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뉴스를 수업시간 중 선생님께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때가 어느땐데, 모두 구조할 수 있겠지 하며 불안해지려는 마음을 추스렸고, 이후 정말 전원 구조되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하교 후 TV를 통해 세월호가 점점 가라앉고 있는 모습과 함께 그 뉴스가 오보였다는 사실을 알고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부모님은 같은 자식을 둔 부모로서 가슴이 미어진다며 말을 잇지 못하셨고, 저 역시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어른들 말을 철썩같이 믿고 가만히 있던 그 친구들. 저는 아직 어른이 아니지만 그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직도 그 날, 기울어져가는 세월호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친구들을 생각하면 자려다가도 눈물이 납니다.
-
머리를 무언가로 강하게 맞은 것처럼 멍하니 있었다. 내가 보고 있는 게 사실인가 싶기도 했다. 모든 것으로부터 도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무렵 세월호는 나를 더 깊은 심연으로 끌어당겼다. 왜 안 들어가지? 왜 지켜만 보고 있어? 왜? 왜? 왜? 가서 도와주고 싶어. 지금이라도 뉴스 속으로 뛰어들어서 구해주고 싶은데. 여기에서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어린 학생들과 선생님들과 승객들과 선원들, 가슴이 미어졌다. 너희가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시간들, 우리들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
사랑하는 사람을 생 바닷속에서 건져 올리지 못하는 건 무슨 기분일까. 그리고 그 곳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기분은 대체 어떤 아픔일까. 무색 투명한, 어쩌면 깨끗함으로까지 대변되는 물이 그렇게 무서워 보이기 시작하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저는 감히 짐작도 할 수가 없습니다. 재난의 7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명백한 대처와 행동 사유가 밝혀져도 책임을 묻는 미국 사회에 비해 우리네 인식은 얼마나 무뎠으며, 통수권자의 태도는 얼마나 무책임한지를 기억합니다.
-
평소 뉴스를 잘 보지 않는 나는 이 소식을 학교 선생님께 수업시간에 들었다. 처음에는 작은 사고이거 잘 해결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학원이 끝난 10시에 알았다. 함께 집에 오던 친구와 소식을 접하자 마자 눈물을 흘렸고 서로가 옆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그 단원고 친구들한테는 정말 미안하다.
-
학교 갔다가 집에 와서 평소처럼 있다가 세월호 사건이 뉴스에 보도되면서 계속 뉴스만 보고있었습니다
-
너무 충격적이라서 말도 안 나왔던 그 날...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분들이었지만 같이 슬퍼하고 같이 울었습니다...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날의 7시간을
-
그날은 햇빛이 따뜻했던 날이었다.대학생이었던 나는 공강시간에 오랜만에 잔디밭 근처 벤치에 앉아친구들과 설문조사를 진행하며 재밌게 놀고 있었다. 그러다 그 순간 뉴스를 접했다. 거대한 배가 기울고 있는 뉴스를.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들이 구조되고 있다는 것을 접했고 안도하며 동기들과 카톡을 보내며 상황을 공유했다. 그런데 잠시 뒤 구조 인원숫자가 바뀌기 시작했고 나와 친구들은 뭐가 맞는거냐며 여러 곳의 기사나 뉴스를 링크로 퍼나르며 당황했고 혼란스러워했다.......아무것도 할수없어서 발을 동동구르던 그날의 기억은.. 기억하지 않으려고 하면 할 수록 더 선명해지는 그런 날이다. 무기력했던 내가 한심해서 더 사무치는 그런 날이었다. 잊을수가 없는 그런 날이었다..그 날은.. 무심하게도 햇빛이 따뜻했던 날이었다.
