 위해 집을 나섰던 기억이 나요. 동창회가 되면 매년 나올 추억이자 해프닝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상하게 묘한 기분이 들어 약속 장소로 향하며 내내 뉴스를 확인했고, 전원 구조가 오보였다는 기사들이 하나둘씩 뜨기 시작하며 이게 결코 추억으로 남을 수 없는 사건이 되어버리게 되었죠.그 때까지도 알지 못 했어요. 그래도 누군가는 구조가 될 수 있겠지, 실종자들 모두가 살아서 돌아오진 못 하더라도 물 속에서 외로이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게 되지는 않겠지...1000일 가까이 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처음 이 소식을 접한 그 날처럼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고 달라진 게 없을 거라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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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심지어 같은 경기도 내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이었습니다. 아직도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많은 학생분들이 살아계시고, 구조를 구할 때쯤 티비에서는 뉴스가 흘러 나왔습니다. 저희는 그날 수업을 듣다말고 티비와 뉴스를 연결해 수업 대신 뉴스로 구조되길 바라며 지켜보았습니다. 이후엔 수업을 하며 계속해서 소식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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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17살, 고1이던 저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 학교에서는 핸드폰을 제출했었기 때문에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깜짝 놀랐지만 당연히 모두 구조될 줄 알았고 많은 사람을 구출하지 못했다는 뉴스를 보고서는 믿기지 않았습니다. 왜 구출하지 못했는지 전혀 납득이 가지 않았고 지금도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