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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렷이 기억하는 이유는 일때문에 파주를 갔었습니다. 업체를 방문하고 다시 수원어 있는 사무실로 복귀하기전 통일로 가기전에 물을 사려고 편의점 들렷다 세월호 침몰에 전원구조라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다행이다 생각하고 수원 사무실 도착해서 업무를 보고 퇴근해서 뉴스를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전웨구조라는 뉴스가 개뻥이었기에.....대통령의 7시간에 나는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구조 했다는 뉴스를 보고 다행이다 생각하구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것에 화가나고 열받았습니다. 인터넷뉴스도 안보고 구조소식만 듣고 열심히 일했는데.....내가 이러려고 열심히 일했나하는 자괴감이 들었으니까요~ 일년뒤 4월16일에 개인사업을 시작 했습니다. 이날로 정한건 우연이지만내 기억속에 영원히 남을 날입니다. 영원히 잊지 못하고 잊어서는 안될날이 된거죠~ 사람들은 잊자고 하기도 합니다. 그때 이렇게 얘기합니다. 세월호에 당신의 자식이~ 당신의 가족이 타고 있었다면 잊을수 있겟냐구요~ 세월호를 둘러싸고 수많은 이야기들이 나옵니다.어찌되엇든지 그건 학살입니다.진실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구요~박ㄹ혜의 7시간이 궁금한게 아니라 대통령으로서 7시간동안 무엇을 했느냐가~ 진실이 궁금하고 밝혀지기를 국민의 한사람으로써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궁금합니다.그리고 분명한건 직무유기에 대한 엄중한 처벌 받기를 원합니다.다신한번 전원구조라는 방송~ 그런 기사가 꿈이 아니었으면~ 과거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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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쯤. 학원 수업 공강시간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고, "큰일이지만 구조됐다니 다행이네... ." 그런데 집에 와서 그 배가 여전히 그대로 있다는 것과 사람들이 갇혀있다는 소식을 듣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제발 제발 구조되기를 얼마나 빌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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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아침 운전면허 봉고 아래서 처음 전원 구조를 했다는 소식에 한도의 숨을 쉬고 있었는데요. 오후가 되자 300명 의 학생이 아직 배 안에 있다는 슬픈 소식에 하루 종일 jtbc 뉴스를 보면서 기도 했어요. 담날 새벽까지 잠도 설치고 마음이 많이 조렸던 그날 이었습니다. 팽덕항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신 어머니의 부은 눈, 피의자 박근혜 손을 부여 잡으며 간곡히 부탁하는 그분들의 간절한 목소리 아직 도 생생합니다. "거짓말" 같던 그 날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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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출근을 했고,사무실에서 여객선 사고가 났다고 큰 소리 치며 놀랬을 때 조차 그냥 단순한 사고 인 줄 알았습니다.전원 구조라는 오보만 믿고 오전을 보내고 점심을 먹고....점심먹으면서 세월호 탑승자의 대부분이 남동생과 같은 나이의 학생인 걸 안 순간부터..오후 부터는 일도 손에 안잡히고 현장 생중계만 보면서 빌고 또 빌었습니다. 한명이라도 더 생존자를 찾길 바라는 마음으로..어떻게 총 탑승자 수도 확인이 안되며 우리의 안전 총 책임자는 털 끝도 안보이는지 화가 났지만한명이라도 더 구출하길 바라는 마음 뿐이었습니다.2년이 지났습니다.저는 아직도 그날의 제 7시간이 생생합니다.여느 날과 같이 평범했던 일상 중에 벌어졌던 끔찍한 사고니까요...그 평범한 수요일, 대통령은 어디서 무얼 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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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16일..저는 당시 건강이 조금 않좋아서 병원에 있었는데 평상시 처럼 TV를 시청하다가 YTN에서 <뉴스특보>를 방송하고 있었습니다..아이들의 구조소식에 빨리빨리 전부다 구조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종일 <뉴스특보>에 집중 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마음 입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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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휴학생이었던 저는 학교 동기와 오전부터 약속이 있어 나가던 와중이었습니다. 아침부터 틀어놓은 TV에서 세월호 침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전원 구조"되었다는 말을 보며, 어떡해, 그래도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집을 나섰더라죠. 동기와 만나 보기로 했던 영화를 보고 카페에 들어가는데,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무심하게 확인하다가 첫 페이지에 뜬 뉴스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전원 구조는 오보였다"고, 그러며 구조된 사람들의 숫자와 아직 배에 남아있는 이들의 숫자를 말해주는데 그게 자꾸 바뀌더라고요. 어떤 곳에서는 몇 명이었다가, 또 다른 곳에서는 그 숫자가 줄었다가 다시 어느 곳에선 늘어난 숫자로 말을 했죠. 동시에 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동기와 저는 음료를 주문해놓고 한참동안 서로의 휴대폰만 들여다보며 마음을 졸였습니다. 오전에 소식을 듣고, 안일하게 지나쳤다가 다시 그게 잘못된 뉴스였음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심장이 덜컥했는지. 그래도 괜찮겠지, 구하러 간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까, 구조 소식이 조금씩 들려오니까, 어떻게든 구조되겠지.하지만 제가 정부를, 나라를 너무 믿었네요. 그 이후 줄곧 이어지고 쏟아지는 뉴스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다가 언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뉴스를 봤을 때 일면식도 없는 이들의 죽음과 여전히 뭍으로 나오지 못한 "실종자"들의 소식에 얼마나 눈물을 쏟았는지 아십니까. 