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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 저는 재수를 하느라 학원에 있었습니다. 휴대폰을 몰래 확인 하기위해 화장실에 가서 뉴스를 본 순간...너무 놀라서 손이 떨리고 눈물이 쏟아져 나왔죠... 수업시간에도 집중이 안 되고 온통 세월호만 머리속에 가득했습니다....나는 대체 뭘 하고 있는가...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도와주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서...너무 답답했습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도 할 수 있는게 그들을 떠올리는 일, 혼자서 분노하는 것 밖에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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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양치질을 하고 오는 길, 친구들이 세월호 사고소식을 알리고다녔다.그것도 핸드폰을 선생님 몰래 안 낸 학생 덕분이었다.하루종일 불안과 슬픔 속에서 야자까지 마치고 집에오니 부모님을 보자 참았던 눈물이 났다.바로 다음날 아침 등교한 나와 친구들은 담임선생님이 시키는 아침체조를 여느때와같이 활기차게, 내 감정과는 상관없이 해야만 했다.여러 모로 훌륭하신 분이었던 선생님이 그 때를 떠올리니 밉다. 싫다. 마음껏 슬퍼하지 못하고 교칙과 교사지시에 복종해야 했던 나는 고3이었다.지금은 그들의 멈춰진 시간만큼 성장한 고2남동생이 있는 누나다.갑자기 앞방에 사는 저놈아가 너무 소중해진다.2014년 4월 16일의 우리 동생들이 보고싶다.아직도 자기전 그 동생들의 시신수습을 확인하고 유가족들 의 통곡에 함께울다 잠들었던 때가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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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했던 봄 날. 어린이집 아이들과 봄소풍 가는 버스 안에서 사고소식을 접했습니다. 버스안 티비로 전원 구조라는 뉴스를 보고가슴을 쓸어내리며 하루를 보냈지요-다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접했던 소식.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오보인지. 제발 제발 아니길 바라며 다시 검색하고 검색하고. 부모님들이 팽목항으로 내려간다는 소식. 학교의 대처가 잘되었나,,하는 뉴스로 시끄러웠던 기억도 납니다. 제발 제발. 구조소식이 있기를 바라며티비앞을 지켰던 그 날. 0416 가슴아픈 그 시간을 잊지않고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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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2014년 4월 16일이 때 나는 고등학교 1학년 이었다그 때 시간이 점심(?)쯤 되었을거다 친구들과점심을 먹고 돌아다니면서 얘기를 하고있었다그리고 나는 휴대폰을 켜서 네이버기사를확인하였다 맨 처음 본 것은 <세월호 침몰>이었다나는 놀라 그 기사를 클릭하였고 그 다음 본 기사가<전원구조>라는 기사였다 그 기사에 안심하고휴대폰을 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것은 <오보>였다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 시간이 학교가 끝난 시간이라 집으로가서뉴스를 보았다 구조는 현재진행형...나는 속으로 시간이 얼마 되지않았으니 전원구조될 것이라고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구조자는 200명도 되지 않았다같은 고등학생으로써 너무나도 슬펐다그 후 들려온건 <대통령 7시간의 공백>나는 분노했다 어떻게...어떻게...학생들이...국민들이...차가운 바다속에서죽어가는데 어떻게 7시간동안 아무것도 안할수가있는지를 말이다 나는 이후로 이런 나라가 싫었다정말로 싫었다...그리고 지켜보고 있던대한민국 푸른집의 누군가...정말 싫다나는 바란다 이 나라가 밝아지는 그 날까지...2014년 4월 16일 영원히 기억합니다나는 가끔 생각한다2학년 선배들이 모두 구조됐으면누구는 대학에 들어가고 누구는 열심히 일을하고다 같이 가족들과 친구들과 웃고있는 장면을 말이다이 장면을 상상하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슬퍼지기도하고 좋아지기도 한다그리고 다른 생각도 들을때가 많다이 모든게 꿈이라고..거짓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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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침몰한 세월호에 탑승한 친구들과 같은 나이, 같은 학년의 학생이다. 사건 당시 나는 학교였고 생방송으로 방영되고 있는 세월호 침몰 영상을 학급에서 함께 보고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선생님과 선원들 말을 잘 들으면 모두 살 수 있다."며 방송을 끄고 수업을 시작하기를 요구하셨고 곧 전원 구조되었다는 속보가 나왔다. 선생님은 "거봐, 말 잘 들으니까 다들 살았지."라고 하셨다. 그러나 곧 오보임이 드러났고 우리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구조 작업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엄정 대처의 중요성을 입버릇처럼 강조하던 대통령은 그때 올바른 대처를 하고 있었는가? 뉴스를 보며 우는 친구들도 있었고 기도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청와대는 하지 못하는 그날 내가 겪은 7시간을 똑똑히 기억한다. "가만히 있으라." 행동하지 않음은 모두를 가장 최악의 상황으로 이끌었다. 친구들의 죽음은 내게 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그로부터 2년 반, 가만히 있지 않았기에 많은 것들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나라는 마치 세월호에 탑승한 것 같다. 한 번 겪었기에 아팠던 그날처럼 침몰 시킬 수는 없다. 기억하자 잊지 말자 2014 0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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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같이 집 문을 나서고평소와 같이 지하철을 타며평소와 같이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그저 평범한 하루였습니다.평소와는 달리 SNS에 한 여객선의 소식들이 주를 이루고평소와는 달리 재미있는 프로그램도 하지 않으며평소와는 달리 빠르게 대처하지 않는 국가를 보게 되었던그저 평범하지 않은 하루였습니다.그리고 우리는 슬퍼하며 울분을 토해냈습니다.