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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있었어요. 배가 침몰했지만 구조대가 갔으니까 모두 곧 구조될거라고 생각했어요 회사 동료들이랑 배이름이 이상하다는 말도 했고 전원 구조 라고 다행이라고 가슴쓸어내렸죠. 그게 오보라는 게 밝혀지고 그래도 구조대가 있으니까 그래도 잠수부도 있으니까 배가 완전히 침몰할때까지 그리고 그 후에도 다들 돌아올 수 있을거라고 믿고 기도하고 그렇게 하루가 갔어요. 평범한 하루 , 지겹고 지겨워 금새라도 잊을뻔했던 하루였지만 끝내돌아오지 못한 이들때문에 아직 또렷히도 기억나는 그날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잊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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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마치고 집에와서 공부를 했습니다. 보통이었다면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우리가족이었지만 엄마는 뉴스를 보시고 계셔서 따라서 보다가 세월호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분들을 보며 저도 울고 가족들도 울었습니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 좋은 곳으로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생각합시다. 그 침울하던 그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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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서 아침 작업하다 TV로 보았습니다.처음에 걱정하다가 전원구조라는 보도를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네요.그리고 차를 타고 라디오를 들으며여성시대에서 유가족과 전화통화하는 방송을 들으며 운동하러 갔던 기억이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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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이 끝나고 조금은 여유롭게 동료와 점심식사중 뉴스보도를 보았습니다 선박사고가 났지만 전원구조라고 뜨길래 그래도 다행이네 왠일로 정부가 일을 잘 했네하고 안도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걸로 기억합니다...아직도 가족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9분들도 조속히 가족품으로 돌아와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진실이 인양되고 더 정의로운 대한민국이 될 때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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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들과 동갑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반복되는 일상, 2교시인 체육을 마치고 반에 올라오니 학교 전체가 떠들썩했다하지만 곧 나오는 전원 구출.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다그리고 많은 꽃들을 잃었다아마 지금쯤 나와 같은 대학교에서 같은 수업을 듣고 같이 학식을 먹으며 꽃다운 20살을 즐겼어야 한다 그 후 이년이 지났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수능을 보고 대학에 진학하며 살아간다그들이 할 수 없었던 일들을.무능한 어른들때문에 할 수 없었던 일들을.미안해 정말 미안해 거긴 꽤나 지낼만 한거지? 우리 서로 얼굴은 모르지만 나중에 볼 수 있다면그땐 웃으면서 보자. 미안해 그리고 기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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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그날이 아닌 바로 오늘 일어났던 일 만큼이나 생생합니다.온몸이 TV앞에서 얼음이 되어 이건 사실이 아닐꺼야라며 그 앞에서 움직일 수 없었고, 그냥 하염없이 눈물이 흘려내렸었던 그날...우리는 그날을 절대 잊으면 안됩니다.세월호의 7시간 의혹 꼭 밝혀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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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죽어가는 과정을 생중계하진 않을꺼란 생각에 큰걱정없이 tv를 틀어놓고 청소하고 있었다. 남들 모르게 가라앉은것도 아니고.. 전국민이 배에 배에사고가 난것을 알고 있을정도인데 그곳에 구조대원이 없지 않았을테니까...그러나 거짓말처럼 아이들이 죽어가는 과정을 생중계로 보고말았다. 밤에 누워있는데 아이들은 아직도 물속에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물속에 잠긴 아이들의 멍멍함과 답답함이 온몸으로 느껴져 그날밤 잠을 자지 못했다.박근혜 비선농단이니 뇌물이니 난 다 눈감아줄 수 있지만 세월호때문에 절대 용서할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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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시간 우체국 tv로 봤어요~~배는 기울었는데...아이들이 갑판위에서 구명보트 건너타는 영상을 보고 다 구하겠구나~~안심했었는데...저녁에 지인과 식사를 하는데 배가 침몰했다고해..너무나 어이없고 허망해....믿기지도 않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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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살아이를 안고 제발 전원구조가 맞기를... 가슴 조리며 기도했습니다..절대 잊을 수가없습니다..아이들의 표정을..두려움을 떨처버리고자 서로를 위로하던 아이들 의 목소리를...채 피어보지도 못한 꽃봉오리를..절대 잊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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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고 있었다. 전원구조.고등학생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갔다가 희안한 경험을 했겠네. 전원 구조라니 다행이다 - 라고 생각하며 점심을 넘겼다. 그리고 오후 2시쯤 다시 본 핸드폰에는 믿을수 없는 소식이 있었다. 전원구조는 오보고, 아이들이 아직도 뒤집힌 배 안에 있다고. 경악해서 뉴스를 틀었고, 4시에도 6시에도 7시에도 9시에도, 아이를 돌보는 틈틈히 뉴스를 보며 아주 작더라도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기도했다.그날밤은 늦은시간까지 뉴스를 확인하다가 잠이 들었고. 잠든 꿈 속에서 차가운 바닷속을 보았다. 악몽. 무서운 악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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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똑똑히 생각이 나네요.집에서 엄마와 둘이서 사고가 났다는 걸 뉴스를 통해 보게 된 그 날,전원구조라는 소식에 다행이다 싶었던 마음은 속속 변해가는 얘기들에 불안감과 공포로 변해갔고 부디 무사히 돌아오길 끝없이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를 했더랬죠.도통 잠들지 못하고 유튜브 생방송으로 상황을 계속 지켜봤습니다. 이것밖에 할 수 없다는 게 무기력하고 화가 났었고 가족분들의 모습에 또다시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타인도 이런데 가족들은 그 시간이 얼마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풀려가기 시작한 거 같지만여전히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고여전히 의문에 쌓여 있습니다그 당시의 정부와 언론의 역할, 배를 버리고 탈출한 사람들숨겨진 7시간, 그리고 대체 왜 구하지 않았는가주위에선 그만 하라 그만 잊으라 지겹다 가만히 있어라 하지만그럴 수 없음에 또다시 촛불을 들고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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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고국에서 일어난 믿기 힘든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출근시간이었어요. 