저는 그 날, 그 뉴스를 보았던 날, 그 일이 일어났던 날에 누구와 무엇을 했으며 어떻게 움직였는지까지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그럼에도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그 날의 저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누가 그냥 영화 속일 뿐이라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네요. 한 나라의 대통령이, 사고가 일어났던 당일 7시간의 행적감추기에 급급하며 여전히 나 몰라라하는 세상에서 살고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세월호 유가족들이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설명을, 사과를 듣지 못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요.우리는 기억합니다. 잊을 수조차 없는 날입니다. 그런데 그 날의 당신은 무얼 하고 있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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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 담임이였다. 그리고 수학여행이 일주일쯤 뒤였고, 그날도 수학여행을 위한 준비사항을 아이들과 점검하고 잔소리를 할 예정이였다. 2교시 쉬는 시간에 처음 소식을 접했다.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대한 민국인데...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다. 시간이 날때마다 포털을 들락거리며 기쁜소식을 기다렸지만,... 하루 종일 뒤집어진 배를 보며 믿지도 않는 신에게 기도했다. 그리고 우리 나라는 분명히 저들을 구할 것이라고, 기술적으로 잘 모르지만, 그렇게 무한한 신뢰를 가졌다. 그러나 그뿐이였다. 그리고 그 뒤로는 울었다. 이유가 없었다. 화나서 울고 또 아이들과 시민들이 불쌍해서 울고.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기도하고 분노하고 울기만 했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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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 정확히 제가 무얼 하고 있었는지 명확하게 기억나진 않습니다.평소처럼 그냥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었겠지요. 커피 마시고 웹서핑하고... 어제 그제 했던 일을 반복하고 있었겠지요.하지만 그 흐릿한 배경속에 뚜렷이 남아 있는 기억은 우리의 아이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 정부와 권력 가진 자들의 무관심속에 하염없이 가라앉고 있는 모습입니다.슬픔이 먼저 찾아 왔고 눈물이 흘렀으며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아무것도 해줄 게 없는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사람이면,,적어도 사람이라면 저와 같은 심정이였을텐데.... 도대체 당신은 사람이긴 한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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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오보를 보고 그대로 동아리 활동을 하고 동아리 활동이 끝나고서야 세월호의 심각성을 알게되었습니다. 아직까지도 많은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국민여러분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그당시 안산 학생들은 아직까지도 주변에서 들리는 세월호 얘기에 상당히 민감하며 실제로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이 심각한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잊지 말아주세요. 안산에서는 참사후 오늘 이시간 까지 계속해서 세월호 7시간, 왜 구조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나 진상규명을 요구해왔지만 일부 국민들은 유가족들의 보상금문제, 세월호 인양 비용 등 본질을 흐리는 싸움으로 저희들을 많이 가슴아프게 했습니다. 이제서라도 모든 국민들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의 심각성을 깨닫고 함께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희 안산 학생들은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할 4월의 슬픔입니다. 국민여러분 끝까지 함꼐해주세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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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연구실에 있었습니다. 조용하고 아무 일 없는 평일 오전이었습니다. 수학여행 가는 아이들을 실은 배가 기울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서 인터넷 뉴스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기울어진 배가 담긴 사진과 기사들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놀라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연구실에 있던 동료들과 함께 이게 웬일이냐며 이야기할 때까지만 해도 그들이 당연히 구조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그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상했던대로 그들이 전원 구조되었다는 뉴스까지 듣고서 학교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점심 먹는 동안에 배가 기울다니 황당하다, 구조되었다니 다행이다 세상에 이런일이 있냐 애들 진짜 놀랐겠다... 라고 동료들과 이야기하며 웃었습니다. 늘 하던 일들을 그날도 계속 하면서 평소와 같은 하루를 보냈습니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구조되었다는 소식은 오보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잠겨가는 배를 보며 울고 있는 단원고 학생 가족의 모습을 뉴스에서 보았습니다. 나오지 못한 아이들, 그리고 그 가족을 생각하며 아무 생각을 할 수가 없던 그 시간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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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까지만 해도 어떡해 하면서도설마 못 구하겠냐는 생각이 있었다.설마가 현실이 되고추운 바닷물에 잠겨있을 아이를 생각하며너무나 간절하게 기도하고 원했다.지금 쓰면서도 눈물이 난다..물이 잠겨올 때 어떤 기분이였을까 아이들도설마 죽을거라고 생각했을까정말 아직도 믿고 싶지가 않다너무 마음이 아프고 못 구해서 미안하다 내 잘못이 아닌데 내잘못 같은 먹먹함이 항상 있다.