과연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던 것인가.7시간의 공백동안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진실을 함께 침몰시키기 위해 그저 가만히 있던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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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하루종일 마음 졸이며 뉴스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던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혹시나...혹시나 한 명이라도 더 생존자가 나오지 않을까 하면서.. 한 해가 지나고 두 해가 지나도 세월호는 마음 속에 늘 응어리처럼 남아있다. 올해 봄 어느 날은 새벽에 악몽을 꾸고 잠에서 깼다. 깊은 수영장에서 친구들과 물 속에서 숨 참기를 하다가 끝내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하는 악몽이었다. 문득 날짜를 떠올려보니 4월 16일이더라... 정부 관계자들이여, 자신들을 지켜줘야 할 책임이 있는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한채 떠나간 아이들의 원성이 두렵지 않은가? 진실을 찾아가는 유족들과 수많은 시민들의 눈동자를 끝까지 피하려 하는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라고 말하지 말라.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지길 바란다. 그냥 넘어갈 생각을 한다면 우리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세월호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진실을 밝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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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이던 그날은 학교에서 핸드폰의 인터넷 메인 기사로 소식을 들었다.처음 기사를 보고 친구들과 어떻게하냐며 구조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던것같다. 정말로 구조가 될줄 알았다. 그랬기에 나의 그날 하루는 평소와 다를바가 없었던거 같다. 간절함이 부족했을까 너무나 당연히 그조되겠지 생각하고 안일하게 있어서 그랬을까 학교가 끝난시간엔 정말 참혹했다. 옆반 담임선생님께서는 가르쳤던 제자가 세월호 현장에 있었기에 더 안절부절하셨다.정말 아직도 기사사진으로 본 침수되고있는 세월호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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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중학교 2학년. 곧 3학년이되지만 2014년 4월16일 나는 초등학교의 마지막 수학여행을가던 버스 안 이였다. 친구들과 즐겁게 웃으며 가던 길 뉴스에서는 세월호가 침몰하였다가 그안에있던 모두가 전원구조 되었다고 보도하여 우리는 다행이라 생각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잊을수없는 오보이자 사고가 되었다. 3일간 즐거운 수학여행을 보냈지만 그동안 많은 언니오빠는 저멀리 가고있었다. 4월 16일 다음날 비가왔고 그 비는 많은 슬픔을 뜻하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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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중학생이었고 별다를것 없는 하루였다. 그날도 핸드폰을 제출하지 않았고 의미없는 포털 사이트의 메인 기사들을 보고 있었다. 그날 검색어에는 어떠한 배가 침몰되었다는 기사가 오르내렸다. 아무 생각 없이 보지 않고 넘어갔다. 그리고 친구들한테 어떤 배 침몰됬데 라고 말하며 대수롭지않게 넘어갔다. 그 시간은 체육시간 이었고 나는 뛰고 운동할때 다른 누군가는 차가운 물에 잠겨갔다. 저녁이 되고 시험을 준비하러 가던 도서관 앞에서 기사를 읽었고 눈물이 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나이가 된 지금, 나는 그들의 기분을 단 한치도 이해할 수 없고 고통을 나눌 수도 없다. 때문에 내가 할 수있는 일은 그들을 영원히 기억하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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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전 미국에서 살고 있었어요. 봄방학이 시작해서 가족이랑 여행을 떠났던게 기억납니다. 어느 날과 다름 없이 차를 타고 다음 도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부모님이 뉴스를 보시더니 세월호라는 배가 가라앉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못 빠져나왔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배가 가라앉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었고, 저희 모두 큰 인명피해 없이 잘 구조될거라 믿었습니다. 해외에서 접한 사건이라 그 때 크게 인지를 못했던게 너무 후회됩니다. 저는 그날을 기억합니다.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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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1교시에 미디어영어 이중전공 수업이 있었다. 교수님께서 갑자기 기사봤냐고 제주도에 수학여행간 학생들이 탄 배가 가라앉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께서도카톡으로 이런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데 걱정된다고 말씀하셨다.조금 후에 교수님은 학생들은 다 구해진 것 같다고 다행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쉬는시간이 끝나고 다시 그건 또 아닌가본데 무슨일인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다. 교실에는 학생들의 탄식이 가득 찼다.하루종일 학생들을 모두 구출했다는 기사만 기다렸지만 저녁에 뉴스로 확인한 내용은 우리가 염원하던 것과는 달랐다. 어머니, 동생과 함께 저녁에 안타까움으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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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입학한지 얼마 안돼서 생긴 일네이버로 시도때도없이 확인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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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해외인턴 시작하는거라 긴장도 되고 그랬는데 갑자기 인터넷 사이트에 기사도 뜨고 난리가 나서 일손이 잡히질 않았습니다.