기차안, 많은 승객들틈에서 기사를 찾아서 읽다가 종착역인 런던 워털루역에 도착했을때, 기차 문이 열리자마자 참았던 눈물을 주체못해 플랏폼 벤치에서 머리를 두팔에 묻고 오래 울었던 그날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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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떠올리니 벌써 눈물부터 나오네요. 제가 이런데 유가족들은 그날 이후를 어떻게 사시고 계신지, 버티고 살아내시고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주시는 유가족님들께 그저 감사하다고, 우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는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날도 아침 8시 전부터 학교 교실에 들어가 있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1교시 후 첫 쉬는 시간인 10시 넘어 알았어요. 다시 수업이 시작되는데 다리가 후들거리고 앞에 눈물이 쏟아져 그 다음엔 뉴스를 보지 않았습니다. 너무 무서웠고 무엇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에 수업과 아이들을 맡아야하는 상황을 놓칠까봐 였지요. 그러고 오후에 다시 뉴스를 접하고는 정말 하늘이 노랗더군요... 그날을 평생 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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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날 아침 세차를 하기 위해 집근처 손세차장에 가 있었습니다. 세차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라디오를 켰는데 그 때 세월호 소식을 처음 접했습니다. 그 때 시간이 오전 열시에서 열시반 쯤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전원구조했다는 소식이어서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후에 집에서 세월호가 침몰했고 그 안에는 구조되지 못한 학생들과 다른 사람들 300여명이 있었다는 소식을 다시 듣게 되었습니다. 그 날 밤, 아이 옆에 누워 함께 배에 갇힌 학생들 생각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꼭 구조되기를 간절히 빌었던 기억이 납니다. 차가운 물 속에서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몇 번을 상상했던 기억이 납니다. 부디 견디고 살아있기를 바랬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그날 밤 시간이 너무 지나가버렸기에 정말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울었습니다. 캄캄하고 추운 바닷속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생각하고 "어떡하냐, 어떡하냐", 이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지금 박근혜 정부와 구조방관한 자들, 저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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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제가 무얼했는지 자세히는 기억나진 않지만 오직 한가지... 그 당시 어떠한 상태였는가는 분명 기억합니다아무것도 할수 없었고 무기력함에 뉴스보며 울던 기억밖에 안납니다국가와 국민의 존재의미를 생각했지만 결국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답을 못팢긴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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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TV앞에서 국가가 반드시 구조해줄거라 희망을 놓지않았는데 너무 분하고 분합니다지금도 아이들 생각하면 분노의 눈물이 흐릅니다지옥불에 떨어져 죽지못하고 영원히 뼈와살이 타는 형벌을 받는다해도 저는 박근혜를 용서 할 수 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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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맑은 그날.. 왜 인지 모르고무엇때문인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어머니와 누군가의 딸누군가의 아버지와누군가의 아들우리는 기억을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우리는 답을 찾으려고 버티고 있는데... 왜. 무슨 이유로 도대체왜..그날.. 그 맑았던 그날.. 온 국민이.. 전세계가.. 그들이 그 아이들이 살아 돌아오기를 기도했던 그날.. 그 맑았던 그날... 4.16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T.V 를 틀고는 모두가 구조되었다는 자막이 나오던 그때..커피잔을 손에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다가나도 모르게 한참을 울었던 그날.. 그때... 난 아직도 이렇게 선명하게 그날 하루종일을 기억하는데.. 왜. 도대체 왜. 무엇때문에.왜....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는 걸까요? 그리 슬프고 간절했던 그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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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아니, 계획적으로 의도된 침몰..모두를 죽음으로 매몰기라도 하려는 듯누구도 아무도 구하지 않았던 최초의 시간들구하려는 이들조차도 막아섰던 보이지 않는 세력그러나 진실은 절대 침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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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도 어김없이 저는 평범하게 직장인으로써 출근하여 정신없이 업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메신저에 뜬 세월호 속보 하나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치만 업무 하기 바빴습니다. 별일 없겠지 라는 생각으로, 그리고 얼마 뒤 전원구조 되었다는 소식에 안도했습니다 . 그리고 저는 다시 일을 했습니다.퇴근을 하고 나서야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퇴근하고 집가는 길에 버스에서 자꾸만 눈물이 났습니다.제 동생과 비슷한 몇백명의 아이들이 차가운 바다속에 있다는 것이.. 그리고 이 아이들을 구하지 못한 해경 그리고 정부가 너무나 밉습니다.시간이 지난 지금도 저는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세월호 우리는 꼭 진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님이 대한민국 영화관에서 다 거절당했던 영화 다이빙벨을 무료 공개 하셨더군요 많은 분들이 꼭 보셨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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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과 10시반쯤에 피부과에 도착했습니다.병원티비로 사고 소식을 듣고 조금 있다 전원구조로 안심하고 동생과 피부관리를 받았습니다.관리 후 말도 안되는 뉴스 오보!!그날 우리애들을 붙잡고 얼마나 울었던지그이후로 눈물은 시도때도없이 흐르고ㅜ전 그날이후 그 병원엘 아직도 가지 못합니다.그병원은 제게 아픔으로 남아있습니다!그밖에도 세세한것까지 다 기억나는데 기억 안난다는 인간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무존재도 아닌것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