-
세월호 침몰이 하루 지난후가 제 생일이라서 또렷하게 기억나요 그때분명 페이스북이나 언론 매체에 바다에 빠진 아이가 힘겹게 숨을 이어붙이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어요 모두들 그 글을보고 정부에게 알리려고 애썼구요 그런데 위에서 내려온 조치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리고 그 아이의 연락은 끊겼죠 얼마나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까요 하루가 지난 후에도 그 일곱시간이 지난 후에도 왜 도대체 수 많은 알림에도 불구하고 구출하지 못 한 걸까요
-
14.04.16 매일 뉴스를 보며 울고 보낸 날지금 대학에서 내 친구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그 수많은 아이들이 어둠에 갇혀 내 방에 노란 리본으로 찾아온 날
-
그날은 여느때와 다름없었고 4교시 체육을 준비하고있었다체육시간 선생님께서는 너희또래의 아이들에게일어나서는 안될일이 일어났고 , 전원구출되었다 . 라고 얘기하셨다 그런데 그후 하교하여 집으로 돌아가 정말 여느때와 다름없이 과외수업을받았고정확하게 기억나는것 하나는 엄마께서 눈물을 흘리시며 매우 슬퍼하셨다는것이다.
-
그 아이들과 같은 나이 그 날도 난 수업을 듣고 있었다.선생님과 친구들 다 같이 뉴스를 통해 보았다.같은지역이어서 더 기억이 난다. 아직도 그 어수선한 분위기를 난 잊지 못한다. 우리반 친구 한명은 자신의 친구를 그 날 아침에 보았지만 생존자 명단에 있지않아 엎드려 울고있었고 다른 아이들은 자신의 친구가 괜찮은지 연락을 하고있었다. 우리 중학교에도 한 친구가 단원고로 갔지만 안타깝게도 생존자 명단에 있지않았다. 난 그 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고인다. 제발 우리 아이들의 아니 내 친구들이 하늘에서는 행복하길 빈다.
-
중학교때 학원 갈 때쯤 세월호 소식을 접했습니다. 학원이 끝나니 다 구조되었다길래 다행이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30분 뒤 집에 도착하고 뉴스를 보니 사망자가 한명씩 뜨더라구요. 한번도 본 적 없었지만 엄마랑 부둥켜 안고 안타까워 눈물이 났습니다. 저도 이러는데 유가족분들은 얼마나 애통하시고 허전 하실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시각 대통령님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그 7시간 꼭 밝혀낼 것입니다.
-
사건이 있던 시간 저는 학교에서 다른날과 똑같이 수업을듣고,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그때 세월호사건을 뉴스와 인터넷으로 상황을 접할 수 있었죠. "구조중이고 사망자 없다", "전원구출했다"그때 그 상황을 접했던 것과 다르게 저녁이 되서나전해들은 소식은 정말 화가나고 어이가없었죠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지나고민간어부가 구출하러가는것도 막고 해병은 선장을 급하게 구하고 . 정말 저당시 고등학교 일학년이던 제가봐도 너무 어이가없어 믿고싶지않은 사실들이였습니다.그렇게 지금 956일이 지난 현재 그전보다 많은 사실들이 밝혀지는 중입니다. 정말 믿고싶지않을정도로 잔인하고 어이없고 화나는 사실들이 어두웠던 세월호의7시간이 밝혀지는 중입니다. 단지 어두웠던것이 아니였던 어둡게 만들고싶었던 사람들에게 의한 어두웠던 시간들이 꼭 잊혀지지않고 밝혀졌으면좋겠습니다. 더이상 우리에게 어두움을 주지않는 나라에서 살고싶어요 꼭 잊지않겠습니다 14.04.16
-
아이야꺼져버린 촛불들이 무수히 많아그 촛불들을 밝히는데 큰 힘이 들구나하지만 힘들이 모아져 꺼져버렸던 그 날 밝혀지기를
-
안녕 얘들아 나랑동갑또래인 너내 뉴스를 보고서이름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저 울기만했었지 전원구조속보가 떳을땐 정말 마냥기뻤어다시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거에 너무 많이슬펐고하늘도 많이슬퍼하셨는지 비가많이오더라너희들의 눈물이였을까 되게 많이 슬펐었는데어느순간 너희기사들은 구조그런거보다 정치적인 이야기가 많아지더라 그건 아직도 많이슬퍼너내가원하는건 정치적인 싸움이아니라 위로일텐데말이야 미안해 이런세상에서 너내없이 또 살아가는게 하지만 한번도 잊은적없어 아직도 마음속에 살고있어 너희들은 하늘에서는 꼭 행복하길바라 나중에 보게된다면 그땐 우리 행복한세상에서 살자