다음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세월호 사진 보면서 국가망신이다.. 생각했습니다. 그 신문 보던 외국친구에게 이런 나라라 미안하다고 대신 사과했던 비참한 기억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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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시간이였어요. 자유시간때 평소 하던거처럼 핸드폰으로 네이버기사를 읽고있었는데 속보가떴어요 세월호가 침몰됬다고 그때 당시에는 어느정도의 상황파악이 안된상황이라 친구들한테 배가 침몰됬데 이런 정도였는데...그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배드민턴을 치고 집에가니까 사람들이 많이 위험한상태였더라구요.저는 아직도 이렇게 생생한데 정말 기억이 안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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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이였던 나..학교에서 생방송으로 보았다. 전원구조되었다는 방송이 뜨자 다들 숨죽여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오보였다...그때서부터 한명..두명씩 울컥이기 시작하였고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같은 학년이고 같은 나이였던...어쩌면 현재 20살에 알고지냈을수도 있던 친구들..SNS에서는 세월호에 탑승한 친구들을 태그하며 "살아있지?" "살아서 돌아와" 란 게시글을 많이 보았다 보면서 제발 살아돌아오길... 부모님곁으로 가길... 염원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망자수는 늘어났으며 아직까지 부모님곁으론 못간 친구들이 있다....평생 잊으면 안되는 #4월16일꼭 진실이 밝혀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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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저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습니다.그날은 중간고사 기간, 2교시 즈음이었나 자습을 하고 있었고 평소와 다름없이 아이패드를 이용해서 인터넷을 보던 중 단원고, 수학여행 중 배 침몰 "전원구조"라는 기사를 보았고 짝꿍와 다행이다. 하며자주하던 커뮤니티 사이트를 들어가는 순간 놀랐습니다.세월호 글들이 올라오는 글들 중 익명의 댓글로 "전원구조 아니야. 저거 오보야 학생들 구조 안하고 있어" 라는 댓글을 보았고설마 했던 생각은 한 시간 뒤 사실이 되어있었습니다.안산에 사는 동생이 생각나 허겁지겁 전화를 해보았지만 받지를 않았고, 그 동생에게선 친구들 다섯명이 연락이 되지않는다고 초조해하였습니다.결국 제 친한 동생의 친구들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녔습니다. 그 날의 기억, 절대 잊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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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거실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인터넷을 검색하던 언니가 수학여행 학생들을 태운 배가 침몰 중이라며 격앙된 목소리로 기사를 읽기 시작햤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구명정도 완비돼 있을테고, 왠만하면 다 구조하겠지~" "그래도 몇명 탈출 못하는 사람은 있을지도 몰라." 라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디. 곧이어 "전원구조" 했다는 기사를 읽어 주길래 그럼 그렇지. 하고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그것이 오보라는 것을 알고 난 다음부터 하루종일 인터넷을 검색하며 안절부절했다. 가족들과 밥을 먹으면서도 내내 어떻게 됐을까 걱정하다가...무능한 대통령을 뽑은 죄를 옴팍 아이들이 뒤집어 쓰게 되었다고 가슴 아파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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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사고가 많았습니다. 주변에서도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일이 일어났기에 굉장히 우울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그날도 우울한 마음으로 학교에 갔습니다. 대학교 2학년 1학기. 저에게 그날은 너무나 생생합니다. 네이버 어플을 켰습니다. 속보. 정말 보고싶지 않았던 속보. 2교시 수업이 시작하기 직전에 그 기사를 보았습니다. 교수님이 들어오시면서 수업이 시작할 분위기가 되어 옆에 앉은 동기에게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습니다.이번에 사람 또 죽으면 나 정말 미쳐버릴지도 모르겠다.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이 희생당하고 말았습니다. 특히나 그 중 단원고 학생들은 제가 많이 가던 동네에 있던 단원고... 그곳이었습니다. 예전에 한번쯤은 그 학생들과 스쳐지나갔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억장이 무너졌습니다.믿고 싶었습니다. 살아있을거라고. 살아있어야만 한다고.그리고 2년이 더 지난 지금, 저는 이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부에 대한, 국가에 대한 신뢰는 이제 더 이상 남아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희생을 기억하며, 최소한 제가 할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해 보려고 합니다. 그 죽음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요. 그 대답을 듣기 위해 저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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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16일 그날은 생일이 2일이지나고 전역이 4일이 남았을때였다 그때 전역이 얼마 안남아 전역자대기중이여서 티비를 보고있었다 갑자기속보가 떳딘 세월호가 넘어가고있다고 그기사를보다 후임들이와서 같이뉴스를보면서 전원구조라는 속보를보고 기뻐했다 그러나 점차 오보 오보 오보속에서 뉴스가 나오고있었다 점차점차 실종자와사망자가많아지고 있어서 당황했었다..... 이러면안돼는대 빨리구조를해야하는대 .......안타까웠고 절망했다....제발 제발구조하기를 기도했는대 지금도바다에 있는실종자분들이 꼭돌아왔으면좋겠다.