침몰했다고 했어도 죽었을거라고 생각은 안 하고 희망을 바랬는데 무능한 정부의 대처능력에 답답해하며 눈물지었던 날이였다. 세월호 참사를 여객선 사고로 규정하는 정부와자기 가족이라면 저렇게 대응할 수 있을지, 세월호 가족을 욕하고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된 열사들을 욕하며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고 조장하는 현실은 너무나 서글프게 만든다. 존경받고 위로받아야할 유가족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현실에 암담함을 느낀다.나에게 그날은, 아니 지금까지도 희망은 사라졌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진실을 거짓을 이긴다는 걸 알기에 세월호7시간이 밝혀지고 범죄자들이 법 앞에 평등하길 바라며 마지막 희망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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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저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과 밥을 먹으면서 속보를 봤을때... 영화를 보는 것 같이 현실감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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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전 10시 30분만 해도 전원 구조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 다행이다.하지만 중계화면을 보면서 "아니구나" "왜 구조를 못하고 있을까 왜 구조를 하지 않을까"그날 우리 국가가 이정도 밖에 안되나?참담함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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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아버지가 입원하셔서 대소변을 받아내야하는 형편이었는데 엄마도 아프셔서.제가 대구까지 내려가 3박4일을 병원에 있다가 돌아오는 길이었어요.오후에 집에 와서야 뉴스를 보기시작했는데, 우리 큰아들이랑 같은 나이의 아이들이라 더 가슴이 떨렸더랬어요.그래도 어떻게든 구해내리라 믿었었는데...이렇게 오래도록 고통속에 빠져있게될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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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생생한 전원구조다행이네 하며 지나갔는데 어찌 그 아까운 아이들을 허망하게 보냈는지 진정 ㅁ ㅊ ㄴ 은 뭐한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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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평가받는 날이라 평가준비하고 평가도중에 평가위원에게 배사고가 났는데 희생자는 없다 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그뒤 평가가 끝나고 한시부터 들리는 말도 안되는 소식에 모두 얼음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날의 뉴스를 어디서 어떻게 들었는지 잊을수가 없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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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집안일을 하고 있었어요 아이가 감기로 보육원을 쉬고 있었고 둘이 옹달옹달 보다 일본 뉴스를 보고 알았어요...일본 뉴스에도 이리 빨리 전해지던데...한국의 누구는 어디에 정신팔려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는지요!!! 정말 화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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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저는 연차를 내고 집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다른 가족들이 출근하고 난 뒤 TV를 보다가 속보를 접했습니다. 거실에 드러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났던 게 생각납니다. 그러다 전원구조 오보를 보고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TV를 껐습니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 카톡 단체방이 난리가 나서 전원구조가 오보임을 알고 이때부터 잠들면서까지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날 난 트레이닝복 차림이었고, 속상해서 저녁 약속도 취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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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난 고3이었다. 그리고 그 때 난 교실에 있었다. 친구 휴대폰으로, 탭으로 뉴스를 보고 소식을 접했다. 처음엔 모두가 구조되었다고 해서 "진짜 다행이다"생각했다. 그런데 오보란다. 나보다 한 살 어린 아이들이 바다속에 가라앉았고, 그 수는 304명이나 된다고 한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도 뿐이었다. 하나님 아버지, 제발 저 아이들을 무사히 다 구조해달라고. 제발 애타게 기다리는 부모님의 품으로 돌려달라고. 다이빙 벨을 믿었고, 정부를 믿었고, 국가를 믿었다. 희망은 있다고 믿었다.그런데 국가는 없었다. 아이들을 전력을 다해 구조할 컨트롤 타워는 없었다. 다이빙 벨도 헛된 이야기였다. 304명의 아이들이 별이 되었고, 그 중 9명은 아직도 추운 바닷속에 있다.이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고 행동하는 것이었다. 세월호 팔찌와 리본을 착용하고 다녔고, 세월호 추모식에 다녀와 아이들이 거기선 무섭지 않길, 춥진 않길 바랬다.진실이 침몰되지 않으려면 한 사람이라도 더 기억해야 한다.기억하자, 공감하자, 행동하자.Remember 20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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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된지 알고있다가...그렇게 맘놓고 있다가..그 많은 아이들을 구하지 않고 물속에 잠기게 만든 시간들.. 그후 ..세월호안에 있던 어른과 아이들 그들이 그냥 떠나 가는걸 지켜볼수밖에 없었던 미안함과 가슴아픔..치떨리는 정부의 모능함..그날을 그시간을 어찌 잊겠습니까..지금도 눈물이 마르지않고 흐릅니다.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