-
학교에서 그 소식을 접했습니다.아이들 모두 어떡하냐며 걱정을하였고 대게는 곧 구출되겠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미술 시간, 아이들은 선생님께 뉴스를 틀어달라고 요청했고 다 같이 뉴스를 보았습니다.뉴스에서 본 세월호는 이미 반쯤 기울어져 물에 잠겨있었습니다. 배 주위에 구출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적어보여 의아했던걸로 기억합니다.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가 튼 뉴스에는구출되지 않은 학생들이 많다는 내용이였고 저는 기적이 이루어지길 기도하고 애원했습니다. 가족 모두 비통한 표정으로 안타까워 했고 sns도 난리였습니다. 하지만 기적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왜 기적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요. 착잡하고 먹먹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기적을 바라기 이전에 충분히 해결되었을지도 모르는 상황들. 7시간의 기억을 건져 올려 부디 진실을 찾았으면 합니다.
-
?2014년 4월 16일, 나는 단원고 학생들과 동갑이었다. 그때 그 소식을 듣고 학교는 아침부터 야자가 끝날때까지 뒤숭숭했고, 계속해서 친구들과 수시로 뉴스를 확인하며 모두가 구조되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그 날의 7시간을 기억하지 못하는게 아니라 못하는 척하고 싶은게 아닐까.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
학생인 저는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집에 와서 들었어요. 저는 우리나라가 무능하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어요. 그 7시간동안 학생분들이 얼마나 추위에 떨고 얼마나 두려웠을지 감히 상상도 안돼요. 실종자 수 구조자 수는 뉴스 곳곳마다 달랐고, 실종자 수가 늘어갈 때마다 심장이 덜컹했어요. 대통령님 그 7시간동안 뭘 했는지 유가족분들 희생자분들 생존자분들 그리고 국민들은 알 권리가 있습니다.
-
사고가 일어난 지 한달이 지나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보고듣는 것이 뉴스와 인터넷 기사가 전부일 때..누군가 세월호보도에 대한 의혹들을 시간대별로 방송사별로 캡쳐해서 올려둔 내용을 보면서 당일 사고당시에는 방송사들이 책임없는 오보를 내고서도 삭제하거나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정부를 옹호하고 유가족과 진실을 알리려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여러 정황들을 보며 분노하던 시간들 아직도 생생합니다.숨기고 옹호한 자들은 더 생생해야지요..
-
2년전, 단원고 친구들과 동갑인 18살의 나는 그날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학교에선 휴대폰을 내기 때문에 세월호에 대한 소식을 모르고 있다가 쉬는 시간 옆반 친구가 "빨리 사람들 구하러가야 되는데" 라는 말을 듣고 처음 세월호에 대해 듣게 되었다. 처음엔 단순한 사고인 줄 알았다. 들어보지도 못한 배 사고에 그 심각성을 감히 상상도 못한 것이다. 그냥 좀 기울다 금방 구조되겠지 하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5교시 6교시 수업에 들어오는 선생님들 마다 모두 세월호 뉴스를 전해주셨다. 조금씩 나는 심각성을 느꼈지만 그래도 당연히 다 구조되겠지 라는 생각을 했다. 야자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 휴대폰을 켜보니 뉴스는 심각했다. 깜깜한 밤이 되었는데 구조자는 턱 없이 적은 숫자였다. 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 열흘.. 시간은 흘렀고 나는 티비를 틀지도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지도 친구와 떠들며 웃지도 못했다. 웃음이 미안한 날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